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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이세린.

         

        그녀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손.

         

        이전에는 잘 먹고 관리도 잘 받아 예뻤던 그 손.

         

        갑자기 이곳에 와서 젊어지며 더 윤기 있어졌던 그 손.

         

        이곳에 와서 관리도 못 받고 계속 스트레스 받으며 싸우고 치료하고 싸우고 치료하고, 일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부르트고 이리저리 까진 손.

         

        그리고.

         

        그 작고.

         

        순수하고.

         

        억울할 뿐인.

         

        이 설의 목을 조른 손.

         

        그리고.

         

        그 연약하고.

         

        아담하고.

         

        하얄 뿐인.

         

        이 설의 손톱을 뽑은 손.

         

        그 손이.

         

        너무나도 더러웠다.

         

        덜덜덜.

         

        절로 떨리는 그 손을 서로 맞잡아 봤지만.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가.

         

        뭐가 착한 아이일까.

         

        정작 제일 착하게 대해야 할 사람을 고통받게 했는데.

         

        뭐가 착한 아이일까.

         

        정작 인간이길 그만둔 짓을 스스럼 없이 저질렀는데.

         

        이 설의 목을 조르던 그 소름 돋는 느낌이 손에 아직도 남아있었다.

         

        생생하게.

         

        부드러운 그 살.

         

        제대로 먹지 못해 훤히 드러난 그 쇄골 뼈.

         

        힘을 줄 때마다 연약하게 뿌득거리는 목의 연골.

         

        조일 때마다 흐르기를 멈추는 얇은 대동맥.

         

        풀 때마다 다시 흐르며 맥동하는 그 핏속 심장의 진동.

         

        역겨웠다.

         

        나 스스로가.

         

        너무 역겨웠다.

         

        그 짐승같은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스스로 위안을 얻은 것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트라우마.

         

        나는 그걸 이겨내겠다고 아무 죄 없는 이의 목을 조르기를 반복했다.

         

        트라우마.

         

        나는 그걸 이겨내고 있다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설을 보며 실실 쪼갰었다.

         

        트라우마.

         

        나는 그걸 이겨낼 수 있다고 천천히 계속해서 기쁨을 담아 목을 조른 손에 힘을 줬다.

         

        아직도.

         

        아직도 그 느낌이 남아 있었다.

         

        묶여 있었기에 목을 조르는 내 손목마저 잡지 못하고, 제대로 된 반항 조차 하지 못한 그 모습이.

         

        조를 때마다, 내 아래에서 버둥대던 그 허리와 다리의 느낌이.

         

        죽기 직전에 눈을 까뒤집으며 의식을 잃는 그 얼굴이.

         

        눈물과 침을 흘리며 거품을 물던 그 다급한 표정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선명했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래서.

         

        “아…”

         

        사과를.

         

        하고 싶었다.

         

        사과해봤자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사과하고 싶었다.

         

        내 진심은 이런 것이라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역으로 내 마음 하나 편해지자고 하는 사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절대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니, 사과할 수 없었다니 다행이 아니었다.

         

        아니, 역겨운 나 스스로가 편해지지 못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아니, 지금도 고통스러워 할 그에게 제대로 된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 아니었다.

         

        아니, 이렇게라도 나 스스로 속죄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모순.

         

        마음 속에 모순이 생겨버렸다.

         

        계속해서 그것 만을 생각하며 속으로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진심의 사과를.

         

        -께헥… 끄긁…! 학…! 븍…!

         

        귓가에 계속 울리며.

         

        -끄그극…! 헥…!

         

        반복되는 그 고통의 가녀린 신음을 가슴 깊이 박으며.

         

        그리 되뇌이다 보니.

         

        다시금 남아있는 몸의 감각에 스스로가 놀랐다.

         

        손톱.

         

        그 작은 손에 붙어있는.

         

        너무나도 쉽게 분리되던 그 잔인한 느낌을.

         

        내가 어떻게 했더라?

         

        맞아.

         

        웃으면서.

         

        이겨내고 있다며.

         

        신나게 그 손톱을 뽑았지.

         

        단검으로 손톱 밑을 찔러 살과 분리하고.

         

        덜렁거리며 붙어있는 그 손톱을 뿌리 채로 뽑았지.

         

        “아. 으.”

         

        신나게.

         

        즐겁게.

         

        기쁘게.

         

        그러느라 생각지도 못했던 그 잔인한 느낌을 다시금 깨달았다.

