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

       

       한 달.

       

       내가 라이덴의 몸에 들어온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우당탕탕 시작했던 아카데미 생활도 벌써 2주차에 접어드는 중이었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아리엘, 마하렛, 루시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있었어서 그런가.

       

       그냥 눈 살짝 감았다 떴더니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외에 딱히 큰일은 없었다.

       

       아카데미 수업이 어렵다는게 조금 문제였지만…

       

       뭐, 대충 꾸역꾸역 해봐야지.

       

       나는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중이었다.

       

       

       “다녀올게.”

       

       

       나는 현관 앞에 선 채로 가볍게 말했다.

       

       그러자,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방에서 갈색의 머리칼이 빼꼼 튀어나왔다.

       

       

       “잠시만요 도련님!”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쪼르르 달려오더니.

       

       손을 뻗어 어설프게 걸려있는 넥타이를 똑바로 매어줬다.

       

       

       “복장을 단정히 하셔야죠.”

       

       “……이건 너무 귀찮단 말이야.”

       

       “그러니까 제가 해드리잖아요~”

       

       

       레이첼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내 옷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음…

       

       이것도 살짝 부끄럽네.

       

       뭔가 혼자서는 옷 하나 제대로 못 입는 어린애 같잖아.

       

       나는 머쓱한 마음에 물었다.

       

       

       “역시 넥타이 매는 법을 제대로 배워야 할까?”

       

       “괜찮아요~ 제가 대신 해드리잖아요?”

       

       “안 귀찮아?”

       

       “오히려 좋은 걸요.”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말했다.

       

       그래, 저렇게 좋아하는데 즐거움을 뺏을 수 없지.

       

       안 그래도 매일 고생하는 애인데.

       

       절대 내가 귀찮아서 외면하는게 아니다.

       

       내가 잠시 자기합리화에 빠져있던 사이, 어느새 넥타이의 매듭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레이첼은 베시시 웃으며 내 볼을 콕콕 찔러댔다.

       

       

       “도련님이 평생 넥타이 매는 법을 몰랐으면 좋겠어요~”

       

       “왜?”

       

       “그런게 있어요~”

       

       “싱겁기는.”

       

       

       레이첼은 다 좋은데, 가끔씩 이상한 말들을 한단 말이야.

       

       아니 말의 의미를 물으면 좀 알려달라고.

       

       알려주기 싫으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를 말던가.

       

       나는 속으로 투덜대며 현관문을 열었다.

       

       

       “이제 진짜로 다녀올게.”

       

       “네! 오늘도 힘내세요!!”

       

       

       등 뒤로 들려오는 상큼한 응원과 함께 나는 등교길에 올랐다.

       

       시원한 바람은 내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며 지나갔다.

       

       시간이 정말 흐르기는 한 것인지.

       

       보름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여름을 품고 있던 계절은.

       

       조금씩 시원한 단풍을 몰고오는 가을을 향해 걸음을 딛고 있었다.

       

       

       “……벌써 한달이라니.”

       

       

       라이덴.

       

       처음 이 죄 많은 녀석에게 빙의했을 때는 도저히 답이 없겠다 싶었는데.

       

       걱정했던 것 치고는 꽤나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애초에 아직 원작 이벤트들이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있기도 하고.

       

       살짝 아쉬운 점이라면, 기존에 있던 이미지가 개선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대체 왜 안 되는거지.”

       

       

       분명 지난 보름 동안 아무 문제도 안 일으켰는데.

       

       수업을 째거나 지각을 한 적도 없다.

       

       교수에게 개기지도 않았고,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이 끈질긴 소문과 평판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들 내 모습을 보면 놀라기는 하던데, 다가오지는 못하더라.

       

       

       “왜지. 뭔가 눈에 띄는 짓도 안했는…”

       

       

       ……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아주 살짝. 진짜 조금.

       

       그래도 라이덴에 비하면 양반인 수준이었다고.

       

       나는 괜히 마음 속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며 길을 가로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양손을 파닥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붉은색의 소녀가 보였다.

       

       노란색 가방을 맨 채로 방긋 웃고있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뭔가 병아리를 보는 느낌이랄까.

       

       본인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면서 화내겠지만.

       

       

       “아리엘.”

       

       

       나는 품 속으로 와락 안겨드는 아리엘을 받아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소녀는 활기찬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

       

       “그래 그래. 좋은 아침.”

       

       

       내가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자 갸르릉 거리며 녹아내리는 아리엘.

       

       행동은 병아리보다는 고양이에 가깝네.

       

       피식자와 포식자를 넘나들다니, 역시 무서운 아이였다.

