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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9

    <149 – 면회의 방해자>

     

    “오크노디가 면회실에 죽치고 앉아있대.”

    “걔 보호자는 왜 안와?”

    “와이히엠하이 재단 사람이잖아. 자기들이 오크노디한테 한 짓이 들켰을 걸 알고 있으면 몰매 맞기 싫어서라도 당연히 안 오겠지.”

     

    복도를 지나가던 즈앙은 귓가에 들리는 소문에 참 바보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암살자가 직접 대면을 하면 어떡해? 온다고 해도 올 리가 없고, 오라고 해도 안 되는 거잖아.’

     

    오크노디가 아직 어린아이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경솔한 짓이었다.

    분명 오늘의 일로 교훈이 되겠지.

    서로가 곤란해질 빈말뿐인 약속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런 약속은 하려고 하지도 않을 거다.

    다 그렇게 강해지는 거다.

    즈앙은 오크노디의 해맑은 순수함은 좋아하지만 그녀의 순수함이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시기는 가급적 빨리 끝나기를 기도했다.

    모처럼 사귄 동업자 친구가 마음고생을 하며 앓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쿠궁.

     

    “…!”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보고 갈까.

    그런 생각에 발을 들였던 복도에서 심상치 않은 <경계>가 확장되었다.

    내부의 법칙을 비틀어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강자들의 고유기술.

    신입생? 그딴 하등한 수준의 힘이 아니다.

    조교? 이삼학년으로는 어림도 없다.

    교관? 그조차도 부족하다.

    교수.

    최소 교수급의 강자가 발휘한 경계다.

     

    ‘뭔지는 몰라도 발을 들여선 안 될 곳에 찾아왔어.’

     

    경계로부터 느껴지는 힘은 인지왜곡과 감각교란.

    그것들이 만들어낼 결과물은 복도 너머로의 추방.

     

    “어라?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더라.”

     

    우연히 근처에서 경계에 휩쓸린 학생 한 명이 멍한 얼굴로 걸음을 돌려 복도를 빠져나갔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목적지까지 도착하더라도 잠깐 길을 헤매었다고 생각하지, 자기가 경계에 들어갔었다는 자각도 없게 생겼다.

     

    <상급은신술>

    <경계속이기 – 혼연일체渾然一體>

     

    빠르게 눈치 챈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경계의 생물인식을 피해 기척을 감출 수 있었다.

    경계에 걸리지 않게 조심조심 나아간 끝에 즈앙은 또 한 겹의 경계가 이중으로 펼쳐져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른 이를 내쫓는 경계와 달리, 이중경계의 경계선 너머에는 다른 성질의 경계가 있었다.

    손으로 뗀 작은 실오라기.

    후.

    손바닥 위에 올려 가볍게 입으로 불어날린 실오라기가 경계선을 넘자마자 수직으로 뚝 떨어졌다.

     

    ‘중력이 달라.’

     

    어마어마한 압력이 저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중경계의 의미를.

    바깥의 경계는 혹여나 엄한 학생들이 휘말리게 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

    안쪽의 경계는 본 목적을 이루기위한 전투모드.

    이 안에서, 누군가가 교수와 싸우고 있었다.

     

    ‘누굴까? 누가 누구를 막으려고 하는 거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자신이라면 이런 일을 궁금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란 배신과 고통, 실망과 초연, 무심한 복수로 귀결되기 마련이니.

    어떤 관계에도 기대를 품지 않고.

    어떤 관계도 만들길 바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크노디를 만난 뒤로 달라졌다.

    세상에는 자신과 같은 아이가 있다.

    같은 암살자의 운명을 타고났으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살아가려고 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자신을 닮은 만큼 어쩌면 자신도 그 아이를 닮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몹쓸 기대를 품고 말았다.

    알고 있다.

    지금의 자신은 예전의 자신보다 약할 거라고.

    아카데미에서 배운 지식, 기술, 친분.

    그딴 것들은 암살자의 마음가짐만도 못하다고.

     

    위험에 발을 들이지 마라.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라.

    사적인 원한에 끼어들지 마라.

     

    스승이 남긴 수많은 충고가 발을 묶었다.

