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49

       다음 날 아침.

        

       등교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와 보니, 양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 같은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양혜인에게 소희가 얼른 다가가며 말했다.

        

       “말씀해주셨으면 문 열어드렸을 텐데요.”

        

       사실 이렇게 아파트에서 묵은 것이 처음이라 다른 아파트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 아파트는 1층으로 들어가기 위해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자신이 방문할 세대의 호수를 누르고 허락을 받아야 문이 열리는 모양이다.

        

       비밀번호를 모른다면 당연히 소희 집 호수를 누르고 허락받으면 될 일이었다. 아예 여기서 지내고 갈 것도 아니고, 잠깐 현관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소희의 가족들이 거절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양혜인은 소희에게 그저 그렇게만 말하고, 내 쪽으로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말했다.

        

       “간밤에 편안하셨는지요, 아가씨.”

        

       내가 살던 집에선 정문으로 나오기 전, 이미 방에서 그 인사를 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일이 없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아니,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보였다. 회사 가는 시간이나 학교 가는 시간은 모두 다를 것이다. 특히 내가 다니는 학교는 아무나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수는 결코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혜인은 저택에 있을 때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물론 같은 디자인의 여벌의 옷이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실내에서는 늘 하는 앞치마와 머리띠는 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양혜인이 바깥으로 나올 때는 언제나 저런 복장이었던 것 같다. 소희야 뭐, 학생이니까 당연히 교복 차림이었지만.

        

       하지만 복장이 그저 검은 셔츠와 조금 긴 치마차림처럼 보이더라도, 역시 나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많아 보이는 사람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꽤 기이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네, 편안했어요.”

        

       요즘 나의 밤은 언제나 편안하다.

        

       나의 안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내 생각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 양혜인은 다시 허리를 펴서 무표정한 얼굴을 보였다.

        

       “학교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왔나요? 저는 그저 소희를 따라가면 되는데요.”

        

       “예, 그런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양혜인은 말하다 말고, 주위를 한 번 돌아보았다. 이쪽을 흘끗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서 얼른 고개를 돌리고 갈 길을 갔다.

        

       지나가던 사람이 얼핏 듣는 것조차 안되는 이야기일까?

        

       “걸으면서 이야기하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기자, 소희가 얼른 앞으로 나가서 앞장서기 시작했다.

        

       아, 맞다. 나 길 모르지.

        

       *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양혜인이 찾아올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늘 새벽에, 어머님께서 다녀가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늦었어도 그대로 저택에서 어머님과 대면할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

        

       ‘빠른 시일’이라는 건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심장이 조금 뛰었다.

        

       어머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나도 참 중증이긴 하다.

        

       이 생각을 그 사람이 들었다면 무척 슬퍼했을 텐데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난 수개월의 기억을 읽고, 내가 직접 겪어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몇 년 동안 머릿속에 세겨진 기억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기억도, 그리고 나와 내 친구들 사이의 기억도, ‘어머님과의 기억과의 대용품’이 될 수는 없다.

        

       그저 어머님과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소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둘의 추억이 ‘다른 추억’이기 때문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족 간의 관계도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도저히 바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자상했던 시절의 어머님과의 기억이 있는 이상,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의 기억으로는 대체할 수 없겠지.

        

       그저, 그 위를 덧칠하고 또 덧칠해서, 그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 더 선명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서, 그 추억을 떠올리며 느끼는 감정을 천천히 옅게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만.

        

       “어머님께서 저를 찾아오실 정도였다면, 양혜인 씨가 이곳에 오는 것도 조금 위험하지 않나요? 제가 있는 곳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일 텐데.”

        

       나는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의 성격이라면, 양혜인 뒤를 누가 따라가며 조사하도록 지시했을 수도 있다. 만약 아침에 내가 나오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머님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나를 대했던 그 모습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뭔가 다른 노리는 것이 있었는지도.

        

       하지만, 그래도 그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님을 보아온 사람도 나였다.

        

       그렇게 집요하게 내 생각을 헤집어놓을 수 있는 어머님이라면, 분명 나를 찾기 위해 그 정도 힘은 쓰실 수 있을 텐데.

        

       “예, 아마 그렇겠죠.”

        

       “그런데 이렇게 따라오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제가 이렇게 따라오지 않더라도, 회장님은 분명 오늘 안에 아가씨가 계시는 곳을 알아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렇다면 전화를 이용하는 법도 있지 않나, 하는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전화라고 해서 엿듣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원리는 잘 모르지만…… 어머님에게도 분명 충분히 많은 돈이 있을 것이다. 과학적인 원리가 통하는 방법이라면 돈으로 추적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참, 도망가는 것 한번 어렵네.

        

       “학교 앞에 어머님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회장님은 오늘 중요한 안건이 있어서 바로 회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요.”

        

       “…….”

        

       어머님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내가 어머님 쪽에 가지고 있는 연줄도 끊어버리겠다는 것.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연줄’이라고 해봐야 ‘어머님의 사람들’일 뿐이고, 내가 부탁한다고 해서 들어줄 리도 없긴 했다. 협박해서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런 협박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어느 정도로 질이 좋은 정보일지 알 수도 없고. 어머님 쪽에서 일부러 그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만 정했어도 내가 받는 정보는 부정확한 정보가 되고 만다.

        

       그래서 그저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는 기댈 사람이 얼마 없었다.

        

       적어도 양혜인이 저택 내를 관리하고 있을 때는 부하들에게 형식적으로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있어 양혜인은 이미 해고되었다가 나에 의해 억지로 복직된 상황. 거기에 여전히 회장이 방문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으니, 내 힘이 아주 강하지만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네. 내 인생은 딱 맞을 정도였구나.

        

       그렇게 조금 우울한 생각이 드는데,

        

       “아뇨, 회장님은 학교 앞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양혜인이 그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되묻자, 양혜인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잠깐 만진 뒤, 나에게 건네주었다.

        

       [혹시 몰라서 이렇게 전체적으로 사진 찍어서 보낼게요.]

        

       불과 오 분 전에 온 사진.

        

       보낸 사람은 하늘이였다.

        

       스마트폰의 초광각 모드로 찍힌 사진들은, 모두 교문 정문 쪽에서 찍힌 사진들이었다. 아침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 고급 외제차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개중에는 학생들이 내리는 와중인 차도 있었다.

        

       “촬영된 사진에 회장님의 차량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차량 중에서는요.”

        

       “……어머님의 차량을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예, 업무에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회장님은 업무용, 개인용으로 각각 한 대씩의 차량을 가지고 계십니다. 제가 파악하고 있기로 차량을 수집하는 취미는 없으시고, 그렇다고 그 새벽에 차량을 구할 곳도 마땅한 곳이 없으니까요. 설령 렌트카를 빌려서 온다고 해도, 렌트카의 번호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양혜인은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또, 다른 임원분들의 차량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만약 회장님께서 다른 이의 차량을 빌려서 오셨다면 저도 모르는 차량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부웅, 하고 내 손에 들린 양혜인의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봤더니, 이번에는 수아에게서 사진이 와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온 사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진이었다.

        

       서 있던 차량 중 몇 대가 나가고 있었고, 몇 대가 새로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내리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적어도, 이렇게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사진이 있다면 회장님이 오시는지 아닌지는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바로 조금 전에 기댈 사람이 없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말은 취소해야겠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