Switch Mode

EP.148

   연습모드? 이걸로 내 화를 풀려고 한 거야?

   

   하. 진짜 허접 병신. 어이가 없다. 아무 기능이나 열어주면 내가 좋아라 할 줄 알고?!

   

   이건 진짜 제일 쓸모없는 기능이잖아!

   

   소울 아카데미에서 연습모드라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배웠을 때 그걸 허수아비에다 대고 써볼 수 있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기술을 배울 때마다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알려주기 위한 기능이란 말이다.

   

   처음 게임을 해보는 사람들에게야 환영할 기능이지만 나에겐 아니다.

   

   특히 이게 현실이 되면서 게임처럼 몇 개의 기술만으로 날로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선 더 그렇다.

   

   숙련도가 쌓이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난리를 친다고 새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허수아비를 마음껏 때릴 수 있다는 이점만이 남은 기능을 어디다 써먹냐고!

   

   내가 호구로 보여?!

   

   흐으. 흐으으으으.

   

   할 말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걸 다 밖으로 내뱉었다간 또 어떤 식으로 보복을 할지 모르니까 참겠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둬.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랬지만 당신은 내 마음 속에서 허접 주신이란 호칭으로 고정이야.

   

   이제부터는 저얼대로 아르마디라고 안 불러 줄 거야.

   

   그런 줄 알아.

   

   이 마조 변태 허접 주신아!

   

   내 앞에 떠올라 있는 여러 창들을 치워버리고 있을 때 페이비가 눈을 떴다.

   

   그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내 얼굴을 발견하고는 살짝 굳었다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알른 영애. 여기는 현실이 맞나요?”

   

   ‘네. 맞아요.’

   “성녀면서 그것도 구분 못하는 거야? 진짜 허접하네. 맞아. 여긴 현실이야. 허어접 성녀.”

   

   위험에서 빠져 나왔으니 안심을 해야 할 터이나 굳어버린 페이비의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왜 저러는 거야?

   

   ‘페이비?’

   “허접 성녀? 왜 잘못한 강아지같은 표정을 짓는 거야?”

   

   “저어. 그게.”

   

   꾸물거리는 입꼬리. 내가 성녀라 그럴 때마다 움찔거리는 어깨.

   

   으음. 진짜 설마 싶기는 한데. 그럴 리가 없단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혹시 눈치 챈 건가? 자기가 아직 아르마디에게 선택받지 못했단 사실을?

   

   “성녀라는 호칭은 제게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끄으으아아아.

   

   큰일 났다. 눈치를 채버렸어.

   

   말도 안 돼!

   

   도대체 어떻게 이걸 알아차린 거지?

   

   페이비의 주변에 그걸 말해줄 만한 사람이 나 빼고는 없잖아.

   

   자기 스승의 행방이 달려 있는데 알새틴이 누설한다는 미친 짓을 저지를 리도 없고.

   

   그렇다고 페이비의 힘이 교회의 수작을 짓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것도 아니잖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 방금 전 페이비를 괴롭히던 적을 떠올리곤 입술을 곱씹었다.

   

   젠장. 나크라드. 그 빌어먹을 새끼가 입을 나불거린 게 분명해.

   

   그 놈말고는,

   

   과거 주신 교회의 고아원에서 실험체로 사용되었던 그 놈말고는 페이비가 가짜 성녀라는 걸 알 리가 없으니까.

   

   일이 꼬였네. 지금 페이비의 반응을 보면 자기가 가짜성녀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과거 고아원에서의 기억이 돌아왔을 가능성도 높다고 봐야 하나.

   

   하아.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냐.

   

   안 그래도 게임 속 성녀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흔들리던 페이비다.

   

   자신의 정체와 과거의 기억을 모두 깨닫게 되면 멘탈이 박살나버렸을 거야.

   

   일단 위로를.

   

   아니 입단속부터.

   

   아니 그것보다 먼저.

