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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15. 라면을 끓였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어젯밤 화단에 상추를 심었다.

       대충 30일쯤 지나면 상추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초련이가 채식을 다시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소리다.

       

       “라면을 끓였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초련아.”

       “샤아아-!”

       

       채식주의자 이초련.

       라면 극구 반대 시위 중.

       라면을 입에 넣어주려 해도, 자꾸만 얼굴을 돌린다.

       대체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사고를 안 치는 건 좋은데. 왜 갑자기 반찬 투정을 하는 거니…”

       “샤아아아아-”

       

       초련이는 라면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절대 먹지 않겠다는 투쟁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영양소는 골고루 못 챙겨도. 밥은 먹여주려 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아빠는 슬프단다. 초련아.”

       

       흑흑-

       눈물이 앞을 가려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보았다.

       

       “샤아아-!”

       “안 속네.”

       

       초련이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나를 꾸짖었다.

       그 모습을 본 화련이가 일회용 플라스틱 포크로 면을 돌돌 말며 말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알아서 안 먹을 것 같으니까 이러고 있지. 너는 동생이 걱정도 안 돼?”

       “하, 웃기는 소리야. 드래곤이 드래곤을 왜 걱정해!”

       “초련이는 걱정하던데.”

       “드래곤의 말에 반박하지마! 드래곤이 하는 말은 진리야!”

       “그거 억지잖아.”

       

       에휴.

       나는 화련이의 그릇에 라면을 채워줬다.

       

       “너는 라면이나 더 먹어라.”

       “와! 더 줘! 더 줘!”

       

       단순한 화련이는 사나운 입을 닫고 라면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련이는 포크를 사용해 알아서 잘 먹고 있었다.

       

       ‘이제 포크질은 거의 마스터한 것 같네.’

       

       능숙하다.

       확실히 드래곤들은 학습과 적응이 빠르다.

       녀석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난 후, 인간의 몸에 아주 쉽게 적응했다.

       

       원래 인간의 몸이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애초에 드래곤의 모습으로 지냈던 날보다 인간의 모습으로 지낸 날이 더 많기도 했다.

       유일하게 드래곤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초련이는…

       

       “초련아.”

       “사아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아도 되는데. 제발 밥 좀 먹어라.”

       “샤아아-!”

       

       극단 채식주의자 이초련.

       또다시 라면 결사 반대.

       상추가 자랄 날까지 오래 남았는데, 대체 밥을 언제 먹을 생각일까.

       나는 밥을 먹지 않는 초련이의 건강 상태가 심히 걱정되었다…

       

       

       ***

       

       

       …그 걱정은 상추에 물을 주기 위해 옥상에 올라간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뭐야 이거. 왜 벌써 자라있는 건데.”

       

       분명 어제 심었던 것 같은데.

       왜 벌써 싹이 돋아있지.

       나는 흙 사이에 우두커니 솟아있는 초록 새싹을 확인했다.

       

       “이게 왜 벌써 자랐지…”

       

       이럴 수가 있나?

       하루 만에 식물에서 새싹이 돋아나다니.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제 초련이가 불어넣은 숨 때문인 것 같은데. 만약 약물을 재배하는 새끼들이 이걸 알게 되면…”

       

       초련이는 새하얀 led 조명 아래에서 약물에 숨결을 불어넣는 뒷세계의 재배왕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 미래는 와서도 안 되고, 상상을 해서도 안 된다.

       

       “…내가 잘 숨기고 지키는 수밖에 없겠어.”

       

       어깨가 무겁네.

       나는 생수통에 담아 온 수련이의 물을 화단에 뿌렸다.

       

       쏴아아아-

       

       “무럭무럭 자라라.”

       

       시간이 빨리 걸리든, 오래 걸리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면 되는 법.

       달빛 아래에서 상추에 물을 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

       

       

       상추는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성장했다.

       이대로만 자라면 초련이가 곧 상추를 먹을 날도 멀지 않았다.

       그동안은 내가 직접 마트에서 사온 당근 같은 채소를 먹여야만 했다.

       

       “수도랑 가스비를 안 내서 돈이 굳긴 굳었는데… 역시 식비가 가장 크네.”

       

       핸드폰을 두드려 계산을 해보았다.

       일주일에 6번을 일하고 한 달에 250을 받는다.

