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

       일이 꼬였지만 상관 없었다. 내가 누구냐. 이런 건 위기도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이거 풀어! 당장 풀라고!”

       “아가리. 새끼야.”

         

       후려쳐서 기절시킨 뒤, 나는 미어칸트를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미어칸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 불찰이다.”

       “사제님. 중요한 게 그게 아니에요. 이 새끼가 선배님을 범하려고 시도했다는 걸 주장해도, 위에서는 묻으려 할 게 분명해요. 오히려 견습 사제 폭행으로 저를 끌고 가겠죠.”

       “내가 방패막이 되어서라도 너희를 지키마.”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 안 되지. 교단 본부랑 엮인 선배를 패서 교단 전체에 낙인이 찍히게 생겼는데, 고작 무죄 입증으로 끝낸다고?

         

       낙인이 찍힌 이상 교단 본부 파견은 아예 물 건너 갔다. 적어도 정당한 방법으로는 파견 갈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일이 어떻게 되든, 그 주교라는 작자가 힘을 쓰겠지.

         

       그러니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일이 된 거, 어떻게든 교단 본부에 들어가는 게 목적.

         

       적어도 ‘들리는’게 목적이다.

         

       대부분의 성물은 가져갈 수 없겠지만, 하나만큼은 챙길 수 있다. 왜냐하면 내겐 ‘그것’이 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판을 키우죠. 사제님.”

       “그게 무슨 말이냐?”

       “교단에 신성 재판을 열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뭐…?”

         

       미어칸트가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하드. 신성 재판이라는 걸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느냐?”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는 거잖아요.”

       “신성 재판은 고작 이런 일로 열리지 않는다. 견습 사제 간의 폭행은 어디까지나 작은 일. 신성 재판은 교단 전체에 영향을 끼칠 일만 관리한다.”

       “교단 전체에 영향을 끼칠만한 일을 이 녀석이 저질렀다면요?”

       “…뭐라?”

       “이것 보세요.”

         

       나는 녀석의 도박 기록과 창관 기록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이 정도면 신성 재판에 들어갈 만큼 큰일이 아닌가요?”

       “이건 또 어디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제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

         

       미어칸트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이런 걸로는 부족하다. 베버릭의 아버지인 브로디 주교가 덮어버릴 게 분명해. 이 정도는 주교 선에서 덮을 수 있는 규모다. 어차피 개인의 일. 주교가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신성 재판까지 가지 못하고 징계 정도로 끝날 일이지.”

       “하긴. 이걸로는 부족하겠죠?”

       “그래. 신성재판은 없었던 일로…”

       “사제님. 하나가 더 있잖아요.”

       “무슨 말이냐?”

       “순례를 돌고난 다음, 베버릭이 가져온 돈.”

         

       나는 미어칸트를 쓱 바라보았다.

         

       “사제님에게 가져다 준 돈은 하나도 없었죠?”

       “……”

         

       미어칸트가 벙쪘다. 기절한 베버릭을 쓱 쳐다보았다.

         

       “하, 하지만…녀석이 순례에 모인 돈이 극히 적어서 그것마저 여비로 모두 써버렸다고 들었는데…?”

       “적기는요.”

         

       나는 마지막 서류를 쓱 미어칸트에게 건네주었다. 순례를 통해 그가 모은 대략적인 금액과 그에게 기부했다는 다른 도시 주민들의 증언.

       이걸 모으느라 마티어 녀석을 닦달했지. 하지만 그 보람이 있었다.

         

       “죄다 써버려서 없다고 둘러대는 거지, 그 녀석은 분명 순례를 통해 기부금을 벌어들였어요. 그 증거는 확실하고요.”

         

       단순히 개인 돈을 가지고 도박이나 창관을 들락거리면 그건 단순 징계감이다.

       하지만 교단 지부와, 교단 본부에 들어갈 기부금인 ‘공금’을 사용했다면?

         

       횡령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제님?”

       “……”

         

       미어칸트가 침묵했다. 서류를 내려놓고, 짧게 고민했다.

         

       “…자하드.”

       “네. 사제님.”

