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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이런 곳에 여신의 성소가….”

         

         

        단순하고 투박한 동굴이었다.

         

        길도 일직선으로밖에 나있지 않은 일방통행 구조의 동굴 앞에 여신의 문양이 새겨진 것을 본 아르실은 성녀로서의 감동보다는 불안함을 느꼈다.

         

        불안감은 추적술로 동굴을 직접 찾아낸 나이드리안이 더 했다.

         

        두 여인은 이 동굴에 루시와 린이 들렀을 거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찾았음.”

         

         

        탐지 마법을 시전 중이던 티그리아가 린과 서큐버스가 싸웠던 흔적을 발견했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검붉게 자리잡은 린의 피웅덩이, 시커멓게 타버린 서큐버스의 사체, 그리고 그 주위에 버스럭 거리며 밟히는 유리들.

         

         

        “성수를 담았던 유리병으로 보임.”

         

        “그건 나도 알아.”

         

         

        직접 만들어낸 물건이니까.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축복하여 만들어낸 성수니까.

         

        아르실이 알기로는 이 세상에서 성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바로 짐꾼.

         

        애초에 성수는 공장처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오직 성녀만이 여신의 축복을 빌어 만들 수 있었고 그것도 그 대의 성녀가 살아있을 때만 효과가 유지되었다.

         

        만일을 대비해 꼬박 일주일을 소비하여 만들어낸 세 병의 성수는 파티의 짐꾼에게 맡겼었다.

         

         

        “하급 마족으로 보임. 시체가 남아있는 걸로 보아서는….”

         

        “권능: 마기가 소멸하지 않았어.”

         

        “그럴수가….”

         

         

        마법사는 담담하게, 성녀는 입술을 짓씹고, 엘프는 숨을 삼킨다.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은 최악의 형태로 드러나고 말았다.

         

        용사?

         

        살아있음. 그것도 힘을 회복한 채로.

         

        마족?

         

        여전히 존재함. 제국 곳곳에 숨어있는 것으로 추정.

         

         

        “황실에 보고하겠음.”

         

         

        지극히 사무적인 티그리아의 태도에 아르실은 보고하지 말라고 제지하고 싶었다.

         

        객관적인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듣지 않겠지.

         

        아르실과 나이드리안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토벌대원으로 두 사람이 요구한 것은 티그리아였다.

         

        일반 병사들은 마족과 조우하면 고기방패보다도 못한 데다가 괜시리 패닉을 일으켜서 소문을 내고 다닐 게 뻔했다.

         

        운 나쁘게 용사와 짐꾼을 마주해버리면 마왕 토벌의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까발려질 수도 있었기에 아르실은 교국 병사까지 제도에 두고 가는 대신 마법사의 합류를 승인 받았다.

         

        하지만 무감정의 마법사는 별 도움이 되고 있지 않았다.

         

         

        “이 피는 짐꾼의 것. 하지만 근처에 이 마족을 제외하고는 사체로 보이는 것이 감지되지 않음. 따라서 짐꾼은 본인도 치명상을 입었지만 마족을 해치우고 루시와 함께 달아난 것으로 보임.”

         

        “고작 짐꾼이 마족을 해치워? 용사겠지.”

         

         

        티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용사였다면 성검으로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거나 손으로 찢어죽였을 거임.”

         

        “용사는 팔이 없잖아.”

         

         

        우리가 직접 잡아뜯었잖아.

         

        꺼림칙한 뒷말은 삼켰다.

         

         

        “그나저나 짐꾼의 피라는 건 어떻게 안 거죠?”

         

        “난 응급 사태에 대비하고 평소 건강 관리를 위해 파티원 전원의 혈액 정보를 주기적으로 분석하고 체크했음. 그동안 축적해온 정보와 대조하여 이 혈액이 린의 것이라는 걸 확인함.”

         

        “다, 당신에게 피를 제공한 기억은 없는데요.”

         

         

        의심의 눈초리를 하는 나이드리안에게 티그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투하다보면 우리 모두 늘상 출혈이 있었음.”

         

         

        자신의 몸에서 직접 채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안 나이드리안은 안도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확인할 건 다 확인했으니 철수하자고.”

         

         

        토벌대장 아르실이 후퇴를 지시했지만 티그리아는 빤히 피웅덩이 자국을 응시했다.

         

        가늘게 뜬 그녀의 두 눈에 이채와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매우 궁금함.”

         

        “뭐가 말이죠?”

         

        “린은 대체 왜 용사를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구하고 보호하며 데리고 다니는지 궁금함.”

         

         

        여신의 성소를 나오는 길에 마법사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떠들어댔다.

         

         

        “우리에게서 도망치던 날만 해도, 비전투원인 그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음.”

         

        “그 녀석, 최상위 궁극 스킬 스크롤을 숨기고 있었잖아. 축지의 술이라니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거라고 믿었어.”

         

        “궁극 스킬 스크롤은 중요하지 않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맞서고 용사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거임. 전투마다 자기 보신도 버거워하던 린이 그 정도 용기를 갖고 움직였다는 사실과 그 동기가 궁금함.”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궁금해지네요.”

         

         

        아르실의 딴지에 반박하고 나이드리안도 자신의 호기심에 동조하자 티그리아는 답지않게 우쭐거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티도 안나지만 그녀 자신은 매우 흥분한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말을 꺼냈다.

         

         

        “이건 애정임.”

         

        “뭐라구요?”

         

        “린이 용사에게 애정을 품지 않고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설명되지 않음.”