       옛날에는 최저 임금이란 제도가 있어 지금보다 더 받았겠지만, 차원문이 나타난 후로 그런 제도는 1순위로 사라졌다.

       최상위 계층은 자신들이 더욱 견고해지기 위해, 하위 계층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하위 계층의 사람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영웅이 되는 것 말고는 없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거나.

       영웅이 되거나.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방법은 그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

       

       “아무튼 식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월세랑 빚을 갚으면… 최대로 잡으면 20. 최소로 잡으면 10인가.”

       

       너무 빠듯한데.

       무슨 방법이라도 없을까.

       

       ‘차라리 식비라도 좀 더 줄어야 하나.’

       

       나는 바닥에 누워 TV에 열중하고 있는 화련이를 향해 물었다.

       

       “화련아. 갑자기 먹는 양이 줄어든다 생각하면 어떤 것 같아?”

       “생각만 해도 화나! 그런 거 묻지마!”

       “그렇구나.”

       

       음.

       식비를 건드는 건 그만두자.

       그래도 이번에는 씨앗을 사기도 했고, 상추를 재배하기 시작하면 식비가 훨씬 더 굳으니까.

       다음 달에는 상황이 조금 더 좋아질 거다.

       

       “좋아지고 있으니까 천천히 올라가면 돼.”

       

       좋아.

       가보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는 사이.

       구석에 앉아있던 수련이가 말을 걸었다.

       

       “집주인. TV보고 있잖아. 혼잣말 시끄러워.”

       “가스비랑 수도세. 너희는 나중에 두고 보자.”

       “…그런 멸칭말고. 이름으로 불러.”

       “너부터 아빠라고 부르면.”

       “…”

       

       수련이는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 저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와야 할 텐데.

       나는 옆에 배를 까고 누워있는 초련이의 배를 긁었다.

       

       “그렇지, 초련아? 너도 나를 아빠라고 부르고 싶지?”

       “샤아아-!”

       

       언젠가 초련이도 인간의 모습으로 내게 아빠라고 부르겠지.

       모든 건 시간 문제.

       시간 문제에 달려 있었다.

       

       쾅쾅-!!

       

       그리고.

       문제는 제 시간에 맞춰 달려온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우리들은 시선을 문쪽으로 고정했다.

       문 뒤쪽에서 커다란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하준 안에 있지!! 문 열어!!

       

       사채업자 구봉구다.

       할매의 말대로 나를 찾아온 모양이다.

       항상 내가 돈이 있을 때 찾아오는 귀신같은 놈.

       나는 깜짝 놀란 드래곤들을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쉿- 다들 소리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뭔데. 무슨 일인데?!”

       “아무일도 아니야. 가만히 있으면 다 끝나.”

       “그, 그래?!”

       

       내 진지한 모습에 화련이는 당황하는 동시에 납득했다.

       그러나, 수련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집주인. 괜찮겠어?”

       “…”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아?”

       “…”

       

       수련이는 다 알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그리고, 구봉구와 사람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는 알이었는데. 다 들었나 보네.’

       

       젠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중에 하나였는데.

       하지만, 들켰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문 열어!!

       

       쾅쾅-!!

       

       구봉구는 계속해서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드래곤들은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내심 불안감을 내비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 가만히 있을 수 있다면, 그건 부모라는 위치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안에 있으니까 그만해. 금방 나갈 게.”

       -…있으면 진작 말할 것이지.

       

       어느정도 돈을 갚고.

       갚지 못한 돈은 평소처럼 몸으로 때우면 되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나가기 전.

       녀석들을 향해 익숙한 말을 건넸다.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

       

       곧 돌아온다는 인사말이었다.

       

       

       ***

       

       

       구봉구는 돈 냄새를 귀신같이 잘 맡는다.

       내가 돈이 생겼을 때쯤, 타이밍에 맞춰 집에 찾아온다.

       생긴 건 우럭같이 생겨서 나름 머리가 좋은 편이다.

       

       “어이, 이하준. 지금 속으로 내 욕했지.”

       “…아닌데?”

       “아니기는. 내가 너를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야. 눈에 다 보인다 이 말이야.”

       “벌써 10년이나 됐나. 참 오래도 이어졌네.”

       “그러니까 돈 좀 빨리 갚고 이 질긴 인연 좀 끊어라.”

       

       쯧-

       구봉구는 혀를 차고는 복도에 침을 뱉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어, 그거 할매가 싫어할 텐데.”