       “네 말이 맞다. 이건 확실히 신성 재판을 열 수 있는 증거가 되겠지. 브로디 주교조차 쉽게 덮을 수 없을 거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느냐?”

         

       미어칸트가 중얼거렸다.

         

       “이건 내부고발이다. 단순히 정의를 행하는 것과는 다른 영역이지. 악인이 그 벌을 받더라도…정의를 행한 자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한단다. 교단은 하나다. 내부고발은 그 하나에서 동떨어지는 것을 뜻해.”

       “알고 있어요.”

       “네 미래가 막힐지도 모른다. 배신자라는 시선이 널 쫓아다닐 게다. 잘 생각해 보거라. 베버릭을 폭행한 것은 몇 년 가지 않을지 모른다. 조용히 한다면, 이내 비판은 수그러들겠지. 하지만 이 내부고발은 평생을 널 쫓아다닐 거다.”

         

       그 몇 년이면 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게 어떡하랴.

       나는 슬쩍 손을 모았다. 기도하는 척 눈을 감았다.

         

       “괜찮아요. 사제님. 라께서 인도하시길, 정의의 불꽃은 수그러드나 꺼지지 않는다고 했으니까요.”

       “…아아. 이토록 신실한 아이가 어찌.”

         

       미어칸트가 손을 모아 마주 짧게 기도했다. 바뀐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좋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네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올리마. 앞길이 창창한 네 앞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사제님 이름으로요?”

       “이 증거만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게다. 어차피 교단에서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였던 지부의 관리자.”

         

       미어칸트가 따뜻하게 웃었다.

         

       “다른 악명을 하나 더 얹어도 바뀌는 건 없을 테지.”

       “……”

         

       여기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희생하지 못해서 난리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은 고마우나, 그렇게 끝나면 영 찝찝하잖냐. 더군다나 얻어야 할 것도 못 얻을 테고.

         

       직접적으로 폭행 사건과 관련된 이상, 교단 본부로 가는 일은 막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성 재판을 핑계로 가지 않는다면 교단 본부 내부로 발끝 하나 들일 수 없겠지.

         

       내가 가야 한다.

       무조건 내 이름으로 올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고발자 명분으로 본부에 들를 수 있으니까!

         

       “사제님.”

       “반론은 받지 않으마.”

       “사제님의 뜻이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아이린 선배님은요?”

         

       미어칸트가 흠칫했다. 어째서인지 문밖에서도 누군가 놀라는 거 같기도 했다.

         

       “그게…무슨 뜻이냐?”

       “사제님은 저희를 가르치시는 입장이잖아요. 사제님이 이 일과 직접적으로 엮이면, 사제님뿐만이 아니라 아이린 선배님에게도 악영향을 갈 수 있어요.”

       “그…렇기는 하지.”

       “그건 싫어요. 선배님이 저에게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저 하나 때문에 모두를 피해 입힐 수 없어요.”

         

       나는 가련한 척 눈을 반짝였다. 일부러 들으라고 목소리에 떨림을 섞었다.

         

       “저 혼자 저지른 일이에요. 저 혼자 책임지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자하드…이놈아…”

       “미어칸트 사제님이 절 받아주신 것도, 아이린 선배님이 절 가르쳐주신 것도 전부 잊지 않아요.”

         

       이걸로 퉁치자. 먹여주고 재워준 거 전부!

         

       “은혜를 갚게 해주세요. 사제님.”

       “…내가.”

         

       미어칸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걸어와, 나를 껴안았다.

         

       “내가 말년에…말도 안 되는 녀석을 들여버렸구나…라이시여…이 찬란한 영혼에 부디…빛만이 가득하기를…”

         

       울음 섞인 쓰다듬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어떻게든 된 건가.

         

       그래. 저질러 버린 이상 이게 최선이지. 교단에서 성물 하나만 빼 오고, 겸사겸사 얻을 거 있으면 쓱 훔쳐와서…

         

       순례를 핑계로 북부 여행! 그리고 그 뒤에는 곧바로 아카데미로 튀자! 신성 재판으로 그 망나니까지 치워주면서 이 지부와는 완전히 작별!

