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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9

        

         

        * * *

         

         

         

       누군가에게는 악몽이었을.

       누군가에게는 좋은 일이 가득했던.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도구로 변하는 마법 같은 일을 목격했던 밤이 끝이 났다.

       어두운 밤하늘은 햇살에 조각나며 사라지고, 텅 비어있던 식당에는 음식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식당은 음식의 냄새와 함께 사람이 하나둘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으며 빈 식탁에 모여 앉았다. 그리고 뒤이어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아나스타시아와 엘라가 식당에 발을 들였고, 느긋할 정도로 천천히 걷고 있는 대마녀와 아그네스가 뒤를 이었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식당은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다.

       쓸데없이 커다란 테이블과 근본도 없는 코스 요리를 가져다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식기와 적당히 큰 크기의 테이블, 그리고 한 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셰프 두 명이 있을 뿐이었다.

         

       대마녀가 인테리어와 함께 뜯어고쳐 만든 결과물이었다.

         

       대마녀는 자신이 손수 고쳐준 식당이 마음에 드는지 식당의 중간에 서서 사방을 슥 한 번 훑어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셰프 중 한 명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

         

       “한국에서는 아침에 주로 어떤 걸 먹죠?”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대마녀는 셰프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됐어요. 생각해보니까 그럴 필요가 없네요.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아침 식사’를 매일, 다르게, 제가 말하지 않아도 준비하도록 하세요.”

         

       그리곤 셰프의 가슴팍에 붙어있는 명찰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명찰에 ‘셰프’라고 붙여져 있는데, 어디 그 솜씨를 발휘해보세요. 명색이 셰프라는 작자가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지는 않겠죠?”

         

       그냥 잘 만들라는 말보다도 무섭게 다가오는 말에 셰프는 긴장하며 알겠다고 말했고, 대마녀가 등을 돌리자마자 식은땀을 슬쩍 닦았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기합을 팍 넣고 아침 식사를 만들어 대마녀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나쁘진 않네. 채식 위주인 것 같기는 한데…. 뭐, 됐어요. 가보도록 해요.”

       “네.”

         

       대마녀는 도도한 표정으로 셰프를 손짓으로 쫓아 보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앞에 제각기 시킨 음식들이 모여드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대마녀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나스타시아가 시킨 음식들을 보고야 말았다.

         

       대마녀는 그녀가 시킨 음식들의 끔찍한 몰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나스타시아의 앞에 차례로 놓이는 음식은 아침에 걸맞지 않은 화려함을 품고 있었다.

       과장을 살짝 섞자면 50m 밖에서도 보일법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색을 품고 있는 젤리들이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 등의 색을 품은 채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 옆에는 대조적으로 새까만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이 잔뜩 있었다.

         

       거기다가 한 입 베어 물면 뼛속까지 단맛이 스며들 것 같은 빵에,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바르고 그 위에 젤리들을 잔뜩 얹어놓은, 진정한 의미의 ‘땅콩버터 & 젤리 샌드위치’도 있었다. 심지어 음료마저도 초콜릿 우유였다.

         

       가장 압권은 곰 모양의 젤리.

         

       손바닥만 한 크기의 곰 모양의 젤리가 원래 식탁에 있었던 장식물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나스타시아와 대마녀의 중앙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곰이 바라보는 방향은 아나스타시아 쪽도 아닌 대마녀 방향.

         

       너무나 하찮아 보이는 형태의 젤리 곰이 대마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나스타시아! 아침부터 무슨 초콜릿을 그렇게 잔뜩 먹는 거니!”

         

       대마녀는 젤리 곰과 눈이 마주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아나스타시아를 혼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제 성질이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액셀을 밟아 질주하려다가 자기 팔 쪽에서 눈에 쏘아지는 빛에 멈칫하고 말았다.

         

       그녀가 빛이 쏘아지는 곳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황금으로 만든 팔찌가 보였다.

       황금 장미를 엮어 만든 것 같은 이름다운 팔찌는 식당의 창가에서 비쳐오는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중 일부가 각도가 잘 맞아 대마녀의 눈으로 쏘아진 듯해 보였다.

         

       오딜리아는 입을 꾹 닫고는 햇빛에 더 찬란하게 빛나며 눈을 어지럽히는 황금 장미 팔찌를 다른 손으로 한 차례 쓰다듬고는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렇게 아나스타시아는 악몽과도 같은 잔소리를 들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 모습에 아나스타시아의 옆에 앉아있던 엘라는 묘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대마녀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언성을 높여 고압적인 태도로 잔소리를 늘어놓았어야 정상인데,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황금 팔찌를 한 번 쓰다듬더니 입을 꾹 닫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엘라는 잠시 고민했다.

