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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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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
    ​
    ​
    또 다시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어깨가 흠칫 떨렸다.
    ​
    ​
    “라니아님 아까부터 이런 소리가 계속 나고 있는데 왜 그런지 혹시 아세요?”
    “저 거 때문이겠지.”
    ​
    ​
    라니아는 검지 끝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가자 웬 괴상하게 생긴 남자가 몸을 비틀고 있었다.
    ​
    ​
    “헉…! 어,언제 저런 게?!”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데?”
    “네에?!”
    ​
    “꺼윽,끄허헝!”
    ​
    ​
    기괴할 정도로 팔이 우람한 남자는 꺽꺽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
    ​
    “그나저나 쿠키는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아까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데.”
    “아, 지금 당장 차와 함께 가져다드릴게요.”
    “몇 개만 지금 줘봐 먹으면서 가게.”
    “그러실래요?”
    ​
    ​
    나는 쿠키를 선반에서 꺼내 다섯개 정도 라니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접시를 하나 꺼내 산더미처럼 쿠키를 쌓은 후 찻잎 병을 들었다.
    ​
    ​
    “차도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그애…응?”
    ​
    ​
    입에 쿠키를 물고 대답하던 라니아가 내가 들고 있는 찻잎 병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와작와작와작,꿀꺽.
    ​
    ​
    쿠키를 순식간에 입에 밀어 넣어 씹어 삼킨 라니아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
    ​
    “설마 오늘 나 독살 당하는 거야?”
    “예?”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거 독초잖아.”
   “예에?!”
    ​
    ​
    나는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찻잎 병을 떨어뜨렸다. 
    ​
    ​
    데구르르르,퉁!
    ​
    ​
    병이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병이 꽤 두툼한 유리로 되어있어 깨지지 않고 바닥 위를 굴렀다. 
    ​
    ​
    “저,저게 독초였다고요?!”
    “몰랐어? 저거 엄청 독한 건데. 물론 나한테는 별 효과 없겠지만.”
    ​
    ​
    라니아는 쿠키를 하나 더 입에 쏙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
    ​
    “그러면 어쩌죠? 집에 찻잎이 없는데..”
    “됐어. 나 그런 거 안 좋아해.”
    “하지만…아! 그러고 보니 미아님이 과일을 사다 주신 게 있어요!”
    ​
    ​
    미아가 채소와 고기를 사 왔을 때 과일 몇 개도 사 왔던 게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냉동고에서 차가운 과일을 꺼내오며 말했다.
    ​
    ​
    “주스 만들어서 가져다드릴게요.”
    “오, 그럼 나야 좋지.”
    ​
    ​
    라니아가 눈웃음치며 쿠키가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들어 올렸다.
    ​
    ​
    “그럼 나는 이만 갈게. 아, 저건 어쩔래?”
    “아…”
    ​
    ​
    나는 그제야 바닥을 뒹굴던 괴이한 남자를 떠올렸다. 어느새 남자는 입에 거품을 문 채 기절해있었다.
    ​
    ​
    “으음, 우선 미아님께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데려가지 뭐.”
    ​
    ​
    어깨를 으쓱인 라니아가 가볍게 손을 들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자 사슬 같은 게 마법진에서 쏘아져 나가 남자를 꽁꽁 묶어버렸다. 
    ​
    ​
    “어 아흐오 고히애.”
    “네?”
    “우움,꿀꺽. 너 앞으로 조심하라고. 이런 놈들이 또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아, 그럼 방범용 도구라도 준비해놔야겠네요.”