    그러나 하나의 의혹이 발을 돌리기를 허락지 않았다.

     

    만일 저 너머의 싸움이 오크노디와 관련이 있다면.

    오크노디의 보호자와 관련이 있다면.

    그래도 나랑은 관계없다고 넘어갈 수 있는가?

     

    쩌적.

     

    즈앙은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발을 오랫동안 묶었던 스승의 족쇄에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였다.

     

    ‘오크노디는 남이 아니야.’

     

    헤스티아나 티토소가에게도 늘상 잘난 체를 하지 않았던가.

    암살자는 친구를 함부로 사귀지 않는다고.

    친구를 배신하는 사람은 배신당하는 고통을 돌려받을 각오해야 한다고.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안 되는데.’

     

    곤란하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내딛는 한 걸음.

    목이 꺾일 것처럼 몰아치는 압력.

    터질 것처럼 힘이 실리는 허벅지.

    구부러지려는 등을 억지로 버텨보려는 오기.

    입학시험을 포함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 된 그녀의 눈앞에, 마침내 이중경계 속의 감추어진 광경이 펼쳐졌다.

     

    등을 돌린 채 팔짱을 끼고 망토를 흩날리며 제 자리에 오연하게 서있는 장발의 남성.

    그의 압박을 고스란히 받으며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걸음을 내딛는 연미복 차림의 또 다른 남성.

    그들의 정체를 굳이 표현하자면…

     

    ‘도적… 그리고 집사?’

     

    이해하기 힘든 조합의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 *

     

     

    조나 와이히엠하이.

    그는 이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바로 보호자 참관의 날을 말이다.

     

    “아가씨께서 사고를 참 많이도 치셨더군요. 제 몫까지 따끔하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미안하다, 리프. 아가씨께는 네 이야기도 전해주마.”

    “사탕바구니를 제대로 전해주시는 걸로 충분합니다. 슬슬 내성이 강해지셨을 테니 종류별로 엄선된 다른 독사탕을 드릴 때가 되었으니까요.”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건 아쉽게 생각하지만 리프도 어쩔 수 없음은 이해했다.

    최근 와이히엠하이 재단을 향한 아카데미 측의 조사관들의 눈길과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대륙본부에서 각 지역에 둔 핵심거점 중 하나에서는 아티펙트가 털렸다는 소식까지 들린 마당에 아카데미 측의 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재단의 품에서 아가씨를 빼앗아가려는 아카데미 측의 방해를 뚫으려면 양동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여기는 저희 암살메이드부대에게 맡겨주십시오.”

     

    리프의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메이드로 위장한 전문 암살자들.

    그녀들이 흩어지기 무섭게 연회장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폭연이 자욱하게 번지며 비상사태를 알리는 알림이 빗발쳤다.

    반 이상은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만 그 또한 재단의 ‘특별장학생’을 위한 상부의 투자다.

     

    ‘살아라, 리프. 네가 죽기라도 해서 아가씨가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조나와 리프.

    그들도 처음부터 무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면회에 앞선 연회를 빙자한 ‘약소 보호자 거르기’가 시작되자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면회티켓 한 장당 면회가 허락된 시간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은 모두들 알고 있겠지. 보호자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과 금방 헤어지기는 아쉽지 않은가?”

     

    한 고약한 자가 저지른 수로 인해 연회장에는 면회티켓을 건 내기가 시작됐다.

    겉으로는 내기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힘없는 보호자들에게서 티켓을 갈취하기 위한 수작이다.

    조나 역시 권력자들의 표적이 된다면 티켓을 무사히 사수하기는 힘들지도 몰랐다.

     

    ‘너희가 자처한 테러다.’

     

    암살메이드들의 폭파공작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연회가 취소되며 면회티켓 소유자들은 급히 전송마법진을 이용하게 되었다.

    각국의 유력자들이 학부생의 면회를 위해 모인 마당에 일정을 연기하고 절차를 까다롭게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기프트 아일랜드로의 이동을 서두르겠습니다. 면회티켓을 지니신 분들은 전송마법진 앞으로 서둘러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혼란을 틈타 자연스럽게 기프트 아일랜드에 도착한 조나는 섬 도처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마나에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섬이지만 참 변함없이 괴물 같은 섬이었다.

