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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 * *

       

       

       

       빨갱이의 아이돌 레닌과 트로츠키가 미쳤다.

       

       제정 시절 장군과 장교들을 회유하려고 가족을 인질로 잡거나 목숨을 협박해댄다더라.

       

       지금, 이쪽으로 넘어온 제정 시절 장교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으니 놀라울 것도 없다.

       

       그 빨갱이들은 막상 군대 지휘관이 부족하니 제정 시절 장군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각종 협박을 통해 붉은 군대에 강제로 들였다.

       

       여기에 감시까지 했지.

       

       이게 어딜 봐서 지상 낙원 빨갱이들의 세상일까.

       

       그래도 잘되었다.

       

       실제 역사와 달리 아나스타샤가 생존하고 구심점이 되어 차리친까지 탈환하면서 빨갱이의 핍박을 받던 제정 시절 군인들이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으니까.

       

       당장 실제 역사에도 그 모양이었는데, 이곳의 적백내전은 이제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백군의 구심점이 황실이 되었으니.

       

       역시 이래서 빨갱이 새끼들이란 근본이 없어요. 쯧쯧.

       

       그 모양이니 훗날 동유럽 붉은 맛 국가들이 싹 민주주의 열풍이 불고 그런 게 아니냐고.

       

       그리고.

       

       다우리아 일대. 그러니까 만주 쪽이라고 해야 하나. 그 지역에서 지금 백군 세력을 규합 중인 로만 폰 운 게른슈테른베르크가 서신을 보냈다.

       

       그 내용이란 간단했다.

       

       나를 일단 차리나로 추켜세우고 볼셰비키를 때려잡는 것을 찬양하는 글. 진정한 차르. 진정한 러시아제국의 예카테리나가 되라고.

       

       역시 뼛속 깊은 왕권신수론자다.

       

       

       “이 작자가 지금 생각이 있나.”

       

       

       이따위 편지를 보내다니. 이 편지가 밖으로 돌면 볼셰비키부터 잡자고 규합된 반 로마노프 세력들이 게거품을 물고 이탈할 것이다.

       

       회신은 해 줘야겠지.

       

       그런데 이 인간도 역사가 바뀌면서 뭔 짓을 할지 모르는데. 일단은 회신은 해 두는 것이 좋겠지.

       

       괜히 차리나가 되지 않겠다고 확답을 내주다가는 뭔 짓을 할지 모르니. 차르에 대한 민심 좋지 못하니, 백군이 승리할 때까지는 결정을 미루겠다. 이 정도면 될 것이다.

       

       

       “한동안은 빨갱이놈들도 지랄하지는 않겠지.”

       

       

       차리친까지 탈환되고 남러시아를 확보했다.

       

       볼셰비키는 지금 붉은 군대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비 볼셰비키 좌파들이 파업까지 한다는 말도 있다던데.

       

       물론 마찬가지로 지금 백군도 점령지 내의 무장한 볼셰비키를 토벌하고 한편으로는 회유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서로 내치를 굴리겠지.

       

       기세를 탄 지금, 이쪽도 할 일을 한다.

       

       내가 구심점이 되었다고 하나 여긴 여전히 다양한 세력이 있다.

       

       군주주의 군벌 세력, 농민 개혁으로 합류한 농민 위주의 볼셰비키가 성향의 녹군, 이런 기타 등등.

       

       

       “적군과 교전하는 우리 백군을, 새로운 러시아의 군대로 정식으로 선언하겠습니다.”

       “새로운 러시아는 제국입니까. 무엇입니까? 이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쪽에 합류한 녹군 대표들이 질문했다.

       

       볼셰비키를 돕던 실제 역사와 달리 녹군은 내 덕에 우물쭈물하는 볼셰비키 대신 실제로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이쪽에 붙었다.

       

       

       “이 내전이 끝나야 알겠지만, 아마 새로 태어날 러시아는 수정자본주의 국가가 될 겁니다.”

       “수정 자본주의?”

       

       

       본래는 일본에서 처음 쓰인 말이지만.

       

       내가 쓰겠다는데 뭐 어쩔 텐가.

       

       

       “자본주의의 단점을 수정하여, 정부의 시장경제 개입과 사회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사상이라 볼 수 있겠죠. 그래. 자본주의의 단점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주의의 장점만 살짝 찢어다 붙인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있으신 분들은 모두 나라를 위한 분들이니 반발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우리가 저놈들을 보고 배운 것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원래 단 건 삼키고 쓴 건 뱉는 법. 단물만 쭉 빨면 그만. 이 나라 러시아는 동서양에 걸친 영토를 지녔으며 인구와 자원이 넘쳐나는 나라. 이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해야 합니다.”

       “황녀님께서는 이 내전이 끝난 후, 다른 나라로 망명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황녀님이라면 모를까 다른 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사분오열되지 않겠습니까?”

