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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9

       

       

       방과후, 송병오와 함께 하숙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했다. 

       

       ‘오늘 밤에 놈을 잡는다.’ 

       

       있지도 않은 늑대를 잡는답시고 며칠간 5분대기조처럼 고생했던 것이, 오늘에야말로 끝난다. 야생의 늑대가 아니라 크로우 울프라는 마수였음을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헤멜 것은 없었다. 

       

       크로우 울프의 습성이라면, 이미 21세기에서도 많이 상대해 본 마수였으니 잘 알고 있었다.  

       

       놈은 야행성이니 해가 떠 있을 시간에는 굴이든 어디든 숨어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들이 몰려오면 불리하다는 것을 알 정도의 지능은 있는 마수였으니, 더욱 조심스러워졌겠지.

       

       그러니 놈이 방심하도록 되도록이면 소규모 인원이, 아니 혼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진작 이럴걸.’

       

       늑대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런 방법이 쓸모가 없었겠지만, 마수임을 깨닫자 일이 훨씬 간단해졌다. 

       

       해가 지면 나가기로 결정했으니,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함서주에게 부탁해서 5시쯤 일찌감치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해가 질 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기에, 나는 밤이 될 때까지 몇 시간이나마 자 둘 생각으로, 방구석에 드러누우며 송병오에게 말했다. 

       

       “이따 해 떨어지면 좀 깨워 줄래?”

       “이런! 미안하지마는 그건 어렵겠네그려.”

       “음?”

       

       돌아보니, 실실 쪼개고 있는 송병오 녀석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후후. 난 ‘아베크’를 하러 갈 참이니 말일세!”

       “아베크?”

       

       생소한 단어에 내가 되묻자, 녀석은 안경을 슥 올리며 말했다.

       

       “허어! 청춘 남녀가 함께 다니는 것을 유식한 말로 아베크라고 하지 않나. 자네도 여자와 어울리려거든 유행어 쯤은 알아두게!” 

        

       뭔가 했더니, 데이트를 뜻하는 말이었구나. 송병오 녀석은 연신 실실 쪼개는 것이, 여자와 단둘이 놀러간다는 사실에 꽤나 고무된 것 것 같았다. 뭐, 이전처럼 방구석에서 책이나 들여다보던 것보단 낫긴 하네. 

       

       “니가 이렇게 변할 줄 어떻게 알았겠냐.”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녀석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운명이란 한순간에 찾아오는 법일세. 주의(主義)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이 다 우스워지지! 아! 혹시 자네 양복 좀 빌려 입어도 되겠나? 기장은 아마 맞을 듯 한데……”

       

       더벅머리도 싸악 빗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쓰는 녀석의 모습이 새삼 재미있게 느껴졌다. 

       

       ‘좋을 때다.’

       

       딱히 부러울 것은 없었다. 나야 이미 미래의 삶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였으니까.

       

       무엇보다, 대략적인 미래를 알고 있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다가올 앞날을 준비하고 이 시대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누구처럼 팔자 좋게 연애나 하고 놀러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던가. 근데, 어디로 놀러가게?” 

       

       별로 궁금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묻자 녀석은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오늘 날씨도 이리 좋잖은가? 줄곧 내리던 비도 그쳤고…… 해서, 오늘의 아베크는 관악산으로 ‘피크닉’을 가기로 했네. 관악산 경치가 그리 좋다더군!” 

       “산에 가게?” 

       

       늑대, 아니 마수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데 산에 간다고? 게다가 늑대가 나온다며 출입금지도 아니던가. 하지만 송병오는 웃으며 대답했다.

       

       “늑대 소동때문에 등산객 출입을 막아놓았지마는, 덕분에  한결 낫지! 등산객도 없고 둘이서만 오붓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야. 어딜 가나 사람으로 가득한 인구백만의 도시 경성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낼 기회란 참으로 흔치 않어!” 

       “야, 그러다 마수라도 마주치면?”

