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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150 – 호각소리>

     

    경계는 강자의 인생이 담긴 고유기술이다.

    디스트로이어는 오래도록 자신이 감수해야 하는 수많은 의무와 중압감과 싸워왔다.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책감.

    허리를 펼 수 없는 자기반성.

    그럼에도 무릎만큼은 굽힐 수 없는 용사의 사명.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불완전했던 용사의 여정으로 인해서.

    그는 용사파티의 공식활동 이후에도 자신들이 지나쳤던 과거의 여행지를 다시 순회하며 전에는 못보고 지나쳤던, 눈 감고 외면했던 어둠과 직면했다.

    세상은 그가 알던 것보다 조금 더 어둡고, 잔혹하고, 처절했다.

     

    ‘그저 버티고 또 버티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한 이 한 걸음이 더 나은 세계를 향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용사파티에게 허용되는 초유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합법과 불법의 선을 넘나들었다.

     

    “지금 자네가 겪는 고통은 용사였던 내가 겪었던 고통과 다르지 않네. 자네가 현역시절의 용사에 비견될만한 심신을 만들지 못했다면 죽을 걸세.”

     

    조나는 과거 자신이 누렸던 권리는 모두 사라진 채, 책임과 의무, 그리고 고통만이 남은 경계의 시작점에 서서 도착점까지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나아갈 거리보다 뒤로 돌아갈 거리가 짧은 것은 당연했다.

     

    “힘겹지 않은가? 힘에 부치지는 않은가?”

    “이것이 현실이다.”

    “자네와 나의 격차는 이 정도로 막대하지. 직접 손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자비를 베풀고 있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은가?”

     

    험상궂은 얼굴과 집사복 아래로 드러나는 체형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남자는 평범한 집사가 아니다.

    재단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질 정도의 심상치 않은 저력을 보유한 인물.

    그렇지만 은퇴용사인 자신에게 비할 수는 없다.

    그 격차를 디스트로이어는 적극 이용했다.

    여기서 이 남자를 돌려보내면 오크노디와 재단 사이의 연결은 헐거워진다.

    몸이 멀어지는 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다.

    소원함 내지 야속함.

    약속한 면회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보호자보다는 매주 두 번씩 얼굴을 마주보는 교수가 심적으로 가까워지기에는 훨씬 더 쉽다.

     

    “마음을 박탈하고 유린하는 재단의 특기. 그대로 돌려주었지만 이겨낼 수 있겠는가? 멋대로 남을 휘두르는 입장에만 서왔던 자네들이.”

     

    힘을 남용하는 즐거움만 알 뿐, 부림당하는 고통은 모르는 족속들이.

    어리석게도 앞으로 발을 내딛은 집사를 조롱하고 멸시하며 그 마음과 의지를 꺾고자 독설을 아끼지 않고 퍼부었다.

    확신이 있었다.

    그런 비겁한 족속들에게는 이 복도를 지나갈 능력도, 자격도 없다고.

    이 남자는 자신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주제넘지만 전직용사의 말에 반박하는 무례를 범치 않을 수 없게 되었군요.”

     

    진즉에 물러나야 했는데.

    한계를 실감하고 걸음이 멈춰야했는데.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재단은 재능은 있지만 기회는 지니지 못한 가엾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를 제공하는 자선단체입니다.”

     

    그 기회를 손에 넣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가씨’들이 폐기되었다고 해도.

     

    “저희는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기꺼이 무릅쓸 용의가 있습니다.”

     

    그 처분을 아가씨를 기른 장본인들에게 시키는 비정하고도 잔혹한 조직이라고 해도.

     

    “재단의 행보가 불편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저희가 개입하지 않았을 삶에 비하면 기회라도 제공받은 아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바스러진 재단의 말단들에 비하면 너희는 행복한 것이라고, 그런 소리를 아가씨들에게 일삼았던 자신이기에.

    한때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며 그녀들의 몰락을 인적상품의 하자로만 여겼던 자신이기에.

     

    “그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라면, 재단의 대리인이자 오크노디의 보호자인 저 조나 와이히엠하이는 기꺼이 전직용사의 시험에 응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후회는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불쾌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사내로군. 이런 남자의 충성을 산 조직이라면 내 정보원들의 연락이 끊기는 것도 당연한가.”

     

    조나의 기백과 각오, 의지는 분명하게 전해졌다.

    전직용사는 인정했다.

    자신의 앞에서 이만큼이나 당당할 수 있는 사내는 전 세계를 뒤져보더라도 열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적어도 지나온 시간.

    그가 겪어왔던 두 차례의 용사로서의 여정.

    그 도중에도 이자만큼의 기백을 지닌 이가 모두 합쳐 열 명을 넘지 못했다.

    인정한다.

    조나 와이히엠하이.

    일개 ‘아가씨’의 집사로 있기에는 지나치게 강한 남자다.

    그것이 도리어 역설적으로 오크노디의 특별함을 증명한다.

     

    “적당히 봐주며 넘어갈 수는 없는 사내인가. 쉽게 가는 길은 여기까지로 해야겠군…”

     

    디스트로이어의 입에 물린 풀잎이 반으로 접혀 떨어졌다.

    맞닿은 지면이 수면으로 변화한 것처럼 물결치며 복도에 입력되었던 변형술식을 발현한다.

     

    <이중경계 변형술식>

    <트리거 개방>

    <제 2형 – 짓누르는 시선의 경계>

     

    그는 손 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범인은 맞닿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날아갈 정도로 폭압적인 기세를 뿜어내며 망토를 흩날리고 있을 뿐.

