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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9

        상황이 정리된 후.

        기가 팍 죽은 오크들을 내버려 둔 채 우리는 다시 장로와 마주 앉았다.

       

        “드넓은 사막과 같은 마음으로, 어리석은 저희들의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되었다. 나도 좀 심하게 대한 감이 있으니.”

       

        아무래도 본체가 잠을 못 자는 스트레스 때문인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내 손속이 필요 이상으로 과해지는 경향이 보인다.

        조금 전에도 까닥 잘못했으면 여기 있던 오크들의 대부분을 내 손으로 죽여 버릴 뻔하기도 했다.

        그나마 내가 좀 자제했으니 다행이지…….

       

        누군가는 겨우 그 정도로 사람이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인간은 그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오직 손가락만으로 개미를 조금도 다치지 않게 집을 수 있겠는가?

        성공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아마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개미의 몸을 압박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개미의 몸은 연약하고, 인간은 개미를 다치지 않게 집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컨트롤한 적이 거의 없을 테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살살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필멸자에겐 나의 숨결 하나조차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즉, 조금 전의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이곳에서 쉬고 가시지요.”

       

        “어쩔 테냐?”

       

        “마음대로 해라.”

       

        크쉬타르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린다.

        그렇기에 나는 장로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린 오크의 안내를 받아 우리가 머물 숙소에 도착했다.

        마치 바위로 만든 이글루와 같은 형태를 가진 작은 집이 우리를 반겨 준다.

       

        “빈집입니다. 이곳을 사용하시면 되세요.”

       

        “그래. 수고가 많았다.”

       

        쭈뼛거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되돌려 보낸다.

        그 후엔 문 대용으로 걸려 있는 천을 걷어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통짜 바위를 깎아서 만든 것이 아닌, 사막의 모래를 특정한 방법으로 굳혀서 만든 것이었다.

        아마 이 행성에서만 서식하는 특정 동식물의 체액을 사용했다고만 추측될 뿐, 딱히 그 지식에 대해 맹렬한 호기심을 품지는 않았다.

        다만 이 집의 구조에 대해서는 조금 흥미가 동했다.

       

        “호오. 생각보다 따뜻하구나.”

       

        겉보기엔 작은 반구를 모래 위에 엎어놓은 형태였지만, 뜻밖에 집 안은 따뜻했다.

        사막의 밤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특성을 생각해 보면, 아마 낮에는 시원하겠지.

       

         “이것 때문인가?”

       

        자세히 확인해 보니, 집 안에는 붉은색의 모래를 굳혀 만들어 낸 블록이 바닥에 깔렸었다.

        그리고 그 블록으로부터 은은한 열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아마 이 블록이 낮에는 열기를 흡수하고, 밤에는 열기를 방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신기한가?”

       

        “신기하기보다는…… 재미있구나.”

       

        기술적으로 보면 다른 차원이 더 우월하다.

        하지만 이런 아날로그적인 생활의 지혜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존한 이들만이 지닌 고유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구경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            *            *

       

       

        “그렇게 나와 크쉬타르는 하룻밤을 보냈다.”

       

        – 헉!

        – 너모 야해욧!

        – 숭하다!

        – 오마나!

        – 하룻밤을 지냈다니…….

       

        “음?”

       

        이야기하다 말고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뭔가 어감이 묘하게 비틀린 것 같은 느낌인데?

       

        묘한 얼굴로 채팅창을 바라보니, 채팅창이 순식간에 ‘재미있다’라는 이야기로 점철되기 시작한다.

        요놈들…… 또 나만 모르는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하는 것이냐?!

        뭐, 딱히 궁금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본래라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남쪽으로 내려갔겠지. 하지만 이튿날 떠나려는 우리의 앞에 장로가 나타났단다.”

       

        나는 그때를 기억해 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도적들의 퇴치를 도와달라고?”

       

        “그렇습니다.”

       

        다소곳한 모습으로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장로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제도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현재 ‘페체몬다’ 마을의 오크들은 도적 떼가 되어 버린 코볼트 유랑민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크들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이 황량한 사막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크든 작은 무언가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특히 육체적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은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생명체.

        당연히 오크들이 겨우 유랑민 정도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난다면 결국 이들은 유랑민들을 몰아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골치를 썩일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집 어딘가에 쥐가 둥지를 틀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언젠가는 쥐구멍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쥐가 계속 집을 쏘다니며 신경을 박박 긁는 것이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부디, 저희를 가엾게 여기시어…….”

       

        “흠. 그렇다면 너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내 말에 크쉬타르가 얼굴을 구겼다.

       

        “우리? 나는 왜 포함하는 거지?”

       

        “음? 같이 가지 않는 것인가?”

       

        “…….”

       

        내 질문에 말이 없는 크쉬타르.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간다.”

       

        “그렇다는구나.”

       

        다시 장로를 바라보니, 그는 공손한 자세로 나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필요하신지는 모르겠으나, 신선한 고기와 물, 그리고 가죽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호오.”