    ​
    ​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주방을 떠났다. 
    ​
    ​
    “휴…그래도 별 문제없어서 다행이다.”
    ​
    ​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숨을 내뱉은 후 과일을 주스로 만들기 위해 도구를 찾고자 주방을 훑어보았다.
    ​
    ​
    “어?”
    ​
    ​
    과일의 즙을 짜낼 도구보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아까 떨어뜨린 찻잎 병이었다. 남자를 끌고 가면서 병을 치고 갔는지, 병뚜껑이 열려 찻잎이 쏟아져 있었다.
    ​
    ​
    “아이고…저거 치우는 데 오래 걸리겠네. 독초라니까 이대로 둘 수도 없고 끙..”
    ​
    ​
    나는 어쩔 수 없이 과일을 한쪽에 올려두고, 빗자루를 들고 왔다. 반만 남은 찻잎 병을 들어 한쪽에 세워두고, 빗자루로 바닥에 떨어진 독초를 한곳으로 모았다.
    ​
    ​
    ‘무슨 독초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아가 쓸 수도 있으니까 안 쏟아진 건 남겨두고, 쏟아진 건 버리자.’
    ​
    ​
    쓰레받이가 따로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땅한 도구가 보이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손으로 독초를 슥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걸 세 번 정도 반복하자 독초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
    ​
    “휴,다됐 -…윽!”
    ​
    ​
    습관적으로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려는 순간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손바닥이 어느새 퉁퉁 부어있었다. 개그 필터가 적용되었는지 커다란 장갑을 낀 것처럼 부어있었다.
    ​
    ​
    “이런, 말린 약초라서 직접 마시지 않으면 별 효과 없을 줄 알았는데.”
    ​
    ​
    욱신거리는 손을 탈탈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
    ​
    “이거 꽤 오래 가겠네.”
    ​
    ​
    부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섬세한 일은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단순한 작업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우선 유리병의 뚜껑을 닫아 올려두었다.
    ​
    ​
    이후 도마와 칼을 꺼냈다. 손바닥이 회초리에 열대 정도 맞은 것처럼 홧홧했지만 요리를 못할 정도의 통증은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
    ​
    혹시나 손에 독이 남아있을 수 있기에 찬물로 손을 깨끗이 씻고 도마 위에 과일을 올렸다. 
    ​
    ​
    “이게 무슨 과일이지?”
    ​
    ​
    마치 도넛처럼 생긴 과일은 겉에 옥수수 껍질처럼 여러 겹의 껍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옥수수와 다른 점은 껍질이 좀 더 단단하다는 것 정도였다. 
    ​
    ​
    쩌적.
    ​
    ​
    식칼로 한쪽을 자르자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과일 단면은 고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선홍색을 띠었다. 흘러나오는 과즙조차 붉어 더 그렇게 느껴졌다.
    ​
    ​
    “이거..과일 맞나?”
    ​
    ​
    생고기처럼 약간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고 있어 자연스럽게 의심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과일을 아주 작게 잘라 먹어보자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감싸 안았다.
    ​
    ​
    “으응!”
    ‘생긴 거랑 달리 엄청나게 달고 맛있네?! 이거 나중에 쿠키나 케이크 같은데 넣어서 만들어도 되겠는데? 아니면 그냥 주스로 만들어서 애들 먹여도 좋겠어.’
    ​
    ​
    속으로 시시덕거리며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과육을 꺼내 잘라냈다. 그리고는 5인용 냄비만 한 대야를 꺼내 안에 과육을 전부 쏟아 넣었다. 
    ​
    ​
    ‘하도 잘 익어서 손으로 으깨도 되겠네.’
    ​
    ​
