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9

       

       

       

       

       “삐유…. 리커버리(Recovery).”

       

       아르는 입에서 불을 뿜은 나머지 그을려 버린 천장 벽지를 향해 두툼한 젤리를 뻗었다. 

       

       슈우욱.

       

       손상된 물체를 복구하는 리커버리 마법을 쓰자 벽지는 금세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리커버리라…. 저것도 보통 난이도의 마법은 아닌데.’

       

       「레키온 사가」는 원래부터 여타 RPG와 다른 점이 많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힐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였다.

       

       -아니, 뭔 겜이 힐러가 따로 없냐?

       -무조건 포션으로만 피를 채워야 되는 거야?

       -포션 없으면 어떡함?

       -휴식하거나 약초 캐서 써야지 뭐. 효율은 X망이지만.

       -X망겜이네.

       -상점에서 포션 사려고 해도 개 비싸던데….

       -힐러가 없으니까 포션이 비싼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긴 한데.

       

       그래서 재생력을 일시적으로 대폭 늘려 주는 아이템인 ‘포션’만이 「레키온 사가」에서 HP를 빨리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보니까 마법사 캐릭으로 8서클에 리커버리 마법 배우면 힐 비슷한 기능 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더라.

       -8서클? ㅋㅋㅋㅋ 야 거기까지 게임 진행했으면 이미 포션을 한 트럭은 사고도 남겠다.

       -그렇긴 함. 결국 겜 진행 하려면 컨트롤로 최대한 몹한테 안 맞아서 포션 값 절약하는 수밖에.

       

       8서클에 배우는 리커버리 마법으로 상처 입은 대상의 부위를 복구해 힐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사실 리커버리로 힐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려면 9서클을 찍어야 하지.’

       

       8서클에서 리커버리를 배우자마자 할 수 있는 건 저렇게 벽지 같은 고정되어 있는 무생물을 복구하는 것뿐.

       

       살아 있는 생명체의 상처를 복구하려면 한 서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만큼 리커버리라는 마법은 절대 쉬운 마법이 아니었지만, 아르는 지금 그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한 손을 뻗어 순식간에 사용한 것이었다.

       

       ‘보니까 우리 아르는 리커버리로 힐도 가능하겠는데?’

       

       물론 리커버리를 쓸 일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만약 쓸 일이 생긴다면 바로 아르에게 부탁하면 될 듯싶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리커버리는 내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쓰네.’

       

       이게 ‘마법의 주인’이라고도 불리는 드래곤의 본능이자 재능인가.

       

       무섭다, 무서워.

       

       “힝…. 마싰는데 너무 매워어어….”

       

       아르는 해산물매콤탱탱면에 미련이 남은 듯, 슬픈 눈으로 시뻘건 국물을 내려다보았다. 

       

       “삐유, 휘유….”

       

       아르는 혀를 내민 채로 숨을 고르더니, 못 참겠는지 아공간에서 아껴 두었던 꿀 든 우유를 꺼냈다. 

       

       꿀꺽꿀꺽.

       

       “쀼, 하나 더….”

       

       꿀꺽꿀꺽.

       

       “퓨우! 살 것 같댜….”

       

       아르의 덩치가 커진 탓에, 옛날에는 하나 잡고 쭈욱 마시면 어느 정도 배가 찼던 우유병이 이제는 상대적으로 꽤나 작아 보였다. 

       

       “우유 입가에 묻히면서 마시는 건 여전하네, 아르.”

       

       나는 피식 웃으며 아르의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쀼…! 그치만 이거는 어쩔 수 업써….”

       

       아르는 부끄러운 듯 손가락 끝을 톡톡 마주쳤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좀 안 매운 버전으로 시켜 줄까?”

       “구렇게 시킬 수 이써?”

       “그럼.”

