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

       시간을 구분하기 어려운 회색빛 도시에도 저녁은 찾아왔다.

       

        삑삑삑!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한유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대하던 만남이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있어요!’

       

        한유리는 스스로를 응원했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이윽고 얼굴이 ‘모자이크’로 가려진 한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미래의 남편, 그가 자연스레 집에 돌아온 것이다.

       

        “어, 어서와요?”

       

        마치 평소의…… 미래의 한유리가 그랬을 것처럼. 그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응. 다녀왔어.”

       

        얼마 전, 회색빛 도시의 놀이터의 먼 발치에서 보았던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조금은 무뚝뚝한 말투. 

       

        마치 연막에 가려진 것처럼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엔 피로가 뚝뚝 묻어난다.

       

        과거의 그녀가 상상하던 이상형과는 퍽 다른 반응이다.

       

        미래의 한유리는 무슨 바람이 불어 이 남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 걸까.

       

        “아빠아아아아!”

        “안아줘! 안아줘!”

       

        두두두두!

       

        남편의 귀가에 두 아이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한유리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굳이 단점이 아닌, 장점을 보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상상도 하지 못할 피로를 안고 오는지.

       

        그렇기에 얻은 신선한 깨달음이다.

       

        짧은 인생동안 누군가의, 또 주변 사람의 단점을 캐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다는 것.

       

        “엄마…….”

        “응? 왜? 배고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막내딸인 소미가 한유리를 불렀다. 

       

        마치 고목에 착 달라붙은 매미처럼, 남편에게 매달린 딸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아빠랑 싸워써?”

        “……에?”

       

        하지만 이내 들려온 앙증맞은 목소리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녀처럼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날아든 순수한 질문. 그 질문에 곧장 말문이 막혔다.

       

        싸웠다니? 그냥……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할 뿐이다. 

       

        그야 미래의 남편이라고 할지라도, 한유리 입장에선 오늘 처음 대화를 나눈 ‘남’이니까.

       

        “평소에는 아빠한테 안겨서 뽀뽀했는데. 여보오- 하면서.”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가 서운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

       

        물론, 한유리 입장에선 절로 몸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수고했다며 키스하는 것? 퍽 로맨틱할 뿐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진짜 문제는 지금의 한유리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어떤 남자의 아내인 한유린는 그런 낯뜨거운 일을 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꿀꺽.

       

        자신이 이 낯선 남자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키스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건 너무 이르다.

       

        아직, 한유리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단 말이다!

       

        “그, 그럴리가요? 다들 배고프죠? 기다려요, 맛있는 소갈비찜을 준비했답니다!”

       

        잔뜩 붉어진 얼굴의 한유리가 손으로 부채질하며 말했다.

       

        ……그녀 나름대로 화제를 바꾸기 위한 묘수였고 효과도 만점이었다.

       

        “갈비 좋아! 갈비!”

        “우아아! 꼬기!”

       

        기껏해야 갈비를 먹는다는 사실이 그리 신이 날까?

       

        방금까지 시무룩한 얼굴을 하던 것이 거짓말처럼, 남자의 품에서 떨어진 두 아이가 도도도, 거실을 뛰어다닌다.

       

        “아하하하! 뭐에요, 정말?”

       

        그 사랑스러운 풍경에 본인도 모르게 행복한, 또 발랄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거부하기 힘든 행복이 한유리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 * *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시간이 속절 없이 흘러갔다.

       

        흘러간 시간만큼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한유리. 그녀였다.

       

        낮엔 자랑스러운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랭커로.

        밤엔 회색빛 세계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아내로.

       

        그녀는 두 개의 각기 다른 삶을 살았다. 

       

        일반인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적이 빚어낸 일탈에 가까운 일이었다.

       

        “저, 저기.”

       

        언뜻 평화로운 회색빛 도시의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한유리는 준비한 것을 슥 내밀었다.

       

        “……드세요. 아침마다 빈 속으로 나가던 게 신경쓰여서…….”

       

        한유리가 준비한 것은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듯한 커피가 담긴 텀블러와 정성스레 토핑이 올라간 토스트다.

       

        이것 역시 한유리가 직접 배워 만든 것들. 대단히 심혈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상상도 못했네. 고마워, 덕분에 배가 고프진 않겠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말투가 그녀의 남편에게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안에 숨은 진심이 조금이나마 티가 난 덕분에, 한유리는 얼굴 가득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조, 조심히 다녀와요.”

       

        어렵사리, 조심스럽게.

       

        한유리는 언제고 자신이 상상하던 말을 남편에게 내뱉었다.

       

        “……?”

       

        그녀가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하던 걸까?

       

        우두커니 현관에 선 남편이 잠시간 그녀를 말 없이 바라봤다. 고개를 갸웃거린 남편은 이내 입을 열었다.

       

        “응. 고마워. 또 찾다 올게.”

       

        그리고는 다시 의미모를 무뚝뚝한 말을 툭 던지고는 손을 흔들며 문을 열고 나갔다.

       

        “……!”

       

        미약하지만, 제법 거대한 변화에 한유리가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사실 모든 일이란 것이 처음이 어려운 거지… 그 다음은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지는 법이다.

       

        한유리가 먼저 용기를 내기로 마음 먹은 것이 바로 어제. 그 효과가 생각보다 아주 눈에 잘 보이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한유리는 두 아이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남편’에게도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호칭’을 정리하는 것이다.

       

        남자를 부르는 호칭 말이다. 명색이 부부인데, 언제까지 ‘저기요?’하는 투로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 여보.”