    믹서기나 즙을 따내는 도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손으로 과일을 으깨기 시작했다. 
    ​
    ​
    ‘오, 이거 편한데?’
    ​
    ​
    손바닥이 퉁퉁 부어오른 만큼 손쉽게 과일이 으깨졌다. 개그 세계에서 살아가며 배운 ‘생존을 위해 무슨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스킬을 사용해, 즐겁게 과일을 으깼다.
    ​
    ​
    “휴..다됐다.”
    ​
    ​
    컵 두 개를 꺼내 주스를 깔끔하게 담은 후 한쪽에 놓아두었다. 주방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
    ​
    “이런 엉망이네…”
    ​
    ​
    과즙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 주방 탁자는 물론 바닥까지 선홍색 과즙 범벅이었다. 베이지색 옷도 멀쩡하지 않았다. 마치 염색이라도 시킨 것처럼 선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
    ​
    “무슨 살인 현장 같네.”
    ​
    ​
    복분자를 쏟으면 마치 피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닥은 딱 그런 꼴을 하고 있었다. 
    ​
    ​
    ‘빨리 정리하자.’
    ​
    ​
    바닥이나 테이블은 물이 잘 안 들고 세척하기 편한 딱딱한 타일로 이루어져 있지만 도마는 나무, 식칼은 손잡이가 나무라서 쉽게 물들 수 있었다.
    ​
    ​
    대야와 도마, 칼을 빠르게 설거지한 후, 행주로 테이블 먼저 닦았다. 행주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테이블을 어느 정도 닦은 후 무릎을 꿇고 바닥을 슥슥 닦기 시작했다. 
    ​
    ​
    ‘행주가 꽤 낡았었는데 잘됐다. 이참에 버려야지.’
    ​
    ​
    행주로 바닥에 고인 과즙을 흡수 시킨 후 싱크대에서 행주를 쥐어짜 즙을 짜냈다. 그리고는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닦았다. 어느 정도 과즙이 사라졌을 때.
    ​
    ​
    “리안 우리 식사는 -…”
    “아, 노아. 미안 지금 일이 조금 생겨서. 이것만 정리하고 준비해줄게.”
    ​
    ​
    주방 입구에 서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바닥을 마저 닦았다. 거의 다 닦아서 불긋한 흔적만 남아있었다.
    ​
    ​
    ‘한 두 번만 더 닦으면 되겠네.’
    ​
    ​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붉게 물든 행주를 싱크대에서 짜냈다. 
    ​
    ​
    주르륵,투둑.
    ​
    ​
    선홍색 액체가 싱크대 안쪽에 쏟아졌다. 
    ​
    ​
    ‘아, 이러다 손 물드는 거 아냐?’
    ​
    ​
    과즙 범벅인 손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다시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노아가 성큼성큼 나에게 걸어왔다.
    ​
    ​
    “너,이게 뭐야?”
    “응?”
    ​
    ​
    노아가 행주를 쥐고 있는 내 손을 잡아 들어 올렸다. 부기가 슬슬 빠지고 있어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어있었다.
    ​
    ​
    “아,음…”
    ​
    ​
    멍청하게 독초를 손으로 만졌다가 이렇게 되었다고는 말하기 쪽팔렸다. 
    ​
    ​
    ‘대충 벌레 잡다가 그랬다고 할까? 아니다. 모기에게 물렸다고 하자.’
    ​
    ​
    멍청한 생각이 아니다. 이곳은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사는 마왕의 땅! 무시무시하게 큰 모기가 그의 손을 물었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
    ​
    “그, 벌레 같은 거에 물린 거야. 금방 가라앉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
    ​
    노아가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노아가 험악하게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
    ​
    “이게…벌레에 쏘여서라고? 그럼 그 벌레는 어디 있는데?”
    “그게..”
    “그리고 이거…이 핏자국은 뭐야?”
    ​
    ​
    노아가 떨리는 시선으로 내 옷을 흥건하게 적신 과즙을 가리켰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투베론, 띵작판독기님 후원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애들 굴리기 위한 플롯을 얼추 그려놨습니다.

