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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15 – 입장제한입니다, 아가씨>

     

    분노와 서운함의 A세트 식사 이후.

    며칠간은 조나와 대화조차도 잘 나누지 않았다.

     

    “혹시 집사와 싸우셨습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기분이 많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리프가 보기에도 티가 날 정도인가.

    아니지.

    그 정도로 대놓고 외면했으면 모를 수가 없겠네.

    지난 며칠을 돌아보니 유치할 정도로 감정적이었던 마음을 깨달았다.

     

    “서운했어요.”

     

    말하고 보니까 더욱 느껴지는 진심이 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조나가 계속 함께 있어줄 거라고 말하길 기대했나 봐요.”

    “아가씨…….”

    “알고 있어요. 어른에게는 어른의 사정이 있다는 건. 억지 부려봤자 조나만 곤란하게 한다는 것도.”

     

    조금은 그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요 며칠, 수련에만 매진했던 것도.

    이래도 버릴 거냐고.

    떠날 수 있겠냐고 묻는 것처럼.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게임 속 집사는 원래 귀속아이템.

    절대로 플레이어의 곁을 떠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집사가 영원한 내 편이 아니라니.

    서운함을 넘어선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리프도 똑같죠?”

    “그렇습니다. 저 또한 주인님에게 고용되어 아가씨를 모시라고 명받은 몸. 주인님의 부름을 받는다면 다시 본가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역시…….”

     

    내 편은 없구나.

    한 순간에 백지가 되어버린 현실의 인간관계처럼.

    게임 속 관계도 한 순간에 백지가 될 수 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리프는 아무렇지도 않아?”

    “꽃이 피면 지기 마련이고, 돈이 떨어지면 사용인도 새로운 고용주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냉혹하다고는 해도 그것이 세상의 섭리이죠.”

    “…리프 미워.”

    “그러니 오크노디 아가씨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가씨처럼 오만장소에 숨는 재주가 있고, 맛없는 사탕도 맛있는 척 먹어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삶이 매정하다 한들, 누군가와의 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디로 떠나는 건 아니다.

     

    “이 사탕바구니를 보십시오.”

    “봤어요.”

    “사탕이 몇 개가 남아있습니까?”

     

    하나, 둘, 셋…

     

    “엄청 많이요?”

    “이 사탕을 전부 드릴 때까지는 제가 아가씨의 곁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정말요?”

    “예. 정말로요.”

    “본가에서 돌아오라고 해도요?”

    “설령 업무재배치를 명령받더라도 지령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무리하기는.

    그게 얼마나 억지스러운 이야기인지를 알기에 더욱 고맙고도 미안했다.

     

    “리프가 밉다는 말, 실은 거짓말이었어요. 저, 역시 리프가 제 메이드여서 정말 기뻐요.”

     

    평상시의 냉막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리프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그럼 집사님과도 화해하시겠습니까?”

    “음…… 에잇, 기분이다! 리프 얼굴을 봐서라도 까짓것 한 번만 봐주죠.”

     

     

    * *

     

     

    화해를 하자.

    조나에게 A세트 이브닝풀코스를 사주는 거다.

    그렇게 결심은 했지만.

    그래도 쌩돈으로 사기는 부담스럽다.

    그러니 돈복사 이벤트를 이용하는 수밖에.

     

    “리프. 절 도박장에 데려가주세요!”

     

    바로 ‘도박장’ 입장이다.

    게임에서 도박장은 1회 이용당 1시간이 자동경과하는 편리한 시간스킵요소였다.

    대충 제일 싸구려 슬롯머신 앞에서 레버만 당기다보면 시간이 쑥쑥 지나갔었지. 그 편이성을 즐기던 플레이어들은 문득 이런 유혹에 빠졌다.

     

    운만 좋으면 돈복사가 되지 않을까?

    오늘의 나, 조금 운 좋을지도?

     

    물론 일확천금을 노리는 놈팽이들의 최후는 뻔하고도 또 뻔하다.

    십중팔구는 개같이 망했다.

    그러나 극소수의 고인물들에게는 운에 맞설 비기가 하나쯤은 있다.

     

    나만 해도 앞선 티켓시험에서 <특선메뉴>라는 전략으로 운을 뛰어넘어 확정시험종목을 지정하듯이, 카지노에도 확정돈복사가 가능한 편법이 있다.

     

    “저희 도박장은 어린이들의 도박중독방지 및 건강한 도박습관을 함양시키고자 만 15세 미만의 어린이 및 신장 150cm미만의 고객님은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키 제한에 걸려서 입장불가가 될 줄은 몰랐지만.

     

    “이건 사기야! 이런 법이 어딨어요!”

    “저희 카지노의 영업방침입니다. 죄송하지만 고객님께서는 좀 더 키가 자라신 뒤에 다시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도 도박 할 수 있어!! 키, 키도 발을 들면 커질 수 있다고!!”

     

    힘껏 발뒤꿈치를 들어보지만 카지노 직원은 손으로 내 머리를 쿡 눌러 뒤꿈치를 땅에 붙이고는 그대로 머리 높이에 맞는 키 측정기 목판에 표식을 꽂았다.

     

    <133cm>

     

    리프가 무표정한 얼굴로 항의했다.

     

    “저희 아가씨의 키가 작기는 해도 이번에 아카데미 입학을 노릴 정도로 충분히 성숙하신 분입니다.”

    “고객님. 만 9세 아동의 평균신장이 132.6cm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무리 만 20세 미만이면 다 받아주는 아카데미라도 9살 신입생은 없을 겁니다.”

    “아니야! 난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습니까. 어린이가 아닌 고객님께서는 어떤 용무로 도박장에 들어가려고 하십니까?”

     

    직원이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이게 누굴 바보 취급을 해?

