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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황자가 아니었더라면.

       

       제국 만민을 이끌 사명을 가지고, 가장 고귀한 피가 흐르는 몸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2황자 이리드는 그런 만약을 잠깐이나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제국 수도를 시찰하던 도중, 어느 가정집에서 들려오는 한 가족의 단란하게 웃는 소리. 저들은 재산이라고는 한 줌밖에 안 되며, 지닌 힘이라고는 장작을 패거나 닭 모가지를 비트는 정도인데.

       

       어째서 저렇게나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걸까. 내가 볼 수 없는 벽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가족이란 경쟁자의 다른 이름 아니었던가.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금방 머릿속에서 비워냈지만, 그때 피어나버린 작은 궁금증은 머릿속 한 켠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정답을 알았다.

       

       벽 너머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당신은 정말로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백 년 후의 미래에서 이토록 가슴이 채워지는 나날을 보내게 될지.

       

       『맥주와 노래』를 위해서, 당신과 센트라는 조금씩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갔습니다. 음유시인들에게 퍼트릴 노래의 가사를 수정하기도 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릴 폭죽들을 크라운홀 곳곳에 숨겨 두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첨탑에도 하나 설치하는 게 좋겠군.”

       

       “마침 도시 중앙이라서 전망도 좋고 말이죠?”

       

       “이번에도 같이 가도 되겠나?”

       

       “물론이죠. 이리드와의 나들이는 즐겁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꽤 스스럼없이 저를 안으시네요?”

       

       “⋯⋯⋯⋯.”

       

       갈고리 총을 곁들인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고요.

       

       데이트라는 표현이 과장은 아니었습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이따금씩 센트라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묘한 분위기가 되었으니까요. 어느 순간에는, 무려 10초나 눈을 마주치고 있기도 했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눈싸움은 제가 이겼네요!”

       

       그렇게 농담으로 넘기려는 센트라의 귀는, 바보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갈고리 총을 핑계로 몸을 끌어안아,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서로의 심장 박동을 영혼으로 느끼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손목에 새겨진 시계 낙인이 당신의 귀환을 재촉하고 있었으니까요. 예정된 작별이 머지않았습니다.

       

       높이 날아오른 만큼 추락이 아플 것을 알기에 서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적어도⋯⋯ 『맥주와 노래』를 성공시켜서, 센트라가 활짝 웃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당신은 생각했습니다.

       

       

       인력을 모으고, 소문을 퍼트려 시민들에게 은근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건국제에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이러한 작업이 시민들의 마음을 열어 둘 겁니다. 그저 누군가의 재치있는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맛 좋은 맥주와 함께 평화의 노래를 따라 부를 테죠.

       

       많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퍼뜨릴수록, 희박한 성공률도 조금씩 올라갈 겁니다. 노래가 끝난 뒤에⋯⋯ 조금이라도 바뀌는 것이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겁니다.

       

       시간은 행복한 만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

       

       『맥주와 노래』를 위해서 레지스탕스의 핵심 간부들이 여관 안에 모였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병이 있는가 하면, 경비대에 소속된 이도, 구걸을 하던 거지도 있었습니다. 옛 제국을 추억하는 자들은 여전히 이렇게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추억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던 모양입니다.

       

       레지스탕스의 절반은 어떠한 사명감이나 호의, 색으로 나타내자면 안온한 노을빛을 눈동자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센트라를 바라보았죠.

       

       반면에, 칙칙한 붉은색을 품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콧잔등을 무심코 찡그리게 될 정도로 지독한 피비린내가 나는 자들 말입니다.

       

       “콜키스, 머저리 새끼. 얼굴 보는 건 참 오랜만이야!”

       

       “요새 얌전히 있길래 성질머리가 조금은 죽었나 했더니, 그대로잖냐 로냐! 으하하하! 그런데, 이 등신 같은 계획은 진짜 할 거냐? 으응?”

       

       “따라야지, 센트라는 리더니까.”

       

       “으하하! 그래, 대장의 명령은 따라야지!”

