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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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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한 건 생각이 이어질수록 머릿속에 노골적인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는 전부 레인저 부대에서 어쩌다 보니 읽게 된 통속 소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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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가르쳐주던 레인저는 그녀를 남자라고 생각하여, 미래의 연인에게 사랑받으려면 이런 것도 읽어봐야 한다며 미성년자는 관람 불가인 통속 소설을 마구 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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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미래의 연인을 위해선 이런 지식도 제대로 익혀야 한다.”라는 말에 떨리는 손으로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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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의 지식이 머릿속에 남아 온갖 남사스러운 장면을 그려댔다. 특히 레인저가 가지고 있던 통속소설은 설산을 무대로 한 소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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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눈발이 쏟아지는 설산에 조난 당한 두 남녀. 눈을 녹여 먹고, 체온을 올리는 약초를 씹어 삼키지만 몸을 얼어붙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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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맨몸을 맞대야 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 생각하며 옷을 하나, 둘 벗고 틈 없이 몸을 맞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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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나누어 먹었던 약초가 놀라운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다 -… 라는 통속 소설 속 이야기와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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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대신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동사할 것 같은 강렬한 추위는 아니지만, 빗물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춥고 동굴 내에 단둘이 남았다는 상황이 통속 소설 속 상황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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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머릿속에 소설 속 한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옷을 하나, 둘 벗는 남자의 모습은 리안이 되어있었고 가녀리게 몸을 떠는 여자의 모습은 노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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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 어! 어,어어! 왜?”
    “물 떨어지는데 괜찮은가 해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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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시선이 우비에서 떨어진 빗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가는 바닥과 우비만 곱게 접어 옆에 내려놓은 후 모닥불 앞에 앉아있는 리안의 모습을 순서대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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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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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빠진 풍선처럼 노아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푸시식 힘이 빠졌다. 동시에 얼굴이 모닥불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개그 필터의 영향인지 그녀의 머리 위로 은은한 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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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윽…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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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상했다는걸 들킨 건 아니지만, 멋대로 오해하고 이상한 상상을 해버렸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머리를 박고 싶었다. 우비의 후드라도 잡아당겨 얼굴을 숨기고 싶지만 그랬다간 리안이 이상한 사람 바라보듯 그녀를 바라볼 것이기에 눈을 질끈 감은 채 우비를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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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을 못 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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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홧홧하게 달아오른 열기가 화상 자국을 남긴 것처럼 헐벗은 몸으로 다가와 자신을 껴안는 리안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시선을 들기 힘들었다. 노아는 모닥불과 땅바닥 사이를 바라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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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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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이 내려앉자 동굴 바깥에 빗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비가 쏟아지면서 차가운 공기가 동굴 안을 맴돌았다. 그 덕분에 노아의 볼을 빠르게 제 색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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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른거리는 열기를 날려버리고자 노아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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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를 위해 숲으로 들어온 레인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희뿌연 안개에 갇히게 되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신호탄을 쏘아 올려도 안개 때문에 확인이 되지 않았고, 아무리 걸어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상황에 거점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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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가 날 발견했구나.”
    “맞아. 말없이 끌고 온 건 미안해. 이 지역에 내리는 비는 설산에서 내려온 비라 감기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걱정해줘서 그런 거잖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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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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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사이에 재차 침묵이 내려앉았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리며 묘한 간지러움에 손등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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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나이대, 성별이 같다 보니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깊은 친분을 나눠왔다. 네로를 돌봐야 하는 노아, 아이리스를 챙겨야 하는 리안. 두 사람 모두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공통점까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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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은 책임감이 강했고 다른 한쪽은 미련할 정도로 착했다. 둘 다 근본이 선하다 보니 깊게 친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절친한 친우 -…사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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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이렇게 어색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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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와 리안 둘 다 비슷한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이내 두 사람은 동시에 어떠한 장면을 떠올렸다. 러브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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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중 한명이라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봤다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가늠이라도 해봤겠지만, 한쪽은 유니콘이 인정한 남자였고 다른 쪽은 평생을 남자인 척하며 살아온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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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조금 덥네.”
    “장..작을 너무 많이 넣어나 봐.”