구르고 집착하고 감금할 애들을 떠올리니 해피합니다.

표지는 아이리스 입니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또륵.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

쿵!

또 다시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어깨가 흠칫 떨렸다.

“라니아님 아까부터 이런 소리가 계속 나고 있는데 왜 그런지 혹시 아세요?”

“저 거 때문이겠지.”

라니아는 검지 끝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가자 웬 괴상하게 생긴 남자가 몸을 비틀고 있었다.

“헉…! 어,언제 저런 게?!”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데?”

“네에?!”

“꺼윽,끄허헝!”

기괴할 정도로 팔이 우람한 남자는 꺽꺽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나저나 쿠키는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아까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데.”

“아, 지금 당장 차와 함께 가져다드릴게요.”

“몇 개만 지금 줘봐 먹으면서 가게.”

“그러실래요?”

나는 쿠키를 선반에서 꺼내 다섯개 정도 라니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접시를 하나 꺼내 산더미처럼 쿠키를 쌓은 후 찻잎 병을 들었다.

“차도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그애…응?”

입에 쿠키를 물고 대답하던 라니아가 내가 들고 있는 찻잎 병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작와작와작,꿀꺽.

쿠키를 순식간에 입에 밀어 넣어 씹어 삼킨 라니아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설마 오늘 나 독살 당하는 거야?”

“예?”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거 독초잖아.”

“예에?!”

나는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찻잎 병을 떨어뜨렸다.

데구르르르,퉁!

병이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병이 꽤 두툼한 유리로 되어있어 깨지지 않고 바닥 위를 굴렀다.

“저,저게 독초였다고요?!”

“몰랐어? 저거 엄청 독한 건데. 물론 나한테는 별 효과 없겠지만.”

라니아는 쿠키를 하나 더 입에 쏙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면 어쩌죠? 집에 찻잎이 없는데..”

“됐어. 나 그런 거 안 좋아해.”

“하지만…아! 그러고 보니 미아님이 과일을 사다 주신 게 있어요!”

미아가 채소와 고기를 사 왔을 때 과일 몇 개도 사 왔던 게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냉동고에서 차가운 과일을 꺼내오며 말했다.

“주스 만들어서 가져다드릴게요.”

“오, 그럼 나야 좋지.”

라니아가 눈웃음치며 쿠키가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들어 올렸다.

“그럼 나는 이만 갈게. 아, 저건 어쩔래?”

“아…”

나는 그제야 바닥을 뒹굴던 괴이한 남자를 떠올렸다. 어느새 남자는 입에 거품을 문 채 기절해있었다.

“으음, 우선 미아님께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데려가지 뭐.”

어깨를 으쓱인 라니아가 가볍게 손을 들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자 사슬 같은 게 마법진에서 쏘아져 나가 남자를 꽁꽁 묶어버렸다.

“어 아흐오 고히애.”

“네?”

“우움,꿀꺽. 너 앞으로 조심하라고. 이런 놈들이 또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아, 그럼 방범용 도구라도 준비해놔야겠네요.”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주방을 떠났다.

“휴…그래도 별 문제없어서 다행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숨을 내뱉은 후 과일을 주스로 만들기 위해 도구를 찾고자 주방을 훑어보았다.

“어?”

과일의 즙을 짜낼 도구보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아까 떨어뜨린 찻잎 병이었다. 남자를 끌고 가면서 병을 치고 갔는지, 병뚜껑이 열려 찻잎이 쏟아져 있었다.

“아이고…저거 치우는 데 오래 걸리겠네. 독초라니까 이대로 둘 수도 없고 끙..”

나는 어쩔 수 없이 과일을 한쪽에 올려두고, 빗자루를 들고 왔다. 반만 남은 찻잎 병을 들어 한쪽에 세워두고, 빗자루로 바닥에 떨어진 독초를 한곳으로 모았다.

‘무슨 독초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아가 쓸 수도 있으니까 안 쏟아진 건 남겨두고, 쏟아진 건 버리자.’

쓰레받이가 따로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땅한 도구가 보이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손으로 독초를 슥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걸 세 번 정도 반복하자 독초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휴,다됐 -…윽!”

습관적으로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려는 순간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손바닥이 어느새 퉁퉁 부어있었다. 개그 필터가 적용되었는지 커다란 장갑을 낀 것처럼 부어있었다.

“이런, 말린 약초라서 직접 마시지 않으면 별 효과 없을 줄 알았는데.”

욱신거리는 손을 탈탈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거 꽤 오래 가겠네.”

부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섬세한 일은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단순한 작업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우선 유리병의 뚜껑을 닫아 올려두었다.

이후 도마와 칼을 꺼냈다. 손바닥이 회초리에 열대 정도 맞은 것처럼 홧홧했지만 요리를 못할 정도의 통증은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나 손에 독이 남아있을 수 있기에 찬물로 손을 깨끗이 씻고 도마 위에 과일을 올렸다.

“이게 무슨 과일이지?”

마치 도넛처럼 생긴 과일은 겉에 옥수수 껍질처럼 여러 겹의 껍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옥수수와 다른 점은 껍질이 좀 더 단단하다는 것 정도였다.

쩌적.

