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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마왕은 죽어도 다시 조롱하듯 되살아나 용사파티를 압박했으며, 불사의 마왕은 이겨낼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검성은 이번 실패에 이를 악물며 말했다.

         

       “후퇴하는 게 어떤가.”

         

       마왕은 점점 무한에 가까운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하다못해 초월자조차도 되지 못한 아르갈이, 초월에 맞먹는 힘을 발휘했는데, 한 마도의 정점이라 불리는 마왕이 불사자가 된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이었다.

         

       용사는 자신의 한계로 무한한 힘을 퍼붓고 있는 마왕의 힘을 따라가지 못했고, 그러기에 용사파티는 점차 무너지고 있었다.

       아셀은 피로와 고통으로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프랑은 가혹할 정도의 가속 연산으로 머릿속이 뜨겁게 익어갈 지경이 됐다.

       용사의 전신에는 신성력마저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투성이가 됐고, 검성은 치명적인 상처만을 겨우 피했다.

         

       그나마 앞서 싸우지 않는 베시아만이 멀쩡히 마왕과 맞서며, 마기에 우세를 지니는 성력으로 어찌 버티고 있었지만, 마땅히 유리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발걸음이 떨어지는 이는 누구 하나 없었다.

       용사파티가 여기서 도주한다면? 이 대륙에는 얼마나 커다란 참사가 생기겠는가.

       마왕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얼마나 큰 지옥을 펼쳐지게 하는가.

         

       그것이, 이들을 이 자리에 남아있게 했다.

         

       “아르갈, 아직 대답이 없어요?”

         

       프랑이 애처롭게 아르갈을 부르짖는다.

       똑같은 불사자인 아르갈이라면 어떻게든 수단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딱히 활로가 없는지 대답이 돌아오질 않고 있었다.

         

       마왕은 이 주변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 셈인지 계속해서 마기를 쏟아붓고 있었으며, 용사파티는 점점 지독한 마기 중독으로 거의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둘씩 피를 토했고, 마왕이 쏟아내는 공격을 이겨내질 못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점차 알고 있었다.

         

       전멸이다.

       전멸이 머지않았다.

         

       “도망가, 너희들 뭐해!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거야?!”

         

       그나마 성녀로서, 마기의 침식에 저항력이 강했던 베시아가 점차 흐릿해지는 이성을 일깨우는 목소리를 냈지만, 그녀도 모를 수 없었다.

       이미 늦었다.

       도망칠 여력이 없는 건 아니다.

       하나하나 초월자였던 만큼 육신이 썩어들어간다 해도, 억지로 몸을 움직여 먼 거리로 도망칠 힘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적이라 할 수 있는 마왕은 강력했다.

       그것도 죽지도 않는다.

       마왕이 작정하고 쫓아온다면, 대륙 끝까지 도망쳐야 할 가능성까지도 있었다.

       초월자와 싸우는 영역에서 도주는 함부로 선택할 만한 게 아니다.

       상대도 초월자였고, 아무리 먼 거리로 간다고 해도 끝까지 따라올 실력이 있었다.

         

       아니면 정말 작정하고 한 명의 희생을 각오하고 흩어져서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선택하겠는가?

       불사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미지수를 믿고 끝까지 싸우느냐, 차라리 도망쳐서 훗날을 도모하느냐란 이지선다를 강요받고 있었다.

         

       용사는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처구니없었다.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을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그녀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아무리 목을 베어내도, 죽지 않는 적.

         

       신의 가호가 있더라도 이겨낼 수 없었다.

       필사를 다 해도 극복할 수 없다.

       저 불사의 힘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으므로 더더욱.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이때.

       이 무너지고 마기로 점철된 곳으로 걸어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한 명은 오필리아이며, 또 다른 한 명은 아르갈이었다.

         

       “아르갈…!”

       “…위험해, 여긴 마기가 너무 많아.”

         

       몇몇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아르갈을 보며 걱정했다.

       오면 안 된다.

       마왕을 이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악연이나 다름없는 아르갈하고 마왕이 마주하면 어떤 결과가 펼쳐지겠는가?

         

       용사의 머릿속에는 이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모두의 죽음을 걸고 아르갈의 희생을 강요했던 그 끔찍했던 상황이.

       용사마저도 등을 돌려 아르갈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마기가 자욱한 한때 마왕성이었던 자리로.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가득했던 마기가, 아르갈의 주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

         

       모두가 의아함을 느낀다.

       당장이라도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아르갈만이 안전했다.

       모든 걸 부숴버리겠다며 날뛰던 마왕은 다가오고 있는 아르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왔구나.”

         

       그녀는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르갈 역시도 담담한 표정으로 마주 봤다.

         

         

       **

         

         

       역시 마왕은 알고 있다.

       여기서 날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주변을 좀먹던 마기가 신기할 정도로 나를 비껴가는 걸 보며 느꼈다.

         

       뭐, 사실 죽이더라도 상관없었다.