    “그러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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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는 간지러움과 어색함 사이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런 침묵이 3분 정도 이어지자 노아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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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잠깐 비가 들이치나 확인하고 올게.”
    “도와줄게!”
    “아냐! 한명은 불이 안 꺼지게 자, 장작을 넣어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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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마른 천 위에 올려둔 장작을 들어 올려 리안의 옆에 쿵하고 내려놓았다. 묵직한 소리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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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무거운 걸 가져온 거야?”
    “가..져온건 아니야. 이곳에 도착한 후에 만든 거지.”
    “마른 장작을?”
   “응, 레인저 부대에서 배운 기술이야. 젖은 나무도 마른 장작으로 만들 수 있더라고.”
    “와.. 그거 굉장하다. 돈 엄청 벌 수 있겠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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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말에 노아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동시에 마법처럼 분위기가 가볍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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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력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라 적자야, 적자.”
    “아, 그런 거야?”
   “레인저 부대의 기술은 대체로 마력을 사용해서 야생에서 생존하는 기술이라 비효율적인 편이야. 누가 마력으로 마른 장작을 만들 생각을 했겠어?”
    “오… 그럼 또 어떤 기술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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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꼬가 트이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노아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빗물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처리한 후, 숲을 돌아다니며 얻은 약초를 허리 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사발에 곱게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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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즙 같은 것을 손바닥보다 작은 접시에 담더니 긴 심지를 넣고는 끝을 액체 밖으로 끄집어내 불을 붙였다. 신기하게도 심지에 불이 붙었지만 타들어 가지 않았다. 씁쓸한 양초 향기가 그윽하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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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모닥불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도망쳐버렸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리안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흡사 바 선생이 도망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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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저게 뭐야?!”
    “동굴에 살고 있던 해충이나 파충류들일 거야. 주변이 따뜻해지면 동면에서 깨어난 해충이나 파충류가 배가 고파서 빛이 있는 곳으로 기어 나올 때가 있거든.이건 그런 해충이나 파충류가 기피하는 향이라 다 도망친 거지.”
    “이것도 레인저 부대에서 배운 거야?”
    “응.”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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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그저 뒹굴뒹굴하며 놀고 있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말과 같았다.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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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굉장한 건 아니야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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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목소리가 힘없이 흔들거리다 끝에는 맥없이 허물어졌다. 동굴 밖에서 빗소리가 끝없이 흘러들어오고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고 있지만 워낙 조용하다 보니 노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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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 지키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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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도 하지 못한 고백에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하니 노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리안은 깊은 안정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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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노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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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남보다는 타인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먼 곳을 바라보면서도 가까이에 쓰러진 이를 돕고자 손을 내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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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한결같이 선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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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거칠게 제 머리를 털어내며 붉게 달아오른 귓가를 숨겼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제 친구의 변화에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노아가 싫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낯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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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뿐이다. 노아는 노아였다. 여자인 걸 처음 알게 된 날이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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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노아.”
   “…?”
   “지금까지 내가 조금… 꺼리는 태도를 보였었잖아. 사실, 네가 여자라는 사실에 당황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어. 뭔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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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말없이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손을 내려다보며 리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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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노아는 노아잖아. 겉모습만 바뀐 거 뿐이지. 내 친구인 건 변함이 없는데 -…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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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진지한 얼굴로 사과를 건네 후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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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괜찮다면 전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자. 하하하..뭔가 말하고 나니까 엄청 부끄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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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쓱함에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노아의 눈치를 봤다. 노아는 힘이 꽉 들어가 있던 손에 슬며시 힘을 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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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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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동자 속에 모닥불이 울렁거렸다. 마치 눈물이라도 맺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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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대답과 함께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빗줄기가 약해졌는지 들려오는 소리가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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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응?”
    “그럼 -… 너랑 둘이 있을 땐 여자 모습으로 있어도 돼?”
    “ㅓ?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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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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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주인공 옆에서 행복해하는 히로인을보면 뺏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
노아가 참 행복해 보이네요 ^^…