     

    “용맥이 흐르는 섬답게 마나의 기운이 참 웅장하군. 안 그런가?”

    “허허. 입학에 큰돈을 들인 보람이 있어. 우리 자식이 이런 곳에서 성장한다면 가문 최초로 소드마스터가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어.”

     

    국가 제일의 거상.

    세를 넓히는 무가의 가주.

    대귀족과 제국고위관료 등등, 쟁쟁한 보호자들이 아카데미를 방문했다.

    준비된 신원.

    그것이 마나보드를 통해 확인되자마자 한 사람씩 면회동으로의 이동이 허락된다.

     

    ‘조금 오래 기다리게 되겠군.’

     

    권력이 있고 힘이 있는 자부터 우선순위를 배정한 탓에 조나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도 그는 불평을 하거나 품위를 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와이히엠하이 재단과 아가씨의 체면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까.

     

    “…….”

     

    어느덧 모든 보호자가 떠나고 검사실에 마지막으로 남게 된 조나.

    기다림의 대가는 냉대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없는데 이만 검사절차를 진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마나보드의 고장으로 인해 지금은 검사가 불가능합니다.”

    “보드는 멀쩡해보입니다만.”

     

    직원이 웃는 낯으로 손에 힘을 주자 파지직 소리와 함께 마나보드의 회로가 타올랐다.

     

    “이제 고장 났군요.”

    “…….”

    “걱정 마십시오. 규정 상 늦어도 오후 6시 전까지는 모든 검사를 끝마쳐야 하니. 어떻게든 그 전에는 반드시 보드를 수리할 겁니다.”

     

    유치한 수작을 부리기는.

    조나의 험악한 눈에 살기가 감돌았지만 시선을 받은 직원도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눈으로는 덤벼볼 테면 얼마든지 덤벼보라고 도발하고 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저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리프와 달리 조나는 신원을 드러낸 상태.

    문제를 일으킨다면 즉시 추방당할 수 있다.

    오크노디를 만나고 싶다면 그는 손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상대가 아무리 더럽고 치졸하게 나오더라도.

     

    “…”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는 초저녁의 시간.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즐거운 면회되시길.”

     

    직원의 뻔뻔한 놀림을 뒤로하고 복도로 진입한 조나.

    발을 딛기 무섭게 달라지는 공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너무하는군.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고통이 더해지는 경계까지 펼쳐놓다니.

     

    “처음 뵙겠네. 오크노디의 보호자.”

    “귀인께서는 누구십니까?”

    “오크노디의 선생 노릇을 하는 교수라네. 사람들은 본인을 디스트로이어라고들 부르지.”

    “디스트로이어라면… 전대용사파티의 도적?”

    “미안하지만 이만 돌아가게. 이곳은 특별한 이유로 결계가 펼쳐진 복도라서 말이지. 면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아무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네.”

    “규정 상 면회티켓을 소지한 자는 보호자 신원이 확인되면 즉시 면회를 할 수 있을 텐데요.”

    “부득이한 사고가 일어난 것을 어쩌겠나. 다른 보호자들이 모두 지나간 뒤에 사고가 나서 망정이지.”

     

    뻔뻔하다 못해 능멸에 가까운 언행을 겪다보니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이런다고 저희 아가씨가 당신들의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네들도 곧잘 하던 짓 아닌가? 재능 있는 아이들을 모집하여 제자로 삼게 하고, 제자의 목숨을 인질 삼아 협박하는 것.”

     

    디스트로이어는 말했다.

     

    “단지 오늘은 서로의 역할이 반대가 되었을 뿐이네.”

     

    <은퇴한 전직용사의 모험기담> 강의를 맡은 교수.

    주신, <태양의 소페미아>에게 선택받은 용사의 동료.

    전대용사파티의 일원, 디스트로이어.

    그가 복도 한복판에 펼쳐진 이중경계의 중심에서 조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돌아가게. 그 하찮은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조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크노디를 아끼는 남자 vs 오크노디를 아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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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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