     

    “돈복사 할 거거든요! 쫄려요? 어린애한테 털릴까봐 쫄려?”

     

    바락바락 개겨보는 나.

    결과는?

    개같이 쫓겨났다.

     

    “아가씨는 설득에 재능이 없으시군요.”

    “힝. 모처럼 따서 은혜갚기를 하려고 했는데.”

    “잠시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한 번 방법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정말요?”

    “절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전문가처럼 냉막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리프가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웠다.

     

    “믿을게요, 리프!”

    “그럼 이곳에서 얌전히 기다려주십시오.”

    “리프?”

    “전 이만.”

    “리프! 야, 이 못된 메이드야!”

     

    리프가 날 두고 간 장소.

     

    <어린이 전용 키즈존>

    <신장 140cm 이하 출입가능>

     

    그곳은 근육떡대남캐만 해왔던 플레이어의 발길을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미답지.

    키즈존Kids zone(아이들 전용 구역)이었다.

     

    ‘진짜 너무하네.’

     

    입구에서 서성거리다가 조나나 지젤, 원숭이수인의 눈에 띄기라도 했다간 수치심에 몇 달은 잠자리에서 이불을 뻥뻥 걷어차겠지.

    흑역사를 새로 갱신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마지못해 키즈존 안으로 들어왔다.

     

    설마 비공정에 이런 함정기능들이 있을 줄이야.

    늘 거대떡대근육남캐로만 플레이해서 전혀 몰랐다.

    막상 들어오니 플레이어의 탐구정신이 샘솟았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들어와본 적 없는 미답지.

    미지의 키즈존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으아아아앙!”

    “아부부바부부부부바.”

    “끼앓핳핳핳! 꺄우우아아!”

     

    애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싫어. 나갈래.

     

     

    * *

     

     

    리프는 직원에게 물었다.

     

    “아가씨는 제가 책임지고 보호자 동반으로 데리고 다니겠습니다. 그래도 안 됩니까?”

    “으음, 메이드 분께서도 알다시피 귀족가 아가씨나 부잣집 아가씨들은 사용인들의 통제를 그리 잘 따르는 편이 아니잖습니까.”

    “저희 아가씨는 다릅니다.”

    “저희 아가씨는 착해요, 저희 개는 안 물어요, 다 매번 듣는 말입니다. 착한 아가씨는 테이블을 뒤집었고, 안무는 개는 16바늘을 꿰매게 만들었죠.”

     

    직원들도 다 사정이 있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출입을 허가했다가 일어난 불상사에 엄격한 내부방침으로 굳어진 규칙들이다.

    리프는 오크노디를 알아도 이들은 모른다.

    우리 아가씨는 정말로 다른데, 라고 생각해도 직원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편법을 찾아야겠군.’

     

    리프는 속으로 자문했다.

    아가씨를 키즈존에 좀 더 오래 두어도 괜찮을까?

    혼자 있을 적의 아가씨가 하는 일은…

     

    방 안의 가장 깊고 구석진 곳이나 그늘 속에 웅크린 채 숨어있기.

    꿀벌 슬레이어 칭호를 얻겠다며 우연히 발견한 벌집 밑에서 연기 피우기.

    모르는 아저씨가 주는 먹어본 적 없는 새로운 맛의 사탕 받아먹기.

     

    ……솔직히 조금 불안하다.

    아니, 거짓말이다.

    실은 굉장히 많이 불안하다.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노력해야겠어.’

     

    리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 *

     

     

    “애들 진짜 귀찮아.”

    “으엑, 바지에 침 묻었어.”

    “아, 내 머리카락. 완전 짜증나.”

     

    키즈존의 정중앙, 자그마한 볼풀공이 실내 가득 채워진 놀이터.

    동생들을 돌보라며 함께 키즈존에 남겨진 성숙한 어른아이(평균연령 10세) 두 명이 벤치에 앉아 세상 다 산 노인들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막스. 너희 오빠 이번에 아카데미 입학한다며?”

    “몰라. 붙을지는 해봐야 알지.”

    “15살에 입학이면 대박이긴 하겠네.”

    “신동 소리는 듣겠지.”

     

    만 20세 미만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기프트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시험은 당연히 피지컬이 발달되고 기술이 무르익는 만 20세에 가까워질수록 합격할 확률이 오른다.

    그렇기에 20세에서 멀리 떨어진 어린 나이에 입학하는 입학생들은 격이 다른 재능을 지녔다고 하여 수재니 신동이니 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우리 또래 나이에 합격하는 애도 있을까?”

    “퍽이나 있겠다. 제시, 넌 뜬소문을 너무 잘 믿어.”

    “왜? 난 너희 오빠가 신동이면 좋겠는데. 잘생기고 똑똑하고.”

    “으엑. 집어치워. 그 재수 없는 녀석의 어디가 좋아서 그리 난리야?”

    “씨이. 너보단 백배 더 낫거든? 너가 뭔데 우리 오빠를 욕해?”

    “우리 오빠라니. 내 형이거든? 아니, 아니다. 그냥 이참에 확 데려가버려라.”

    “흥!”

     

    심퉁이 나서 볼풀공 더미를 퍽 걷어찬 제시.

    흩어지는 볼풀 사이로 그 속에 숨어있던 여자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꺄아악!”

    “왜, 왜 그래?!”

    “사람? 사람이? 아니, 어째서?!”

     

    볼풀공 더미 사이에서 몸을 일으키는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지닌 또래아이.

    제시를 깜짝 놀라게 만든 아이의 정체는 놀이터가 의외로 숨기 기능 올리기에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키즈존의 깨우친 자, 볼풀공의 은거자, 오크노디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놀이터의 은둔자 오크노디!

    프롤로그에 소꿉친구 시아 관련 지문이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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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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