       그걸로 마왕의 불사가 풀린다면, 나는 크나큰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작정이었다.

         

       마왕은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와중이다.

         

       그러던 와중 검성이 한 마디 내뱉는다.

         

       “마왕이 천칭으로, 널 올려놓은 거였군.”

       “맞다.”

         

       마왕의 천칭은 공개된 능력이었다.

       그래야지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칭의 절대적인 규칙을 알리고, 거래하며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이득을 보았는가.

         

       단지 능력의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잘 모르기야 하겠지만, 완전히 나의 능력과 같은 부활을 보여주던 마왕의 모습으로 추측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검성은 그 추측을 해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내가 줄곧 하려고 했던 행동을 입에 담았다.

         

       “그렇다면 네가 죽는다면, 그 천칭은 무효화 되는가?”

       “아마도.”

       “참으로, 아이러니하구나.”

         

       검성은 곧 눈을 감았다.

       나보고 죽으라는 뜻도, 죽지 말라는 뜻도 비치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그런 한 마디였다.

         

       그의 한 마디가, 잔잔한 수면에 퍼져나가는 파도처럼, 주변인들에게 이어졌다.

       말의 의미를 단번에 못 알아차릴 정도로 멍청한 이는 여기엔 없었다.

       프랑의 두 눈이 크게 뜨였고, 용사는 충격에 검을 놓았으며, 라엘리는 기겁하며, 베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아셀은 천천히 나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도…. 죽는 거야?”

         

       과연, 비슷한 그림이구나.

       이번에도 똑같이 내가 죽어야만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었다.

         

       오히려 또다시 희생해야 한다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아셀은 여전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마기에 침식되어 신체 일부분이 감각을 잃었고, 마왕과의 사투로 상처를 입은 그녀가 내 앞에 닿는다.

         

       “그렇게 또, 죽을 거야?”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면.”

         

       아셀의 두 눈에, 멍하니 눈물이 흘러나왔다.

       원래라면 그녀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완전한 죽음과 동시에 마왕을 끝장내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그냥 죽기보다는 작별을 위해서 이곳에 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왜 그녀의 슬픔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건가.

         

       “왜, 대체 왜. 마지막까지….”

         

       눈물이, 곧 울음이 됐다.

       물컵이 엎질러지는 것처럼 그녀의 두 눈에는 물기가 쏟아졌다.

       감정이 흐트러지고, 무너져내린다.

         

       “아르갈은 죽어야 해?”

       “모를, 일이지.”

         

       아셀은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렇게 붙잡은 손으로, 한창 울음으로 가득한 뺨 위에다 올려놓는다.

       그녀의 차가운 피부가, 부드러운 감각이 느껴진다.

       그 위에는 흐르는 물기가 잔뜩 묻어났다.

         

       “안 돼, 안 된다고.”

       “나는….”

       “절대로 죽으면 안 돼 아르갈, 어떻게 다시 살아서 돌아왔는데, 또 이렇게.”

         

       아셀은 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몸부림친다.

       모두가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을 때, 아셀이 어두침침한 검은 눈이, 흐릿한 두 눈이 날 또렷이 향했다.

         

       “죽으면, 안 돼.”

       “나도….”

       

       어찌하여 그냥 죽지 않고 이곳으로 왔겠는가.

       

       이렇게 변수가 생길 줄 알았음에도 여기로 작별을 위해 왔는가.

       

       그녀의 고집에.

       그녀의 행동에.

       그렇게 파르르 떨리는 작고 여린 뺨의 온기로.

       

       나는 내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토록 쫓아왔던 길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

         

       실은 정말 바랐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가.

         

       이루지 못해서 복수심을 품었다.

         

       그러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인정하겠다.

         

       나는 지금….

         

       “죽고 싶지 않다.”

         

       죽기 싫었다.

         

       불사의 끝에서.

         

       진정 아름다히 목숨을 놓을 길 끝에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기 싫었다.

         

       “네가 그렇게 날 만들었구나.”

         

       헛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미련을 놓으며, 아셀의 머리카락 위에 손을 올려둔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본다.

         

       “너희가 날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왕을 바라본다.

       그녀는 마치 가장 원했던 결과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찌하여 가만히 두었는가.

       내가 마지막까지 죽지 않도록, 나의 동료들이 발목을 잡게 만들려 했다.

         

       나의 대답에 모두가 놀랐다.

       충격에 가만히 있던 프랑과 라엘리마저 눈물을 흘리며 훌쩍거렸다.

       아셀은 자신의 노력에 보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날 끌어안고서 오열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결과를 바꿔야겠지.

         

       “마왕.”

       “불렀나?”

         

       나는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젠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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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Die, Can I?

I Can’t Die, Can I?

나 안 죽는다니까?
Score 3.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betrayed by the Demon King and returned to the past.

To get revenge, I sacrificed my worthless life to save the lives of the Hero’s companions.

But they became obsessed with protecting my one and only life,

even the Hero herself.

This is the copyrighted cover art from Novel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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