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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여우 씨. 좀 천천히 가면 안 돼요?”

       

       엔리는 내 팔을 붙잡은 채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여태 그녀가 비명을 지른 횟수만 따져도 거의 백 번에 달할 터이니 지치겠지. 탈진하지 않은 것만 해도 용한 일이었다.

       

       “빨리 나가는 게 낫지 않아요?”

       “그으건 그런데.”

       “가죠.”

       

       나는 이 파리의 장난감 공장이라는 게임이 왜 공포게임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풍기긴 한다만 그 뿐이지 않은가.

       

       가끔씩 움직이는 인형들이 튀어나와 장난을 친다만 다들 귀엽게 생겨서 장난도 웃어넘겨 줄 수 있었다.

       

       인형이 내는 소리를 바꾸면 좋겠단 생각은 했다. 생긴 건 나쁘지 않은데 내는 소리는 멱을 따는 소리이니 원.

       

       게임을 하는 것보다 재밌는 것은 엔리의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인형들이 장난을 칠 때마다 엔리는 발작을 했다. 비명을 지르는 건 예사요. 뒤로 넘어가거나. 도망치거나. 아예 울음을 터트리거나.

       

       중간부터는 아예 내 팔에 달라붙어서는 벌벌 떨어댔지. 겁 많은 아이 같은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사람들이 왜 엔리가 무서워하는 걸 보고 싶어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귀신 이야기를 해주며 무서워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비슷한 것일 테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엔리의 반응은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엔리와 함께 공장을 방황하는 게 즐겁기는 했지만 이 시간을 무한히 즐길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엔리가 진짜로 혼절할 것 같았으니까. 아쉬워도 끝을 향해 달려 나가야 했다.

       

       처음에 얻으라 말했던 서류는 이미 손에 쥔 지 오래고 이제는 탈출구만 찾으면 되는 상황. 엔리는 드디어 게임을 끝낼 수 있단 사실에 활짝 웃고 있었다.

       

       “저기 출구 아니에요?”

       

       철로 만들어 진 문 위는 서국의 언어로 쓰여진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 위에 문으로 나가는 사람 같은 모양이 그려진 것을 보면 출구거나 출구로 가는 길이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그래 보이네요.”

       “빨리가죠!”

       

       발을 내딛으면서도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보통 사람에게 절망을 선사할 때는 희망을 쥐기 직전에 절벽 아래로 떨어트리는 것이 제일이다.

       

       당연 최고의 공포를 선물하고 싶을 때에도 선을 보이기 전에 희망을 주겠지.

       

       그러니 저 초록색 간판은.

       

       미끼.

       

       탁.

       

       발소리가 났다. 들려온 방향은 문의 너머.

       

       내가 발을 멈추자 엔리가 눈으로 나를 힐난했다. 이 공장에서 나가고 싶어 혈안이 된 그녀는 발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뭔가 와요.”

       “…네?”

       

       점차 가까워진다. 그리고 점점 더 빨라진다.

       

       엔리도 발소리를 들은 건지 슬며시 내 뒤편에 숨었다. 내 팔을 잡은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또 뭔데요?!”

       “인형이겠죠.”

       “그러니까 왜 자꾸 인형이 저흴 못 살게 구는 거냐고요!”

       

       그 이유를 내가 어찌 알겠느냐.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인형은 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보았던 그 녀석이군.

       

       “뭘 구경하고 있어요! 빨리. 빨리 도망쳐야죠!”

       “왜요? 저거 귀엽잖아요.”

       “귀엽기는 개뿔! 저대로 공포영화에 나와도 되겠는데!”

       

       어허. 엔리. 배와 손. 그리고 입가에 피가 조금 묻어있기는 하다만 그것 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무슨 사정이 있었을지 모르잖느냐.

       

       봐라. 세탁만 좀 잘하면 아동용 TV프로그램에 나와도.

       

       “저 이빨 안 보여요?!”

       

       곰인형이 미소를 지으니 날카로운 이빨들이 눈에 띄었다. 입천장과 입바닥까지 가득 채운 이빨은 조금 징그러웠다.

       

       아동용 프로그램에 나오기는 글렀구나. 아니지. 입을 못 열게 메꿔 버리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안 보이기만 하면.

