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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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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레가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나선 그 다음 날.

   놀랍게도 정말로 이 날부터 니베르나의 방문이 뚝 끊겼다. 

   그녀가 무슨 수를 쓴 게 확실하거늘, 나는 그저 평화를 되찾았다는 사실에 즐거움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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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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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동사니 들고 와서 고쳐달라는 것까지야 괜찮다. 애시당초 만물수리점 아닌가. 뭐든지 고쳐주겠단 마음으로 연 가게니 무슨 물건을 들고 오건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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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가게에 들리는 이유가 소중한 물건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와 말문을 트기 위해서- 더 나아가 나를 히어로 협회로 초대하기 위해서라는 건 조금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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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로 안 한 다니까 왜 그렇게 끈질긴 거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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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그런 사람이 있기는 했다.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걸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 그리고 그걸 남들에게도 강요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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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가 무얼 가장 중요하게 여기든 그건 나랑 상관 없는 일이다. 그걸 통제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본인 스스로가 즐길 때까지만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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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에게도 정의를 지킬 것을 강요하는 건 좋지 못했다. 전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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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렇게 오지말라 오지말라 해도 오던 사람이 대체 뭔 일로 안 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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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아함이 뒤따르긴 했지만,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아일레가 히어로를 죽이기라도 했겠는가? 그 아이가 성격이 조금 음침하고 찐따같고 아싸이기는 했지만 사람을 해치는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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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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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사장님 계신가요?”

   “아- 어서오세요.”

   “혹시 이런 것도 고쳐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뭐든지 고치는 만물수리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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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잠시 후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느라 니베르나에 대한 건 완전히 기억에서 잊혀졌다. 니베르나에 대해서 떠올린 건 TV 뉴스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 모습을 보고 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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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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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급 히어로 니베르나. 솔직히 말해서 인기 있는 히어로는 아니었다. 특색 없는 슈트에 특별할 거 없는 능력. 강하기는 하지만 압도적이진 않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 자리까지도 아깝고 조연 자리에 어울리다는 평을 듣는 게 바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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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조연 배우에게도 팬이 있듯이 비주류 히어로인 그녀에게도 팬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녀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고, 나름 기자와 인터뷰한 경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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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단언컨데, 그녀가 평생 만났던 팬이요 기자들을 합쳐도 지금 눈앞에 있는 관심의 숫자를 따라갈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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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베르나 씨! 이쪽 봐주세요!”

   “악의 마법소녀로부터 습격을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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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그녀의 시야를 강탈했다. 강렬한 빛줄기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니베르나는 이 표정이 인터넷에서 히어로 굴욕짤 따위로 돌아다닐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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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써서 얼굴 표정을 유지할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퍽 익숙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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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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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베르나는 자신이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떠올렸다.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던 그녀는 얼마 전 대뜸 한 빌런에게 피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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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로가 빌런에게 피습당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히어로라는 직업 자체가 빌런에게 원망을 사는 직업이요, 공인 히어로라기는 하지만 그녀가 체포한 빌런의 숫자도 두 자릿수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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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빌런이 히어로를 습격한 일 따위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이요, 그녀가 빌런에게 습격받았단 이유만으로 이토록 주목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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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습격한 빌런이 H 시에서만 활동하던 악의 마법소녀라는 점.

   마법소녀 이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관심도 내보이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히어로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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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택에 니베르나는 때 아닌 관심을 몰아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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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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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빨리 만물수리점을 찾아가 사장님의 호감도를 쌓아야 하는데.

   그렇게 그를 한시라도 빠르게 히어로 협회로 영입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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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베르나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히어로답게, 친절하고 정의롭게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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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마법소녀랑 마주친 건 우연이었습니다. 그녀는 제게 무언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초면이었기에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더군요. 아마도 빌런 특유의 이해할 수 없는 사상으로 보이며…… 별다른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빌런이랑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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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적으며 재미없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전세계 기업과 국가들이 흥미를 보이는 악의 마법소녀. 그녀와 니베르나의 연결점을 찾거나 악의 마법소녀가 가진 특이점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온 세상 사람들 조회수란 조회수는 모조리 다 빨아먹을 수 있는 특종 of 특종이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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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니베르나에게서 빼먹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자들은 악의적으로 질문을 꼬아서 니베르나의 대답을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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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마법소녀에게 습격을 당하셨는데, 마법소녀 협회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에 불만은 없으십니까?”

   “─악의 마법소녀는 빌런입니다. 마법소녀 협회 소속이 아닌 걸로 알고 있으며…… 히어로가 빌런을 상대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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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녀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한해서만 성실하게 대답했고, 기자들의 악의적인 유도 질문에도 당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여론에 익숙하다거나 머리가 좋아서는 아니었고 히어로답게 지나치게 정직한 성격이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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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마법소녀와 관련해서도, 니베르나 본인에게서도 별 재미를 볼 수 없다는 걸 느낀 기자들은 몇 시간만에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다. 병실에 홀로 쓸쓸히 남은 니베르나는 그 황량함에 헛웃음 내뱉으며 침대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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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복귀해서 히어로 활동을 이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악의 마법소녀와 싸우며 그녀의 슈트가 전부 개박살난데다가, 그때 입은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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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에 니베르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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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이 도시에 너무 물들었나…… 설마 이렇게 당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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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도시 같았더라면 빌런이 히어로를 암습하거나 히어로의 가족을 인질삼는 건 지나치게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타 도시의 히어로들은 항상 뭉쳐서 사주 경계하며 돌아다니고, 가족도 안전 가옥에서만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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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E 시에서 꽤 오랜 시간 근무해서 그런가- 그녀가 막 히어로가 되었을 무렵의 마음가짐은 모두 녹슬어버린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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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 또 조심해야지. 언젠가 이 도시를 나서도 죽지 않도록…….’