       

       나는 호출 벨을 눌러, 직원에게 해산물매콤탱탱면을 덜 맵게 해서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내 메뉴를 조리하면서 재료들을 손질해 놔서 그런지 음식은 금방 나왔고, 아르는 척 봐도 덜 매워 보이는 해산물매콤탱탱면을 맛있게 먹었다. 

       

       “삐유! 쪼끔 매운데 머글 만해!”

       “다행이네.”

       

       시험 삼아 나도 한번 먹어 봤는데, 역시 내 입맛에는 하나도 맵지 않았다. 

       

       ‘우리 맵찔이 아르…. 귀여워.’

       

       이 정도 맵기에도 연신 후아, 후아 하고 고개를 들어 가며 면발을 후룹 빨아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그래, 매운 거 못 먹어도 먹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지.’

       

       빙의 전, 이벤트로 ‘불새볶음면 매움폭탄’ 버전이 출시되어 먹어 봤다가 나조차도 입에서 불을 뿜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정말 매웠는데, 정말 맛있어서 결국 다 먹고 말았지.’

       

       다음날 속이 쓰려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여튼,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매운 걸 못 먹으면서도 저렇게 꿋꿋이 먹는 기분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쿠왕! 국물이 지짜 마시써…!”

       

       해산물이 진하게 우러난 국물을 마신 아르의 눈이 초승달처럼 접혔다. 

       

       “…저도 먹어 보고 싶어요.”

       

       다행히 실비아는 매운 걸 잘 먹는 편이었기에, 내 걸 몇 젓가락 먹어 보는 걸로 만족했다. 

       

       “오…. 확실히 맛있네요. 그리고 저 탕수육…? 저거랑 뭔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한 실비아는 탕수육을 하나 더 쏙 집어먹었다. 

       

       “오오.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소스가 더 배어들어서 그런지 완전 부드럽게 씹히네요. 이렇게 먹는 맛도 새로워요.”

       “그쵸? 다음에도 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레온 씨. 덕분에 평생 못 먹어 볼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먹고….”

       “고마운 걸로 따지면 제가 더 고맙죠. 실비아 씨 아니었음 저랑 아르가 이렇게 안전하게 성장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부끄럽게 그런 칭찬을….”

       

       실비아는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저야 아르를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는 게 사명이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 걸요.”

       

       그 말에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당연한 일이라니…. 아, 그러면 역시 처음 만났을 때 자기 스타일이었다면서 접근한 건 거짓말이었군요…. 그럼 그렇죠. 그랬을 리 없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었어요.”

       

       그러자 실비아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덧붙였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 접근한 게 아르 때문은 맞긴 하지만…. 레온 씨한테 한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고…. 그….”

       “하하하! 농담이에요.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실비아 씨랑 저희랑 잘 만났고,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는 거죠.”

       

       나는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실비아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해요.”

       

       실비아는 내가 일부러 놀리려고 한 말이라는 걸 깨닫고 볼을 부풀렸다. 

       

       “자, 자. 식기 전에 더 먹어요.”

       

       나는 화제를 돌리며 탕수육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아르두! 탕슉!”

       

       ***

       

       디저트로 달달한 시럽이 올려진 수플레 팬 케이크까지 먹은 아르는 더욱 뚠뚠해진 배를 두툼한 젤리로 퉁퉁 두드렸다. 

       

       “아르 이제 배불러어….”

       “잘 먹었어?”

       “우응. 너무 잘 먹어써. 쀼룹.”

       

       아르는 더없이 만족한 표정으로 쀼 소리를 내며 콧노래를 불렀다. 

       

       “쀼쀼뷰, 쀼우♩♬.”

       

       나와 실비아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 천천히 일어섰다. 

       

       수많은 빈 접시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지만, 어차피 뒷정리는 호출벨을 누르면 알아서 직원이 해 준다. 

       

       참 돈이 좋긴 좋다니까. 

       

       ‘이젠 진짜 돈 걱정 같은 건 할 필요가 없게 됐단 말이지.’