       

       “아 정마아아알! 빨리 가요오오오!”

       

       생각할 시간이 많은 것 같지는 않구나.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보아 곰인형의 목적은 우리인 듯 싶으니.

       

       하긴 곰은 잡식이지.

       

       엔리의 팔을 잡고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할까.

       

       무작정 내달리며 슬쩍 보니 곰인형의 속도는 인간이 달리는 것보다 조금 더 빨랐다. 단순히 도망만 친다면 순식간에 따라 잡히겠군.

       

       “어디로 가죠?”

       “일단은. 일단 숨을 수 있는데로!”

       

       거기가 어딥니까. 라고 물으려다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 입을 닫았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엔리의 몸을 짊어진 후 경공을 펼쳤다.

       

       허공답보. 는 아니고 그 비스무리 한 것을. 내기가 없어 허공을 밟는 게 불가했기에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

       

       가벼이 책상을 뛰어넘은 후 뒤를 살피니 곰인형은 제 손으로 장애물을 부수며 우리를 추격했다.

       

       여기까지 걸어오며 통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여럿 있다 싶었는데 그게 다 저 곰인형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나.

       

       “발전실로 가죠! 거기 문 튼튼하잖아요!”

       

       엔리는 내 어깨에 매달린 상태에서 나를 재촉했다. 공포가 서린 어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이대로 갈게요. 장애물이 많아요.”

       “말할 시간에 달려요! 쫓아온다! 온다아아아!”

       

       한참을 달려 발전실에 도착한 우리는 문을 잠구고 안에서 숨을 죽였다.

       

       얼마가지 않아 느릿한 발소리가 우리를 따라잡았다.

       

       그 소리는 문의 앞에서 멈췄다.

       

       눈치챈건가.

       

       기다란 정적을 지나

       

       – 콰앙!

       

       무언가가 문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주먹질 한 번에 문이 구부러진 것으로 보아 얼마 견디지 못할 것은 자명했다.

       

       “으아아! 어떡하죠? 어떻게 해야 하죠?!”

       “여기 다른 길이 있던가요.”

       “몰라요!”

       

       나와 엔리는 흩어져 탈출구를 찾아보았지만 그럴 듯한 장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는 강제로 배수진을 치게 된 셈이었다.

       

       “여우 씨. 무슨 방법 없을까요?”

       “어떡하긴 어떡해요. 죽으면 되지.”

       “죽기 싫단 말이에요!”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니잖느냐. 어차피 되살아날 것이거늘.

       

       게다가 엔리 그대도 아피스의 유저라면 남의 주먹에 맞아 죽어 본 적 경험 정도는 여럿 있었을 것이거늘 뭘 그리 동요하는 게야.

       

       콰앙!

       

       문 두 짝이 박살나며 곰인형이 미소를 드러냈다. 아주 활짝 핀 웃음과 어디서 챙겨온 건지 모를 도끼는 덤이었다.

       

       아주 건치구나. 모양새만 좀 더 좋았어도 미소가 아름다운 곰이라 불렸겠어.

       

       근데 양치질은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사이 사이에 고기 같은 게 끼어있잖느냐. 그러다 충치가 생겨도 나는 모른다.

       

       “끝이야. 끝났어.”

       

       엔리는 바닥에 주저앉아선 바들바들 떨었다. 생을 체념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역시 그냥 죽으란 말은 좀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좀 불쌍하기도 하군. 내 본래는 그냥 순수히 게임을 즐길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된 이상 조금 힘을 써볼까.

       

       “여우 씨? 어디가요?”

       

       나는 제 발로 인형의 앞에 섰다.

       

       미끼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내 목숨을 걸고서 이 놈을 떨어트린다 해서 엔리가 이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

       

       “여우 씨?”

       

       무인이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지 않은가. 눈앞에 적이 있다면 부숴야지.

       

       곰이 자신이 든 도끼를 휘둘렀다. 숙련된 나무꾼과도 같은 깔끔한 동작이었으나 무인의 동작은 아니었다.

       

       아해야. 힘을 그런 식으로 쓰면 말이다. 받아 넘기기 너무 쉽지 않느냐.

       

       도끼를 휘두르는 곰인형의 손목 부근을 잡고 업어쳤다.

