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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상태창을 확인해봤다.

       유라크네의 호감도는 3 그대로였다.

       1도 오르지 않았다

         

       오르긴 무슨. 떨어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처음 그녀를 도와준다고 나섰을 때, 나는 당연히 감자 칼, 필러라고 해서 이중 칼날로 슥슥 깎아내는 그게 있을 줄 알았다.

       증기선이 뜨고,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그런 간단한 도구는 당연히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유라크네에게 설명을 해봐도 그런 물건에 대해선 처음 들어보는 눈치였다.

         

       그제야 떠오르는 게……

       감자 깎는 칼이 20세기 초에 발명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기술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누군가의 영감으로 인해 나온 물건이라는 소리다.

         

       그까짓 감자, 없으면 없는 대로 칼로 깎으면 되지만, 간신히 걷고 손 놀리는 법을 익힌 내가 칼을 쓸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차마 못 하겠다 물릴 수도 없어 억지로 시도는 해봤는데 그 꼴이라니…….

         

       더럽게 쪽팔리군.

         

       이건 원더스타인 본인에게도 왠지 미안했다.

       악의 카리스마가 감자 하나 못 깎아서 쩔쩔매다니.

         

       띠딕.

         

         

       특성: 손가락 필러

       적용 부위: 손가락

       효과: 검지와 중지 사이에 이중의 뼈 칼날을 형성합니다. 감자나 과일 껍질을 깎는 데 아주 좋습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1]

         

         

       또, 자동 추천이군.

         

       나는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너무 늦었어.

         

       그때, 천막의 입구에서 유라크네가 걸어나왔다.

         

       “단장님, 저……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그녀는 외투를 걸친 채 한 바퀴 돌아 보였다.

       외투는 그녀의 등과 허리를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다.

       4개의 팔은 그녀의 몸에 딱 달라붙어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팔을 가리니 그녀는 다른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떻게 장을 볼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정말 아름답군요.”

       “그런……가요?”

         

       현실에서 외톨이였던 나도 여자가 옷을 입고 괜찮냐고 물으면 무조건 칭찬해주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가자, 호감도 상승!

         

       그러나 그녀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칭찬이 너무 담백했나?

       하지만 낡은 여행용 망토 하나 두른 것에 과하게 미사여구를 쓰는 것도 우스워 보이는데…….

         

       흠흠,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나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런데 저는 안 걸친 모습이 더 보기 좋은 것 같은데요.”

       “……네?”

         

       그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젠장!

       망할 웃는 남자!

         

       나도 모르게 진심을 털어놓고 말았다!

         

       이 ‘웃는 남자’라는 특성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도 자제력은 약하게 만드는 이중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즉, 충동적인 욕설, 분노 같은 것은 억제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전에 자작의 저택에서도 “만져도 되겠습니까?”라는 노골적이기 짝이 없는 대사를 던지지 않았던가.

         

       지금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녀가 외투를 벗은 모습이 더 나았다.

         

       팔이 많은 것이 그렇게 혐오스러운 일인가?

       그나마도 없어서 아쉬운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됐다.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은 이질적인 외형 때문에 사회에서 배척받은 이들.

         

       TT1에서 괴물로 변한 그들이 얼마나 거기에 분노를 표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광기에 휩싸여 자신의 몸을 저주하고 혐오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더 낫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래. 원더스타인 입장에서는 그게 좋다고 말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을 혐오스러운 꼴로 개조하고 즐기는 놈이니까.

         

       하지만 이러면 그녀의 호감도를 올릴 수 없었다.

         

       “어, 어서 가죠…….”

         

       유라크네는 나를 지나쳐 쌩 앞으로 달려나갔다.

         

       망했어.

       망했다.

       완전히 망했어.

         

       앞서가는 그녀의 눈치를 슬쩍 봤다.

       자꾸 나를 돌아보는 것이 내가 따라오는 것도 불편해하는 눈치다.

         

       회심의 에스코트 제안이었는데 이렇게 망칠 줄이야…….

       다행히 호감도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마 간당간당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시장까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다, 단장님, 저……저기예요.”

         

       걷다 보니 어느새 강가까지 왔다.

         

       탐조등의 강렬한 빛과 새벽의 어둠이 짙게 교차했다.

       생선 비린내와 질척이는 장화 소리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나루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9번 나루 출항! 9번 나루 출항!

       -3번 나루로 대타 한 명 빨리!

       -4번 나루 입항합니다! 4번 나루 입항!