         

        피가 끈적하게 눌러 붙으며 흐르고.

         

        고통의 비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첫 번째 손톱이 분리될 때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두 번째 손톱이 분리될 때는 침을.

         

        세 번째 손톱이 분리될 때는 오줌을 지렸다.

         

        그 모든 힘이 빠져나가던 모습을 보며 나는.

         

        나는 그저 좋아했었다.

         

        강간마가 고통받는다고.

         

        그깟 트라우마.

         

        이겨낼 수 있다고.

         

        “아… 아… 으아…!”

         

        네 번째 손톱이 분리될 때는 기절했다.

         

        말 그대로 뚝.

         

        비명이 끊겼다.

         

        들리는 건 오줌 흐르는 소리와 피가 떨어지는 소리.

         

        다섯 번째 손톱이 분리될 때는 다시 깨어났다.

         

        똑같이 비명을 지르면서.

         

        여섯 번째 손톱이 분리될 때는 목이 쉬어 비명이라 하기에도 초라한 헛바람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곱 번째 손톱이 분리될 때는 거품을 물고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으며.

         

        여덟 번째에는 또 한 번 기절했다.

         

        아홉 번째까지.

         

        그는 깨어나지 않았고.

         

        마지막 열 번째.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아파하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몸만 떨면서.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 모습 하나하나를.

         

        나는 눈앞에서 직접 보고 느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

         

        내가.

         

        내가 만들어 낸 끔찍한 결과물.

         

        이 시대에 사는 그 누가 손톱이 생으로 뽑힐까.

         

        제대로 된 사고 판단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아무 잘못 없는 이를 처음 겪는.

         

        적어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 수 없는 그런 고통.

         

        그 끔찍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아아아아아아!!!!”

         

        미안해요.

         

        죄송해요.

         

        사과하고 싶어요.

         

        제발.

         

        한 번만 말하게 해주세요.

         

        제발요.

         

        “또 무슨 일이야!! 이세린!!”

         

        “아아아아아!!!”

         

        “정신 차려!!”

         

        눈물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제는 완벽히 각인된 그 기억이 죄악감을 자극했다.

         

        누명을 쓴.

         

        머저리 같은.

         

        얼을 타며 억울해 하는.

         

        그런 병신 같은 놈.

         

        내 아버지가 말하는 그 불쌍한.

         

        내 아버지가 직접 쳐넣은 그 아무 죄 없는.

         

        뉴스에 나와 대서 특필되어 모두의 혐오를 받고.

         

        영화와 다큐로 각색되어 모두의 저주를 받고.

         

        출소 되어 모두의 질타와 죽으라는 시위를 받았던 그.

         

        그런 끔찍하게도 억울한 이를 잡아 넣은 그 쓰레기 같은 아비의 딸이.

         

        다시 한번 그를 아프게 했다.

         

        그리고.

         

        사과도 못하고 있다.

         

        “아아아아악!!!!”

         

        쫙!

         

        고개가 돌아갔다.

         

        맞았다.

         

        박지원한테.

         

        정면을 바라보자 다급하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이름을 외치는 박지원이 보였다.

         

        아니야.

         

        아니라고.

         

        너가 그 표정을 지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란 말이야.

         

        나를 구해주고.

         

        나와 친하게 지내주고.

         

        언제나 나를 아껴주었던 친구였지만.

         

        너도.

         

        너도 이 설을 아프게 만들었잖아.

         

        근데.

         

        왜.

         

        어째서.

         

        그걸 모르는 거야.

         

        “아아아아악!!!!! 악!!!!”

         

        목이 쉴 것 같이 외쳤다.

         

        주변에서는 기겁을 하며 미친 사람을 바라보듯 쳐다봤다.

         

        하지만.

         

        다 상관없었다.

         

        사과.

         

        사과를 너무 하고 싶었다.

         

        그걸 하지 못한다는 게.

         

        마음을 이리저리 헤집고 뇌를 막무가내로 범했다.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사과를 하고 그의 억울함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모두가 그에게 사과를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학!! 하악…!!!”

         

        “이세린 제발…”

         

        박지원이 눈물을 흘렸다.

         

        나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나에게 온기를 전해주며 위로했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역겨웠다.

       

       

       

        위로를 받을 사람이 내가 아닌 걸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한다는 그 상황이.

         

        그 상황을 만들어낸 내 행동이 너무 역겨웠다.

         

        지원아.

         

        제발.

         

        제발.

