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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그렇게 한바탕의 소동이 진정되고 난 후, 루크는 예르나가 설명 대신으로 주었던 책을 모두 읽었다.

    하지만 책을 덮는 루크의 표정엔 개운함이라던가, 만족감 같은 감정이 아닌, 수심이 짙은 표정이었다.

    어째서 호기심을 탐구하고, 그것을 해소하는것에 더없는 만족감을 느끼는 마법사라는 자가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서 저런 표정을 지어내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나에 값을매긴다는 개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루크는, 깨닫게 된 것이다.

    “일났구나…….”

    마나요금이 어째서 그토록 많이 나왔는가.

    그것은 사실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었다.

    서클을 올리기위해서 매일매일 명상을 하며 신체에 마나를 축적하는 행위를 거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루크는 그저 평소처럼 마나를 쌓았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에 돈이 든다는것을 몰랐을 뿐…….

    “…….”

    식은땀이 주륵 하고 흘렀다.

    마치, 알면 안되는 정보를 알아버린 느낌이었다.

    당장에 용서를 구해야한다는것을 알지만, 루크는 그 진실을 밝힌 후의 예르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300만 길이라니, 대체 얼마나 큰 돈이란 말인가?

    이 작은 몸으론 현재 일을 하더라도 제대로 돈을 받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일은 구할 수 있는가?

    이 시대는 루크가 알던 시대가 아니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당장에 돈을 번다고해도 예르나가 그것의 출처를 추궁한다면 뭐라 대답할 방법도 없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루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은인에게 보답은 커녕, 곤란함을 안겨주다니.

    뭔가 방법이 없는가?

    그러나 루크는 한번도 빈궁한 삶을 살아본적이 없었기에, 이토록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돈이야 높은자리에 앉으면 얻기 싫어도 들어오는 것이고, 대마법사가 된 순간부터는 물질적인것에 전혀 연연할 필요가 없어 돈따위는 제대로 벌어본 경험도 없는 것이다.

    노년에 은거하여 잡화점을 차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것이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특기라고 한다면 오로지 마법뿐.

    일반적으로 빈곤한 마법사라면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많이 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원체 갖고있던 마력시와 뛰어난 재능에, 괜찮은 가문에서 태어난 루크 이루시는 그런 잡일따위는 해본적도 없었고, 어디서 하는지도 몰랐다.

    그가 유일하게 알만한 일은 몬스터사냥.

    그나마 자신이 자신있을법한 일은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숲이라면 또 몬스터의 온상지가 아닌가?

    비록 1서클이기는 하지만, 한번에 동시영창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것을 다이튼에게 증명해보였고, 사냥을 성공한다면 소재를 팔아도 된다.

    그리고 만약 운이 좋다면, 마력초를 구할수도 있을것이다.

    “루크? 어딜 그렇게 몰래 나가니?”

    루크는 몰래 문 밖으로 나가려다 눈 앞에 나타난 다프네에 의해 가로막혀버렸다.

    루크는 당황하지 않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했다.

    “그, 잠깐 바깥바람을 쐬고싶구나.”

    “아하, 그렇구나? 그치만 숲은 위험하니까, 언니가 같이 가줄게.”

    “…….”

    만약 거절을 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루크는 한숨을 내쉬면서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겨울의 숲은 아이에게는 꽤나 춥다.

    하지만 1서클을 새긴 루크는 피부위에 얇은 실드를 응용해 찬바람을 막아낼 수 있었기에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물론 바람을 막을 뿐, 기온자체를 올리는것은 아직 불가능하므로 옷은 여전히 두꺼운 채였지만.

    ‘쓸만한 몬스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

    루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눈에 불을 켜고 돌아보는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숲을 걸으며 하얀 입김을 내뱉으면서 눈을 반짝이는 그 모습을 본 다프네에게는, 외출이 그렇게 좋은가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지만.

    ‘밖이 정말 좋은가보네.’

    한창때의 어린이.

    아이들은 모두 바깥을 좋아하는데다, 그런 과거까지 있다면 아마도 집 안에 처박혀있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나오니까 그렇게 좋아?”

    “뭐어, 확실히 좋기는 하다.”

    사실이었다.

    실제로 마나가 충만한 숲이었기에 서클에 쌓이는 마나도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고,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상쾌함도 꽤 기분이 좋았다.

    그것으로 느껴지는 만족감으로, 잠시간이지만 예르나에게 느끼는 답답한 죄책감을 치워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앗, 방금 웃었지.”

    “…….”

    잠깐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말았나.

    몸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새로운 감각이 너무나 신기한 탓인지, 체통도 없이 그렇게 아무때나 웃어버린다니.

