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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9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군. 벌레 물린 데 바르는 포션을 어디서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니.”

     

    루크는 시루드가 가게에서 산 벌레물린 곳에 바르는 포션을 바라보며 살짝 감탄했다.

     

    게다가, 벌레에 물린 곳 한정으로는 자신의 침보다 더 효과적인 모양이다.

    이 시대의 포션 제조술은 기본적으로 용도를 더욱 세부적으로 분류함으로서 효능을 더욱 깊게 파고든 것 같다.

    포션병의 모양도 꽤 신기했다.

    병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커다란 공에 약을 묻도록 해 손쉽게 바를 수 있도록 설계된 생김새.

    예르나의 집에 있던 포션은 단순히 찍어바르는 형태밖에 없던데 말이다.

     

    “그럼 당연하지, 베리튼에서 벌레약을 못 산다면, 사람들은 벌레에 물리면 대체 어떻게 살겠어?”

     

    “그도 그렇군.”

     

    시루드의 말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리튼, 과거에도 벌레는 참 많은 동네였다.

    하지만 그땐 엘프가 정령과의 연결이 끊어지기 전이었고, 정령술로 벌레를 쫓는 것 쯤은 간단히 할 수 있으니 벌레물린 곳에 바르는 약 같은 걸 따로 필요로 하지는 않았었지만.

     

    ‘괜히 침과 마력만 아깝게 되었군.’

     

    루크가 그리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모습을 본 시루드는 마치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을 떨고는, 왠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황급히 자리를 떴다.

     

    “…….”

     

    입맛을 한번 다시는 것 만으로 시루드의 몸을 떨리게 만든 자, 루크 이루시는 사실 시루드의 마음 속이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세계수의 3번째 뿌리…….’

     

    사실, 마법학에서 3이란 숫자는 꽤 의미가 깊다.

     

    3은 1과 2가 합쳐진 수.

    여기서 1은 독립, 통합을 의미하고, 2는 다름,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 둘이 합쳐진 3이라는 숫자는 그 둘의 결합으로 인해 완전해지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3은 선으로 면을 만들 수 있는 최소단위이기 때문에, 마법진이나 회로를 그리는 경우조차 3은 최소단위가 된다.

     

    또한, 세상을 나누는 대분류 또한 하늘, 땅, 바다의 3종류일 뿐만 아니라, 달의 변화 또한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로 3종류이다.

     

    이렇듯 3이라는 숫자가 지닌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마침 자신의 심장에서 고요하게 회전하는 서클 역시 3개가 아닌가?

    어쩐지 느낌이 좋은 곳이다.

    공기중에 마나 농도도 상당히 기분이 좋고.

     

    역시, 5000년이나 숙성된 세계수의 마력은 굉장히 진했다.

     

    진짜 세계수의 마력을 한껏 느끼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루크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기분 좋아보이네!

     

    루크의 어깨 언저리에서 날고 있던 파이는 루크의 머리 위에 자신의 몸을 툭, 하고 얹고는 루크의 귀 부분을 툭툭 건드린다.

    그것은 평소에도 루크가 기분이 좋을 때마다 파이가 자주 걸고는 하던 장난이었다.

    그것은 루크가 귀 부분이 살짝 간지러워지면 반사적으로 귀를 접었다 펴는 그 반응을 즐기는 행위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괜히 건드리다가 혼난 적이 있어서, 그 장난은 철저하게 루크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이다.

    꽤 영악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루크는 파이가 자신을 화나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장난치며 놀고 싶을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기에 마냥 미워할 수는 없어서 루크는 입가를 가린 채 낮게 웃었다.

     

    그 순간, 메리가 불쑥 얼굴을 내밀며 묻는다.

     

    “루크, 기분이 많이 좋은가 봐?”

     

    “역시 그래 보이는 게냐?”

     

    메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귀를 파닥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웃고 있는데, 기분이 좋은 걸 모르면 바보지.

    얼마나 대놓고 기분이 좋아보였으면 그러고 있는 루크를 본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기분이 좋으면 저럴까’하는 신기한 표정으로 한번씩 쳐다보며 갈 정도였다.

     

    원래부터 딱히 주변의 시선 따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루크는 그것이 별로 신경이 쓰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단지, 오늘은 눈이 마주치는 행인들이 평소보다 많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메리는 그런 루크에게 의문을 담아 묻는다.

     

    “대체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박물관이 그렇게 기대돼?”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당연히 기분이 좋아야지.”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그 자는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운 것들을 사용할 수 없기에, 똑같은 실수를 무한히 반복하고 말 것이다.

     

    망각이란 본래 무한한 생을 가진 신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신은 무한한 존재이니까.

    과거를 잊고 행하는 무한의 반복. 그야말로, 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무한한 모래알을 지니지 못 했으므로, 과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은 언젠가 끝날 유한한 생을 의미없이 낭비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그토록 한순간에 사라져 잊혀진 역사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서술해둔 것이겠지.

     

     

     

    하지만 루크의 대답을 들은 메리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박물관을 ‘역사를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라니?

     

    교과서적인 대답이긴 하지만, 그게 10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진심으로 나올법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 말을 다른 누군가가 루크에게 시켜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만일 누가 시켰다고 하더라도, 루크 자신이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루크의 말에는 그 정도로 진정성이 느껴졌으니까.

     

    ‘루크는 역시 이상하다니까, 공부가 그렇게 좋은가.’

