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5

        

       “다만, 크-흐. 그래. 다만 말이지.”

         

       괴인은 조금 색이 달라진 듯…. 하지만 아직은 석고의 색에 가까운 손으로 남자의 팔을 거세게 잡으며 말했다.

         

       “대가가, 크-흐. 대가가 필요하네. 무얼. 아주 심한 대가는-아닐 것이야….”

         

       그 손아귀의 힘은 어찌나 강한지 사람이 아니라 기계에 붙잡힌 것처럼 억셌다. 마치 기계가 자신의 팔을 압착하는 듯이 쥐어짜고, 그 때문에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프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비명이 나오거나 위기감이 들지는 않았다.

         

       “동의하는가?”

         

       그것은 어쩌면 그동안 괴인이 걸어준 주술의 효과 때문일지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미친 듯이 난리 치는 본능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네.”

         

       어쩌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남자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본능과 이성이 혼재해서 뒤섞이고, 서로가 갈라지며 싸우며 머리를 어지럽히고.

       그렇게 남자는 우두커니 서서 괴인을 쳐다보았다.

         

       푸욱!

         

       『 의식을 치르도록 하겠네. 』

         

       괴인의 손이 자신의 배에 깊숙이 파고들고 시야가 검게 변하는 그 순간까지.

         

       남자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 * *

         

         

         

       믿으라.

       모든 생명은 어미 없이 태어날 수 있노라.

         

       먼지를 보라.

       어미 없이 탄생한 벼룩이 있다.

         

       썩은 고기에선 파리가 없어도 구더기가 들끓고.

         

       더러운 흙탕물에는 뱀과 닮은 물고기와 새우가 있다.

         

       자연의 이치가 짝을 이루어 태어난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거짓이로다.

         

       오직 믿어야 하리라.

       믿음만이 그대를 진리로 인도하리라.

         

       어미가 없어도 생물은 태어나고.

       아비가 없어도 산 것은 창조 되니라.

         

       오직 생명의 배(胚)가 진정한 근원이니.

       위대한 의지에 조각되고 형(形)을 이루어 만들어지는 것이 생명이다.

         

       믿으라.

       땀에서 벌레가 태어나고.

       그 생명이 조각되었음을.

         

       오직 믿으라.

         

         

         

        * * *

         

         

         

       “오, 오오?!”

         

       남자는 변해버린 자신의 몸에 환희했다.

         

       정신이 들자마자 보인 것은 더러운 뒷골목과 적막한 어둠.

       자신의 배에 손을 쑤셔 넣던 주술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주술사가 남긴 위대한 주술의 힘은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근육.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근육을 기르는 데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우락부락하고 탄탄한 근육.

         

       남자의 팔뚝은 통나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두껍고 탄탄해졌고, 울룩불룩 튀어나온 핏줄이 위압감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뿐이랴?

       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몸이 그랬다.

       뒷골목 쓰레기통 옆에 놓여있는 버려진 거울에는 보디빌딩 대회에서도 너끈히 1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육질의 남자가 비치고 있었다.

         

       목은 두껍고 강인해졌다.

       다리는 어지간한 여자 허리처럼 부풀었다.

       배에는 매끈한 복근이 자리 잡았다.

       탄탄한 흉근과 널찍한 어깨가 생겼다.

         

       “흐흐흐흐.”

         

       술배가 볼록 튀어나오고 근육보다는 물살이 많았던 예전의 몸과는 완전히 다른 몸.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지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선망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신체였다.

         

       “역시 대단하신 분이었잖아.”

         

       남자는 아까까지 혹시나 했던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평범한 몸을 근육질의 신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주술사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진짜 주술사.

       그것도 진짜 중에서도 대단한 실력을 갖춘 주술사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주술사에게 선택받은 사람이고!

         

       “만세!”

         

         

         

        * * *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야, 너 요새 몸이 달라졌다?”

         

       직장에선 누구든 그를 친밀하게 대했다.

         

       “어머, 저 사람….”

         

       여자들은 그를 매력적으로 보았다.

         

       “이야, 너 요새 푸드파이터 준비하냐? 아주 밥을 해치우는 수준이네.”

         

       매일 먹던 밥이 맛있어졌다.

         

       “이야, 어디서 쇠 냄새가 나나 했더니 이번엔 100원짜리였네.”

         

       운이 트였는지 돈이 점점 굴러들어왔다.

         

         

         

        * * *

         

         

         

       너무나 행복하다.

       근육 때문인지 몸이 너무나 가볍고 세상이 반짝거린다.

       몸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된다.

         

       자려고 마음먹으면 5초 안에 잠들고.

       뛰려고 하면 예열을 하지 않아도 몸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는 대신에 근육이 만들어진다.

         

       위대한 주술!

       주술의 위대한 힘!

         

       이제는 하늘 같은 형님도 두렵지 않았다.

         

       “야! 담배 좀 사 와라!”

       “옙! 아, 행님! 제 것도 하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뭐? 이 새끼 요새 싹싹해진 거 봐라? 오냐. 네 것도 하나 사라.”

