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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머리 쪽의 혈류가 비등한다.

         

         뇌에 따로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적은 없는데도, 가속된 사고속에서 날아가는 수류탄이 형상이 아주 느리게 보인다. 인체설계와 유전공학의 정수나 다름없는 몸이 좆 됐다고 비명을 지른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좀 움직여주던가, 시발…!!

         

         끼긱…!

         

         발목을 비틀어 운전석 방향으로 있는 힘껏 몸을 내던진다. 수류탄의 위력 같은 걸 구경할 새도 없었다. 당장 몸으로 경험하게 될 판이었으니까!

         

         허공에서 다이빙하는 나를 본 모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님 여러분 죄송합니다…! 잠시, 기체에 강한 흔들림이 있을 예정….

         

         콰과아아앙—!!

         

         “커흑…?!”

         “언니……!!”

         

         충격에 몸이 튕겨져 날아가고. 반경내에 존재하는 걸 모조리 찢어버릴 파편의 폭풍이, 호버크래프트 내부에 마구 꽂혔다.

         호버크래프트의 차체가 폭발에 휘말린 것처럼…. 아니, 진짜로 휘말려서 거칠게 요동치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여기저기 부딪혔는데… 아픈지도 모르겠다. 무슨 전쟁영화의 효과음 마냥 삐이이—… 하는 이명이 귀에서 가시질 않는다.

         눈앞이 흐릿하고, 당황한 모녀가 달려와서 뭔가 뻐끔거리는 게 흐릿한 잔상으로 보인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마치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제대로 된 말 대신 헐떡이는 숨소리만 간신히 입밖으로 새어 나갔다.

         

         ‘미친 수류탄! 존나 쎄네…!!’

         

         “쿨럭… 쿨럭! 흐읍… 커헉….”

         

        게임에서 전투경찰 소속 드로이드 하나도 제대로 못 터트리는 잉여 소모품의 위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개조도 덜 된 추적자가 한손으로 대구경 포탑을 점토 으깨듯 주무르는 걸 봐 놓고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미친 짓을 저질렀으니… 다쳐도 싸다. 오히려 살아있는 게 다행이지.

         

         “아나스타샤 양! 숨을 천천히 들이마셔주세요…!!”

         

         “……흐읍! 하악… 하악…!!”

         

         죽어라 숨을 들이쉬는데 왜 이렇게 산소가 모자란 건지… 폭발이 주변의 공기를 다 빨아간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고개와 손을 휘저어서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고 알리려 했는데….

         

         덜컹…! 드드득…!!

         

         “큭…?!”

         

         손가락 끝이 잘려 나가고, 옷이 엉망으로 찢어진 걸로도 모자라, 호랑이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살점이 움푹움푹 파여. 뼈는 물론이고 몸에 심어진 기계부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무법자의 검은 팔이 차량 바닥을 긁었다.

         

         미친….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가 따로 없다. 충격에만 휘말린 나도 이런 꼴인데, 그걸 몸으로 직접 받아내고도 움직여?

         

         “이이… 익…!!”

         

         “언니! 움직이지 마! 피나…!!”

         

         필사적으로. 운전석 앞쪽에 있는 출입문 개폐 버튼을 향해 손을 뻗는 나를 메리와 어머님이 말리신다. ……피? 뭔가 뜨뜻미지근한 게 이마 근처에서 느껴지긴 하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두 분 뒤편에, 용광로에서 막 탈출한 터미네이터 같은 게 있다니까요?!

         

         “느 년은… 나하테… 디졌… 아아아아아아아—!!

         

         “!!”

         

         양 뺨과 혀가 사라져서 발음이 줄줄 새는데도. 담긴 짙은 살의와 증오에 온몸의 솜털이 쭈뼛하고 솟는다. 내부로 들이밀어진 적의 얼굴은 머리를 이루는 골격 대부분이 금속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수류탄 파편이 곳곳에 깊숙이 박혀 있음에도 움직이는 게 그저 놀랍다.

         

         ……씨발, 그냥 좀 죽으시지.

         

         삐빅! 우드드득……!!

         

         간신히 뻗어진 손이 출입문을 닫아버린다.

         반쯤 기어들어오던 놈의 허리춤이 문틈에 정확하게 끼었고, 압력에 의해 무참하게 잘려나갔다.

         

         우당탕… 그리고 깡.

         정들었던 하반신과 이별하고. 홀로 남겨진 채, 바닥에 나뒹구는 사이보그급 개조인간의 상반신이 만들어낸 소음에. 두 모녀도 화들짝 놀라서 내 쪽으로 붙으셨다.

         

         “……하아아.”