       “허어! 나랑 그 아이랑 둘 다 각성자고 또 예비 엽사인데 설마 마수 한 마리가 무서워서 산을 못 오르겠나? 내 혹시나 싶어 이렇게 총도 가져가네.” 

       

       송병오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찬 교총을 들어 보였다.

       

       ‘뭐…… 괜찮으려나.’

       

       함께 놀러간다는 공팔자도 단검을 꽤 다룬다는 것으로 볼 때 근접전에 특화된 신체강화계열 능력일테고, 송병오 녀석도 사격 솜씨와 마력탄의 위력이 꽤나 괜찮았으니 별 걱정은 되지 않았다. 

       

       ‘녀석들 정도의 근딜 + 원딜 조합이 고작 중급 마수 한 마리한테 당할 구성은 아니지.’

       

       게다가 애초에 내가 쫓는 마수는, 근래 며칠간의 경찰 수색으로 인해 움직임이 제한되었을테니 아직 북악산이나 북한산 일대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송병오 녀석이 관악산에서 마수를 마주칠 확률은 거의 없단 얘기였다.

       

       나는 돌아누우며 말했다. 

       

       “뭐, 잘 놀다 와라. 나갈 때 서주한테 이따 나 좀 깨워달라고 말해주고.”

       “후후. 그러지. 난 감세!” 

       

       마당으로 나간 송병오 녀석이 함서주에게 뭐라뭐라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고 대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이 나갔으니, 나는 좀 자볼까 하고 누웠다. 그런데, 송병오가 나간지 채 얼마 지나지도 않아 요란하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오이! 건방진 조선인!』

       

       하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웬 놈이 방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무라사끼 녀석이었다. 막 잠이 들려던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는 또 왜 왔냐?』

       『건방진 조선인 녀석! 나와 함께 늑대 사내를 잡으러 가자!』

       

       무라사끼 녀석은 아직도 마수가 아닌 늑대인간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둘끼리?』 

       『그렇다! 실은, 경찰들을 동행시킬 셈이었지만……』

       

       무라사끼는 화를 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학교에 가 있을 때, 이미 오늘의 수색을 마쳤다더군! 오늘 오전에는 북악산을, 오후에는 인접한 북한산 일대를 다시 수색했는데, 늑대든 마수든 못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더 수색하지 않는다지 뭐냐!』

       

       몸이 달은 녀석은 당연하게도, 하교하자마자 경찰과 함께 가려고 했지만, 경찰은 이미 수색을 마쳤대서, 나라도 끌고가려는 것이리라.

       

       ‘흠……’

       

       뭐, 어차피 나도 잡으러 갈 생각이긴 했고,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도 상관없으니 녀석이랑 같이 가도 안 될 것은 없었지만.

       

       『좋아. 그런데, 지금 당장이 아니라 밤이 되면.』

       『밤? 어째서냐?』

       『그 마수는 야행성이야.』 

       『고라(이놈)! 마수가 아니었다!』

       

       무라사끼 녀석이 하도 부정하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수든 아니든 상관 없이, 지금까지 목격은 전부 밤이었잖아? 그건, 놈이 밤에만 움직인다는 뜻이야.』

       『……!』

       『그리고 지능도 꽤 있는 놈 같으니 여럿이 몰려가면 숨어버리겠지만, 한두 명만 찾아가면 모습을 드러내겠지. 어젯밤에도 너 혼자 남았을 때만 공격해왔다며?』

       『실로 그렇다!』

       『자, 어때? 우리 둘이 오늘 밤에 마수를 잡아서 공을 나누자. 네 아버지에게는, 네 공이 컸다고 내가 말해줄게.』

       『오호……』

       

       무라사끼는 입꼬리를 이죽거렸다.

       

       『좋다! 네 뜻대로 하지…… 그럼, 해가 지면 출발하는거냐?』

       『응.』

       

       아니나다를까, 공을 나누겠다는 말에 무라사끼는 그리 어렵지 않게 설득되었다. 녀석은 구두를 벗고 방에 들어와 철푸덕 앉더니, 대충 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오이! 그런데 안경 녀석은 어디냐?』

       

       송병오 녀석이 없는 것이 눈에 띈 모양이었다. 나는 드러누운 채 대꾸해 주었다.