    물론 웃음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내심 나잇값을 못하는 듯 하여 부끄러워지기는 하였다.

    그렇게 다프네의 시선을 피해 바닥을 노려보던 루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흐음.”

    그러자, 문득 발치에 보이는 마력의 흔적.

    과거에도 몇번정도 보았던 그 흔적을 따라간다면 아마도 마력초를 구할 수 있으리라.

    “저기, 저쪽으로 가보자꾸나.”

    “그래!”

    다프네가 어쩐지 텐션이 높아보이는 루크를 따라 나아간 곳에는, 푸른색의 꽃이 보였다.

    하얀 색에서 푸른 빛깔로 서서히 변해가는 꽃잎이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다.

    “마낼로구나.”

    이 마력초는 일정이상의 마력을 머금으면 푸른 꽃을 피운다.

    이것은 그 꽃이다.

    “와, 이건 꽤 드문데.”

    야생의 마력초가 꽃을 피우는건 드문 일이었다.

    애초에 마력을 머금을 수 있는 식물이 몬스터에게서 꽃을 피울때까지 살아남는다는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마낼로는 그 꽃을 피우고나서 3일만에 시들어버리는 탓이다.

    다프네는 주저앉아서 꽃을 유심히 살피는 루크를 보며 꽤나 여자아이다운 감수성이라고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그런데, 마낼로를 알아?”

    “물론이다.”

    “정말?”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낼로에게 시선을 고정한채로 말했다.

    “마낼로의 꽃말은 후회, 그리고 사과다. 왜 그러는지 아는가?”

    “왜 그런데?”

    “마낼로는 꽃을 피우지 않을때엔 주변의 식물의 영양을 빼앗으며 마력을 자신에게 쌓지만, 꽃을 피운 뒤에는 주변으로 다시 마력을 퍼트리기 때문이지. 그 모습이 마치 후회와 사과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구나.”

    “결국 마낼로는 꽃을 피우고는 3일간 마나를 방출하고는 말라죽지. 하지만 그 사과는 이미 공허할 뿐이다.”

    “어째서?”

    “마나는 식물들에겐 아무짝에 쓸모없는 자원이지않느냐.”

    식물에게 필요한것은 마나가 아니었다.

    필요한것은 빛과 물, 흙에 담긴 생명력이 전부.

    식물이 마나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마나를 필요로하는 식물은 극소수.

    그런데 마낼로는 한순간의 탐욕으로 제 분에 맞지않는 영양분을 마나로 쌓아두었다가, 주변에 그 누구도 남지 않았을 때에야 후회한다.

    “동화치고는 우울한 이야기네.”

    마낼로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다프네는 루크정도 아이가 읽을만한 이야기치고는 너무 우울한것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훈도 있지.”

    “그게 뭔데?”

    “사과는 최대한 빨리 하라는 교훈이다.”

    루크는 꽃에 마력을 담으며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뽑았다.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할 생각을 않고 덮을 생각부터 하다니. 이래서야, 철부지 아이와 하등 다를게 없어.’

    그리고 이 꽃이라면 적어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크가 기억하기로는 마낼로는 상당히 희귀한 꽃이었다.

    그의 시대에는 그것을 재배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던 탓이다.

    힘들게 구해도 꽃은 마나 없이는 3일만에 시드니, 그것을 몇송이나 가지는것으로 귀족들이 서로간의 우열을 가리고는 했다.

    따라서 꽤 값이 나갔으며, 까다롭고 손이 많이가는 부의 상징이었으니, 실제로 귀족들간에 사과를 할때도 사용되고는 했다.

    지금에 와서는 얼마나 비쌀지 모르겠지만, 약간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이제 돌아가자.”

    “그래, 그러자.”

    다프네는 아련하게 꽃을 바라보며 걷는 루크를 보면서, 꽃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는게 느껴진다.

    꽃을 보고 아련해지는 여자아이라면 왠지 흐뭇해지는 마음이 드니까.

    “그런데, 이 꽃은 보통 얼마나 하는가?”

    그런데 다프네에게 갑작스럽게 경제논리가 들이밀어졌다.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마낼로가 너무 마음에 들었나보다하고 생각한 다프네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거. 꽃집가면 한송이에 9000길로 살수 있어. 왜? 꽃다발이라도 만들려구?”

    “…….”

    “ㅇ, 왜 실망해?”

    “아무것도 아니다.”

    하긴, 신수라고 불리웠던 세계수마저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시대다.

    이깟 꽃 한송이 마음대로 재배하지 못할리 없겠지.

    루크는 아무래도, 꽃에는 사과의 의미만 간신히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우리 루! 언니들 말 잘 듣고 있었어?”