         

       ‘헤어 박이 손을 쓴 걸까요?’

         

       그리고 곧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대마녀가 진성에게 꼼짝 못 한다는 것.

       이 저택은 진성의 가족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것.

       진성과 진성의 가족은 황금으로 만든 팔찌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선물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런 것을 선물할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성밖에 없다는 것.

         

       이 모든 사실이 대마녀의 성질을 저렇게 죽여놓은 것이 진성의, 헤어 박의 업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엘라는 다시 한번 속으로 헤어 박과 만난 것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더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하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고만 있는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방금 무슨 위기가 있었는지 알기나 할까?’

         

       한 소리를 듣기는 했으니 자신이 혼났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는 있으리라.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어야만 정상인데….

       혼났다고 하기에는 아나스타시아의 얼굴이 너무 해맑지 않은가.

         

       엘라는 괜스레 심통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아나스타시아의 옆구리를 손가락을 쿡 찔러버렸다.

         

       “꺄앙.”

         

       아나스타시아는 갑자기 자기 옆구리를 찌른 엘라를 의아한 표정으로 보았다가, 싸움을 건 것이라면 받아주겠다는 듯 엘라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엘라는 그녀의 투지에 답해주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옆구리를 찔렀다는 사실에 놀라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자신을 바라보는 아나스타시아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딴소리를 내뱉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언니? 그…음식이 없는 것 같아요.”

         

       아나스타시아는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엘라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번만 봐주겠다는 듯 잠깐 눈을 감았다 뜨더니 고개를 끄덕거리곤 그녀의 말을 받아주었다.

         

       “어제 꿈에서 이렇게 먹는 사람을 보았답니다. 어때요, 되게 예쁘지 않나요?”

       “꿈에서요?”

       “네에. 젤리 지렁이 스파게티랑 1만 칼로리 초콜릿 브라우니 케이크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1갤런을 퍼먹던 분이셨어요. 미국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히익.”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말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런 엘라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빼빼 마른 분이었는데 아마 다이어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런 꿈을 꾸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불쌍한 분이었답니다. 저처럼 이렇게 날씬하고 예뻤다면 다이어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가요?”

         

       엘라는 아나스타시아의 자기애가 가득한 발언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나스타시아는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볼을 살짝 부풀리더니 검지를 들어 엘라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리고 엘라가 간지러움에 몸을 몇 번 비틀고 나서야 용서해주겠다는 듯 손가락을 거두고는 말했다.

         

       “어쨌든 이 언니는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그렇게 폭식을 하는 것도 싫어요. 하지만 그분이 맛있게 먹는 것은 깊은 인상이 남아서 말이에요~그래서 이렇게 적당한 양을 시킨 것이랍니다!”

       “적당한 양, 말이죠….”

         

       엘라는 옆자리를 메우고 있는 알록달록한 식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대마녀의 얼굴과 식사가 끝나면 잔소리를 해댈 것 같은 아그네스의 얼굴을 보고는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채소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채소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음식들에요?”

         

       초콜릿.

       젤리.

       초콜릿이 얹어진 초콜릿.

       초콜릿 파우더가 뿌려진 빵.

       딸기잼과 땅콩버터가 발리고 그 위에 젤리가 얹어진 빵.

       곰 모양의 무지개색 젤리.

         

       대체 저 방사능에 오염된 동화 속 풍경 같은 음식들 사이에 어떤 채소가 들어가서 어울릴 수 있을까.

         

       아나스타시아는 잠시 고민했고, 이윽고 의도를 알았다는 듯 환하게 웃더니 감탄 섞인 표정으로 엘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을 번쩍 들고 사용인을 불러 무어라 속닥거렸다. 그러자 사용인은 셰프에게 가서 그녀가 주문한 것을 받아와 식탁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엘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감자튀김.

       토마토케첩.

         

       “역시 동생은 천재예요. 미국 하면 감자튀김이죠.”

       “그게….”

         

       엘라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채소가 맞기는 했다.

         

       감자?

       채소가 맞다.

       토마토?

       채소가 맞다.

         

       당연히 감자를 튀긴 것도 채소로 만든 음식이고, 토마토로 만든 케첩도 당연히 채소로 만든 음식이다.

         

       분명히 맞기는 하다만….

         

       “…몸에 좋지는 않겠네요.”

         

       엘라는 자신의 안에 있는 상식에 도전하는 아나스타시아에게 시선을 거두고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나스타시아와 대화를 하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뇌가 마비되고 상식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엘라는 고개를 돌려서 김을 모락모락 내는 감자튀김 대신,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열려있는 창문으로 향하는 고기와 채소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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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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