       

       그들의 시선은 센트라가 아닌, 그들 무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레지스탕스에서도 강경파. 무력을 통해 왕국 연합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복수귀들.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자들. 그들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서류를 검토해오던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눈치챘듯이, 생필품 등의 물류 뿐만 아니라 병장기로 사용 가능한 물건들이 모이고 있었으니까요. 저들은 언제고 피를 뿌릴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센트라에게 알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작전 회의에 참석했다. 노림수가 뻔히 보이는군. 『맥주와 노래』가 시원찮게 끝나면, 평화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할 생각이겠지. 그렇게 네게서 레지스탕스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싶은 거다.”

       

       “계획에 문제가 될까요?”

       

       “처음부터 적극적인 도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미온적으로 있어주기만 하면 계획에 문제는 없어. 약간의 방해 정도는 커버할 수 있는 데다가⋯⋯ 이 레지스탕스라는 모임은 네 부친의 영향력이 아주 크지. 온전하게 레지스탕스를 손에 넣고 싶다면, 네게 정도 이상으로 적대해오지는 않을 거다.”

       

       “그러면 됐어요. 저분들을 설득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또⋯⋯ 이리드가 지켜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계획을.”

       

       “네, 계획을요.”

       

       핵심 인력들에게 작전의 동선을 설명하고, 역할을 분배했습니다. 물자를 준비하고,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운명의 여신이 주사위를 굴려낸다면, 주사위의 눈금을 더하는 것은 당신의 노력입니다. 

       

       피날레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맥주와 노래』까지, 남은 시간 30분.

       당신의 귀환까지 남은 시간도⋯⋯ 조금.

       

       손목의 시계 문신이 나타내는 남은 시간은, 숫자로 분명하게 표기되지 않는 눈금이었습니다. 당신의 계산이 정확하다면 조금은 여유가 있을 것이나, 언제 이 시간이 끝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작전의 끝까지 남아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정말로 지금이 그녀와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용기를 조금 더 냈습니다.

       

       “센트라.”

       

       “⋯⋯네, 이리드?”

       

       “나와 함께⋯⋯ 차 한 잔 마셔주겠나?”

       

       “⋯⋯푸흣!”

       

       그래요, 당신은 아주 아주 조금 더 용기를 냈습니다. 마지막 작별의 키스나 작별의 포옹 대신에 티 타임을 선택했죠. 그래도, 그 모습이 센트라에게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나 밝은 미소가 피어나지 않았습니까?

       

       “후, 후흣, 아, 웃으면 안 되는데⋯⋯.”

       

       “⋯⋯⋯⋯.”

       

       “노, 놀리는 건 아니구요. 그게, 저⋯⋯ 너무 귀여우셔서. 이런 감상은 실례일까요?”

       

       “실례다.”

       

       “미안해요, 음⋯⋯ 제 방으로 초대할 테니까, 무례는 용서해줄래요?”

       

       당신은 재빠르게 용서했습니다. 센트라와 함께할 때, 당신은 평소보다도 열 배 정도는 너그러워지는 자신의 모습을 느낍니다. 

       

       그때, 첫 만남의 순간처럼.

       센트라는 당신의 손을 잡고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다시 한 번 온기에 이끌립니다.

       

       그녀의 방은 소박했습니다. 작은 방, 방의 한 켠을 전부 차지하는 침대, 자그마한 책상과 원고지. ‘리더가 되는 법’, ‘리더가 말한다 : 부하를 설득하는 열한 가지 방법’ 등의 책들. 작은 화병에 장식된 로즈마리 한 송이.

       

       그녀의 향기가 진득하게 났습니다. 

       

       “금방 타 올 게요!”

       

       쿵쿵. 몸 전체가 진동하는 것처럼 심장이 떨렸습니다. 센트라가 홍차 두 잔을 끓여 올 때까지, 당신은 안절부절하며 다리를 떨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떠는 습관은 일곱 살 때, 엄격한 메이드장에게서 매를 맞으며 고쳤을 텐데요.