       

       이드밀라와 함께 헤카르테교 세력들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불법적으로 쌓은 재화들을 수거했다. 

       

       ‘지난번 파트라슈 사건처럼 잃어버린 주인이 명확한 경우에는 주인을 찾아 되돌려주는 게 맞긴 하지만, 이미 놈들이 여러 곳에서 벌어 들인 돈이나 밀수한 물건들 같은 경우엔 그러기도 애매하니….’

       

       그렇다고 그걸 수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어차피 또 그 돈을 차지하려고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질 테니, 차라리 우리가 수거를 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 쓰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악랄한 헤카르테교 산하 세력을 그대로 놔 뒀으면 그들이 벌이는 짓에 더 많은 피해와 금전전 손실이 발생했을 거고, 우리가 그걸 막았으니 그 주변 전체에 이미 이득을 가져다 준 셈이지.’

       

       더 커질 미래의 손실을 막았으면, 그만큼 기여를 한 셈이 아닌가. 

       

       ‘너무 기적의 계산법인가?’

       

       크흠.

       

       아무튼, 헤카르테교 세력들 및 지부에서 수거한 다양한 재화들 덕에 이제 우리는 진짜로 뭘 하든 간에 가격표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호텔 방도 겨우 3인이 묵는데도 제일 좋은 방으로 선택할 수 있었고.

       

       “아르 이제 목욕 하고 시퍼.”

       

       아르는 아까 실비아가 아침 일찍 목욕했던 걸 떠올렸는지 끼잉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레온 씨는 아르랑 목욕 하고 계세요. 전 직원 불러서 치워 달라고 하고 저기서 좀 쉬고 있을게요.”

       

       실비아가 가리킨 곳에는 웬 커다란 의자가 있었다. 

       

       “저건….”

       “저것도 무슨 아티팩트를 심어 놓은 신제품이라고 하더라고요. 마력을 흘려 보내면 자동으로 마사지를 해 준다는 모양이에요.”

       “와…. 안마 의자도 있네.”

       

       나도 목욕하고 나서 당장 이용해 봐야지.

       

       “좋아요. 아르야, 목욕하러 가자.”

       “우응! 히히. 레온이랑 목욕한다!”

       

       아르는 귀를 쫑긋 세우며 나를 따라 목욕탕으로 왔다. 

       

       “와, 여긴 더 넓네.”

       

       그동안 3, 4인용 VVVIP실만 이용하다가 이렇게 아예 제일 큰 방으로 오니 목욕탕의 스케일도 남달랐다. 

       

       “뭔 작은 워터파크가 있네.”

       “오토파쿠? 우아! 진짜 널버!”

       

       안 그래도 덩치가 커져서 조금 넓이를 걱정한 듯했던 아르는, 확 밝아진 표정으로 두두두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르야! 씻고 들어가야지!”

       “히히히! 워터! 대찌?”

       

       아르는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워터 마법으로 자동 세차처럼 슥 씻어 버리고, 못 참겠다는 듯 달려 나갔다. 

       

       “아니….”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아르는 드넓은 탕으로 점프했고.

       

       푸와아아아악!

       

       아르가 풍덩 빠지면서 솟아오른 물보라에, 쫓아오던 내 몸은 순식간에 쫄딱 젖었다. 

       

       “…….”

       

       비 젖은 생쥐꼴이 된 내가 아르를 바라보자, 아르가 뜨끔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쀼, 쀼우…. 휘유…♬.”

       

       되지도 않는 휘파람을 부는 아르를 바라보던 나는.

       

       “아르 너…. 그랬다 이거지?”

       

       투다다닷!

       

       씨익 웃으며 아르를 향해 달려가 힘껏 뛰어들었다.

       

       풍덩!

       

       그리고, 아르를 껴안으며 이곳저곳을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이거나 먹어랏!”

       “삐유우우우!”

       

       아르의 비명 소리가 목욕탕에 울려 퍼졌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