         

       만나면 맨날 고개를 푹푹 숙이고 알겠습니다, 옙 밖에 하지 않았던 나날은 사라졌다. 남자는 병장에게 싹싹하게 애교부리는 상병처럼 유들유들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평상시라면 ‘이 새끼 빠졌네’라는 말과 함께 뒤통수를 후려 패고 기합을 줘야만 하는 일이었음에도 갑작스레 우락부락해진 근육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알지 못하는 요소가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했는지 귀여운 동생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넘어갔다.

         

       친구들에게도 큰소리를 떵떵 칠 수 있게 되었다.

         

       “야! 이거 봐라!”

       “워! 미친! 너 무슨 마공이라도 배웠냐?!”

       “마공은 무슨. 이게 바로 주술사님의 은혜라는 거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다.

       가오를 중요시하는 친구들은 갑자기 보디빌더 같은 근육을 가지고 나타난 남자를 선망의 시선을 바라보았고, 자기들도 주술사님을 만나서 그런 근육을 갖고 싶다고 성화를 부렸다.

       거기다가 혹시 주술사님이 사기꾼이 아니냐고 의심을 했던 그의 친구 역시 사과했다.

         

       “미안하다. 난 혹시나 해서….”

       “알아 새꺄! 내가 네 맘 모르겠냐! 나 걱정해줘서 고맙다!”

         

       남자는 대인배의 마음으로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질투가 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팔랑귀였던 남자를 걱정해서 한 말이다.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혹시 사과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주술사님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인정을 했는데 그걸 받아주지 않는 것도 쪼잔한 일.

       남자는 대신에 사발에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를 가득 따르고 친구에게 먹였다.

         

       “자! 벌주 들어간다!”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만든 폭탄주를 친구는 군소리 없이 꿀꺽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이후?

       퍼마셨다.

       친구들이 필름이 다 끊겨버리고 보다 못한 가게 주인이 ‘이만 나가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할 때까지 퍼마셨다. 술값으로만 무려 70만 원이라는 돈이 나올 정도였지만 남자는 필름이 끊기기는커녕 약간 알딸딸해지는 정도로 끝이 났다.

         

       돈?

       남자가 계산했다.

         

       비싼 돈이기는 했지만 요새 금전운이 트여서 기분 좋게 낼 수 있었다.

       금전운이 트인 이상 70만 원이 뭔가.

       100만 원, 1,000만 원, 1억!

       돈이 굴러들어올 텐데!

       주술로 뚫린 금전운이 자신의 통장을 배부르게 해줄 텐데 말이다!

         

       취미도 생겼다.

         

       미야-옹.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걸까?

       그는 애완동물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자신을 따르던 도둑고양이 한 마리를 방에 데려와서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먀옹!

         

       그가 데리고 온 고양이는 참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길고양이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얼굴에 흉터가 나 있고 다리 한쪽을 절뚝 절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다. 고등어를 연상하게 만드는 색을 가진 이 고양이는 까칠하고 주인 알기를 우습게 본다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애교가 많고 남자가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꼭 붙어 다녔다.

         

       “이런걸 개냥이라고 하던가?”

         

       운이 좋다.

       남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직장에서는 형님들에게 이쁨을 받고.

       집에 돌아오면 귀여운 고양이가 있다.

         

       언제든 만나서 술을 마실 친구들이 있고.

       여기저기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예쁜 여자들이 가득하다.

         

       이걸 행복하다 표현하지 않으면 뭐라 표현할까?

         

       남자는 주술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래서 남자는 주술사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주술사님. 이거 제 몸에 걸어주신 주술 이름이 뭡니까?”

         

       그러자 위대한 주술사님께서 답해주었다.

         

       “딱히 이름은 없다네. 하지만, 크-흐. 그래, 여기서 붙여볼까.”

         

       주술.

       남자의 인생을 바꿔주고 행복을 건네준 주술.

         

       그 이름은.

         

       “포자 둥지(gondii nidus)가 좋겠어.”

         

         

         

        * * *

         

         

         

       행복은 무엇으로 비롯되는가?

         

       혹자는 영혼의 충족이라 하겠다.

         

       이 영혼의 충족이란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어 허상을 잡고 그 형태를 마음으로 그리는 것과 같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존재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그것은 반드시 실재하며, 오직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붙잡아야만 한다.

       다만 이 그릇에 담긴 물은 투명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니, 이를 충족시키고 순수에 가까워진다면 반드시 진리에 가까워지며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하였다.

         

       혹자는 정신의 충족이라 하리라.

         

       고행.

       수행.

       육체를 괴롭히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직 정신만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

         

       정신의 힘은 참으로 나약하면서도 강대해서 그 성질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뜨거운 것도 뜨겁지 않게 만들고, 차가운 것도 차갑지 않게 만든다.

       한낱 정신 주제에 감각을 속이는 것을 넘어 그것을 현실에 적용되게 만드는 이 놀라운 정신의 힘은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물리법칙과 이능의 범주에서도 한없이 벗어난 이적을 발휘할 수 있으니.

       이러한 정신을 가졌다면 그 모든 것이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두 가지를 충족할 수 없는바.

         

       진성은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행복을 건네주었다.

         

       그 행복은 육신으로 비롯되는 것이나 모든 요소는 서로 연결되어 긴밀하게 영향을 주는 바.

         

       그것은 결과적으로 영혼과 정신이 충족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ॐ.”

         

       진성은 볼품없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를 보며 웃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