       

       

       나는 아리엘과 발을 맞춰 걸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아리엘과 같이 등교를 하는 것도 일상이 됐구나.

       

       

       강의실을 급습했던 그 날 이후로, 아리엘은 나에게 엄청 달라붙었다.

       

       마치 그동안 부리지 못했던 2년간의 어리광을 부리겠다는 듯이.

       

       나는 팔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에 잠시 씁쓸한 숨을 뱉어냈다.

       

       

       “……”

       

       

       아리엘이 귀찮지는 않았다.

       

       오히려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다만,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적응이 덜 된 탓에 멀미가 나는 느낌이랄까.

       

       

       타인의 온기란, 꽤나 낯선 것이어서.

       

       가끔씩 속이 울렁거리고는 했다. 과거의 환청이 들리기도 했고.

       

       

       ‘……이것도 언젠가 극복해야겠지.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이니까.’

       

       

       속으로 그런 다짐을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다.

       

       평화와 여유에 익숙해진 나의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아서.

       

       자꾸만 걱정과 우울이 앞섰다.

       

       닿지 못할 가능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 거야.’

       

       

       착잡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나는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덧붙였다.

       

       어두운 표정을 보고 아리엘이 걱정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우리의 발은 마차 정류장에 닿아있었다.

       

       

       “안녕! 내일 등교할때 또 봐!!”

       

       

       아리엘은 때 맞춰 도착한 마차에 오르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에 가볍게 마주 인사해주고는, 제 2관으로 향하는 마차를 기다렸다.

       

       나는 가만히 선 채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르게 젖어있는 배경 위로, 조금씩 묻어있는 하얀색 물감들.

       

       나는 넓고 조용한 그 풍경 아래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업의 종료를 알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교수가 짐을 정리한 뒤에 강의실을 나서자, 학생들도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는 나 또한 껴있었다.

       

       

       “흐암……”

       

       

       찌뿌둥한 피로에 하품을 뱉으며 기지개를 폈다.

       

       온종일 책을 펴놓고 앉아있으려니 온 몸이 쑤셔오는 것 같았다.

       

       공부는 역시 체질에 안 맞는 모양이었다.

       

       졸지 않는다는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나는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고는 강의실을 나섰다.

       

       몸을 일으키던 와중 먼 곳에 앉아있던 마하렛과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모른척 다시 눈을 돌렸다.

       

       

       “……그럼 오늘도 가볼까.”

       

       

       나는 크로스 백을 걸쳐매며 걸음을 내딛었다.

       

       지난 보름 동안.

       

       나는 크게 두 가지 일을 했다.

       

       첫번째는 라이덴의 고유 재능인 ‘단거리 순간 이동 (Blink)’을 익히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지난번 루시와의 대련에서 얻었던 ‘창살자’와 같은, 다른 ‘학살자’ 칭호를 습득하는 것.

       

       

       뭐? 중간 고사는 어따 팔아먹었냐고?

       

       그건 좀 넘어가자.

       

       사람이 노력으로 안되는 것도 있는 거다.

       

       낙제만 면하면 된거지. 나한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상태창. 내 정보 열람시켜줘.”

       

       

       나는 학업의 의무를 필사적으로 외면하며 상태창을 불렀다.

       

       

       -띠링!

       

       [사용자:라이덴 리시트]

       

       성별:남

        나이:18

        종족:인간

       

       

       [스탯 정보]

       

       근력:D-

        체력:D-

        민첩:D

       

       총 마나량:31

       

       

       [스킬 정보]

       

       1.제국 공용어 (자동 사용 중)

        2.철의 정신 (자동 사용 중)

        3.단거리 순간 이동 (Blink)

        4.빈 칸

        5.빈 칸

        .

        .

        .

       

       [칭호]

       

       1.리시트 가문의 장남

        2.망나니

        3.외로운 소년

        4.창살자

        5.검살자

        6.무투 학살자

        7.망치 학살자

        8.

       

       

       지난 한 달간 빡세게 몸을 굴렸더니, 체근민 스탯 전부를 D 등급대로 올려놓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칭호.

       

       루시에게 승리하고 ‘창살자’ 칭호를 얻은 뒤로.

       

       나는 아카데미에서 C등급 이상의 무기 숙련도를 지닌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싸움을 걸었다.

       

       조용히 지내겠다는 놈이 왠 싸움질이냐 싶겠지만…

       

       칭호작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시너지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5개의 ‘학살자’ 칭호를 얻어야 했으니까.

       

       덕분에 학원 내에서는, 미쳐버린 망나니 공자가 우등생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기괴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래도 다들 이해 해줄거라고 믿어.