         

        나 좀 그만 위로해줘.

         

        제발.

         

        제발.

         

        이 설.

         

        제발 그 억울해 죽기 직전인 그를 위로해 줘.

         

        제발!!!

         

        그리 속으로 외쳤지만 전해지는 건 없었다.

         

        그저.

         

        위로를 받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이 설의 표정을 볼 뿐이었다.

         

        완벽하게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 표정.

         

        먹을 것을 챙겨줄 때, 치료해 줄 때 내게 표했던 그 호감의 표정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나는.

         

        그 표정과 눈빛의 간절함도 모른 채.

         

        그저 트라우마라는 명분으로 그것을 역겹게 여기고 무시했다.

         

        이제는.

         

        이제는.

         

        다시는 그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아… 하… 하…”

         

        절대로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를 봐줘요.

         

        제발 나를 봐줘요.

         

        “이세린 너 뭐하는…!”

         

        박지원을 밀치고 이 설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맞췄다.

         

        나를.

         

        제발.

         

        나를 봐주세요.

         

        내 진심을.

         

        내가 얼마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지 한 번만 봐주세요.

         

        한 번 만요.

         

        제발요.

         

        제발.

         

        하지만.

         

        덜덜덜.

         

        그는 공포에 젖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망가진 인형같은 모습.

         

        나를 마주하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그 눈이, 마치 내가 자신을 망가뜨렸다 원망하는 것 같았다.

         

        “아… 으…”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 때문에 일그러졌던 그 얼굴.

         

        나 때문에 그 고통을 표현하던 그 얼굴.

         

        그 망가진 인형.

         

        두고두고.

         

        꼭 지켜야 했다.

         

        내가 내 진심을 전할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원망을 모두 받아낼 수 있을 때까지.

         

        꼭 지켜내야 했다.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저.

         

        저 나와 같은 더럽고 역겨운.

         

        자기 잘못도 모르는 채로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저들에게서.

         

        이 소중한 인형을 지켜야 한다.

         

        “이히히…!”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앞으로는.

         

        그 누구도 지키지 않을게요.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게요.

         

        당신만 치료하고.

         

        당신만 지킬 테니까.

         

        제발.

         

        한 번만 제 진심을 알아주세요.

         

        제발요.

         

        나만 그 비밀을 알고.

         

        나만이 그 억울함을 이해하니까.

         

        이제는 내 것이라 여기고 계속 지켜줄게요.

         

        내가 꼭.

         

        지킬게요.

         

        그리고.

         

        당신의 말만 잘 듣는.

         

        아주.

         

        착한.

         

        착한 아이가 될게요.

         

        이히히.

         

        ***

         

        미쳐버린 이세린을 뒤로하고, 결정을 내린 이시현의 행동력은 빨랐다.

         

        수백 회차를 거듭하며 만들어 낸 노련함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검을 쓰는 이들.

         

        창을 쓰는 이들.

         

        방패를 쓰는 이들.

         

        활을 쓰는 이들.

         

        마법을 쓰는 이들.

         

        모두 적절한 곳에 배치를 하고,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이 역시.

         

        강아현의 도움이 컸다.

         

        “이 구조물은 튜토리얼을 사정에 끝낼 수 있는 ‘모종의 방법’으로 보여요!”

         

        “…”

         

        “여러분도 얼른 빠져나가고 싶으시지 않아요?!”

         

        “빠, 빠져나가고 싶어!!”

         

        “이곳에 더 있기 싫어!!”

         

        “몬스터도 너무 많고… 이제는 범죄자들 까지…!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한 때는.

         

        자신이 주인공인 줄 착각하던 이들.

         

        온갖 미디어 매체에 적응하여 자신이 특별하다 생각했던 이들.

         

        그 덕에 의외로 눈치가 빨라서 튜토리얼 시작 때도 입을 다물어 머리가 터지지 않은 이들.

         

        그럼에도 재능의 벽에 부딪혀, 현실이라는 잔혹함에 부딪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달은 이들.

         

        “좋아요!! 그러니까 우리 다같이 한 번만 더 힘을 모아서 끝을 보는 거에요!!”

         

        이들은 결국, 주인공들에게 이끌리는 존재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아현.

         

        똑똑하고, 외모가 뛰어나고, 잘 싸우고, 사람을 잘 다루는 카리스마를 가진 그녀는 이곳에서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그녀의 말을 따랐다.

         

        이세린.

         

        그 한 명은 제외하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후회는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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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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