       

       

       흠, 그럴 수도 있겠지.

       

       여전히 이념이 대립하고 있다면야, 군주정을 지지하는 군벌들이 들고 일어날지도.

       

       

       “그럼 내가 두마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되겠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럼 차리나에 오르셔야 합니다.”

       “차라리 그렇다면 황녀님께서 두마를 통해 차리나에 오르셔서 보장하는 것이.”

       

       

       콜차크가 두마를 통해 당당히 차리나가 되어달라 말하고 있다.

       

       표트르 브란겔도, 내가 차리나에 오르는 걸 바라는 눈치고.

       

       결국 차리나가 튀어나오는가.

       

       

       녹군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지만 굳이 반대는 하지 않는 거 같다.

       

       

       

       

       “내가 차리나가 되든 아니면 두마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목소리를 내든. 그건 뒤로 봐야 할 일. 당장은 정부수립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없는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신러시아 임시정부. 어떻습니까. 새로운 러시아 임시정부란 뜻입니다.”

       “새로운 러시아.”

       “나쁘지 않겠군요.”

       “그럼 이제 한동안은 국내 정비를 합시다.”

       

       

       

       

       이놈의 나라는 개혁 하려면 수십 년은 걸릴 테니까.

       

       진행 중인 것을 계속 밀어붙이면서 군대도 단일화시켜야지.

       

       지금부터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 * *

       

       

       

       중 러 국경, 중동철도

       

       

       중동철도는 중국 내에 있는 러시아 조계지였다.

       

       이곳은 현재 백군 세력인 드미트리 호르바트 장군이 관리하고 있었으나, 이 철도를 기반으로 둔 다른 백군 지도자도 있었다.

       

       로만 폰 운게른 슈텐베르크.

       

       중동철도를 기반으로 세력을 기르던 로만 폰  게른슈텐베르크는 예카테린부르크의 회신을 받았다.

       

       처음에는 절규했다.

       

       그야 지금 차리나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으니까.

       

       왕권신수론자이자, 제정 복고를 위해 봉기를 일으킨 운 게른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는 이 원통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단짝인 그리고리 세묘노프를 만났다.

       

       

       “차리나께서 제정 복고를 거부했네.”

       “그러시겠지. 주변에 사회주의 인물들도 있는 거로 아네.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겠지.”

       

       

       과연. 일리가 있다.

       

       지금 백군은 오로지 볼셰비키를 때려잡기 위해 단결한 세력이다.

       

       이 와중에 대뜸 황녀가 차리나가 되겠다고 하면 사회주의자들은 거품 물고 이탈하여 볼셰비키에게 붙을 거다.

       

       

       ‘더러운 빨갱이놈들.’

       

       

       그놈들의 머리통을 언젠가는 다 부셔야 하는데.

       

       

       “흐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우리가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뜻이지?”

       

       

       운게른의 질문에 세묘노프는 기다렸다는 듯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칭기즈칸의 제국을 재건하는 것일세. 대칸의 옥좌를 아나스타샤 황녀님께 드리는 것이네.”

       

       

       세묘노프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실제 역사에도 그렇듯, 세묘노프는 반미치광이였다.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칭기즈칸의 제국을 재건하려고 하던 미친 작자는, 이 역사에서는 아나스타샤로 인해 일본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칭기즈칸의 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칸의 자리.

       

       빨갱이를 때려잡으며 붉은 역병을 토벌하며 유럽 러시아를 회복하는 아나스타샤 황녀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닌가!

       

       

       “그게 무슨?”

       

       

       차르의 자리가 아닌 대칸의 자리가 아닌가.

       

       

       “사회주의자 놈들이 지금 반대하는 것이 결국 차르정 아닌가? 차르가 대칸일 뿐이라면? 볼셰비키 그 반란 분자 놈들이 모스크바 일대를 꽉 잡고 있지만, 어쨌든 러시아의 영토는 과거 몽골제국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지 않은가?”

       “음.”

       

       

       그래. 제정 복고라는 것이 중요하지. 그 군주의 호칭이 차르든, 카이저든, 대칸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문득 그런 이론이 성립되고 있었다.

       

       솔직히 운게른은 세묘노프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마냥 동조할 수는 없었다.

       

       

       “대러시아는 로마의 계승자이기도하고 영토로는 몽골제국의 계승자이기도 하네. 일찍이 몽골제국 시절엔 러시아도 몽골제국의 번국이었지. 이제 우리가 황녀님을 대칸의 자리에 올려 몽골제국을 부활시키는 것이네.”

       

       

       이론상 아주 틀린 건 아닌 거 같지만.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라니. 그게 지금 말이 되나.

       

       하지만.

       

       운게른은 이 미친 작자의 말이 나름 논리적이라고 들었다.