쓰다보니 내용이 조금 길어져서 어머니는 다다음화에 나오게 될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분명한 건 생각이 이어질수록 머릿속에 노골적인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는 전부 레인저 부대에서 어쩌다 보니 읽게 된 통속 소설 때문이었다.

그녀를 가르쳐주던 레인저는 그녀를 남자라고 생각하여, 미래의 연인에게 사랑받으려면 이런 것도 읽어봐야 한다며 미성년자는 관람 불가인 통속 소설을 마구 빌려주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미래의 연인을 위해선 이런 지식도 제대로 익혀야 한다.”라는 말에 떨리는 손으로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 -…

그때의 지식이 머릿속에 남아 온갖 남사스러운 장면을 그려댔다. 특히 레인저가 가지고 있던 통속소설은 설산을 무대로 한 소설이 많았다.

새하얀 눈발이 쏟아지는 설산에 조난 당한 두 남녀. 눈을 녹여 먹고, 체온을 올리는 약초를 씹어 삼키지만 몸을 얼어붙어만 간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맨몸을 맞대야 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 생각하며 옷을 하나, 둘 벗고 틈 없이 몸을 맞댄 순간!

두 사람이 나누어 먹었던 약초가 놀라운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다 -… 라는 통속 소설 속 이야기와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었다.

비 대신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동사할 것 같은 강렬한 추위는 아니지만, 빗물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춥고 동굴 내에 단둘이 남았다는 상황이 통속 소설 속 상황과 흡사했다.

노아의 머릿속에 소설 속 한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옷을 하나, 둘 벗는 남자의 모습은 리안이 되어있었고 가녀리게 몸을 떠는 여자의 모습은 노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아?”

“…! 어! 어,어어! 왜?”

“물 떨어지는데 괜찮은가 해서.”

“아…”

노아의 시선이 우비에서 떨어진 빗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가는 바닥과 우비만 곱게 접어 옆에 내려놓은 후 모닥불 앞에 앉아있는 리안의 모습을 순서대로 바라보았다.

“그, 그래야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노아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푸시식 힘이 빠졌다. 동시에 얼굴이 모닥불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개그 필터의 영향인지 그녀의 머리 위로 은은한 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으윽…부끄러워.’

그런.. 상상했다는걸 들킨 건 아니지만, 멋대로 오해하고 이상한 상상을 해버렸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머리를 박고 싶었다. 우비의 후드라도 잡아당겨 얼굴을 숨기고 싶지만 그랬다간 리안이 이상한 사람 바라보듯 그녀를 바라볼 것이기에 눈을 질끈 감은 채 우비를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

‘얼굴을 못 들겠어..’

홧홧하게 달아오른 열기가 화상 자국을 남긴 것처럼 헐벗은 몸으로 다가와 자신을 껴안는 리안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시선을 들기 힘들었다. 노아는 모닥불과 땅바닥 사이를 바라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쏴아아아 -.

침묵이 내려앉자 동굴 바깥에 빗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비가 쏟아지면서 차가운 공기가 동굴 안을 맴돌았다. 그 덕분에 노아의 볼을 빠르게 제 색을 찾아갔다.

아른거리는 열기를 날려버리고자 노아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조사를 위해 숲으로 들어온 레인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희뿌연 안개에 갇히게 되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신호탄을 쏘아 올려도 안개 때문에 확인이 되지 않았고, 아무리 걸어도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상황에 거점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날 발견했구나.”

“맞아. 말없이 끌고 온 건 미안해. 이 지역에 내리는 비는 설산에서 내려온 비라 감기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걱정해줘서 그런 거잖아. 괜찮아.”

쏴아아아..

두 사람 사이에 재차 침묵이 내려앉았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리며 묘한 간지러움에 손등을 긁적였다.

두 사람은 나이대, 성별이 같다 보니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깊은 친분을 나눠왔다. 네로를 돌봐야 하는 노아, 아이리스를 챙겨야 하는 리안. 두 사람 모두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공통점까지 존재했다.

한쪽은 책임감이 강했고 다른 한쪽은 미련할 정도로 착했다. 둘 다 근본이 선하다 보니 깊게 친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절친한 친우 -…사이였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어색해졌지?’

노아와 리안 둘 다 비슷한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이내 두 사람은 동시에 어떠한 장면을 떠올렸다. 러브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사람 중 한명이라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봤다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가늠이라도 해봤겠지만, 한쪽은 유니콘이 인정한 남자였고 다른 쪽은 평생을 남자인 척하며 살아온 여자였다.

“하하..조금 덥네.”

“장..작을 너무 많이 넣어나 봐.”

“그러게.”

