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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감격에 차서 말했다. 

       

       드디어 우리가 찾아 마지않던 마을의 주택들이 선명하게 보였고,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게 며칠 만에 맡는 사람 냄새냐.’

       

       아직 사람을 만나진 못했지만….

       빙의한 이후 사람과 제대로 대면을 한 적조차 없다 보니, 사람 사는 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다행히 해츨링 덕에 외롭지는 않았지만, 그간 사람들 사이에서 살며 당연하게 누릴 수 있었던 인프라를 단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야생에서 살아남다 보니 더더욱 마을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쀼우?”

       

       그때 내 목소리를 듣고, 상의 후드 안쪽에 누워 있던 해츨링이 꿈틀거렸다.

       

       자고 있던 해츨링은 마치 집에 오는 아빠 차 안에서 자다가 일어난 아이처럼, 졸린 눈으로 후드 바깥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일어났니? 다 왔어. 여기가 글렘 마을이야.”

       

       오늘은 말 그대로 강행군이었다.

       구워 먹을 도도도 오늘은 발견하지 못했고, 가지고 있던 옐로베리도 거의 다 떨어져서 무조건 해 지기 전에 도착해 여관에 묵을 거라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걸어왔다. 

       

       “이제 동굴이나 나무 밑에서 흙 파고 자지 않아도 돼. 후우, 드디어 편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니….”

       “쀼우우!”

       “그러고 보니 침대가 어떤 건지 아직 안 누워 봐서 잘 모르겠구나. 이따가 보여줄게. 엄청 푹신하고 따뜻하니까 기대해도 좋아.”

       “쀼웃!”

       

       해츨링은 기대가 된다는 듯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나는 내 뺨에 얼굴을 가져다 대는 해츨링을 가볍게 쓰다듬어 준 뒤, 주의할 점을 다시 한번 일러 주었다.

       

       “지금 잠깐은 괜찮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마을 안에서는 꼭 내 후드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야 돼. 알겠지?”

       “쀼우!”

       “좋아. 그럼 가 볼까?”

       “쀼우웃!”

       

       마을 입구 근처에 도착한 나는 후드에 감쪽같이 해츨링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마을로 들어왔다. 

       

       해가 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일을 다 마친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집에 돌아가고 있었고, 여행자들은 벌써 술에 취한 상태로 어깨동무를 한 채 비틀대며 걸어다녔다.

       

       “자, 오늘 들어온 해산물! 싱싱한 생선, 오징어!”

       “오늘 마지막 세일! 구경이라도 하고 가세요!”

       “자, 자. 마감 얼마 안 남았습니다! 옐로베리가 하나에 35쿠퍼! 35쿠퍼!”

       

       상인들은 오늘치 장사를 마치기 전에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 목청을 높였다. 

       

       “거기 잘생긴 형씨!”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흠칫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상인이 씩 웃으며 손짓을 했다.

       

       “이리 와서 구경이라도 하고 가. 사면 더 좋고. 싸게 줄게!”

       “아아, 괜찮습니다. 다음에 올게요.”

       “내일은 이 가격에 안 나오는데…. 그럼 다음에 꼭 들러, 형씨!”

       “네에….”

       

       휴우.

       

       혹시나 후드 속의 해츨링이 들킨 걸까 싶어 철렁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꿈틀.

       

       ‘헉.’

       

       해츨링이 자세가 좀 불편했는지 아주 살짝 꿈틀했지만, 이번에도 다행히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역시 가방부터 사야겠어. 지금이야 군중 속에 있지만, 후드에 감추는 건 역시 가까이선 들킬 확률이 높아.’

       

       그러려면 일단 발광석부터 팔아 돈을 마련해야겠지.

       

       나는 구경을 뒤로 미루고, 상점가로 들어가 한 가게를 찾았다. 

       

       [스미스 잡화점]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낡은 간판.

       하지만 그건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렘 마을의 상점들 중에서는 여기가 제일 믿을 만하지. 주인장 성격도 좋고.’

       

       여기라면 발광석도 매입해 줄 거고, 잡화점이니 적당한 가방도 바로 살 수 있을 거다.

       

       나는 상점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살펴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잡화점 옆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 후드에서 해츨링을 꺼냈다. 

       

       그리고 잡화점 건물 뒤쪽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얘야, 금방 가서 가방 사 올 테니까 저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퓨우!”

       

       내가 속삭이자 해츨링도 속삭이듯 대답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해츨링의 머리를 토닥였다.

       

       “기다리는 동안 누가 맛있는 거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알겠지?”

       “퓨, 퓨우!”

       

       절대 그럴 일 없다는 듯 해츨링이 두 앞발을 꼭 쥔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좋아. 갔다 올게.”

       

       나는 해츨링이 얌전히 잡화점 건물 뒤쪽 구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거듭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스미스 잡화점의 문을 열었다. 

       

       “계십니까?”

       

       안에는 나이가 지긋한 상점 주인이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주인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여행자 분이신가 보군요.”

       

       동네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라서 한 말인지, 며칠 간의 야생 생활로 엉망이 된 내 행색을 보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먼저 이걸 좀 팔고 싶은데요. 봐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바지에 다닥다닥 달린 주머니에서 발광석을 몇 개 꺼내 주인장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오호, 이건….”

       

       주인장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주인장은 발광석 하나를 집어 돋보기로 자세히 관찰했다.

       

       “꽤나 품질이 좋은 발광석이로군요. 아니, 조금 오래된 것 같기는 하지만 품질은 최상급에 가깝습니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스미스 아저씨야. 행색이 이렇게 초라한데도 정직하게 감정해 주시네.’