       

       『데이트하러 간다던데.』

       『데이트? 뭐냐, 그게.』

       『아니지. ‘아베크’라고 하던가.』

       『아벡꾸!』

       

       무라사끼 녀석도 알고 있던 말이었는지 바로 알아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만 모르는 유행어였던 건가……  아무튼 송병오가 여자랑 놀러갔다고 하니, 무라사끼 녀석은 심통난 얼굴로 투덜거렸다.

       

       『쳇! 형편 좋은 녀석이군!』

       

       그렇게 투덜거린 무라사끼는, 아무튼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일단 방에 앉았지만, 

       

       『젠장! 이 집에선 할 것도 없군!』

       

       몸이 근질거리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몸을 들썩거리며 시종일관 투덜거렸다. 괴롭힐 송병오도 없으니 더 심심한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똥! 어차피 해가 지면 나가야 한다면……』

       

       하고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누운 채 물었다.

       

       『어디 가려고?』 

       『저녁이라도 먹고 온다! 이런 찌그러진 집구석에서 맛 없는 조선 음식이나 얻어먹을 생각은 없지…… 오이! 해가 지면 돌아오겠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구두를 신고 나가버리는 무라사끼.  그렇게 방해꾼은 사라졌건만, 이미 잠은 다 깼고, 해가 지려면 이제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잠 자두기는 글렀네.’

       

       나는 잠시 멀뚱멀뚱 누워있다가, 앉은뱅이 책상 위에 대충 올려둔 종이 뭉텅이에 눈길이 갔다. 다시 되돌려받은 연구자료였다.

       

       ‘이거나 좀 읽어 볼까.’

       

       어차피 남는 시간이었고, 혹시 그 대동아공영회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는 것이 없을까 해서, 나는 연구자료를 펴봤다. 

       

       “윽. 먼지가…….”

        

       그러고보니 이거 창경원 불날때 급히 챙겨온거라 사이사이에 잿가루같은게 잔뜩 껴 있었다.

        

       아이까와가 호기심에 읽어봤다는 논문—평범한 생물학 논고였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페이지 사이사이마다 먼지가 들러붙은 채였던 것이다. 

       

       ‘아이까와는 확실히 읽지 않은 게 맞네.’

       

       아닌게 아니라 아이까와는 치유 능력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의료인으로서의 공부까지 해야하는 만큼 공부량이 많다. 동물이나 마수의 생태처럼 다소 동떨어진 분야의 연구 논문을 읽기에는 손이 안 갔겠지. 

       

       나는 논문들을 대충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이까와의 말마따나 대부분 동물이나 마수의 생태 연구였고, 게다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일본어와는 달리 학술 용어가 많아서 더 어려웠다. 

       

       ‘음……’

       

       게다가 그 대동아공영회에 속한 교수가 누가 있을지나 알아보려던 내 목적과는 달리, 아무리 훑어봐도 별다른 인명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충 넘겨보던 내 눈에, 문득 수상함이 느껴지는 제목 하나가 들어왔다.

       

       「황국신민화의 연구 제1 – 을종(乙種) 황국신민화와 그 실험양상에 대해」

       「경성엽사전문학교 대동아공영회 소속교수 나까모리 저」

       

       얼핏 봐도 수상한 제목의 논문이었는데, 다른 평범한 논문의 사이에 껴 있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을종 황국신민화, 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의 TMI !
    남녀의 동행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이는 ‘데이트(date)’라는 말은,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의 언어생활에서는 쓰이지 않았던 것 같더라구요.
    대신 프랑스어 avec에서 온 ‘아베크’라는 말이 종종 쓰였는데, 영어로 치면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 with지만 용법이 다소 와전되어 남녀의 동행을 뜻하는 유행어로 굳어지고, 당시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꽤 쓰였던 모양입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은 조금 짧았지만, 대신 내일도 한 편 올라갑니다!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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