   

   <여아야. 진정하거라.>

   ‘이 상황에 어떻게 진정을 해요?!’

   

   멘탈이 깨진 페이비가 교회에 자신에 관해서 물었다가는 진짜 개판이 난다고요!

   

   안 그래도 좋아하는 편이었던 캐릭터인데다 요 근래에 가깝게 생활하면서 정이 든 캐릭터가 사라지는 걸 전 보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그런 소리를 할 시간에 어떻게 페이비를 제어할 수 있을 지나 이야기해봐요! 할배!

   

   <저 아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강한 듯 하니.>

   ‘그게 무슨.’

   <보거라. 곤란해 할 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잖느냐.>

   

   그것도 그렇네?

   

   페이비와 함께 돌아다니며 흔들리던 때에 그녀를 보았던 난 페이비가 그 때와는 다르단 걸 알 수 있었다.

   

   강한 체 하는 걸 수도 있지만 강한 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의 존재의의가 부정당했는데 강한 체를 할 수 있단 건 멘탈을 붙잡을 수 있단 거니까.

   

   여러 일을 지나치는 동안에 페이비도 자기 나름대로 성장을 한 건가?

   

   처음 던전에 함께 들어갔을 무렵이면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을 텐데 말이야.

   

   <마냥 걱정만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구나.>

   ‘할아버지. 그 말 책임질 수 있어요?’

   <물론. 본인은 사람 보는 눈에 자부심이 있거든.>

   

   하아. 알겠어요. 페이비를 믿으라 그거죠?

   

   좋아요. 할배의 말을 따르도록 할게요.

   

   대신 이걸로 페이비가 엇나가면 아카데미 짬통 투어가 시작될 줄 아세요. 할배.

   

   숨을 들이키며 주변을 살핀다. 아직 이 방 안에는 나와 페이비 이외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을 넘어서면 저 곳에 득실거리는 사제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단 거지.

   

   그러니 페이비가 가짜 성녀니 뭐니하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그 대화가 흘러나가면 주신 교회의 고위층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뻔하니까.

   

   게임 속의 시나리오대로 그 녀석들이 움직인다면 지금의 페이비는 견디지 못해.

   

   페이비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묻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건 나중에 안전한 장소에서 하도록 하자고.

   

   당장에 내가 페이비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어.

   

   이거 평범하게 말하면 분명 메스가키 스킬에 의해서 왜곡 되겠지?

   

   그럴 바에야 그냥 내가 메스가키처럼 말하고 말련다.

   

   “허접 성녀♡ 네 허접하고 멍청한 의견따위 내 알바야?♡ 난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널 부를 거야. 알겠어? 개허접 성녀?♡”

   

   페이비 네가 나크라드한테 어디까진 이야기를 들었을 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나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아르마디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알겠지. 그런 내가 널 성녀라고 부르겠다고 한 거라고.

   

   흔들리지 마. 고민하지 마.

   

   “알른 영애?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궁금해?♡ 궁금한 거야?♡ 푸핫♡ 근데 이걸 어쩌지♡ 난 당장 말을 해 줄 생각이 없는데♡”

   “네?”

   “멍청 성녀♡ 기다려도 못 알아 듣는 거야?♡”

   

   나를 믿고 기다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네 궁금증을 해결해줄 테니까.

   

   네가 아르마디가 선택한 성녀라고 말해줄 테니까.

   

   허접 주신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 않냐고? 알빠야?

   

   꼬우시면 직접 강림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성녀가 누구인지 이야기 하시든가.

   

   원래 침묵은 동의의 표현이랬어.

   

   ‘나중에 봐요.’

   “나중에 봐. 난 개허접 성녀랑은 다르게 바쁜 몸이라 이만 가봐야 하거든.”

   

   *

   

   잠시만요. 알른 영애. 저 아직 알른 영애께 드릴 말씀이 많이 남아있어요. 고맙다는 말조차 전하지 못했는데 벌써 떠나가시면.

   

   페이비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그보다 루시가 문을 여는 것이 더 빨랐다.