       

       아마 못된 마음을 먹은 상인이었다면 내 행색을 보고 바로 값을 후려칠 각부터 쟀을 것이다. 

       

       “허허, 제가 잡화점을 이곳에서 오래 했습니다만 이렇게 품질 좋은 발광석을 많이 가져오신 분은 여행자님이 처음이로군요.”

       “그…런가요?”

       

       하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최상급인 걸 알 수 있었을 정도인데 전문가가 보기에는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무려 드래곤 레어에 박혀 있던 발광석인데 싸구려일 리가 없지.’

       

       몇천 년을 산 용의 눈으로 선별한 발광석일 테니까 말이다.

       

       “예. 혹시 어디에서 이것들을 구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뜨끔.

       

       “아, 그…. 그게.”

       

       나는 주인장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드래곤 레어에서 가져왔다고 할 수는 없잖아.’

       

       발광석이 자연적으로 나는 곳이 서부 근처에 어디 있더라?

       둘러댈 만한 곳이… 페그릴 광산 쪽? 아니야, 거긴 발광석 품질이 낮은 편인데.

       그냥 영업비밀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하하하. 괜찮습니다. 저라도 그런 고급 정보를 아무에게나 알려 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한번 여쭤 보았습니다.”

       “…….”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주인장은 호탕하게 웃더니, 곧 발광석을 하나씩 꼼꼼하게 감정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결과를 알려 주었다. 

       

       “왼쪽부터 1골드, 1골드 70실버, 1골드 50실버. 그리고 이건 2골드의 값어치가 있습니다. 자세히 볼수록 놀랍군요. 관리 상태가 안 좋아서 그렇지, 품질 자체는 최상급에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최상급입니다.”

       

       그 말에는 나도 놀랐다. 

       

       ‘그렇게 고급이었단 말이야?’

       

       동굴에서 잘 때 무서워하는 해츨링 무드등 켜 준다고 아무렇게나 벽에 박아 놓았다가 회수하고, 무거워서 잠깐 쉴 때도 아무렇게나 꺼내 놓았다가 다시 담고 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진작 관리 좀 할걸.

       

       ‘기껏해야 하나에 80실버 정도 할 줄 알았는데.’

       

       물론 80실버도 적은 돈은 아니다. 

       

       보통 여관에서 하루 묵는 비용이 3실버에서 5실버 정도. 고급 여관이다 싶으면 8실버 정도다.

       

       80실버면 고급 여관에서 열흘, 저렴한 여관에서는 거의 한 달 가까이 머물 수 있는 돈인 셈이다. 

       물론 식비는 제외하고.

       

       ‘그런데 저게 하나에 최소 1골드라고?’

       

       나는 재빨리 주머니에 남아 있던 발광석들을 마저 꺼냈다. 

       

       “……!”

       

       발광석이 줄줄이 나오자 주인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런…. 허허허.”

       

       잠시 말문이 막혔던 주인장은 잠시 후 내 요청에 따라 하나씩 추가로 감정을 해 주었고, 내가 직접 사용할 발광석 하나를 제외한 모든 발광석을 그 자리에서 매입하기로 했다. 

       

       주인장은 카운터 쪽에서 꺼내기에는 돈이 모자랐는지 뒤쪽 구석의 금고에서 금화와 은화를 꺼내 주머니에 담아 나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발광석 총 열세 개 매입했고, 금액은 21골드 70실버입니다. 금화 20개에 나머지는 은화로 넣었습니다.”

       

       찰랑-

       

       돈을 받아든 나는 처음 손에 넣어 보는 거금에 잠시 침을 꿀꺽 삼켰다. 

       

       “…전부 매입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것도 정확한 값으로요.”

       

       내 감사 인사에 주인장은 또 다시 허허 웃었다. 

       

       “아닙니다. 어차피 저도 상인이지 않습니까. 매입한 이후 관리 및 세공 과정을 거쳐 더 비싼 값에 팔게 되니 이득이지요. 좋은 물건 팔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저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때.

       

       -쀼!

       

       어디선가 아주 작게, 하지만 선명하게 들려 온 소리에 나와 주인장은 동시에 동작을 멈추었다. 

       

       ‘헉.’

       

       일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하나씩 제대로 감정 받는다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기다리다 지친 건가? 배가 고픈 건가? 고플 때가 되긴 했는데.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마법을 쓰지 않는 걸 보면 위험에 처한 건 아닌 것 같은….

       

       “…무슨 소리일까요?”

       “그, 그러게요? 어디 새가 앉았나?”

       

       나는 말을 더듬으며,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아, 그리고 제가 가방을 하나 사려는데…. 크기는….”

       

       내가 원하는 크기를 설명하려는 순간.

       

       쿠웅!

       

       “할아버지이이!!”

       

       잡화점의 뒷문이 열리면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조그만 소녀가 주인장을 부르며 나타났다. 

       

       그리고….

       

       “쀼, 쀼욱…!”

       

       그 소녀는 양팔 한가득, 은빛 비늘을 가진 해츨링 하나를 안아 들고 있었다. 

       

       “할아버지이이! 요 귀여운 애가 가게 뒤에 앉아 있었어! 내 거 간식 줬는데 엄청 잘 먹었어!”

       “…….”

       

       소녀의 팔에 들려 있는 해츨링은 입가에 초콜릿을 잔뜩 묻힌 채, 죄 지은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

       “…….”

       

       해츨링의 시선을 따라, 할아버지와 소녀가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후우….”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아까 하던 말을 마저 했다. 

       

       “가방 크기는 저 녀석이 쏙 들어갈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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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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