         

       “어시장은 오랜만이네요.”

         

       그녀는 나와 함께 걷는 것도 아니고, 따로 걷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간격을 뒀다.

       가까이 있자니 무섭고, 너무 떨어지자니 내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어떻게든 만회해야 했다.

       나는 먼저 말을 걸었다.

         

       “유라크네 씨, 무슨 생선을 사실 생각인가요?”

       “아무래도…… 숭어가 제철이니까요. 숭어가 좋겠죠. 구워도 되고, 조림도 좋고. 꽃게로 탕을 끓여도 괜찮겠고요. 혹시…… 드시고 싶은 게 있나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음……고등어 같은 것도 있습니까?”

         

       그나마 내가 아는 생선 이름을 댔다.

       유라크네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고등어는 보통 하구 쪽에서 소금 간을 해서 올라와요. 큰 시장에서 주로 대규모로 거래되죠. 이런 작은 어시장에서 생물로 보기는 힘들어요. 차라리 낮의 어물전에 가면 보기 쉬울 거예요.”

       “과연 유라크네 씨군요. 저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그런……가요?”

         

       역시 원더스타인과 대화하는 것은 부담스러운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유라크네.

       그녀는 발 빠르게 경매판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살폈다.

       

       “3번 나루! 숭어 200kg!”

       “5번 나루! 삼치 100kg! 숭어 120kg!”

       “2번 나루! 꽃게 250kg!”

         

       배들이 해산물을 하역할 때마다 경매 진행자들이 큰소리로 외쳐댔다.

       악스빌은 작은 나루터라 그런지 어시장의 규모도 크지 않았다.

       손님도 수레장수나 인근의 식당 주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와 유라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경매를 구경했다.

         

       “삼치 5마리 12.4kg. 100로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네 102로티. 103로티. 105로티. 108로티! 108로티 더… 네! 110로티. 112로티! 115로티! 117! 119! 119로티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네. 119로티 낙찰!”

         

       경매 진행자는 쪽지에 뭐라 휘갈겨 쓰더니, 그걸 낙찰자에게 넘겼다.

       낙찰자는 쪽지를 하역담당자에게 돈과 함께 넘기고는 물건을 받아 수레에 실었다.

       경매 진행자의 뒤에서는 일꾼이 다른 생선 바구니를 내왔다.

         

       이 모든 과정은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진행되었다.

       가격을 정하고, 물건을 넘기고, 다음 물건을 들여오는 그 물 흐르는 듯한 행동들은 마치 서커스를 연상케 했다.

         

       이런 사소한 곳에도 달인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상인들은 생선의 품질을 살피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젓거나, 주판을 튕기거나, 옆 사람과 빠르게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초보자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멍청히 서 있는 틈에 경매 진행자가 다음 생선을 저울에 달았다.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추를 이리저리 밀고 당겼다.

         

       “숭어 8마리…… 무게는…… 10.5kg!”

         

       유라가 찾던 숭어가 나왔다.

         

       “숭어인데 안 삽니까?”

       “저건……건너뛰어야 할 것 같아요.”

       “왜죠?”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말했다.

       

       “8마리 중 2마리에 출혈이 있어요. 저기 배 아래 가려진 반점 보이시죠? 그물의 가장자리 쇠붙이에 걸려서 살이 짓뭉개진 거예요. 그리고 한 마리는 이미 죽은 지 꽤 됐어요. 눈알을 보면 알 수 있죠.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요.”

         

       유라의 똑 부러지는 대답에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부 경력 덕분인가? 그 짧은 시간에 생선의 상태를 저렇게 분석해내다니.

         

       그런데 그녀의 설명에 놀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경매 진행자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참가자들까지 우리를 바라봤다.

       결코 감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황당함이 담겨 있었다.

         

       진행자는 모자를 바닥에 패대기치며 유라크네에게 삿대질했다.

       

       “애미 쒸벌~ 재수가 없을라고! 경매 불문율도 모르나? 엉? 입은 싸물고! 가격은 손가락으로만! 어디서 기어들어 와서는 장사에 초를 쳐?”

         

       경매장에 그런 불문율이 있었나?

         

       주변의 분위기나 유라의 안색이 변하는 걸 보니, 그녀가 실수한 게 맞는 모양이었다.

       시장에 익숙한 그녀가 이런 규칙을 모를 리 없었다.

       그녀가 실수를 한 건……

         

       나 때문이군.

         

       내가 질문한 탓이다.