       

        장로의 말에 크쉬타르가 흥미롭다는 듯 장로를 바라본다.

        비록 나에게는 큰 쓸모가 없는 물건들이지만, 크쉬타르의 반응을 보아서는 지성체들 사이에서 제법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보상으로 내놓은 모양이다.

       

        ‘하긴. 다른 것은 몰라도 물은 귀중품이 맞겠지.’

       

        어쨌든 저렇게 귀한(?) 물건들을 보상으로 걸었다면, 나 역시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 좋을 터.

       

        “그래. 그럼 내가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나는 장로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            *            *

       

       

        – 그거 양민 학살 아닌가요?

        – ㄹㅇㅋㅋ

        – 거의 자연재해급 아님?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자연재해 강림!

        – 항거할 수 없는 재앙이 코볼트들을 덮친다!!

       

        “요놈들.”

       

        이젠 날 놀리는데 일말의 거리낌조차 벗어던진 모양이다.

        이전에는 그래도 좀 자제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젠 나름 익숙해진 모양인지 제법 큼직큼직한 장난도 툭툭 날린다.

        

        뭐, 나도 이런 부분은 기꺼웠다.

        이런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나 역시 저들과 함께 어울리는 기분이 드니까.

        물론 선을 넘었을 때는 가차 없겠지만.

       

        “아이들아. 본체라면 모를까, 아바타인 나는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란다.”

       

        – 하지만 도적보다는 강한 거 아닌가요?

        – 어쨌든 강함.

        – 강한 것은 맞잖아요?

       

        “……그건 그렇지.”

       

        – 그럼 재앙 맞네요.

        – ㄹㅇ인 부분이애오.

        – ㅋㅋㅋㅋㅋㅋㅋ

       

        “…….”

       

        그런…… 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하는 힘의 기준과 인간들이 생각하는 힘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인간의 기준에서는 본체인 나나 아바타인 나나, 전부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보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되는 기분이다.

       

        “어쨌든, 장로에게 의뢰를 받은 나는 크쉬타르와 함께 사막으로 나왔단다.”

       

       

        *            *            *

       

       

        크쉬타르가 물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도적들을 찾을 생각인가?”

       

        “뜻밖에 간단하단다.”

       

        나는 몸을 굽혀 뜨거운 모래 위에 손바닥을 댔다.

        그 상태로 지배력을 발산하여, 모래 속에 섞여 있는 사철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나의 지배력에 따라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사철들.

        그리고 그 진동음을 이용해, 땅에 붙어 있는 모든 것들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금속에 대한 지배력을 가졌고, 동시에 ‘에코’라는 뛰어난 인공 지능을 가진 나이기에 가능한 기예다.

       

        사철의 미세 진동을 통한 신호가 에코에 의해 해석되고, 이어서 에코는 내가 선별한 지역 내에서 특정 발걸음을 가진 무리를 찾아주었다.

        그중 우리가 왔던 오크들의 마을을 제외하면…….

       

        “……찾았다.”

       

        감았던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자, 내 옆에서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던 크쉬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한쪽 방향을 가리키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을 향해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럼 출발하지.”

       

        “그래.”

       

        그렇게 황량한 모래사막을 얼마나 나아갔을까?

        마침내 우리의 시야에 뼈와 덩굴, 그리고 모래를 뒤섞어 만든 것 같은 커다란 언덕이 나타났다.

       

        “진짜군. 코볼트의 거주지다.”

       

        “호오. 저것도 특이하군.”

       

        작긴 하지만 어쨌든 각자 자신만의 개인 집을 가지고 있던 오크들과는 달랐다.

        코볼트들은 모래 언덕으로 위장한 커다란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한 무리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이었다.

        환경은 저쪽이나 이쪽이나 비슷할 테니, 아마 문화적, 신체적 차이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이겠지.

       

        “어떻게 할 거냐?”

       

        “일단 저쪽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지.”

       

        페체몬다 마을의 장로는 자신들의 영역에서 약탈 행위를 하는 도적들을 전부 죽이거나, 혹은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쫓아내달라고 했다.

        즉, 이들의 약탈 행위와 영역 침범 문제만 해결된다면…… 방식 정도는 내 재량껏 해결해도 된다는 소리다.

        만약 내가 오크였다면, 전적으로 오크의 방식으로 해결했겠지.

        전부 죽인다든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크도 아니고, 코볼트도 아니다.

        그러니 제 3자로서의 시선을 통해 이 일을 해결한 생각이다.

       

        “가자꾸나. 이참에, 코볼트들의 생활상도 견식 해보고 싶구나.”

       

        “하아~! 그러지.”

       

        작게 한숨을 내쉰 크쉬타르를 데리고 코볼트들의 주거지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글을 썼는데, 좀 재미가 없는 것 같아서 수정을 했습니다.

    진행을 좀 더 빠르게 하고, 내용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끔 짜보았습니다.

    언제나 재미있는 글을 쓰기란 참……. ㅠㅠ

    지금은 크쉬타르의 비중이 공기지만, 조만간 활약하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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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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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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