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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샬롯의 비술이라면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응어리진 느낌이 있었지만.

     

   쿵!

     

   또 한 번 들려온 천안귀의 발소리는 그에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실패하면 너도나도 끝장이다.”

   “예, 그래서 제가 준비 될 때까지 형님께서 시선을 끌어 주셔야 합니다.”

   “후우, 썩을.”

     

   결국 벨로킨은 크라슈에게 도박을 걸기로 했다.

     

   다른 것은 다 잊고 우선, 살아 나간다.

   거기에만 초점을 잡기로 했다.

     

   쿵!

     

   어느샌가 짧아진 간격으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천안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증거였다.

     

   “준비하겠습니다.”

     

   그 순간 크라슈는 챙겨 왔던 검을 뽑았다.

   그러자 그의 눈이 감겼고, 잠시 후 서서히 크라슈의 전신에서 오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정신이 검과 하나가 돼야 하는 신검합일에 경지에 빠져들었다.

     

   그것을 보고, 벨로킨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쏟아지는 빗속과 허리까지 차오른 늪.

   거기에 조여오는 천안귀의 기척까지.

     

   수많은 방해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라슈의 정신이 한순간에 집중 상태에 들어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뭔 집중력이.’

     

   이렇게 높을 수가 있지?

     

   벨로킨은 갑자기 거칠게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느꼈다.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이 그의 뱃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예감이 적중했다.

     

   크라슈의 검 위에서 푸르른 오러의 빛이 피었다.

   처음에는 한 줌의 오러였다.

   그러나 점차 검 위에 덧씌워지는 오러는 벨로킨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오러의 양은 분명 그리 크지 않다.

   딱, 엑스퍼트 하급의 수준에 그치는 정도.

     

   그러나 질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자신은 몇십 년을 수련해도 닿지 못할 것 같은 투명한 색깔의 오러가 오직 크라슈의 검 한 자루에 오롯이 담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경지는 벨로킨의 정신을 일순간 날려 버릴 정도로 아득한 수준이라 그를 더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크라슈가 아무리 샬롯에게 배운 비술이라 해도 대체 어떻게 이런걸.

     

   그의 마음속이 또다시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안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형님.”

     

   손발이 저릿하게 느껴지며 그의 얼굴의 핏기가 없어지던 순간.

   크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슈의 떠진 푸른색 눈동자에는 고요함 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부탁이 무엇인지 뒤늦게 알아차린 벨로킨은 손을 들었다.

     

   “그, 그래.”

     

   벨로킨이 크라슈의 오러 위에 이그니스를 깃들게 한순간이었다.

   푸르른 불길이 자신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선명히 타올랐다.

     

   이글거리는 불길의 검은 무엇이든 태울 것만 같았고, 그 앞에 벨로킨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쿵! 쿵!

     

   그러는 사이 이제는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천안귀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터무니없는 크기까지 커진 천안귀는 달려오는 모습만으로도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과연 자신이 시간을 벌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형님, 괜찮습니다.”

     

   긴장한 벨로킨에게 크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충분해서 시선을 끌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들은 순간 벨로킨은 마음속 무언가가 쿠웅 하니 떨어지는 감각을 받았다.

   크라슈는 자신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마치, 자신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금 한 것이라곤 신의 힘인 스킬을 크라슈에게 부여해준 것뿐.

   그 힘마저 신의 힘이지 온전한 벨로킨의 힘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벨로킨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순간이었다.

   크라슈의 검이 머리 위로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벨로킨의 고개도 검을 따라서 올려졌다.

     

   이그니스를 담은 검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물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화려히 타올랐다.

   그 불꽃은 벨로킨 때보다도 강하게 타올라 빗물에 젖어 가는 벨로킨이 대비 되듯 초라했다.

     

   저 검은 분명히 천안귀를 벨 것이다.

   그만한 힘이 검 안에 확실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 검이 천안귀를 베는 순간 자신은 어떻게 될까.

   벨로킨은 천안귀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처참하게 뒹굴며 도망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크라슈는 자신의 힘으로 천안귀를 베었다.

     

   그것은.

   그건.

     

     

   나는 크라슈보다 아래라는 소리가 아닌가?

     

     

   청송관에 갇혀 살던 반푼이 막내.

   그 막내보다 아래인 자신은 발하임에서 무슨 의미인가.

     

   “아, 아아.”

     

   비에 젖어 푸르게 변한 벨로킨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차라리, 차라리 베지를 말아라.

   천안귀를 쓰러트리지 말아라.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잊고 벨로킨이 그리 간절히 바란 순간.

   그의 마지막 희망을 무너트리듯 절망은 하늘에서 떨어졌다.

     

   일검(一劍)

     

   크라슈의 검이 내려그어진 순간 아주 잠시.

   쏟아지는 빗물이 멈추었다.

     

   투둑, 쏴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다시금 빗물이 뒤늦게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쿠구구구구구구구!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벨로킨의 시야가 천천히 앞으로 뻗어진 순간 거기에는 사선으로 갈라진 천안귀가 있었다.

     

   놈은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사선으로 시작된 불길 속에 휘감기며 그리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을 목격한 순간 벨로킨의 마음 또한 동시에 무너지고 말았다.