         

        “맙소사, 티그리아 네 입에서 애정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

         

         

        자신의 가설이 곧바로 부정당하자 티그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애정.

         

        그것도 순수한 애정임이 분명했다.

         

        타인에게 털어놓는 건 역시 위험하다.

         

        마법사는 다시 침묵의 미덕을 지키기로 했다.

         

         

        “그래서 린이 누군데?”

         

         

        하지만 이어진 아르실의 질문에 마법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린이 누구냐고?

         

         

        “맥락상 짐꾼을 말하는 거 맞지?”

         

        “저도 그렇게 알아듣고 있었어요.”

         

         

        용사 파티의 혈액을 채취할 때 유일하게 다른 방법으로 피를 얻어낸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짐꾼이었다.

         

        전투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기에 전장에서 린의 샘플을 얻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직접 부탁했지만 처음에 린은 거절했었다.

         

         

        ‘응급 사태를 대비하고 평소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서임.’

         

        ‘죄송하지만 음, 전 다른 사람이 절 챙겨주는 게 낯설어서요.’

         

        ‘나도 마찬가지임.’

         

         

        티그리아에게 린은 조금 이색적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서로 완연히 다른데 닮은 구석이 은근히 있었다.

         

        티그리아는 거기서 친밀감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느꼈다.

         

         

        ‘살아온 환경이 환경인지라 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걸 악용하려고 했죠.’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정보를 그대에게 제공하겠음. 대신 함구해줘야함.’

         

        ‘어….’

         

         

        당시 티그리아는 대답도 듣지 않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놨다.

         

        린은 당황하면서 그녀의 입을 막았었다.

         

         

        ‘그거 알고 있는 사람 더 있어요?’

         

        ‘오로지 그대뿐임.’

         

         

        이유는 모르지만 린이 자신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단순히 피만 내놓기에는 너무 큰 정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함.’

         

        ‘동의도 없이 얘기한 건 마법사님이잖아요.’

         

        ‘이 거래를 이대로 끝마칠지 제대로 협의할 지는 그대에게 달렸음.’

         

        ‘아휴.’

         

         

        잠시 고민하던 린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두 가지 비밀을 털어놓아야 했다.

         

         

        ‘제 이름은 린입니다.’

         

        ‘그다지 가치 있는 정보라고 생각되지 않음.’

         

        ‘어렸을 적까지는 성녀님과 같은 동네에 있었죠.’

         

        ‘사람에 따라 흥미로워할 소재라고 생각함.’

         

         

        그것으로 거래는 마무리되었다.

         

        티그리아의 비밀이 워낙 대단했던 지라 그에 비하면 린이 준 정보는 정말 별 거 아닌 걸로 느껴졌다.

         

        린 역시 마법사가 자신의 정보를 쓸데없이 말하고 다니지 않을 것을 알기에 공개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린 역시 솔직하게 모든 걸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린.’

         

        ‘네.’

         

        ‘어렸을 적 성녀랑 친했음?’

         

        ‘…면식이 있었다 라고 해두죠.’

         

        ‘성녀에게 알린다면 지금 파티가 린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나아질 거임.’

         

        ‘아뇨, 안됩니다. 절대로.’

         

        ‘알겠음.’

         

         

        이상했다.

         

        관심없음으로 일관하는 티그리아와 다르게 다른 파티원들은 짐꾼을 가혹하게 대했다.

         

        더 나은 처지를 바라지 않는다고 본인이 이야기했으니 신경 쓸 필요 없겠지.

         

        그러나 잠시 뒤에 티그리아는 또 질문했다.

         

         

        ‘린의 비밀은 또 누가 알고 있음?’

         

        ‘글쎄요. 그래도 소수 있긴 합니다.’

         

         

        그건 좀 불만인데.

         

        그날 이후로 마법사는 단 둘이 있을 때마다 짐꾼을 이름으로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린에 대한 관심의 총량이 늘어난 건 아니었지만.

         

         

        “어이 티그리아!”

         

         

        이번에는 달랐다.

         

         

        “린이 누구….”

         

        “짐꾼 맞음. 우연히 알게 되었음. 이 답변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람.”

         

        “…말 참 싸가지 없게 한다.”

         

         

        그가 오롯이 애정 하나만으로 이렇게 움직이는 거라면, 린은 티그리아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흥미롭다.

         

        라인폴드를 말고도 새로운 관찰대상의 등장은 티그리아를 흥분시켰다.

         

         

        “후, 마족의 존재는 확인했지만 용사의 부활은 아직도 심증만 있어요.”

         

        “성검이 직접 황궁 천장을 뚫고 날았잖아. 아까 동굴 천장도 뚫려 있었고.”

         

        “그래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사색을 방해하는 두 명 때문에 티그리아는 짜증이 났다.

         

        하는 수 없이 나이드리안을 밀치고 제일 앞에 나선 마법사는 곧장 에팔테르가에 도착하자마자 탐지 마법으로 찾아두었던 그 장소로 안내했다.

         

        마침내 그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르실과 나이드리안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젠장…!”

         

         

        그건 공터였다.

         

        강제로 산의 지면을 찍어눌러 만들어낸 듯한 공터.

         

        넓지는 않았지만 주위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흩뿌려져 있고, 땅은 깊숙이 파헤쳐진 공터.

         

        바로 루시가 자신의 무지막지한 힘을 이용해 전력으로 도약할 때마다 남기고 가는 흔적이었다.

         

         

        “그러니까 황궁에서도 말했잖음.”

         

         

        티그리아는 짜증을 담아 친절하게 다시 선언해줬다.

         

         

        “용사가 돌아왔음.”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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