         

         일단은… 살았다. 호버크래프트의 중장갑이나 전면부의 강화 유리를 뚫을 화력이 없는 이상, 이젠 얌전히 이 질량병기를 조종해 잔당을 몰아내는 일만 남았다. …그래야 했다.

         

         …까드득.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놈의 머리통이 바닥을 긁더니. 들어있던 안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붉고 검은 공허나 다름없는 눈구멍이 이쪽을 직시했다.

         

         “이… 사오 수 니믈… 가미이이……!!

         

         남아있던 몇 없는 손가락의 끝부분이, 짤깍하고 열렸다. 거기서 드러난 건… 일종의 총구.

         허 참… 비무장지대에 출입도 못하게 되는 병신 같은 개조를 받아…? 독한 새끼….

         

         휘청이는 몸을 억지로 채찍질해, 두 숙녀분의 앞을 가로막았다. …괜찮다. 저런 엉망인 신체개조 결과물로부터 대단한 살상력을 가진 탄환이 발사될 리가 없다. 팔로 어떻게 급소만 잘 가려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나보다 용감한 사람이 숨어있었다.

         

         “엄마랑 언니를… 내버려 둬!”

         

         “!! 안 돼…!”

         

         조악한 총성이 울린다.

         

         세상 그 어디보다도 아늑한 부모의 품을 박차고 뛰어나간 작은 기사님이, 악마가 뿜어낸 벼락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힘없이 뒤로 날아온 몸이, 뻗어진 내 팔 안에 안착했다.

         

         “아……?”

         

         초롱초롱하던 두 눈은 굳게 감겨 있고. 재잘거리던 작은 입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개조인간이 아닌 사람은 급소가 꿰뚫리면 생각보다 쉽고 허망하게 쓰러져서 숨을 거둔다.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고 봤던 광경이지만… 이번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질척하고 끈적한 절망감이 다리를 타고 기어오른다. 정답 없는 질문이 머리속을 맴돈다.

         어째서…? 왜…? 내가 거지 같은 미래를 바꾼 게 아니었나? 운명은 어떤 억지를 부려서라도 다시 돌아오는 건가? 아니면 혹시…… 내가 괜히 재킷을 벗어줘서…? 쓸데없는 말을 해서?

         

         고개를 돌리기가 두렵다. 차라리 원망 받는다면 좋다. 때리신다면 얌전히 얻어맞겠다.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나 같은 가짜 히로인이 아니라, 더 훌륭하고 철저한, 영웅-주인공-이 구하러 왔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딸그락….

         

         작은 생명을 끊어낸 총알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찌나 깔끔하게 관통했는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고고한 자태에 어지럽던 마음이 더 깊은 어둠속으로….

         

         “…에? 왜 안 아프지…?”

         

         “?!”

         

         “메리…!!”

         

         꼭 감고있던 눈을 슬쩍 뜨더니, 미치고 팔짝 뛸 만큼 황당한 말을 중얼거리는 말괄량이를 어머님과 함께 긴급체포. 다급하게 재킷을 벗겨내고 구석구석을 확인해봤지만, 얼굴에 남은 타박상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사이버웨어도 확실하게 진단했다.

         

         입혀준 방탄복이 너무 큰데다, 메리의 몸이 가벼워서. 옷자락을 맞춘 총알이 이런 장면을 연출했다고…? 이런 웃기지도 않는, 선 타는 농담은 제발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의사감지 사이버웨어는 대체 언제 개발되더라…?

         

         찰싹!! 찰싹…!

         

         “아아아아아아!! 잘못했어요, 엄마!!”

         

         “아나스타샤 언니에게도 당장 사과하렴…! 얼마나 놀라셨는지, 일어나지도 못 하시네…!!”

         

         “저는… 저는 괜찮아요…. 네….”

         

         다리에 힘이 풀린 건 사실이지만…. 엉망진창으로 종아리 쪽을 체벌 받는 메리를 보고 있으려니 화낼 기운도 사라졌다. 어쩌면 머리에 쏠린 피가 너무 흘러내려서 그냥 빈혈 상태 인건지도 모르겠다.

         

         똑똑똑…!

         

         “아. 할배… 무사했네.”

         

         안에서 난리법석이 벌어진 사이, 어느새 무법자들을 모두 정리한 주민분들이 부유중인 차량의 문을 노크하셨다.

         

         게임 때보다 오만배는 젊고, 세상 온화해 보이는 슈나이더 씨.

         이 와중에도 포장한 저녁식사를 들고 있는 메카닉 할아범.

         인상과 무장은 완전 제각각이여도, 일궈낸 승리가 기뻐 보이는 자경단원분들의 모습이 측면 카메라에 잡혔다.

         

         삐빅….