    그런 그의 시선에 닿는 것만으로도 조나는 몸의 일부가 찌그러지며 수축되는 고통을 인지했다.

     

    <마나연공법>

    <철갑기공>

    <호신기 – 은산철벽銀山鐵壁>

     

    금속을 변형하여 아가씨의 훈련을 돕는 중량도구에 사용했던 금속조작술.

    특유의 기술을 자기방어에 사용하여 시선의 압력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냈지만 조나의 표정은 결코 밝지 못했다.

     

    교환비가 나쁘다.

    마나의 가성비는 사용자의 심지에 달렸다.

     

    도시 하나가 모조리 짓밟히는 참사를 실제로 겪은 전대용사에게 시선만으로 누군가를 짓누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의 마나로 100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조나, 그라고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집에 가까운 자기신념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자신의 맹세를 지킨 기간이 길수록 더욱 견고하고 오래 가는 방어술의 마법.

    1의 마나로 능히 30의 위력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억지로 출력을 올려 100의 위력까지 막아낼 수 있도록 즉석에서 개조해내었다.

     

    하지만 정석적인 운용이 아니기에 코스트가 높다.

    위력상승으로 소모되는 마나는 1이 아닌 10.

     

    10배 불리한 싸움.

    그것에 ‘눈’과 ‘전신’이라는 면적차이가 더해지는 순간, 양자 간의 교환비는 1 대 10을 넘어서 1 대 1000을 아득히 돌파한다.

    디스트로이어의 여력은 아직도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한참 남았다.

    과연 전설적인 용사의 여정에 함께 했던 사내다운 어마무시한 저력이다.

    지켜야 할 것이 부와 명예, 자신의 체면과 일신의 성공 따위였다면 진즉에 포기하고 굽혔을 정도로 마음이 꺾이는 강함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가 짊어진 것은 그딴 하찮은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거야. 조나도, 리프도. 모두 날 돕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그런 시간을 멋대로 도망치며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아.

     

    겉으로는 해맑게 웃지만 낯선 환경에의 두려움을 느꼈는지 떨리던 손등을 기억한다.

     

    -파파와 재단이 무얼 원하는지는 몰라도 저는 강해요. 그리 간단히 제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는 힘들 거예요. 저는 계속 강해질 거니까!

     

    누구보다 불안해야 할 아이가 어른인 자신을 위로하며 격려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 실상은 조금만 혼자 있어도 옷장이나 커튼 뒤에 숨어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상처 많은 과거를 지닌 겁쟁이 꼬마에 불과한데도.

    재단도 아카데미도 똑같다.

    모두 아가씨의 재능을 알아보고 힘을 개화시켜 자신들의 뜻대로 부려먹기를 바랄 뿐이다.

    정의.

    악덕.

    무엇을 위해서든 상관없다.

    어차피 이용당하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그런 아가씨가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있다면, 그것이 자신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그는 기꺼이 안식처로 남아있기를 자처할 수 있다.

    천 배의 손해를 감수하는 교환을 앞두고도, 걸음마다 내장이 진탕하며 속이 뒤틀리는 고통이 전해져도.

     

    “저는 오크노디 아가씨의 집사입니다.”

     

    쿵.

    바닥 타일이 깨지며 산산조각 날 정도로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다.

    조나의 한 걸음.

    그 묵직한 결의는 디스트로이어의 마음에도 분명히 전해졌다.

    입가에서 피가 흘러도.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려도.

    험상궂은 얼굴은 결코 고통 앞에 타협하지 않는다.

     

    ‘죽일 수는 없다. 면회를 하러 온 보호자를 죽여서야 아카데미에서 쫓겨나는 것은 확정이겠지.’

     

    그러니 이것은 협박이다.

    목숨을 움켜쥐고 위협하는 것은 디스트로이어였는데.

    조나의 기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진이.

    역으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재단의 일개 집사와 전직용사의 교수직을 교환할 수 있다면 해보라고.

    당돌한 협박 앞에 디스트로이어는 힘의 출력을 낮추는 대신, 가늘게 떴던 눈을 있는 힘껏 부릅뜨며 전력을 다해 그를 찍어 눌렀다.

    저항할 의지조차 남지 못할 정도로 기절시켜주마.

     

    <전력개방>

    <맥시멈 와이드 아이즈Maximum wide eyes>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할 초당 1만 배 이상의 마나소모를 강요하는 폭압적인 소모전.

    의도대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내몰린 집사가 걸음을 휘청거리는 순간이었다.

     

    삐이익─ 삐익─!

     

    호각소리가 울렸다.

    이중경계에 의해 차단된 복도에서는 들릴 리도 없고 들려서도 안 되는 외부의 소음.

     

    “경계에 틈이 생겼다고? 그럴 리가. 침입자는 분명 없었을 텐데!”

     

    뒤를 돌아보는 디스트로이어의 눈에 크게 눌라 움찔 몸을 떠는 반투명한 형상이 보였다.

     

    파칭!

     

    시선이 닿고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깨지는 은신.

    그 너머로 드러나는 아카데미 1년생의 교복을 입은 검은단발의 여학생의 모습.

    상급은신술을 지닌 즈앙이 침입한 경로를 따라 완벽했을 경계에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면회동 저 안에서부터 소리가 새어나왔다.

     

    ‘기껏해야 소리 하나다. 균열이 생긴 건 자존심이 상하지만 저깟 것 하나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하지만 그는 몰랐다.

     

    “!!”

     

    금방이라도 꺾일 것처럼 휘청거리던 한 사내가 어느새 그의 옆을 지나칠 수 있었던 이유를.

    조나가 휘각소리의 주인이 오크노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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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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