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

       

       

       “작가님.”

       

       [네?]

       

       “스파이, 언제쯤 사용하실 건가요?”

       

       [···지금 써야 해요?]

       

       

       작가님의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한 말에 이마를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어쩐지 며칠 동안 라이라를 가만히 내버려 두더니, 빌드업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며칠 시간이 지났는데도 라이라가 움직이지 않기에, 내가 라이라와 하는 대련에서 얻어맞는 걸 즐기는 줄 알았네.

       

       매일같이 대련 신청하길래 슬슬 좀 끝났으면 했는데, 언제 끝나나 했더니.

       

       그냥 까먹은 거였어.

       

       

       “당연히 써야 하지 않을까요? 일부러 시간 좀 걸리는 방식으로 설정했다면서요? 슬슬 시간이 되었을 것 같은데.”

       

       

       개연성 챙기겠다면서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서는.

       

       

       [으,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는걸요···.]

       

       

       하아.

       

       한숨이 흘러나왔다.

       

       

       “작가님···.”

       

       [왜, 왜요···! 저는 글 써본 경험이 별로 없단 말이에요!]

       

       “저도 없거든요?”

       

       [흥.]

       

       

       또 삐지네.

       

       작가님이랑 싸워서 좋을 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나.

       

       내가 알려줄 수밖에.

       

       나는 글 같은 거 써본 게 자기소개서밖에 없는데, 이렇게 야매로 작가님을 도와주는 게 맞나 모르겠다.

       

       별수 없지.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어디, 지금 날짜가···.”

       

       [4월 말이에요!]

       

       “···딱 좋네요, 그럼. 슬슬 시작해도 되겠어요.”

       

       [네? ···뭘요?]

       

       

       뭐긴 뭐야.

       

       당연히 학생들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지.

       

       

       “시험을 칠 준비를 하죠.”

       

       [네? 시험?!]

       

       

       뭘 그렇게 놀라.

       

       보통 시험은 4월 말에서 5월 초쯤에 치잖아.

       

       

       “보통 일 년에 네 번 있는 게 시험이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이맘때쯤에 시험을 쳐야죠.”

       

       [네, 네 번이나···.]

       

       “걱정하지 마세요. 실습 위주의 아카데미니까, 쓸 수 있는 소재는 많아요.”

       

       

       이번엔 뭐가 좋을까.

       

       토너먼트? 아냐, 처음치고는 너무 거창해. 맛있는 건 아껴둬야지. 여름방학 직전에 하는 게 좋겠다.

       

       현장 실습? 이것도 아냐. 중반부쯤에나 나와야 하는 내용이니까.

       

       ···역시, 그것밖에 없겠구나.

       

       

       “던전. 여기서는 던전의 힘을 씁시다.”

       

       [던전···! 정말요?!]

       

       

       신났네.

       

       그렇게 던전을 보고 싶을까.

       

       작가님께 물어보자, 격한 답변이 돌아왔다.

       

       

       [당연하죠! 던전 실습! 아카데미 소설의 단골손님! 주인공이 활약하는 재미있는 파트!]

       

       

       엄청나게 좋아하네.

       

       그런데 약간 의문이 생겼다.

       

       내가 말하고도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말이야.

       

       이거, 설정이 조금 어색하지 않나?

       

       

       “작가님, 던전이 있나요?”

       

       [던전이 있냐고요?]

       

       

       작가님의 목소리에 의문이 가득 담겼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기에, 추가로 설명해주기로 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던전은 저기···. 헌터 쪽 소설에나 있는 거 아니었어요? 게이트 열리고, 그런 쪽이요.”

       

       [아···?]

       

       “아무래도 여기는 마수도 있고, 영웅과 빌런이 있잖아요? 헌터랑은 조금 결이 다르니까 던전은 조금···. 다른 걸로 다시 생각해 볼게요.”

       

       

       어쩔 수 없지.

       

       던전은 물론 맛있는 설정이지만, 세계관에 맞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정말 맛있는 설정이지만, 이건 폐기해야···.

       

       

       [안 돼요!]

       

       “···네?”

       

       [싫어요! 던전 보고 싶어요! 무조건 쓸 거에요!]

       

       “아니, 설정은커녕 세계관이 안 맞는데···.”

       

       [세계관은 끼워 넣으면 되는 거에요!]

       

       

       세계관을 끼워 넣는다고?

       

       지금 당장?

       

       ···무슨 수로?

       

       

       [어, 어···. 그렇지! 수백 년 전, 게이트가 열려서 헌터 시대가 열렸던 거에요!]

       

       “···네?”

       

       [그게, 그러니까···. 이미 헌터 세계관인데 게이트 진작에 사태는 끝난 거죠!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의 세계인 거에요!]

       

       “그게 무슨···.”

       

       [게이트가 열려서 마나가 생긴 거고, 초인들은 마나가 발현한 지 한참이 지난 상태에요. 인류가 마나에 맞춰 진화했기 때문에 각성하면 능력을 하나씩 가져요. 그리고···.]

       

       

       작가님이 순식간에 이런저런 설정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500년 전 일어난 게이트 사태, 원래는 존재하지 않던 초인들의 능력, 지금까지 파괴하지 않은 던전들까지.

       

       

       [던전은 부산물이 나와서 부수지 않은 거죠···! 광산에서 광물을 캐듯, 던전에서 마수들의 부산물을 캐낸다는 설정! ···아, 마수들의 거주지도 지금 정할게요! 500년 전에 터진 게이트 사태로 잃어버린 옛 인류의 터전이 마수들의 터전이에요! 인류와 싸우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영토 수복!]

