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

       팬드래건 왕립 학술원.

         

       일명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곳.

         

       배움의 전당이자, 왕국의 미래를 이끌 젊은 동량들을 가르치는 학술의 전당으로 아카데미는 무수한 것을 다양하게 가르친다.

         

       검술이나 마법은 물론이고, 의학이나 통계학, 천문학, 야장술 등등.

       찾아보면 이런 것도 있나 싶나 싶은 괴상한 것도 가르쳤으며, 이렇다 보니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과목만 해도 약 30개가 넘었다.

       어쩌면 이것보다 많을지도 몰랐고.

         

       허나 이렇듯 과목이 많다고 해도 그들을 가르치는 교관 혹은 교수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괜히 왕립 학술원이겠는가?

       왕실의 이름이 붙은 이상 여타의 아카데미와 비견한다는 건 모욕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왕립 아카데미에 교수진은 하나같이 상당히 우수한 면면들이 가득하다.

       왕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만큼 실력과 경력이 그 누구보다 대단해야 함은 물론인 것.

         

       다만….

         

       “…저 사람이지?”

       “소문이 진짜였다고?”

       “세상에.”

       “친분이라도 다져놔야 하는 거 아니야?”

       “관둬. 지금은 기분도 나쁘실 텐데.”

       “…그건 그래.”

         

       교수·교관 등의 인원이 아카데미 입학식 전 치러지는 간단한 모임.

       이른바 강사진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이라 할 수 있었고, 간단한 설명을 비롯하여 서로의 안면도 트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각각 교과목을 맡은 이들은 안면을 틀며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 중에도 신기하단 낯빛으로 한 남자를 힐끔거렸다.

       유난히 무리를 지은 이들과 달리, 고고한 늑대마냥 홀로 자리 잡은 채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이.

       그들은 그의 이름과 정체가 무엇인지 이미 안다.

         

       “리한이라고 했지?”

       “백은사자라, 허허,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먼.”

       “동감일세.”

         

       경력이 긴 교수 몇몇이 그의 이름을 읊었다.

         

       기사 리한.

       아카데미 교관으로 파견을 온 현역 기사.

         

       물론 기사를 보는 건 처음은 아니지만, 은퇴 기사가 아닌 현역, 그것도 젊은 기사가 아카데미에 있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젊다는 게 무슨 뜻이던가?

       투기법이 가장 강성하고도 왕성한, 전성기란 뜻이 아니던가.

       생명력이 가장 역동적일 시기.

         

       한데 그러한 시기에 교관이 된다는 건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놓친다는 뜻도 되었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그를 피하기 일쑤였다.

       그가 내심 이 자리를 불쾌해하고 있다 여겼기에.

       비록 좌천, 아니 파견당한 형태라 할지언정 그가 약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며, 교수들은 그를 위험분자로 보곤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그대로 회피하는 것.

         

       삶의 지혜였다.

         

       뭐….

         

       ‘누가 보면 내가 독극물인 줄 알겠네.’

         

       저들이 몰래 행했다고 한들 그의 눈을 피하진 못했고, 이한은 피식거렸다.

       하여튼 인간들 참.

         

       ‘귀엽게 노는구먼.’

         

       무시당하는 것보단 무서운 놈이 되는 것이 낫기에 썩 기분이 불쾌하진 않았지만.

         

       우물.

         

       스테이크 한 덩이가 다시금 그의 입에서 사라졌다.

         

       *

         

       *

         

       일주일 전, 이한에게 내려진 갑작스러운 파견 소식은 기사단 내에서도 큰 이슈로 떠올랐고, 드물게도 기사단원들은 이한을 ‘동정’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동량을 가르치기 위한 임무가 어찌 처벌이 될 수 있느냐고.

       이는 말 그대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허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의 얘기다.

         

       백은사자 기사단이 무엇이던가?

       그들은 왕실 기사단이다.

       영광스럽고도 위대한 왕가를 지킨다는 자부심은 이 나라에서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영광이다.

       한데 그 영광된 임무를 저버리고 파견 교관이 된다?

         

       나쁜 지위란 건 아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퇴 기사에게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 한창 전성기인 젊은 기사에게 청천벽력과 같다.

       그러니 이는 큰 처벌이다.

       실력을 갈고 닦아 위로 올라가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시기에, 애송이들이나 가르쳐야 한다는 거니까.

         

       이만한 손해가 없다.

         

       그러니 단원들은 드물게도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정작 당사자에게 있어선.

         

       “아아, 이런 설정으로 가겠다? 확실히 앞뒤를 맞추려면 이런 트릭도 있긴 해야겠네, 하여튼 그 아줌마, 영악하단 말이야.”

       “불경한 놈, 왕녀님에게 그 무슨 말버릇이냐.”

       “아재도 어느 정도 사정은 아나 보네?”

       “흘흘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흐음, 월급은 정상적으로 나오지?”

       “…거, 예상한 반응이긴 하다만, 좀 아쉬워하는 티라도 내줬으면 좋겠구나.”

         

       이한이 기사란 직종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긴 해도, 너무 무감각하니 도리어 아쉽다는 모습.