       

        처음은 어려웠다.

       

        “……여보?”

       

        두번째는 어색했다.

       

        “여보!”

       

        세번째는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

       

        그 멀었던 말이 근래들어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그녀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

        .

        .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회.

       

        커다란 방의 주인, 한유리는 더 없이 퀭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건…… 엄청 귀엽네요. 하늘이에게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 소미는 이런 스타일이 잘 맞겠어요.”

       

        한유리가 보는 것은 인터넷 쇼핑몰의 아동복 페이지. 

       

        ‘저쪽’에서도 같은 제품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강이나마 아동복 종류를 보아야 안목이 높아지지 않겠냐는 생각에 근거한 행동이었다.

       

        “아, 이건 ‘그이’에게 잘 어울릴 수도.”

       

        자연스레 링크를 타고 넘어가니, 어느덧 남성복 코너에 도달한 한유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주르륵!

       

        그런데 그때.

       

        뜨끈한 액체가 그녀의 코에서 흘러나왔다.

       

        “……읏!”

       

        황급히 티슈를 들어 닦아내니 검붉은 피가 눈에 밟혔다.

       

        초인적인 체력을 가진 ‘히어로’가 코피를? 일반인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만큼 황당한 일이었다.

       

        코피가 증명하는 것은 누적된 피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 하지만 한유리는 도리어 그 현실을 부정했다.

       

        “……어쩔 수 없죠. 저는 해야할 일이 있잖아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겪는 코피. 그러나 한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티슈로 피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에겐 지켜야할 사람들이 있다.

       

        귀여운 두 꼬마와 한 남자. 그 세 사람이야 말로, 그녀에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 * *

       

        이변은 어느날, 불현듯 갑자기 찾아왔다.

       

        “엄마…… 나 머리 아파.”

       

        가슴이 철렁한다는 말이 있다.

       

        소파에 앉아 육아에 대한 책을 읽던 한유리는 그녀의 아들, -하늘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 머리, 어, 어디가 아파요? 이, 이이, 일단. 치, 침착하고. 천천히, 증세를……!”

        “……엄마가 먼저 침착해야 될 것 같아.”

        “그, 그렇죠! 네! 저는 항상 침착하답니다!”

       

        아들, 하늘이의 목소리에 한유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스스로는 말이다.

       

        잔뜩 붉어진 아이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칼에 베인 것처럼 미어진다. 거기다 쌕쌕 거리는 숨소리가 그녀를 패닉 상태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 일단 병원! 병원을 가야해요!”

       

        안방으로 들어간 한유리는 서둘러 외투를 챙겼다.

       

        아직 바깥 날씨가 쌀쌀하다. 아픈 아이가 얇은 차림으로 나갔다가는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한 선택이었다.

       

        “오, 옷을 입어요! 빨리,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는 거에요!”

        “우웅, 알았어.”

        “오빠 아파? 많이 아파?”

        “거, 걱정하지 말아요! 소, 소미랑 하늘이는 내, 내가 지킬 테니까요!”

       

        손이 덜덜 떨린다.

       

        난생처음 겪는 아이의 아픈 모습은 ‘초보 엄마’인 그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집을 나선 그녀는 곧장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싸한 알코올 냄새와 어딘가 삭막한 분위기.

       

        가슴 졸이며 응급실로 달려간 한유리는 이내 의사를 만나고,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헌데.

       

        “위급 상황입니다. 응급 수술이 필요합니다.”

        “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그 대단한 히어로 아카데미 종합병원에 방문한 한유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이를 진찰한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종양입니다.”

       

        의사는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것처럼, 흑백으로 된 사진을 꺼내들었다.

       

        “……조, 종양? 그것도 종류가 많잖아요. 그, 그 종양이 대체 뭐죠? 네?”

        “마나 종양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아직 연약한 어린이가 아주 강력한 초능력에 장기간 노출되어 발병하는 희귀병입니다. 가정, 혹은 주변 환경에…… 강력한 초능력자가 있습니까?”

        “……에?”

       

        강력한 초능력자? 아주 가까이에 있다. 바로 이 아이의 옆, 그러니까 ‘랭커’인 <재창조>의 한유리가 있지 않나.

       

        그 의사의 선언 같은 말에.

       

        “서, 설마… 나…… 나, 나 때문에?”

       

        숨이 안쉬어졌다.

        마치 섬뜩한 칼날이 그녀의 심장을 도려낸 것처럼, 가슴을 후벼파는 통증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내가…… 하늘이를. 내가 내 아이를……!”

       

        마치 혼이 나간 광인처럼. 한유리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심지어 불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 지, 지금?”

       

        때가 되었다.

       

        평소처럼 현실로 복귀할 때가 됐다.

       

        이번에도, 그녀는 직감적으로 때가 도래한 걸 알았다.

       

        그녀의 아이가… 생명이 경각에 달렸는데, 이 상황에서 평소처럼 차를 마시며, 편안한 학생회장실에 앉아 업무를 보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섬뜩함에 절로 몸서리쳐졌다.

       

        “아……!”

       

        무언가를 깨달은 한유리의 얼굴이 일순간 밝아졌다.

       

        간단한 문제다. 상황이 급박해 깨닫지 못했을 뿐, 아주 명쾌한 답이 근처에 있다.

       

        “나는…… 돌아가지 않아요.”

       

        한유리.

       

        그녀는 꿈속에서 찾은, 행복이라는 자극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다.

       

    다음화 보기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