    어쩐지 높은 텐션으로 문을 벌컥 열며 들어온 예르나에게, 루크는 종이컵 안에 심어둔 한송이의 꽃을 건네었다.

    “어? 마낼로잖아? 그것도 야생 마낼로네? 이건 어디서 찾은거야? 설마, 나 주려구?”

    예르나는 크게 감동받은듯이 자신의 입과 가슴께를 손으로 살포시 가렸다.

    루크는 착잡한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예르나, 혹시 마낼로의 꽃말을 아는가?”

    “물론이지. 사과, 그리고 후회야.”

    “역시 잘 아는구나.”

    예르나는 그 꽃을 받아들면서 슬쩍 본 루크의 표정을 조금 의아한듯이 보면서 물었다.

    “근데 꽃말은 왜? 루는 혹시 언니한테 뭔가를 사과하고싶은걸까?”

    “사, 사실은……. 그 마나요금말일세. 마나 누수따위가 아니었다네.”

    “뭐? 그럼…….”

    예르나의 ‘설마’하는 시선을 피한채로 루크가 말을 잇는다.

    “내가 한것 같다. 서클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마나를 끌어왔다. 아마 그 비용이 청구된게 아닌가 싶다.”

    “어……?”

    예르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차, 서클.

    내가 그 생각을 못했구나.

    루크는 서클을 유지해야 살아갈 수 있는 몸이잖아. 그걸 모르고 집 안에 계속 두었으니 이렇게된 것이겠지.

    아마 누진세까지 붙어서 더욱 어마어마해졌을 것이다.

    그럼 그 300만길은 결국 누구를 탓해야…….

    예르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나를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어.’

    루크는 그녀의 한숨을 듣고는 크게 몸을 움찔거렸다.

    화가 난 예르나가 다이튼때처럼 돌변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분이 풀린다면 맞아줄 의향도 있었다.

    누가뭐라해도, 자신은 지금 돈을 벌 수단이 전무하니까.

    ‘몬스터의 소재도 매입하지 않는다니, 대체 이 시대의 사람들은 뭘 하고 산단 말인가.’

    루크는 잠시 자신이 이 시대에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시설에 몸을 위탁한다?

    글쎄. 거기서도 마나요금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노숙인가?

    솔직히 뒷골목을 전전하며 음식물쓰레기를 주워먹는 모습을 상상하긴 쉬웠다.

    그의 시대에는 그런 고아가 너무나 많았으니까.

    그도 아니면 숲속 깊숙히 들어가서 풀뿌리라도 캐먹으면 될 일이다. 식용식물정도는 왠만해선 알고 있으니까.

    가끔 육류로 먹을만한 몬스터도 사냥을 한다면…….

    예르나가 한껏 긴장한 루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불렀다.

    “루크.”

    곧 그녀가 자신에게 처벌을 내릴것임을 안 루크는 곧바로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각오는 되어있다. 날 그대의 마음대로 하거라. 내치든, 때리든. 나는…….”

    “루크!”

    움찔. 

    몸이 변하며 더욱 예민해진 청각을 갖게 된 루크는 예르나의 목소리가 가진 박력에 놀라 말을 멈추고 말았다.

    은인을 화나게 하다니. 

    루크 이루시의 이름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예르나의 말은 루크의 예상외였다.

    “대체 언니가 널 왜 버리겠어.”

    “버리지 않는건가……?”

    루크의 눈이 놀람으로 크게 떠졌다.

    처음의 생각처럼 예르나는 귀족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었다.

    300만길이라면 꽤 큰 돈이고, 일면식 없는 아이에게 흔쾌히 지불하기엔 부담스러운 돈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의 선택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루크는 한번 더 물었다.

    “정말 버리지 않는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어오는 루크의 모습은, 이런 호의가 왜 자신에게 향하느냐는 의문으로 가득차 있었다.

    예르나는 그런 루크가 가엾다고 생각해 껴안으며 말을 이었다.

    “안 버려, 300만이라는 돈이 크기는 해도, 내가 못 낼 정도는 아니야. 이렇게 어린애를 이 추운날에 내가 어디에 버린다고그래. 그랬다간 꿈자리만 나빠질걸.”

    “…….”

    예르나의 품에 안긴 루크는 괜스레 얼굴이 달아올랐다.

    솔직히 이런 상황은 그에게도 너무나 부끄러웠으니까.

    다 늙은 노인이 여성의 품 안에 안긴것이 아닌가? 부끄럽지 않을수가 없다.

    하지만 붉어진 루크의 얼굴은 영락없은 아이였기에, 예르나는 그저 흐뭇할 뿐이었지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겠다. 이 빚은 절대 잊지 않고, 내 기필코 갚도록 하겠다.”

    “그래,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ㅠㅠ 예르나 마지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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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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