       그가 기사단에 대한 열정만 가득했어도 이미 한 자리 차지했을 터인데.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볼 마음은 없더냐? 그렇다면 왕녀님에게 말해 임무를 취소해주마.”

         

       발타르에겐 그 정도 권한은 있으니, 제안을 던지긴 했다만.

         

       “됐어.”

       “…1초라도 좀 고민을 하고 말하거라.”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이한은 이미 거절할 마음을 없앴고, 발타르는 기어이 혀를 차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

         

       이한은 수업 과정이나 여러 기타 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 팔자에도 안 맞는 공부마저 하는 상태였고, 머리도 꽤나 아팠다.

         

       ‘안 주기만 해봐라.’

         

       평온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이시스에게 끌려가는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자기가 거절할 리 없다는 확신이 있던 거겠지.

       그러나 그녀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만약 약이 있다고 했는데, 수작을 부린다면….

         

       ‘그땐 의남매고 뭐고 없다.’

         

       이한은 자신 있었다.

       제 뒤통수를 친 한 명쯤은 반드시 조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이 설사 나라의 후계자라 한들.

         

       * * *

         

       오늘의 커리큘럼이 끝나고, 집으로 오니 편지 세 장이 놓인 게 보였다.

         

       한 장은 제이크.

       눈치가 좋은 놈답게 안부 걱정보단, 비밀 임무가 아카데미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 여겼는지 간단하게 [잘해봐라] 라는 인사만 있을 뿐이었다.

       반대로 다음 편지를 보낸 이는 요르드에게서 온 것인데,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제가 단장님에게 청원을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등등, 뭔가 오해가 쌓인 걱정 어린 내용이 가득했다.

         

       …이놈, 왜 이래?

         

       “저번에 잘못 때렸나?”

         

       머리는 안 때렸는데, 참.

         

       어색함을 느끼며 마지막 편지를 확인하니, 편지에는 수신자가 적혀 있지 않았고, 편지지는 새하얀 백지에 불과했다.

       허나 얼핏 감도는 향수 향을 맡으며 누가 보낸 건지 알 것 같았고, 이한은 적당히 큰 대접에 물을 담아 백지를 적셨다.

       그러자 글씨가 드러났다.

         

       [이한, 믿음직한 여의 의동생이여, 이 편지를 받았다면-.]

       -으로 시작하여 여타의 고상한 글씨와 시적 표현이 가득한 내용.

         

       누가 왕태녀 아니랄까봐, 참 지루한 내용이 가득하다.

       대충 짧게 요약하자면.

         

       ‘약속은 지킬 테니까, 너도 잘해봐라, 라는 내용이네.’

         

       낯간지럽게도 [여는 그대를 믿는다], [그대의 자율성과 판단력을 신뢰하겠다]는 등에 내용이 있긴 했으나, 큰 감흥은 없다.

       누군가는 아이시스에게 이토록 과분한 평가를 받는다면 3대의 영광이라 하겠으나, 이한에겐 마냥 귀찮은 관심에 불과하다.

       그렇게 편지의 내용을 대충 다 읽고 나니 편지지는 물에서 녹아버렸다.

       증거인멸마저 확실히 되는 것이 참으로 철저하다 싶었다.

         

       “그 누님이 연금술이나 마법에 관심이 많다더니, 이런 걸 잘하시네.”

         

       이한은 편지 봉투를 지포라이터로 태웠다.

       잘 탄다 정말.

         

       “…뭐부터 시작할까?”

         

       입학식은 나흘 후.

       그때부터 요주의 인물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을 거다.

         

       허나 누님은 딱히 그에게 그들을 어찌 간 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편지의 적힌 내용대로 그의 주관적 평가에 모든 걸 맡긴다는 거겠지.

       어쩌면 명령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감안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러니 이렇게 된다면 자율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한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칠판에다 글자를 적어갔다.

         

       일종의 생각의 줄기를 적는 셈이었고, 이는 하사관이었던 전생부터 이한이 자주 하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상관에게서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명령이 수없이 떨어지면 이를 절차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익힌 습관.

         

       허나 지금만큼은 나름 괜찮은 습관이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덕분일까.

       이한은 대강 자신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를 깨달았다.

         

       “일단 걔들이 먼저 나에게 가까이 오게 만들어야겠네. 그리고 로판 속 주인공이든 회귀물 주인공이든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면 호기심이 많다는 거겠지.”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

         

       그리고 이 말을 실천하듯 로판 주인공과 회귀물 주인공은 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일부러 위험한 곳에 쳐들어가는 미친놈들이다.

         

       매일 납치당하고, 칼 맞고, 위험한 상황에 쳐한다 한들 놈들은 호기심을 참지 않는다.

         

       지들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질병에 걸린 것들이니까.

         

       그러니….

         

       “일단 굴려볼까?”

         

       이한은 슬그머니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부분 밑에 슬그머니 그것을 적었다.

       그가 생각했을 때 가장 본성이 잘 드러나고, 가장 빌어먹을 상황을 말이다.

         

       “음, 나쁘지 않네.”

         

       시원하기까지 한 미소가 자동적으로 그려지는 이한이었다.

       내가 겪은 고통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행위.

       그것은 사뭇 보람찬 일이었기에.

         

       칠판에는 유독 [유격]이란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