       

       테이블을 펴 놓을 공간도 없어서,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어깨가 잠깐씩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요.

       

       그러다가, 센트라는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이런 간단한 행동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침묵이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침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가는 체온으로, 무게로, 분위기와 향기로, 그리고 영혼으로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말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째깍. 째깍. 째깍.

       

       귓가에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위해서 입을 떼려는 그때.

       

       똑똑똑. 하고.

       문이 두드려졌습니다.

       

       “네, 나가요!”

       

       센트라는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섯 걸음을 걸어서 문가에 도달, 검지부터 천천히 문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당신은 이 모든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습니다.

       

       째깍. 째깍.

       

       센트라가 문을 열자,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좌우의 복도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신은, 원인 모를 불길함에 몸을 떨었습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나는 반대야.”

       “야, 너는 지금 의심 받고 있는 거야. 수상한 놈한테 서류를 맡길 놈이⋯⋯.”

       

       => 낯선 자에게 쏟아지는 의심.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로냐의 태도는 ‘센트라의 주변에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것도 같았습니다.

       

       “건국제가 지나간 뒤에는 센트라 보기 힘들 거야.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거거든.”

       

       => 로냐는 당신이 시간여행자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센트라를 보기 힘들 거라는 말을 했을까요. 

       

       “요새 얌전히 있길래 성질머리가 조금은 죽었나 했더니, 그대로잖냐 로냐! 으하하하! 그런데, 이 등신 같은 계획은 진짜 할 거냐? 으응?”

       “따라야지, 센트라는 리더니까.”

       

       => 그녀는 명백하게 『맥주와 노래』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 같았죠.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시대’로 나아간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맥주와 고함의 시대지. 다녀와.”

       

       => 작전명을 헷갈린 게 아니라면. 『맥주와 고함』은, 대체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레지스탕스. 부친의 권위를 이어받은 젊은 리더. 그녀를 죽이고 지도자의 자리를 찬탈한들, 레지스탕스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연합 왕국’의 손에 죽는다면?

       

       평화와 사랑을 외치던 젊은 리더가, ‘연합 왕국’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버린다면. 센트라의 평화에 동조하던 절반의 레지스탕스도 칼을 빼어 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레지스탕스 과격파가 바라마지않는 그림이었습니다.

       

       

       나가면 안 돼.

       

       입이 너무나도 천천히 떨어졌습니다. 당신은 수십, 수백번 고함을 질렀으나, 제발, 나가지 말아달라는 외침은 마음 속에서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습니다.

       

       센트라가 좌측을 돌아봅니다. 좌측 복도 끝에는 창문이 있습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왼쪽으로 걸어갑니다. 뚜벅. 뚜벅.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발, 기우이기를. 망상이기를. 의심병 환자의 헛소리이기를. 당신은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째깍.

       

       그리고.

       

       콰아아아앙-!!

       

       폭발. 흩어지는 잔해, 후폭풍으로 밀려드는 검은 연기. 

       당신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로즈마리의 잔향을 눈으로 쫒았습니다.

       

       그리고.

       

       깜빡.

       

       ===============================================================

       

       “깨어나셨군요, 황자님. 즐거우셨⋯⋯”

       

       2황자 이리드는 마법사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2황자의 몸에는 정제되지 않은 마력이 일렁이고, 눈동자에는 급격한 마력 사용으로 인해 피눈물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자색 마탑주와 소년 기사가 움직였다.

       

       소년 기사는 발도했다. 그 여파만으로 마탑의 벽면이 찢겨나가, 비가 내리는 우울한 하늘이 보였다. 

       

       자색 마탑주는 손가락 끝에서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공명하는 물방울들이 세상을 속여, 공간이 의미를 잃어버리며 뒤틀려갔다.

       

       그러나, 2황자 이리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환상으로 녹아내리며, 검격으로 조각나는 세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리드는 차원 마법사에게 필사적으로 갈구하며 외쳤다.

       

       “나를 그 세계로 돌려보내라, 당장──!!”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 놈 더 갑니다. 좀 이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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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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