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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리디아는 가만히 눈앞의 요나를 살펴보았다.

       

       분홍색 머리카락을 타고나는 이는 사랑의 여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신전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말은 아니지만….

       

       남녀노소 종족을 불문하고 하나같이 아름다운 외모와, 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퍼진 속설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눈앞의 소년은 분명 사랑의 여신이 가장 아끼는 아이이리라.

       

       제대로 관리받지 못했음에도 윤기 나는 분홍색 머리카락. 따로 바른 것도 없을 텐데 매끈한 피부.

       

       이목구비의 단정함은 말할 것도 없고, 가끔 튀어나오는 요망함은 여자를 들었다 놨다 하지만, 평소에는 털털한 걸 넘어 무방비한 언행을 일삼는다.

       

       이성에 큰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리디아의 눈에도 요나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아이였으니.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조금 더 꾸민다면 절세미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가 되리라.

       

       하지만 요나의 가장 큰 이상성은 외모에 있는 게 아니었다.

       

       “요나.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

       

       “넹.”

       

       다소 어설픈 움직임으로 리디아를 따라 식사를 계속하는 요나.

       

       ‘역시 이상해.’

       

       요나는 복잡한 예법, 음식을 먹는 순서 같은 건 잘 몰라도 식기를 다루는 것만큼은 묘하게 그럴듯했다.

       

       사실 요나가 지구에서 3일에 1번은 돈까스를 썰어야 직성이 풀리는 돈까스 학살자였을 뿐이지만…그 사실을 모르는 리디아에겐 조금 다르게 보였다.

       

       최소한의 식사 예절은 알지만, 비싼 음식에는 익숙치 못한 모습.

       

       이는 보통 청빈함을 미덕으로 삼는 성직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이었으니까.

       

       완전 헛다리였지만, 이미 요나가 황혼을 먹는 자 출신이라 의심하기 시작한 리디아에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황혼을 삼키는 자.

       

       다른 모든 신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세상을 파멸시키는 동안, 그저 한결같이 모든 것을 사랑한 사랑의 여신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존재.

       

       그들은 오직 사랑의 여신만이 유일한 신이며, 이 세상 모든 기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여, 아무리 비윤리적인 짓이라도 그들은 서슴없이 자행한다. 

       

       미궁에서 죽은 신의 기적을 얻은 이를 해체해 그 힘을 빼앗는 일도, 모든 사람이 여신의 사랑은 받는다면 어디까지가 사람인지 확인하는 인체 실험도….

       

       그리고 여신의 총애를 받는다는 분홍 머리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구까지.

       

       이 모든 것은 사랑의 여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일이라 여기기 때문에 놈들은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법이 없다.

       

       당연히 사랑의 여신을 믿는 정통한 교단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황혼을 삼키는 자를 사이비 집단이라 선언했고.

       

       많은 국가와 모험가 길드 또한 그들을 극히 위험한 범죄자 집단이라 규정하고 보이는 족족 토벌한다.

       

       세상 전부를 적으로 돌린 셈. 그런 황혼을 삼키는 자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악명을 퍼뜨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놈들은 지상이 아닌 미궁에 본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나는 어린 시절부터 납치당해 황혼을 삼키는 자의 지부에서 자란 아이…라고 리디아는 생각한다.

       

       3년 전. 엘리가 모험가를 은퇴하는 계기가 된 사건을 리디아는 직접 경험하진 못했다. 그땐 아직 실력이 부족해 토벌 작전에 참여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엘리에게 들은 것도 있고, 따로 조사한 것도 제법 되기에 대략적인 사정은 유추할 수 있었다.

       

       엘리가 다른 고위 모험가들과 함께 토벌에 나선 지부.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던 실험은 크게 둘.

       

       하나는 광기의 신의 유해 조각을 이용해 광기의 축복을 받은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사랑을 모르는 아이마저 여신께서는 사랑하시는가’ 였다.

       

       전자는 미친놈이 또 미친놈 했구나 하는 수준이었지만, 후자의 실험 내용은 당시에도 꽤 화제가 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우선 사랑받은 기억이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어린아이를 데려와 철저히 세뇌한다.

       

       감정을 죽이고, 타인의 온기를 허락하지 않고, 오로지 여신을 향한 찬미만을 때려 박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되면 최소한의 자기애마저 때려부수는 작업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의복을 금지하고, 자해를 명령하거나, 거절하면 고문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수치심은 물론 자기 보호 본능마저 파괴하여 마음을 꺾어 버린다.

       

       스스로를 몸도 마음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며, 사랑받은 적도 없고,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조차 없는 존재라 여기도록.

       

       이 과정에서 대부분이 죽거나 미쳐버리지만…어찌어찌 살아남더라도 텅 빈 인형처럼 변하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황혼을 삼키는 자가 모든 것을 비워낸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살육을 위한 기술이었다.

       

       누군가를 아끼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대척점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사로잡은 포로를 심문해 알아낸 다음 단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을 서로 죽이게 만들어 단 한 명의 생존자를 가려내고, 그 아이에게 여신의 힘이 깃드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다행히 거기까지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엘리를 포함한 토벌대가 도착한 건 아이들이 전투 기술을 익히는 도중이었으니까.

       

       ‘엘리 선배는 바보지만 좋은 사람. 작전에 방해된다는 걸 알아도 그냥 넘기지 못했을 거야.’

       

       엘리는 아이들을 가엽게 여겼고, 어떻게든 구출해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강요된 신앙과 전투 기술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아이들이다.

       

       눈앞에서 황혼을 삼키는 자의 지부가 박살 나고, 절대적 존재 같던 광신도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겠는가.