         

       나는 완벽한 계획에 슬쩍 웃었다. 그럼그럼.

       위기는 곧 기회지!

         

         

         

       . . .

         

         

         

       미어칸트가 심판관을 불렀다. 이상하게 서먹서먹하게 대하는 아이린을 두고, 나는 심판관이 올 것을 기다리며 할 일을 했다.

         

       수련도 거의 막바지에 들어가 있었다. 올릴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올렸으며, 밤마다 수르트를 찾아 수련한 결과로 대부분의 스킬 등급이 크게 상승했다.

         

       오른 레벨은 덤.

         

         

       [자하드 발튼] [레벨 : 16]

       [종족 : 인간] [직업 : 태양신의 사도]

         

       [직업 고유 스킬]

       -태양신의 사랑 : 보유한 태양신 관련 스킬이 빠르게 성장한다.

       -태양신의 은혜 : 보유한 성력이 빠르게 회복된다.

       -태양신의 축복 : 태양신의 성물을 리스크 없이 다룰 수 있다.

       -태양신의 기도 : 정신오염이 통하지 않는다.

         

       [보유 스킬]

       -성흔 (C) : 모든 마에 저항력을 가진다. 타인에게 성흔을 부여할 수 있다. (5/5)

       -신성 (C) : 태양신의 신성을 끌어올 수 있다.

       -치료 (C) : 큰 부상도 어렵지 않게 회복시킬 수 있다.

       -축복 (C) : 상태 이상 저항력이 늘어나며,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신체능력이 상승하며, 성력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잿불 (C) : 사나운 불꽃을 만들어낸다.

       -불의 기도 (C) : 기도를 하면 일정 시간 동안 체온이 유지된다. 신체 능력이 향상된다.

       -성수 제조 (C) : 물에 성력을 담는다. 몸의 치유력을 활성화시키며, 마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준다.

       -신성한 결계 (C) : 결계를 만든다. 몸을 보호하며, 외부로부터의 힘의 침입을 막는다.

       -무기 축복 (C) : 검이 날카로워진다. 신성한 기운이 깃들며, 내구도가 높아진다.

       -정화 (C) : 저주를 몰아내며, 오염된 것을 정화한다.

       -불의 노래 (C) : 태양신교의 기초적인 검술. 검 끝에 불꽃이 일어난다.

       -고기 요리법(C) : 고기를 맛있게 굽는다.

       -재의 왕관 (EX) : 공물을 바쳐 태양신과 관련된 스킬의 등급을 올린다.

         

         

       “흐흐흐.”

         

       역시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암! C랭크 투성이인 게 너무 마음에 든다!

         

       C랭크 이상의 스킬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수련만으로는 부족했다. 대부분의 전투 스킬은 홀로 수련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투(戰鬪)!

         

       오직 그것만이 랭크 상승의 지름길이었다. 혼자서 올리는 스킬 숙련도는 C랭크 이상에서부터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지금 한계에 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 실전이라면 뭐,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지금은 딱히 상관없었다. 안 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교단 본부로 가서 ‘그 성물’을 얻는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을 대거 갈아야 할 터.

         

       다행히 내가 라의 교단 업적도 깨봐서 망정이지…그게 아니었다면 버릴 스킬들을 올리기 위해서 얼굴에 흙을 덕지덕지 묻혔을 게 분명했다.

         

       역시 아는 게 힘이다! 고롬고롬!

         

       “그렇다면 어디 보자…”

         

       해야 할 것이 뭐가 있을까. 문득 나는 블랙 스틸을 떠올렸다.

         

       그곳의 두목인 마티어는 이제 내 말 한마디면 설설 기었다. 힘의 차이를 느낀 탓인지, 아예 대들 생각도 안 하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헥토르 일당들이 내게 표하는 충성심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나는 오랜만에 헥토르들을 찾았다. 다시 본 녀석들은 전에 봤던 것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눈에 띄게 덩치가 커졌으며, 걸친 옷도 제법 비싼 전투복들이었다.

         

       마치 용병과 같은 분위기.

         

       “…대장. 왔어?”