       “…내가 했다고 말하지 마라.”

       “정산 깎아주면 생각해볼게.”

       “…얼마.”

       “20.”

       “10으로 해.”

       

       나이스.

       아무리 구봉구가 날다 긴다 해도.

       할매라는 말이 나오면 녀석도 몸을 사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할매가 혈육도 아닌 구봉구를 거의 다 키웠기 때문이다.

       

       ‘사채업자로 키워내긴 했지만.’

       

       그래도 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로 키워내지는 않았다.

       10년 전에 아무것도 없던 내게 돈을 빌려주고, 10년 동안 돈을 갚지 않아도 때리는 걸로 끝낸다.

       내 입장에서는 저승사자와 다름없지만,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 나쁘면서 착한 놈이라 볼 수 있다.

       

       아무튼.

       구봉구는 그냥 구봉구다.

       구봉구는 아날로그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내게 계산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10만 깎고 저번 달에 못 갚은 것 까지 쳐서. 깔끔하게 150으로 내.”

       “150은 너무 과하지 않나? 100 어때.”

       “150. 안 낼 거면 알지?”

       

       돈 대신 다른 거로 받겠다는 소리.

       구봉구는 어떤 방식이든 빌린 걸 돌려받는 스타일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가리켰다.

       

       “복도는 좀 그렇고. 밖에서 하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데? 너 괜찮겠냐?”

       “어, 괜찮아.”

       

       다른 사람이 보는 건 상관없다.

       차라리 저 녀석들이 보지 않았으면 한다.

       나와 구봉구는 계단을 올라 바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두들겨 맞을 준비를 마쳤다.

       

       “딱 50만원 어치다.”

       “하아, 너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때리고 끝낸다.”

       

       구봉구는 질린듯한 얼굴을 하며 주먹을 풀었다.

       준비를 끝마치고는 주먹을 쥐고, 내 몸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흡!’

       

       주먹이 내 몸을 강타함과 동시에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덜 아프게 맞는 방법이다.

       그런데.

       

       ‘…뭐야. 왜 안 아프지?’

       

       덜 아프게 맞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나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아파하는 쪽은 구봉구였다.

       

       “아악-! 이 새끼가-! 몸에 뭘 넣은 거야-!”

       “ㄴ, 나?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랄하지마-! 몸에 딱딱한 거 뭘 쳐 넣은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주먹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구봉구.

       합의금을 노리는 건가.

       나를 제대로 털어먹기 위해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다.

       

       ‘대체 내 몸이 뭐가 이상하다고.’

       

       나는 한번 확인하기 위해 타격 부위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아무 문제 없는데?”

       “지랄하네 진짜.”

       

       구봉구는 주먹을 훌훌 털며 내게 다가와 내 몸에 손가락을 찔렀다.

       그러나, 손가락은 벽에 막힌 것처럼 내 몸을 파고들지 못했다.

       이건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게 뭔.”

       

       이런 신기한 일이 나한테 일어난 거라면.

       드래곤이 내 몸에 뭔가를 했을 때인데.

       최근에 내가 뭘 했더라?

       

       ‘그냥 열심히 일하고, 밥을 먹고, 애들이랑 놀아주고, 화단에 물을 주고, 땀이나면 몸을 씻었을 뿐인데.’

       

       …설마?

       나는 하루가 달리 무럭무럭 자라는 상추를 떠올렸다.

       초련이의 숨결을 받고, 수련이의 물을 마시는 상추.

       녀석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라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 상추가 되어가고 있었다.

       

       만약.

       추측이긴 하지만.

       나는 약 1달이란 시간 동안.

       수련이의 물을 마시고, 물로 샤워했다.

       그리고, 화련이의 불로 음식을 요리했다.

       

       ‘그런데 상추도 달라졌는데. 내 몸이라고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내 몸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구봉구를 보며 알아챘다.

       매일같이 일만 하느라 몰랐는데.

       내 몸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사실을.

       

       “…내가 보물을 가져온 게 맞았나 보네.”

       

       아무리 몸을 단련해도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영웅의 꿈.

       그 꿈은 아무래도 드래곤의 둥지에서 주워온 녀석들에 의해 다시 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봉구.”

       “어?”

       “남은 빚. 내가 빨리 갚아줄게.”

       

       희망 가득찬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둥지에서 주워 온 알로 인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
    기습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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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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