       

       

       숨도 안 쉬고 말하네.

       

       도대체 얼마나 보고 싶었던 거야?

       

       딱히 어긋나는 설정도 없는 것 같아서 더 열받는다.

       

       잘 할 수 있잖아.

       

       보고 싶은 게 생기니까 진심이 되어버린 건가.

       

       평소에 좀 잘할 것이지.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알겠어요.”

       

       [···! 그 말은!]

       

       “합시다, 던전 실습.”

       

       [야호!]

       

       

       만약 여기서 그게 말이 되냐고 하면 의욕이 꺾여버리겠지?

       

       그것만은 안되니까.

       

       이렇게까지 하고 싶다면 해 줘야지, 뭐.

       

       어쩌겠어.

       

       ···뭔가, 아이가 해달라고 조르면 결국 해주는 부모님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

       

       

       

       “시험 내용은 던전 실습인가···.”

       

       

       라이라는 머리를 긁으며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바라보았다.

       

       던전 실습이라.

       

       예전의 자신이라면 벌벌 떨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

       

       나를 비웃던 그 녀석도 내게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약간의 울분을 담아 때려주는 맛이 일품이었지.

       

       맞을 때마다 슬쩍 노려보는 그 눈빛에 움찔했지만, 제대로 된 반격은 없었다.

       

       

       “그 자식도 3급 마수는 처치했으니, 나는 2급 마수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겠네.”

       

       

       3급 마수를 처치했다고 부러워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환약을 먹은 이후로 점점 늘어난 힘과 체력.

       

       어느새 아르테 이시스, 그 여자는 나를 건드리지도 못하고 패배할 뿐이었다.

       

       환약을 먹은 당일에도 손쉽게 이겼던 상대니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가님, 그래서 어떻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목소리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르테, 안녕.”

       

       “···앗. 라이라 양. 안녕하세요.”

       

       “오늘도 건강하네. 어제 맞은 허벅지는 좀 괜찮아? 실수로 조금 세게 쳤던 것 같은데.”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쳇.

       

       표정도 변하지 않는다니.

       

       분명히 멍이 들 정도로 세게 때렸던 것 같은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재수 없어.

       

       

       “라이라 양은 이번 시험, 누구와 함께하고 싶으신가요?”

       

       “나?”

       

       “네에. 반과 관계없이 아무나 랜덤으로 정해진다고 해서요.”

       

       “글쎄.”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이 힘으로 하지 못할 일은 없었으니까.

       

       같은 학년의 학생들에게는 도저히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어차피 이제 아카데미에는 볼 일 같은 건 없다.

       

       조직에서 내게 첫 번째 지령을 내렸으니까.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외부로 나가는 날, 경고장을 던지기로 했다.

       

       위버멘쉬는 이제 양지로 나선다.

       

       세계를 향해, 위버멘쉬의 위대함을 알리는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아카데미 학생들을 제물로 바쳐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위버멘쉬의 존재를 알아채게 될 거다.

       

       아직 나는 예비 단원이기에, 정확한 계획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을 들을 기회는 있었지.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라이라 양?”

       

       

       재촉하기는.

       

       마음 같아서는 저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정체가 탄로 나면 안 되니까.

       

       벅벅, 머리를 긁으며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했다.

       

       ···뭐였더라. 누구랑 같이 시험을 치고 싶냐, 였던가.

       

       누구라도 상관없는데.

       

       어차피 위버멘쉬의 제물이 될 녀석들이니까.

       

       될 수 있다면 약한 녀석이 편하니까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무렵, 눈앞의 녀석이 문득 시야에 들어왔다.

       

       태평하게 웃고 있는 모습.

       

       

       “아, 한 명 있다.”

       

       “네? 누굴까요?”

       

       “너.”

       

       

       3급 마수를 혼자서 처치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게 약하지는 않겠지만···.

       

       이 힘을 손에 넣은 내가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니까, 기왕이면 내가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 위한 제물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그거 잘됐네요!”

       

       “잘 되다니?”

       

       “저도 라이라 양과 함께하고 싶었거든요. 강하시니까, 분명 시험도 같이 본다면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요?”

       

       “그래, 같은 생각이네. 너와 내가 함께라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어쩐지 얄미웠다.

       

       짜증이 치솟아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아, 진짜.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저 녀석, 며칠 동안 악의적으로 온몸을 때려댔는데도 저렇게 싱글싱글 웃어대다니.

       

       힘 조절은 했지만,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며칠 전쯤에는 이미 드러누워 있어야 했는데.

       

       ···설마, 별로 아프지 않았다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저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일 게 분명하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중이고, 이미 몸은 한계에 도달했겠지.

       

       시험도 다가왔으니 억지로 몸을 가누고 있을 뿐.

       

       

       “같은 조였으면 좋겠네요!”

       

       “···그래, 같은 조였으면 좋겠다. 우리, 친구잖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친구라니, 저 녀석이랑 내가?

       

       하. 웃긴 소리를.

       

       그저 입에 발린 말일 뿐이다.

       

       같은 조가 된다면 내가 너를 죽일 수 있으니까.

       

       내 노력을 고작 재능 따위로 치부했던 너를.

       

       아아. 저 얄미운 웃음이 사라진 얼굴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머리를 긁으며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친구, 좋네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여전히,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기분이 나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괜히 연참한다고 깝쳐서는.

    머리아파···. 연참하면 뭔가 글이 잘 안나오는 기분···.

    아, 플러스 신청했어요.

    ***

    Asdffdsad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따봉을 날려주셨네요! 소설이 재미있으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구구구구822 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계신다니, 저도 기쁩니다! 더 노력하는 작가가 될게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