       

       망할 사회주의자 놈들이 차르정을 반대한다면 황실은 황실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대칸의 자리에 올려 차르를 대신하게 하면 되지 않은가.

       

       

       “황녀님이 몽골제국의 대칸도 겸하게 하자는 건가.”

       “그렇다네. 더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 러시아-스키타이 제국의 시작이지!”

       

       

       이건 진짜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거 같지만.

       

       그래.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그러자면 러시아가 제3의 로마를 계승하여 콘스타티노플의 영유권을 주장하듯,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몽골의 초원을 얻어야 하니, 아시아 기마사단을 움직여 몽골로 쳐들어가세.”

       

       

       이 무렵, 외몽골은 중화민국에서 독립해 복드 칸이 다스리는 복드 칸국으로 군주국이었다.

       

       지금 세묘노프는 그 대칸국을 무너트리고 대칸의 제위를 아나스타샤에게 바치자고 하고 있었다. 

       

       물자는 부족하지 않다.

       

       백군에 지원되는 물품들을 중간에서 자기들도 당연하게 받았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한번 노려볼 만하다.

       

       1919년 봄. 운게른과 세묘노프의 아시아 기마사단이 복드칸국의 수도 후레(울란바토르)를 점령했다.

       

       

       “어떻게 러시아군이 이러실수 있소!”

       “복드 칸! 당신은 몽골 초원의 독립만으로 만족하는 비루한 존재에 불과하다! 허나 우리 아나스타샤 황녀님이야말로 몽골제국의 땅을 계승한 러시아의 진정한 지배자이시니, 몽골 대칸의 자리는 당연히 우리 황녀님이 받으시는 것이 마땅하다!”

       “이 무슨! 황금씨족도 아닌 주제에!”

       “말해 보라! 당신은 중국과 일본의 위협에서 몽골을 지킬 수 있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황녀님의 충성스러운 군대는 몽골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만주를 지배하고 중국 전역에 영향력을 떨칠 것이다!”

       

       

       생포당하자마자 같은 몽골인도 아닌 러시아의 세묘노프가 지껄인 말에 복드칸은 어이가 없었으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의 말대로 복드칸은 러시아의 지원이 아니면 꼼짝없이 중국에 잡아먹힐 나약한 몽골의 대칸이었고, 그는 칭기즈칸도 아니었다.

       

       몽골의 다른 왕족들도 이미 티베트 출신인 지금의 복드 칸을 옹립했으니, 러시아 쪽에서 몽골제국을 계승했다고 나선다면 막을 명분도 없었다.

       

       애초에 다들 몽골이 자립할 수 없음도 알았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러시아에서 몽골제국의 꿈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대칸의 지위를 귀국의 황녀께 선양하겠소.”

       

       

       그렇게 복드칸의 옥새는 예카테린부르크로 전해진다.

       

       실제 역사에서 북양 정부의 지배를 받다 운게른에 의해 독립한 복드 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운 게른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

       

       

       

       * * *

       

       

       이제 막 이 황녀의 몸이 익숙해질 무렵.

       

       겨우겨우 백군 정부의 토대를 마련할 무렵.

       

       나는 내 뒤통수를 후려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볼셰비키가 예카테린부르크로 몰려온다?

       

       그건 땡큐다. 빨갱이들을 갈아버리고 소련 정권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민심이 등을 돌리게 할 수 있으니.

       

       차리친도, 남러시아 일대도 공격받지 않았다.

       

       내부의 볼셰비키도 재건한 오흐라나를 통해 어느 정도 처리했다.

       

       그럼 그 통수 처맞은 일이 뭐냐고?

       

       

       “복드칸국을 항복시켰다고?”

       

       

       운게른과 세묘노프가 이끄는 온갖 민족이 뒤섞인 혼종 아시아 기마사단이 몽골을 점령하고 복드 칸의 항복을 받아 냈다고 한다.

       

       당장 내 집에 불길이 피어오르는데, 남의 땅에 깃발 박았다. 그 말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드 칸국의 옥새입니다. 황녀님께서는 이제 대몽골제국의 대칸이십니다.”

       

       

       이 기쁜 소식을 직접 전하겠다고 예카테린부르크 정부 청사까지 온 운게른의 부하가 뿌듯한 얼굴로 보고했다.

       

       이런 씨발.

       

       무슨 청나라 황제가 조선왕을 겸한다는 쌉소리 같은 소리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리고리 세묘노프는 실제로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몽골제국을 건국하려 한 이상한 작자였습니다.

    다른 대체역사물을 보면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좀 광인처럼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세묘노프가 더한 사람이었고, 운게른이 몽골에 있을 시절에는 복드 칸을 존중하며 몽골인들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옆동네에서 함께 연재됩니다만. 일단 아무래도 성적이 좀 낮은 편이라… 적백내전으로 마무리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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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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