     

    참 이상한 말이다.

    자신은 애초에 딱히 박물관을 많이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굳이 좋아하는 점을 꼽으라면 그냥 구경할 물건이 많아서 좋아하는 정도.

    그 이상의 이유를 딱히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만약 수영장이랑 박물관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자신은 수영장을 고를 것이다.

     

    ————-

     

    한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저택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흑색과 백색이 섞인 메이드복을 짧은 치마로 변형시킨 매니악한 의상을 입고 청소를 하는 여성 엘프들을 지나치자, 그녀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한번 흘겨보고는, 다시 청소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발 밑이 비쳐보일 정도로 깨끗이 닦인 바닥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으로서 상당히 거슬릴 법도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익숙한 것인지 별 감흥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는 남성쪽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 역시 그리 청렴하지는 않은 자였지만 대리석에 비치는 형상에 눈길도 주지 않는 모습은 그가 가진 안건이 그만큼 급한 것이리라 짐작하게 할 뿐이다.

     

    마침내 도착한 거대한 문에 다다른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한 뒤에 주먹을 말아 쥐고 문을 가볍게 두번 두드린다.

     

    똑똑.

     

    “딜런트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간 남자의 눈에,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의, 험상궂은 얼굴의 중년남성이 비쳤다.

     

    그는 남자에게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소파에 앉은 채 휴대폰으로 문자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남자는 절대 그 태도를 탓할 수 없었다.

     

    그의 심기에 거스르면 어떤 꼴을 당하게 될 지……. 상상하는 것 조차 너무도 두려운 일이니까.

    그는 떨리는 손을 뒤로 숨긴 채 입을 연다.

     

    “에이레스에 새로운 조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조직? 얼마나 크지? 수장은 누구고? 내가 알아야 할 정돈가?”

    몰아치는 질문에 남자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직 규모는 작고 수장도 유명한 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성장세가 조금 빠릅니다. 마약 유통루트를 거의 독점했고, 벌써 3개의 조직을 통합했다고 합니다.”

     

    남자의 보고가 그의 흥미를 끌었는지, 잠깐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보고자를 바라본다.

     

    “규모는 얼마나 되지? 자금은?”

     

    “아직은 지역단위이기는 합니다만……. 자금도 현재까지는 파악된 것이 없습니다.”

     

    남자의 보고를 들은 그는 금세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뀌곤 콧등의 상처를 긁으며 말했다.

     

    “그럼 별로 이상할 것도 없잖아? 신경 꺼, 원래 초기엔 다 그래.”

     

    “하지만 그 위치가 걸립니다.”

     

    “위치? 위치가 어딘데?”

     

    “그것이…….”

     

     

    ————

     

    루크는 박물관 앞에 커다랗게 세워진 동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35미터쯤 될까.

    새하얀 대리석 받침 위에 올려진 거대한 청동제 동상은, 한손에는 수정구슬을, 다른 손에는 천을 들고 있었다.

     

    루크는 자연히 시선을 내려 대리석 받침에 양각되어있는 이름을 읽었다.

     

    -선지자. 바알 니에르.

     

    -현대 마법사회를 이끌어낸 영웅들에게 경배를.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클래스마법을 창조하여, 현대 마법의 기틀을 다진 존재.

    그녀는 서클마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던 중, 클래스 마법을 창조하여 모든 이들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수많은 마법사가 탄생하였기에, 자연히 그들은 마법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그 때 그녀의 손에 정립된 마법 이론은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하던가.

     

    ‘대단한 여자야. 만약 살아있다면 만나서 대화라도 하고 싶은데.’

     

    1000년 전의 인물이니 오래 전에 죽었겠지만.

     

    루크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 위에 얹혀져 꼼지락거리는 파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파이, 그녀는 사후세계로 영혼을 인도받을 수 있었을까?”

     

    고대의 정령인 파이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본다.

     

    -음……. 글쎄…? 내 일은 아닌걸?

    “역시 그대는 모르는 모양이로군.”

     

    루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말았다.

    애초부터 딱히 큰 기대를 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후, 루크의 곁으로 두 아이가 다가오며 말했다.

     

    “루크! 여기서 뭐하고 있어! 얼른 들어가자!” 메리의 말이었다.

     

    이윽고, 따라온 시루드도 툴툴거리며 말했다.

     

    “바알 니에르의 동상이잖아. 뭐 재밌는 것도 아니네.”

     

    루크는 그제서야 동상에게서 시선을 떼고, 몸을 반 바퀴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하하, 그래. 바알 니에르. 참 재미있는 이름이지 않느냐?”

     

    “뭐가?”

     

    “여성의 이름으로 과거 토벌된 마왕의 이름을 주다니 말이야.”

     

    그토록 현대 마법에 지대한 영향을 준 여자가 5000년 전에 토벌된 마왕의 이름을 가진 마법사라니.

    참으로 기묘한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루크의 말에 메리와 시루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런가?”

     

    아니, 대체 그게 재미있으려면, 지금 눈앞에 ‘루크 이루시’라는 녀석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휴재가 잦아 죄송합니다.ㅠㅠ

    아직 조금 손가락이 아프지만 그냥 손에 힘을 좀 덜 주면서 그렸습니다.
    그나마 딜런트는 옛날에 그려둔 게 있어서 다행이네요.

    죄송한 마음에 일단 올때 메로나라도 사왔는데…. 미사용 삽화로 가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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