“응.”

분위기는 간지러움과 어색함 사이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런 침묵이 3분 정도 이어지자 노아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 잠깐 비가 들이치나 확인하고 올게.”

“도와줄게!”

“아냐! 한명은 불이 안 꺼지게 자, 장작을 넣어줘야 하니까!”

노아가 마른 천 위에 올려둔 장작을 들어 올려 리안의 옆에 쿵하고 내려놓았다. 묵직한 소리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렇게 무거운 걸 가져온 거야?”

“가..져온건 아니야. 이곳에 도착한 후에 만든 거지.”

“마른 장작을?”

“응, 레인저 부대에서 배운 기술이야. 젖은 나무도 마른 장작으로 만들 수 있더라고.”

“와.. 그거 굉장하다. 돈 엄청 벌 수 있겠다.”

“풉…”

예상치 못한 말에 노아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동시에 마법처럼 분위기가 가볍게 풀렸다.

“마력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라 적자야, 적자.”

“아, 그런 거야?”

“레인저 부대의 기술은 대체로 마력을 사용해서 야생에서 생존하는 기술이라 비효율적인 편이야. 누가 마력으로 마른 장작을 만들 생각을 했겠어?”

“오… 그럼 또 어떤 기술이 있어?”

물꼬가 트이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노아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빗물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처리한 후, 숲을 돌아다니며 얻은 약초를 허리 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사발에 곱게 갈았다.

녹즙 같은 것을 손바닥보다 작은 접시에 담더니 긴 심지를 넣고는 끝을 액체 밖으로 끄집어내 불을 붙였다. 신기하게도 심지에 불이 붙었지만 타들어 가지 않았다. 씁쓸한 양초 향기가 그윽하게 퍼져나갔다.

그러자 모닥불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도망쳐버렸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리안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흡사 바 선생이 도망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저게 뭐야?!”

“동굴에 살고 있던 해충이나 파충류들일 거야. 주변이 따뜻해지면 동면에서 깨어난 해충이나 파충류가 배가 고파서 빛이 있는 곳으로 기어 나올 때가 있거든.이건 그런 해충이나 파충류가 기피하는 향이라 다 도망친 거지.”

“이것도 레인저 부대에서 배운 거야?”

“응.”

“굉장하다.”

자신이 그저 뒹굴뒹굴하며 놀고 있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말과 같았다.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별로 굉장한 건 아니야 그저…”

노아의 목소리가 힘없이 흔들거리다 끝에는 맥없이 허물어졌다. 동굴 밖에서 빗소리가 끝없이 흘러들어오고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고 있지만 워낙 조용하다 보니 노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널 지키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

상상도 하지 못한 고백에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하니 노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리안은 깊은 안정감을 느꼈다.

‘역시 노아구나.’

항상 남보다는 타인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먼 곳을 바라보면서도 가까이에 쓰러진 이를 돕고자 손을 내미는 사람.

노아는 한결같이 선한 사람이었다.

리안은 거칠게 제 머리를 털어내며 붉게 달아오른 귓가를 숨겼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제 친구의 변화에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노아가 싫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낯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노아는 노아였다. 여자인 걸 처음 알게 된 날이나 지금이나.

“미안해, 노아.”

“…?”

“지금까지 내가 조금… 꺼리는 태도를 보였었잖아. 사실, 네가 여자라는 사실에 당황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어. 뭔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

노아는 말없이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손을 내려다보며 리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노아는 노아잖아. 겉모습만 바뀐 거 뿐이지. 내 친구인 건 변함이 없는데 -…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리안은 진지한 얼굴로 사과를 건네 후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괜찮다면 전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자. 하하하..뭔가 말하고 나니까 엄청 부끄럽네.”

머쓱함에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노아의 눈치를 봤다. 노아는 힘이 꽉 들어가 있던 손에 슬며시 힘을 풀며 말했다.

“…고마워.”

눈동자 속에 모닥불이 울렁거렸다. 마치 눈물이라도 맺힌 것처럼.

노아의 대답과 함께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빗줄기가 약해졌는지 들려오는 소리가 작았다.

“…리안.”

“응?”

“그럼 -… 너랑 둘이 있을 땐 여자 모습으로 있어도 돼?”

“ㅓ?ㅇ”

리안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어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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