     

   털썩-

     

   벨로킨이 무심코 주저앉았다.

   

   

   

   

   

   

   자신이 크라슈 보다도 아래라는 사실을 온 세상이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님, 이제 괜찮습니다.”

     

   그러는 순간 그의 귀에 크라슈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주인의 죽음을 알아차린 듯 비가 서서히 그치고, 늪의 크기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구름 사이로 드리운 햇빛이 크라슈의 얼굴을 비춘 순간 무척이나 밝은 크라슈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은 더 이상 반푼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밝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런 크라슈와 대비되듯 벨로킨의 얼굴은 그의 작은 그림자 아래에 가려져 있었다.

     

   “하, 하하.”

     

   그의 입에서 잠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벨로킨이 천천히 그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크라슈는 자신을 넘었다.

   그리고 발하임에서 가장 쓰레기는 자신이다.

     

   그것을 안 시점에서 벨로킨은 검을 쥐었다.

     

   크라슈는 조금 전 일격으로 지쳤다.

   그것은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기에 벨로킨도 손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뒤져.”

   

   

   그렇기에 벨로킨은 망설임 없이 크라슈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망가진 그의 얼굴은 자신을 추락시킬 막내를 죽일 생각에 비틀린 웃음을 환하게 짓고 있었다.

     

   챙!

     

   그러나 그의 검에서 느껴진 것은 막내의 목을 자른 감촉이 아닌 검과 검이 부딪쳤을 때 들려온 소리였다.

     

   “하하, 큭.”

     

   그러는 순간 벨로킨의 귀에 억지로 참은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눈이 뒤늦게 크라슈의 얼굴로 향한 순간 크라슈는 벨로킨을 바라보며 참혹한 미소를 지었다.

     

   “벨로킨, 넌 정말 조금도 변함 없어줘서 고맙다.”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벨로킨은 깨달았다.

   크라슈의 몸에서 무언가 새까만 기운이 올라왔음을 말이다.

     

   “뭣.”

     

   놀란 벨로킨이 뒤늦게 검을 회수하며 이그니스를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검에서는 아무런 불길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우친 벨로킨의 한쪽 눈이 커다랗게 변했을 때 크라슈는 그를 보며 이죽거리듯 웃었다.

     

   “이거 찾냐?”

     

   그 순간 크라슈의 검에서 검은 기운을 타고 새까만 불길이 일어났다.

   그것이 이그니스임을 깨달은 벨로킨의 한쪽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무슨, 네놈,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벨로킨이 당황해서 소리치자 크라슈는 자신의 젖은 머리카락을 한차례 털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벨로킨을 향해 그 검을 휘둘렀다.

     

   촤악!

     

   크라슈가 이그니스를 사용한 것에 당황한 벨로킨은 예상치 못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아아아악!”

     

   그 탓에 가슴팍이 갈린 벨로킨은 검은색 불길 속에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벨로킨, 그거 알아? 나도 엄청나게 어릴 때는 형제들이랑 잘 지내보고 싶었어.”

     

   그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이 크라슈는 터벅터벅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기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천안귀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잘해보려 해도 넌 날 지독하게도 싫어했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말이야.”

     

   그러곤 크라슈는 천안귀의 저주가 담긴 팔의 손가락 하나를 서걱서걱 잘랐다.

   그러곤 그걸 검으로 쿡하니 찌른 채 다시금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핏줄 나눈 형이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은 조금 있었어. 결국에는 동생을 인정하고 포용해 주는 그런 마음 말이야.”

     

   타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벨로킨은 크라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윽고 크라슈가 그의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크라슈는 벨로킨을 보면서 처음과 같이 웃었다.

     

   “넌 그런 선택 따위 하지 않더라.”

     

   그리고 벨로킨이 무어라 외치기 위해 벌어진 입에 천안귀의 손가락이 박아 넣어졌다.

     

   “읍, 으윽!”

     

   천안귀의 손가락이 입에 쑤셔 들어오자 벨로킨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크라슈는 냉담하게 그를 내려볼 뿐이었다.

     

   얼마 후 벨로킨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눈이 사라져 감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은 그가 더더욱 발버둥 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눈은 물론 코와 입도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급, 그읍!”

     

   목에서 성대가 울려 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흡을 간절히 바라는 그가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괴롭지?”

     

   크라슈는 그런 벨로킨을 보면서 이제는 웃음조차 없이 말했다.

     

   “네가 내 얼굴을 지졌을 때는 나도 너랑 똑같이 뒹굴더라.”

     

   과거 벨로킨이 자기 팔을 태운 그 날.

   끝내는 얼굴까지 지져버렸던 벨로킨에 의해 크라슈는 성녀가 치료해 줄 때까지 눈조차 뜰 수 없었다.

     

   그렇기에 크라슈는 벨로킨에게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

   점차 끅끅 소리와 함께 벨로킨의 숨소리가 끊어져 가기 시작하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소리가 멎었을 때.

     

   크라슈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그친 맑은 하늘은 썩을 정도로 파랗다.

     

   아쉽게도 자신의 마음은 구름이 걷힌다 한들 파랄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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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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