       

       아이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강요되고 거짓된 것이라고는 하나, 아무것도 없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신앙을 빼앗길 것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엘리를…모험가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한창 폭주한 계층 수호자와 싸우던 엘리가 등을 찔린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만약 요나가 그 아이 중 하나였다고 한다면 너무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는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생명을 죽이는 것도, 자기 몸과 고통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도, 이상할 정도로 풍부한 지식도, 어딘지 상식이 어긋난 것 같은 언행도….

       

       그리고 엘리를 향한 비정상적인 집착까지.

       

       이 모든 것이 요나가 황혼을 삼키는 자의 손에 철저히 망가진 아이라면 지금껏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단박에 이해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도 몇몇 있다.

       

       예를 들자면 위치. 엘리의 마지막 토벌 작전은 미궁의 중층부에 해당하는 6층에서 치러졌다.

       

       하물며 황혼을 삼키는 자의 지부는 계층 수호자와 엘리의 전투로 엉망이 되었고.

       

       어찌어찌 그 난장판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안전지대를 찾아 미궁 바깥으로 도망 나오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본래라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겠지. 하지만 당시 6층의 몬스터 대부분은 황혼의 수작질로 토벌대만을 노리는 상태였다고 한다.

       

       만약 거기서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랬다면 미궁은 요나의 업적을 인정하고 상응하는 보상을 주었을 터.

       

       예를 들면…절대 그 또래의 아이에게서 나올 수 없는 속도 같은 것 말이다.

       

       “하아.”

       

       생각이 복잡해져서일까. 맛있는 식사를 제대로 즐기기는커녕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은 리디아.

       

       스리슬쩍 리디아의 접시까지 노리던 요나가 화들짝 놀라며 포크를 치운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걱정스러운 태도로 묻는다.

       

       “리디아?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요?”

       

       “응. 요나가 내 스테이크를 훔쳐 먹으려고 해서 슬퍼졌어.”

       

       “훔쳐 먹다뇨! 나눠 먹는다고 해주세요! 봐요, 이렇게….”

       

       “샐러드를 주고 고기를 가져가는 건 불공정 거래.”

       

       “칫.”

       

       실로 뻔뻔한 태도. 요나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러했다.

       

       구해주려고 했더니 빈틈을 노려 자력으로 탈출했다. 그리고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구해주러 와줘서 고맙다는 소리나 했었지.

       

       “…요나.”

       

       “네?”

       

       “쌍단검 클랜장을 쓰러뜨렸을 때. 왜 모른 척 했어?”

       

       “쿨럭쿨럭!”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볼 줄은 몰랐던 걸까. 사레들린 요나가 황급히 물을 마시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에요. 그런 게 궁금해서 깨작거리고 계셨던 거예요?”

       

       “대답해 줘.”

       

       “뭐어…그리 대단한 건 아닌데 말이죠….”

       

       조금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한 요나가 말을 이었다.

       

       “제가 구원 서사를 참 좋아하거든요.”

       

       “구원 서사?”

       

       “네. 아시잖아요? 악당에게 납치당한 여…남자. 그리고 그걸 구하러 멋있게 등장한 영웅. 강렬한 첫 만남. 연민과 동경에서 시작된 감정은 서로를 깊게 알아가며 사랑으로 발전한다…흔하고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낭만적이잖아요.”

       

       “…잘 모르겠어. 그런 종류의 책은 잘 안 읽어 봐서.”

       

       “나중에 괜찮은 거 몇 개 알려드릴게요. …아무튼 저랑 리디아 님의 첫 만남은 구원 서사의 도입부 같았고, 그래서 한번 납치당한 남자가 해볼 법한 말을 해봤을 뿐이에요.”

       

       “구원….”

       

       리디아는 요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설마 요나는 엘리를 신앙의 적이 아닌 구원자로 여기고 있는 걸까?

       

       만약 리디아에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었다면, 구원 서사 원툴 전개라는 전생의 악플을 떠올리며 부들대는 요나를 알아챌 수 있었겠지만…아쉽게도 리디아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그러고 보니, 엘리 선배는 결국 요나를 믿어보기로 했어.’

       

       정체가 무엇이건 상관없다. 자신에게 보이는 한결같은 호의를 의심하지 않겠다고 했던가.

       

       문득 리디아는 자신이 너무 요나의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직접 본 요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나름 엘리와 리디아의 심정을 헤아리려 들고, 복수를 해도 선을 지키려 노력했으며, 어째선지 가슴을 빤히 바라보긴 했지만 헤실거리며 쓰다듬을 조르는 아이였다.

       

       물론 손버릇이 나쁘고, 조금 사이코패스 같고, 여심을 가지고 놀기 좋아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아니, 문제가 너무 큰데.’

       

       요나의 과거가 설령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일지라도 지금은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먼 미래에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놔둘 수는 없어.’

       

       역시 요나에게 제대로 된 상식과 삶의 방식을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요나의 계도를 맡은 자신의 역할일 터.

       

       “요나. 다 먹으면 후식 먹으러 가자.”

       

       “네? 리디아 님이 그러고 싶다면 가죠 뭐.”

       

       “쇼핑도 하자.”

       

       “소화시킬 겸 딱 좋네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요나. 그 모습에 리디아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엘리 선배에게 받은 돈은 아직 많이 남았어. 근처의 디저트 가게를 한 바퀴 돌고, 대장간에서 무기도 좀 맞춰준 뒤 전부 빚으로 치면…응. 계도 기간을 늘릴 수 있어.’

       

       기껏해야 몇 달 정도로는 요나에게 평범한 삶을 가르칠 수 없을 테니까.

       

       리디아는 요나의 인생을 책임질(?) 각오를 마쳤다.

       

       깊은 오해와 강한 책임감이 만들어 낸 비극을 모르는 요나는 고민에 빠진 리디아 몰래 스테이크 접시를 바꿔치웠다.

       

       성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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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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