         

       술집 속에서 헥토르가 고개를 들었다. 왠지 모를 음침한 느낌에 나는 의자에 앉았다.

       기울이고 있는 건 뭐지. 술집이니까…술인가?! 이 새끼 미성년자 아니야?!

         

       “너 그거 술…”

       “보리차야.”

         

       이상한 곳에서 착실한 새끼.

         

       술, 아니 보리차를 따르는 손은 무거웠다. 나는 슬쩍 녀석에게 물었다.

         

       “뭔 문제라도 있어?”

       “…대장. 벽에 부딪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해?”

       “벽?”

       “뭔가 생각했던 거랑 달라. 예전에는 좀 더 빠르게 강해졌는데…지금은 뭔가 같은 곳에서 헤매는 느낌이야.”

       “나도 그래.”

       “예전에는 강해지는 것에 맛이 들렸는데…지금은 정체된 느낌이랄까.”

       “어? 뭐야. 너희들도야?”

       “저, 저도 그래요…”

         

       이 자식들.

       슬럼프였구만?

         

       왠지 모르게 기운이 없다 싶더니 그런 문제였을 줄이야. 녀석들의 능력치를 쓱 훔쳐보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훔쳐보는 것도 나름 스킬이 필요하니 말이야.

         

       뭐, 그래도 대략적인 이유는 알 수 있었다. 안 봐도 뻔하지. 정체기라면 뭐…

         

       스킬 랭크 상승 직전의, 숙련도 만렙 부근이겠구만.

         

       “헥토르. 나와.”

       “응?”

       “어허. 말대꾸?”

       “나, 나갈게.”

         

       쓱 데리고 나간 헥토르와 간단히 손을 섞었다. 몇 번 흙먼지를 묻게 해주자 대략적인 레벨이 눈에 잡혔다.

         

       10 언저리쯤. 거기다가 성력은…E랭크 부근인가. 조금 더 성장하면 D랭크에 도달하겠군.

         

       나는 손을 탁탁 털었다. 간만에 구른 헥토르가 입에서 흙먼지를 퉤 내뱉었다.

         

       “이런 것도…오랜만이네…”

       “그래. 오랜만이지. 조만간 완전히 떠날 테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다들 일렬로 정렬. 가르침을 하사하기 전에 본 교관이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오랜만에 보았음에도, 명령을 따르는 속도 하나만큼은 옛날과 같았다. 호다닥 하고 집합하는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헥토르. 파벨. 린든. 마리. 미타샤.”

       “나타샤에요!”

       “다들 꼬박꼬박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있지?”

       “대장이 시킨 거잖아. 하고 있어.”

         

       나는 벽에 기댔다. 라의 말을 듣고, 내 목표는 완전히 정해져 있었다.

       타락할지도 모를 메인 NPC들을 관리하는 것.

         

       그 방법에는 외부의 도움 또한 무조건 필요했다. 내 손과 발이 되어줄 녀석들.

       하지만 이 녀석들이 거기까지 따라줄까는 애매했다.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겠다면 뭐…

         

       굳이 데려갈 필요는 없겠지.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터로 끌어들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너희들. 행복해?”

       “…대장이랑 안 어울리게 분위기 잡는데?”

       “너희 몰래 빼돌린 돈이라도 있냐?”

       “난 없는데…?”

       “다 들린다. 속닥거리지 말고 대답이나 해. 지금 생활에 만족하냐?”

         

       헥토르가 눈을 깜빡였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전보다 훨씬 행복해. 실력이 정체되기는 했어도, 이제 굶을 일은 없으니까.”

       “그래? 그러면 여기 계속 살 거지?”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말이지. 이번에 멀리 떠나게 됐거든?”

       “사고 쳤어?”

         

       헥토르의 머리를 팍 쳤다. 뚝배기 깨지는 소리에 그가 비틀거렸다.

         

       “대장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도록.”

       “예, 예스…”

       “아무튼, 이번에 멀리 떠나게 됐어. 아마 남쪽으로 가겠지.”

       “…안 돌아오는 거야?”

       “돌아올 거야. 하지만 돌아오더라도 금방 떠나겠지. 그다음에는 어쩌면 이곳으로 아예 안 돌아올지도 몰라.”