   

   문 바깥에서 기다리던 주교를 비롯한 주신 교회의 사람들은 멀쩡히 서 있는 페이비의 모습을 보곤 눈을 치떴다.

   

   “성녀님께서 깨어나셨다!”

   “이런 기적이!”

   “아르마디시여! 감사드립니다!”

   “알른 영애.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됐고 비켜. 좆밥 사제들. 역겨운 냄새가 나서 기분 나쁘니까.”

   

   진심을 담은 경멸의 표정에 교회의 사람들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고 그에 따라 생겨난 틈을 따라서 루시가 방 바깥으로 나섰다.

   

   주교와 사제 몇 명이 다급히 그 뒤를 따르며 루시에게 감사인사를 표했지만 루시는 그를 듣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서 페이비를 도운 게 아니라는 것처럼.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몸은 어떠십니까. 어디 불편한 곳은?”

   “목은 마르지 않으십니까?”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페이비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는 사제들에게 괜찮다는 이야기를 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 돌아온 주교에 의해 상황이 수습된 후 홀로 남게 된 페이비는 벽에 기대어 루시가 떠나가기 전에 했던 이야기를 돌이켜 보았다.

   

   알른 영애께서는 마지막까지 나를 보고 성녀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르마디의 사도인 그 분께서 말이에요.

   

   과연 그 분이 내가 만들어진 가짜 성녀라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그럴 리가 없죠. 아르마디의 간택을 받은 분께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할 리가.

   

   알른 영애께서는 그 모든 걸 알고도 제가 성녀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신 거에요.

   

   말투는 도저히 좋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감동해야 할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약간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르마디의 사도인 루시가 가진 것에 비해 부족함이 넘쳐나는 자신을 인정해 주었단 사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루엘님.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알른 영애께서는 말투가 거치실 뿐 분명 고우신 분이에요.

   

   페이비는 자신의 이불 위에 번지는 눈물 자국을 보다 얼굴을 쓸어 내렸다.

   

   최대한 무덤덤한 체를 하고 있었지만 그런다 한들 페이비가 겪은 정신적인 충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그녀의 추억 모든 것이 거짓되었다는 사실.

   

   평생을 성녀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온 그녀가 사실은 만들어진 거짓 성녀였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은 페이비라는 인간의 근간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애초에 성녀가 아니었으니 그에 걸맞지 않은 게 당연했다고.

   

   추한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고.

   

   앞으로 더 신실한 사람이 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한들 어디 그 충격이 쉬이 가실까.

   

   허나 루시가 떠나기 전에 해 준 말에 페이비는 구원받았다.

   

   그 때문에 도저히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아낼 수 없는 지금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일 수 있었다.

   

   스스로가 나아질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 간신히 울음을 그친 페이비는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침대보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소리내어 울어서 그런가 기분이 한결 낫긴 하네요.

   

   …알른 영애께서는 떠나가기 전에 저보고 기다리라고 하셨죠.

   

   그건 분명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을 테지만 기다리라는 이야기일 거에요.

   

   혼자 제멋대로 행동하지 말고 자기를 기다리라고.

   

   아르마디의 사도인 그 분께서 하는 말이라면 분명 그만한 뜻이 있겠죠.

   

   원래는 저 혼자서 움직일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그래요. 기다려야죠. 위대한 주신께서 바라신다면. 알른 영애께서 계획하시는 바가 있다면. 그에 구원받은 전 그를 따라야 할 테니까.

   

   그럼 그동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음. 알른 영애께 어떻게 감사를 전할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까요?

   

   영애께서는 무얼 좋아하실까요. 이건 고민해 볼만한 문제겠네요.

   

   조이에게 상담을 요청해봐야겠네요.

   

   기왕이면 알른 영애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할만한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데.

   

   루시가 주춤주춤 거리다 얼굴을 붉힌 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해 본 페이비는 언제 울었냐는 듯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보도록 하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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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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