식칼로 한쪽을 자르자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과일 단면은 고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선홍색을 띠었다. 흘러나오는 과즙조차 붉어 더 그렇게 느껴졌다.

“이거..과일 맞나?”

생고기처럼 약간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고 있어 자연스럽게 의심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과일을 아주 작게 잘라 먹어보자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감싸 안았다.

“으응!”

‘생긴 거랑 달리 엄청나게 달고 맛있네?! 이거 나중에 쿠키나 케이크 같은데 넣어서 만들어도 되겠는데? 아니면 그냥 주스로 만들어서 애들 먹여도 좋겠어.’

속으로 시시덕거리며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과육을 꺼내 잘라냈다. 그리고는 5인용 냄비만 한 대야를 꺼내 안에 과육을 전부 쏟아 넣었다.

‘하도 잘 익어서 손으로 으깨도 되겠네.’

믹서기나 즙을 따내는 도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손으로 과일을 으깨기 시작했다.

‘오, 이거 편한데?’

손바닥이 퉁퉁 부어오른 만큼 손쉽게 과일이 으깨졌다. 개그 세계에서 살아가며 배운 ‘생존을 위해 무슨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스킬을 사용해, 즐겁게 과일을 으깼다.

“휴..다됐다.”

컵 두 개를 꺼내 주스를 깔끔하게 담은 후 한쪽에 놓아두었다. 주방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이런 엉망이네…”

과즙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 주방 탁자는 물론 바닥까지 선홍색 과즙 범벅이었다. 베이지색 옷도 멀쩡하지 않았다. 마치 염색이라도 시킨 것처럼 선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슨 살인 현장 같네.”

복분자를 쏟으면 마치 피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닥은 딱 그런 꼴을 하고 있었다.

‘빨리 정리하자.’

바닥이나 테이블은 물이 잘 안 들고 세척하기 편한 딱딱한 타일로 이루어져 있지만 도마는 나무, 식칼은 손잡이가 나무라서 쉽게 물들 수 있었다.

대야와 도마, 칼을 빠르게 설거지한 후, 행주로 테이블 먼저 닦았다. 행주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테이블을 어느 정도 닦은 후 무릎을 꿇고 바닥을 슥슥 닦기 시작했다.

‘행주가 꽤 낡았었는데 잘됐다. 이참에 버려야지.’

행주로 바닥에 고인 과즙을 흡수 시킨 후 싱크대에서 행주를 쥐어짜 즙을 짜냈다. 그리고는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닦았다. 어느 정도 과즙이 사라졌을 때.

“리안 우리 식사는 -…”

“아, 노아. 미안 지금 일이 조금 생겨서. 이것만 정리하고 준비해줄게.”

주방 입구에 서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바닥을 마저 닦았다. 거의 다 닦아서 불긋한 흔적만 남아있었다.

‘한 두 번만 더 닦으면 되겠네.’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붉게 물든 행주를 싱크대에서 짜냈다.

주르륵,투둑.

선홍색 액체가 싱크대 안쪽에 쏟아졌다.

‘아, 이러다 손 물드는 거 아냐?’

과즙 범벅인 손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다시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노아가 성큼성큼 나에게 걸어왔다.

“너,이게 뭐야?”

“응?”

노아가 행주를 쥐고 있는 내 손을 잡아 들어 올렸다. 부기가 슬슬 빠지고 있어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어있었다.

“아,음…”

멍청하게 독초를 손으로 만졌다가 이렇게 되었다고는 말하기 쪽팔렸다.

‘대충 벌레 잡다가 그랬다고 할까? 아니다. 모기에게 물렸다고 하자.’

멍청한 생각이 아니다. 이곳은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사는 마왕의 땅! 무시무시하게 큰 모기가 그의 손을 물었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 벌레 같은 거에 물린 거야. 금방 가라앉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노아가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노아가 험악하게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이게…벌레에 쏘여서라고? 그럼 그 벌레는 어디 있는데?”

“그게..”

“그리고 이거…이 핏자국은 뭐야?”

노아가 떨리는 시선으로 내 옷을 흥건하게 적신 과즙을 가리켰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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