       

       인형의 무게는 분명 무거웠으나 그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한다면 태산조차도 넘길 수 있으니까.

       

       쿠웅!

       

       곰인형의 등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바닥이 흔들렸다.

       

       내기가 없어도 내 안에 새겨진 무공의 구절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의 체급이 아무리 크다 한들 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가지고 노는 건 어렵지 않다.

       

       곰인형은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도끼를 쥐었다. 조금은 당황해주기를 바랐으나 동요는 없었다. 결국 인공지능이라는 것인가.

       

       아쉽군. 상대가 사람이었다면 더 가지고 놀기 편했을 터인데.

       

       오히려 동요한 쪽은 엔리였다. 어느새 발전기 뒤편에 숨은 그녀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방금 전 흔들린 바닥보다 더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이 녀석이 얼마나 튼튼할지는 모르겠다만 기계이니 때리다 보면 고장 나지 않겠느냐.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이니 조금 기다리거라.

       

       *

       

       [ㅇㅇ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엔리 누나. 저사람 뭐야? 무서워.

       

       “여러분도 그래요? 저도 무서워요.”

       

       백아라는 곰인형을 가지고 유도를 하고 있었다.

       

       다른 무술일지도 모르겠지만 엔리가 아는 것 중 지금 백아라가 펼치는 무술과 가장 비슷한 건 분명 유도였다.

       

       곰인형의 도끼를 피한 후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다거나.

       

       돌진하는 곰인형의 힘을 이용해 업어친다거나.

       

       곰인형을 완전히 장난감 다루듯 하고 있었다.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장난감을 장난감처럼 쓰는 거니까 문제 없는 거 아님?

       

       “그렇기는 한데요. 저게 어떻게 되는 거에요?”

       

       – 몰?루

       – 현직 유도 검은띠입니다. 몰?루

       

       쿠웅!

       

       또 다시 곰인형이 바닥을 굴렀다. 이번으로 몇 번째인 걸까. 채팅창을 보니 스무 두 번째라는 듯 했다.

       

       “여우 씨. 설명해줄 수 있어요?”

       “별 것 아니에요. 상대가 하는 게 뻔하니까. 힘을 이용하는 것도 쉬운 거죠.”

       

       상대가 무예에 서툴러 대응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가지고 놀 수 있는 거라고 백아라가 설명을 했지만 엔리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채팅창이 ?로 도배된 것을 보면 엔리 쪽이 정상인 듯 했다.

       

       “여우 씨. 못 알아듣겠으니까. 그냥 때려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쿠웅!

       

       백아라는 이번에 곰인형을 공처럼 굴려서는 발전기에다 박아버렸다. 이젠 하다하다 채팅창에 곰인형이 불쌍하다는 말이 올라왔다.

       

       “그런데 여러분. 저 인형 죽긴 해요?”

       

       – 스포 해도 됨?

       

       “방향이 좀 많이 달라진 것 같긴 한데. 깬 것 같으니까 그냥 설명해 주세요.”

       

       시청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곰인형은 마지막에 프레스기에 압사당하는 모양이었다. 그 과정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해서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다나 뭐라나.

       

       “한 마디로 물리적으로 패서 이길 수 있단 거네요.”

       – ㅇㅇ

       

       쓰러졌던 곰인형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시 도끼를 집기는 했으나 슬쩍 뒤로 물러나는 것이 백아라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세상에. 공포 게임 보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사람이라니.

       

       – 역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야.

       

       채팅창에서 올라온 한 마디에 엔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느꼈던 공포감은 저 멀리로 달아난 뒤였다. 다음에 다시 곰인형에게 쫓기더라도 이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먼저 나올 것 같았다.

       

       “여러분. 채널포인트 베팅이나 열까요. 여우 씨가 곰인형을 부수는 데 몇 분이나 걸릴까로.”

       

       – 20분?

       – 10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대충 15분으로 하죠. 15분안에 잡는다 못 잡는다.”

       

       정배는 잡는다 쪽이었다.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곰인형에게 동정을 표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화로 벌써 15화 째네요. 언제나 여러분 덕택에 즐겁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되는 대로 PLUS를 신청해 볼 것 같습니다.
    저에겐 일종의 도전인만큼 더 좋은 글을 써보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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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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