         

         문이나 열어드리고 조금 쉬려고 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여성의 팔이, 어깨 밑으로 들어와 나를 부축했다.

         하…. 이것 참… 나는 어디 가서 멋 부릴 운명은 아닌가 보다.

         

         시동을 끄고, 부축을 받으며 내린 후.

         우물쭈물하는 모녀를 살며시 밀어 슈나이더 씨 곁으로 보내 드렸다. 이제 남은 건… 말이 없는 할아범과 나.

         

         착잡한 그의 시선이 몸을 자꾸 살핀다. 조심스럽게 내민 손이, 멋대로 머리카락을 들추고 이마의 상처를 확인한다.

         

         “……부랴부랴 와봤는데. 진짜… 멀쩡하시네요.”

         

         “……그러는 아가씨는. 급하게 오다가… 너무 심하게 넘어졌나보군.”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우리 사이에 썩 어울리는 대화였다.

         걱정과 염려를 입 밖으로 꺼내기엔 너무 멀다. 그렇지만 모른 척 외면하기엔 너무 가깝게 붙어 지냈다. 씁쓸한 할아범의 기색을 보니, 치료비 지원을 거부하면 내가 중환자가 될 판이다.

         …이번 까지만 신세지는 걸로 해야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그 때, 성난 불청객이 다가왔다.

         

         “이보게!! 해커 아가씨! 이런 경우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나?! 남의 상품을 이렇게 막 다루다니! 찌그러진 장갑이며… 히이익!! 내부도 정말 엉망을 만들어 놨군! 이걸 고쳐줄 연줄이나 크레딧은 있겠지? 응??”

         

         “…….”

         

         쥐를 닮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정크 샵 사장이 미친듯이 나를 쪼아댔다.

         메카닉 할배를 도우려고 온 거니, 딱히 감사인사를 바라진 않았다. 일단 팔았던 물건을 다시 훔쳐…… 빌렸으니 불평 한마디 정도는 예상했다. 그런데 첫마디가 손해배상 청구…? 십새끼가 진짜.

         

         “이 씹…. 하, 좋아요. 다~~ 좋아요. 근데 그럼 적어도. 왜 단돈 2만 크레딧에 흔적도 없이 폐차하기로 했던 호버크래프트가 존나 멀쩡하게 창고에 있었는지는 설명해 주시겠죠? 사장님?”

         

         “어… 어쨌거나! 아가씨는 저걸 깔끔하게 처리하길 원하지 않았나?! 난 폐차만큼이나 확실한 경로를 알아보고 있었을 뿐이라네! 억지부리지 마시게!!”

         

         “…억지요? 억지이이이?! 궤변 늘어놓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시네?”

         

         “궤변은 도둑질을 흐지부지하려는 자네가 더 심하지! 자, 크레딧! 지불할 건가? 아니, 지불할 능력은 되나??”

         

         와… 이 쥐새끼. 내가 더러워서 피해야겠다. 차라리 여기서 몇 주 더 구르고 말지, 말을 섞을수록 추잡한 욕망이 옮는 기분이다.

         

         대충 부르는 깽값이나 내고 말아야겠다 여기고 결제를 준비하는데… 주변에 있던 주민분들과 할아범의 표정이 이상하다.

         

         울그락불그락을 넘어… 폭발직전의 화산 같은 얼굴들이었다.

         ……시골은 텃세가 심하다더니, 혹시 내가 되도 않는 말싸움을 시작해서 반감이라도 산 건가… 싶었는데.

         

         철컥!!

         

         쥐대가리 정크 샵 사장의 뒤통수에,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나이퍼 라이플이 대어졌다.

         범인은… 아까 사오 수인지 뭔지 하는 놈보다, 훨씬 대악마처럼 분노한 전 용병 슈나이더 씨.

         

         “슈… 슈나이더 자네 미쳤나?! 이게 무슨 짓인가?!”

         

         “……거기 아가씨에게. 내가 아주 큰 빚을 진 것 같아서 그렇소. 그리고… 씨벌 천 배 남겨 먹는 건, 장사가 아니라 사기 아닙니까…? 웨이 롱 어르신…? 정당한 값을 치르시지요. 이건 마을규칙을 떠나서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만.”

         

         “……천 배?”

         

         

         꾹꾹 눌러지는 쇳덩어리의 감촉과 살기등등한 주민들의 시선에 진심을 느낀 생쥐는, 언제 손해배상을 요구했냐는 듯.

        피해복구에 전폭적인 지원과… 합리적인 호버크래프트 매입가를 새로 제시해왔다.

         

         

         ……시민권을 살 돈, 얼떨결에 벌어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하하. 어린 애를 어떻게 하다니? 아슬아슬한 농~담 이었습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그럴리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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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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