   “니베르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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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악의 마법소녀와의 전투를 머릿속에서 복기하던 니베르나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서 눈을 떴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이곳에서 볼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인물이 그녀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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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 여긴 대체 어떻게…….”

   “뉴스에서 봤습니다. 악의 마법소녀랑 다투다가 입원하셨다고.”

   “아, 보셨군요. 특이한 일이죠. 악의 마법소녀가 마법소녀 이외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정말이지 드문 일인데…….”

   “그걸 보고 병문안 왔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입구에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답해주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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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만물수리점의 사장은 그녀가 다친 일에 본인도 책임이 있다는 영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들고 온 과일바구니를 침대 옆 책상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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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사장님.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아, 히어로를 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면 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사장님도 악의 마법소녀에 대한 게 궁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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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 기자들의 질문에 시달렸던 니베르나는 사장의 질문을 대강 예측하고 먼저 물었다. 이 남자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걸까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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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장은 가볍게 입가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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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베르나 씨가 히어로가 된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제가 히어로가 된 이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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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녀의 이야기. 

   대뜸 그걸 묻는 사장을 보며 떨떠름한 마음을 가진 니베르나였지만, 어떻게든 그를 협회로 영입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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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저는 쓸모 없는 아이였습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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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그 첫 마디가 이렇게나 무거운 이야기일 줄은 그도 몰랐겠지만.

   니베르나는 자신이 히어로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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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 재능도, 매력도, 특기도 없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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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베르나는 조연이었다.

   세상에 있어야 하지만 특별하진 않은.

   그저 세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톱니바퀴에 불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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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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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히어로가 되면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해주지 않을까. 그도 그럴게, 히어로는 인기 없는 직업이지 않습니까? 박봉에, 위험하고, 미래도 없는.”

   “대부분의 히어로들은 그렇죠.”

   “그런데도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니- 누군가는 희생할 필요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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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마침 니베르나는 히어로 활동에 필요한 능력마저 갖고 있었다. 특출나진 않지만 히어로 활동에 부족함 없는. 여기서마저 그녀의 조연스러움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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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히어로가 된 그녀는 어찌어찌 살아남아 A급 히어로가 되었으며, 그럼에도 대중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몇몇 소수의 팬들만이 기억하는 인기 없는 마이너한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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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그 지위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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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 몸 희생하면 온 세상이 저를 필요로 해준다니. 정말 멋지지 않나요?”

   “……멋지다고요?”

   “그냥…… 이렇게라도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해준다는 게.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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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나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니베르나를 히어로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박봉에 위험천만하고 미래 없는 히어로직을 이어가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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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잖은 정의감이나 복수심, 의협심 따위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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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본인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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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심하죠? 도무지 히어로라고는 볼 수 없는…….”

   “아니요, 멋진데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예. 자기만족으로 히어로를 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요? 빌런도 아니고.”

   “감사, 합니다.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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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베르나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히어로가 된 이유를 남에게 설명하는 게 처음이긴 했지만, 설마 이런 걸 설명하고 칭찬받고 공감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해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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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눈앞에 있는 사장님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인정하고 또 칭찬해주고 있었다. 덕택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충족감이 하복부로부터 온몸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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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베르나 씨.”

   “……예.”

   “히어로가 된 게 꼭 정의감이나 의무감 같은 게 아니라 자기만족 때문이라면…… 더 큰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으신가요?”

   “그게, 무슨.”

   “히어로 협회로부터 제 정체를 계속 숨겨주신다면─ 니베르나 씨를 이 세상의 주연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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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은 그리 말하며 벨트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건 마치 그녀가 입는 히어로 슈트의 벨트처럼 생겨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 벨트를 건네 받은 뒤 허리춤에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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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신 Ready]

   “……변신?”

   [HEN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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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가 한 번 울려 퍼진 뒤.

   벨트에서 시작된 파동이 그녀의 전신을 타고 올라섰다.

   잠시 후. 니베르나는 자신이 히어로 슈트를 장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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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어때요. 그거라면 제가 말하는 대로 할 수 있나요?”

   “이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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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기술력. 그러나 니베르나는 직감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가 내민 손을 붙잡는다면.

   그녀는 진정으로 세상의 주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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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주인공이.

   누구나가 간절히 바라는 그 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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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아니.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이런 걸 그냥 받아도 되는 건가요……?”

   “상관 없어요. 애시당초 큰 돈 벌려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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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 에이트가 보기에 니베르나는 망가져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모든 걸 고치기 위해 시작한 만물수리점.

   그 연장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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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일거리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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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에 올라가서 부득이하게 일찍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6시경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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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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