       원더스타인이 묻는데 감히 어떻게 대답을 거부하겠는가?

       

       “응? 어쩔 거냐고!”

         

       경매 진행자가 위협적으로 어깨를 건들거리며 유라에게 다가왔다.

       유라는 겁먹은 듯 주춤 뒤로 물러났다.

         

       내가 따라와서 오히려 일을 망쳤군.

         

       호감도 올리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경매 진행자의 앞을 막아섰다.

         

       “뭐, 뭐야? 당신은?”

       “저는……남편입니다.”

         

       번잡스러운 설명 대신 가장 편한 변명을 댔다.

         

       부부.

       그거면 우리 둘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나서는 이유로도 충분했다.

         

       “나, 남편이라고? 이, 이, 그, 그래서 어쩔 건데? 응? 왜 경매에 훈수를 두고 그래! 마누라 간수를 잘해야지!”

         

       하자 있는 상품을 내놓은 주제에 큰소리는.

         

       짜증이 났지만 나는 차분히 미소를 지었다.

       웃는 남자는 이딴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2배로 사죠.”

       “뭐, 뭐라…고?”

       “가격을 지불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2배 가격, 그러니까 160로티를 드리겠습니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진행자.

         

       유라크네에게 들은 설명대로라면 어시장 쪽은 최소 낙찰가로 도매로 구매해서, 낙찰가가 초과 된 만큼 수입을 얻는다.

       최소 낙찰가의 2배 가격이면 100%의 수입이었다.

       주변에서 진행된 경매들의 낙찰가가 보통 30%를 안 넘는 것을 보면 이는 진행자 입장에서 돈이 거저 굴러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뭐…… 부군께서 가격을 지불 하시겠다면야…… 알겠습니다. 어, 어쨌든 앞으로 그러지 마십시오. 저는 또 다른 업자가 보낸 훼방꾼인 줄……. 여기는 다들 이런 수작에 민감해서, 하하…….”

         

       그는 방금까지 열을 올리고 있던 게 무색하게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역시 돈이면 다 되는 건가.

         

       진행자는 낙찰을 선언했고 일꾼이 생선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포개어 담았다.

         

       “저 남자 누구래?”

       “돈 한 번 시원시원하게 쓰는군. 생긴 것도 그렇고 뭔가 귀티가 흐르네. 귀족 아냐?”

       “여자도 예쁜데.”

       “선남선녀 부부구먼.”

         

       우리를 보며 웅성대는 사람들.

       유라크네는 내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한 지출을…….”

       “하하, 괜찮아요. 우리 돈 많잖아요.”

         

       그녀는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속삭였다.

         

       “저, 그, 저기, 그런데……왜 구, 굳이 부부라고 하신 건지……?”

       “저도 모르게 나왔네요. 그게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 그랬는데…….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뇨! 오히려 저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애초에 제가 유라 씨에게 물어서 생긴 일이잖아요. 후후,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냥 있는 대로 말씀해주세요. 괜찮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녀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엘라 때와 비슷한 벽을 느꼈다.

       그때도 선의를 가지고 도와줬는데 역으로 의심을 받았다.

         

       하루 이틀 노력해서 바뀔 게 아니군.

         

       나는 너무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바꾸면 되는 것이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그건 그렇고…… 좀 더 가까이 오시겠어요?”

       “네?”

       “이상하잖아요. 부부 사이에 이렇게 있는 건.”

         

       주변 사람들이 자꾸 우리를 훔쳐봤다.

       우리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남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쭈뼛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방금도 떨어져 있느라 목소리를 크게 내버려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아…….”

         

       머뭇거리던 그녀의 얼굴에 수긍의 빛이 떠올랐다.

       나는 팔을 내밀었다.

         

       “어서요.”

       “……네.”

       

       두 발자국 정도 가까이 오면 족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런데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락.

         

       보랏빛 머리카락이 내 시야를 스치고 지나갔다.

       뭉클한 것이 내 옆구리에 닿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습.

         

       그녀가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서로의 맥박이 느껴질 정도로 찰싹 달라붙었다.

       내밀었던 내 팔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이, 이러면……되나요?”

       “…….”

       “단장……님?”

       “…….”

         

       누군가가 이렇게 갑자기 접근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밀쳐버릴 뻔했다.

         

       하지만 ‘웃는 남자’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했다.

       나는 조금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차분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 팔을 뻗은 데까지만 와달라는 의미였는데요.”

       “어……넷? 엣!”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거미 여인.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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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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