       

       그리고 솔직히 수업 방해하고 여학생들한테 치근덕거린다는 소문보다는.

       

       허구한 날 쌈박질이나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좀 더 낫잖아.

       

       나는 일종의 덮어버리기 전략을 쓴 거야. 전부 내 계획 안에 있는 거라고.

       

       

       ‘……도토리 키재기 같기는 한데.’

       

       

       나는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는.

       

       다시 상태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살자, 검살자, 무투 학살자, 망치 학살자.

       

       지금까지 보유한 칭호는 이렇게 4개.

       

       시너지 칭호의 달성까지 딱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마지막 칭호를 얻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연무장 이용을 위해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쪽 명단에 성함 기입해주시고, 안전 수칙 확인한 뒤에 입장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상태창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도착한 연무장.

       

       태연한 척 안내를 하면서도 손은 달달 떨고 있는 안내원의 말을 뒤로하며, 나는 장내로 들어섰다.

       

       

       나는 문을 통과하자마자 내부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수많은 운동 기구들과 땀을 흘리며 단련을 하고 있는 학생들.

       

       그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의 소년이 있었다.

       

       

       “저기 있군.”

       

       

       염색을 한 듯한 이질적인 금색의 머리칼.

       

       갈색으로 그을린 진한 태닝 피부.

       

       간교하게 찢어져있는 눈매와 그 속에 담겨있는 푸른색 눈동자.

       

       척보기에도 양아치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학생이었다.

       

       

       모래주머니를 맨 채로 트랙 위를 가볍게 달리고 있던 녀석은.

       

       그를 지켜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등을 돌려 도망을 시도했다.

       

       

       “이런 시발!! 저 새끼 또 왔어!”

       

       

       어림도 없지.

       

       나는 빠르게 지면을 박차며 그 뒤를 쫓았다.

       

       녀석은 달리는 와중에도 뒤를 흘긋흘긋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 그만 좀 해!! 이 또라이 새끼야!”

       

       “싸우자.”

       

       “아니, 어제도 대련 해줬잖아!! 시발 이게 몇 번째야!? 저번주부터 매일 찾아왔으니까 이제 네 번째라고!”

       

       

       나는 달리는 속도에 조금씩 박차를 가했다.

       

       녀석과의 거리가 서서히 줄어들고, 그의 꽁무니가 점점 가까워졌다.

       

       

       “싸우자.”

       

       “아니 시발!! 너가 졌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너가 다 이겼잖아! 네 번 다 개발랐으면서 왜 계속 찾아오냐고오!!”

       

       

       그야 학살자 칭호를 못땄으니까 그렇지.

       

       칭호 ‘학살자’의 달성 조건은 C등급 이상의 무술사에게서 승리를 거두는 것.

       

       그리고 그 대련 내에서 피격당한 횟수가 3회를 넘지 않는 것.

       

       살짝 스치기만 해도 피격 판정이다.

       

       그 말은 결국 퍼펙트 게임이 뜨기 전까지 대련은 계속된다는 말이다.

       

       

       “싸우자.”

       

       “꺼져어어어어!! 너랑 대련 안 한다고오오오오!!!”

       

       

       녀석은 그런 절규와 함께 대련장의 뒷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나는 녀석과의 거리가 열 걸음 정도로 좁혀졌을때, 입술을 달싹였다.

       

       

       “블링크 (Blink)×10.”

       

       

       작은 영창 소리와 함께 눈앞의 시야가 빠르게 점멸했다.

       

       짧은 비거리의 블링크를 연달아 사용하는 기술.

       

       이거면 최대 10미터의 거리를 마치 단일 텔레포트처럼 이동할 수 있었다.

       

       컨트롤이 쉽지 않아서 계속 연습 중에 있는 활용법이었는데.

       

       다행히도 이번 시도는 성공인 모양이었다.

       

       

       “으엑?!”

       

       

       눈앞으로 당황한 얼굴의 금발 태닝 양아치가 보였으니까.

       

       녀석은 급하게 방향을 틀려고 했지만, 내 발이 그의 다리를 거는게 더 빨랐다.

       

       

       “우오아아악!”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녀석.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신음하고 있는 금태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싸우자.”

       

       

       금태양은 바닥에 부딪힌 무릎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이 미친 새끼야아… 흐어어…”

       

       “싸우자.”

       

       

       참고로 거부권은 없다.

       

       그냥 얌전히 내 학살자 칭호작의 제물이 되어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제목의 도망가! 는 최엘비의 독립음악 앨범의 마지막 트랙, 도망가에서 따왔습니다.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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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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