       “왜?”

       “내가 위험한 일을 좀 해야해서.”

         

       앉아있는 녀석들을 쓱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이번에는 전과 달리 너희들 마음대로 결정해야 해. 알겠어? 그에 대한 불이익은 없다고 미리 공지해두지.”

       “대체 뭘 시킬려고…”

       “얌전히 들어라.”

       “넵.”

       “첫 번째는 너희는 그냥 여기서 사는 거야. 너희들의 실력이 쌓이고…그러다 보면 이 도시의 대부분을 먹어 치울 수 있겠지. 너희도 알다시피 마티어 그 녀석은 제법 수완이 되잖아? 힘만 부족했던 녀석이니, 너희들과 힘을 합치면 이 도시의 뒷면 정도는 무리하지 않게 삼킬 수 있을 거야. 아마 한…3~4년쯤 걸리겠지?”

       “두 번째는 뭔데?”

       “두 번째는…”

         

       나는 씨익 웃었다.

         

       “너희들이 이제껏 보지 못한 세상을 구경하고, 때로는 진흙 섞인 밥도 먹고,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기면서,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악과 맞서 싸우는 거지.”

       “…그게 뭐야?”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른다. 근데 하나는 알아. 내가 싸울 상대는 존나 세다는 거.”

         

       메인 NPC들은 하나같이 다 괴물이거나, 괴물이 될 녀석들밖에 없었다. 자연재해 같은 녀석들이었지. 만약 어떤 녀석이 타락하면, 그 녀석이 거느린 집단 또한 타락할 게 분명했다.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바쁘게 움직여야 살 수 있으며, 아마 제대로 쉬는 날도 없을 게 분명했다.

         

       죽을지도 모른다.

         

       눈앞의 녀석들이. 도시 뒷골목에서 칼 맞고 죽는 게 아니라, 가능성도 없는 사지로 몰아넣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계시가 내려왔어. 나보고 세상을 구하라네.”

       “…진짜?”

       “진짜지. 가짜겠냐. 내가 너희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

         

       아이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전자를 선택해도 상관없어.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도 않아. 나야 뭐, 다른 녀석들을 키우면 되니까.”

       “…왜 강요 안 해?”

       “글쎄다…”

         

       나는 녀석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역시…이래서 사람은 정이 없어야 완벽한 생물이 될 수 있는 건데.

         

       어쩌랴.

         

       나도 사람인가보다. 죽이고 싶은 놈이나, 패고 싶은 놈이 길거리에서 뒤지는 건 상관없는데, 나한테 잘해준 녀석들이 죽는 건 신경 쓰이니.

         

       “대답이나 해. 어쩔래? 참고로 말하자면 무르기는 없어. 한 번 선택하면 따라야 한다. 끝까지.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녀석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으니까.”

       “……”

         

       헥토르가 입을 열었다.

         

       “대장. 그거 알아? 대장이 오고 나서, 우리는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많은 것을 얻었어. 전과 달리 ‘사람답게’ 살게 됐어.”

       “그래서?”

       “대장이 없었으면, 우리는 여전히 길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거야. 대장이 전에 말했던 대로…뒷골목에서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 죽었겠지.”

         

       헥토르가 무릎 꿇었다.

         

       “대장이 내 삶을 바꿨어. 그리고 대장이 말했잖아. 라의 신도가 아닌, 자신의 신도가 되라고.”

       “이미 떼려야 떼어놓을 수 없지.”

       “누굴 멋대로 보내려고 그래?”

       “아마 난 대장이 없었다면 길거리에서 수십 번 죽었을 거야.”

       “…저도 마찬가지예요. 대장이 없었으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바보였을테니까…”

         

       녀석들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헥토르가 씨익 웃었다.

         

       “대장은 또 누굴 패러 가는 거겠지? 차라리 잘됐네. 세상을 멸망시킬 녀석을 패러 가는 거라면, 우리도 양심 찔리는 일 없을 거 아니야?”

       “…새끼들.”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내 노예들답군!”

       “…호칭은 좀 바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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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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