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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논검을 하기에 앞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었다.

       

        지식을 겨루는 논검의 경우, 답이 정해져 있다. 가령 ‘1 더하기 1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답은 2다. 다른 대답은 오답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3이라고 답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논검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또한 공정하여야 한다.

       

        한 사람이 오답을 고집하는 것을 고려해 심판을 봐 줄 만한 제삼자가 필요하다. 다행히 연회장에서 학식 있는 화계마도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레너윌은 곧 에테르 앞으로 한 남자를 데려왔다.

       

        “아이고, 이거. 에테르 아니냐?”

       

        크롬웰 살리에르 백작. 로테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자, 에테르의 연구 후견인.

       

        백작은 에테르를 보자마자 달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레너윌은 한 번 더 당황하고 말았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하하, 이것 참. 제 딸아이 친굽니다.”

       

        살리에르 백작은 에테르와 든든한 악수를 나누었다. 살가운 태도. 레너윌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내가 이 아이와 논검을 하려고 하는데….”

        “공작님께서 말이십니까?”

        “그렇네.”

        “저는 이 아이와 구면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논검에서 심판자는 중립을 취해야 한다. 사실을 말하는 데 심판조차 틀릴 수 있었으니까. 만약 한쪽 패널과만 친분이 있다면 편파 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레너윌은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뭘. 자네 성품이 바르다는 건 하늘이 아는 일인데.”

       

        살리에르 백작은 정령마도사다. 비록 미약했지만, 화계마도의 정령에게 축복받았다. 

       

        정령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뛰어나고 어진 성품을 지닌 이. 거짓말을 쉬이 못 하고 모든 자에게 진솔하게 대하는 이. 행동거지가 바르고 정도를 추구하는 이. 그런 이에게만 여신께서 정령을 하사하신다.

       

        “하하….”

       

        살리에르는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칭찬조차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직후. 백작의 시선이 에테르에게로 향한다.

       

        “저기, 그나저나 메이드복은 왜 입고 있는 거니?”

        “그게. 사정이 있어서요.”

       

        에테르는 말끝을 흐렸다. 내색하려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워하는 반응이다. 여름방학 땐 밋밋한 모습만 보여주더니. 의외의 모습에 살리에르 백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딸아이도 저랬지.’

       

        그러다가 곧 생각을 정리했다. 자고로 숙녀의 비밀은 지켜줘야 하는 법. 대답을 꺼리는 경우에는 굳이 파고들지 않는 것이 좋다. 크롬웰이 애 아빠가 된 이후로 뼈저리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잘 어울리는구나.”

       

        이럴 땐 일상적인 칭찬으로 넘어가는 게 상책이다. 크롬웰은 평소 로테에게 하던 대로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뭔가 상황이 안 좋아졌다.

       

       

        **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논검은 해야 한다. 당사자 둘이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논검은 문무를 동시에 갈고닦을 수 있는 존귀한 의례. 중대나 근세에 살았던 높으신 분들은 매일같이 논검을 했다. 현대에 이르러 그 빈도가 줄었지만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특히나 공작 정도의 고위공직자가 하는 논검은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거리였다.

       

        “하스펠트 공작님께서 금안족 시종과 화계마도 논검을 펼친다는 게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구석진 곳에서 몰래 하려고 해도 사람이 모인다. 마치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는 듯이.

       

        그럴 수밖에 없다. 귀족이라고는 하나, 본질은 사람. 원래 남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두 분 모두 종이와 펜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에테르와 레너윌은 급히 마련된 탁자에 둘러앉았다. 각자의 앞에는 종이 열 장과 만년필 한 자루가 있다. 종이와 만년필을 보던 에테르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가요?”

        “학문에 관한 논검이잖니. 계산이나 스크롤 그릴 때 편하라고 주는 거란다.”

        “허어.”

       

        에테르는 침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동안 레너윌은 종이에 몇 자 적으며 만년필 상태를 점검했다. 손에 착착 감기는 필기감. 오늘 기운이 좋다.

       

        반대편에서 준비를 하는 동안, 에테르는 주변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훑었다. 꽤 많은 귀족이 와 있었다.

       

        그중에는 당황하는 얼굴도 보인다.

       

        로베스피에르 후작. 그리고 메리가 헤를라인 백작.

       

        격식 있게 말하면 그런 사람들이고, 평소에는 아카데미 이사장과 담임 선생님이다. 두 사람 모두 ‘왜 네가 거기서 나와’라는 듯한 표정이다. 에테르는 씩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논검 규칙은 간단합니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문제를 출제합니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명료한 답이 있어야 하며, 제한 시간 내에 답을 내지 못하거나 오답을 말하는 경우에는 점수를 차감합니다.”

       

        기본 점수는 3. 여기서 더 올릴 수는 없다. 먼저 0이 되는 사람이 질 뿐.

       

        “단, 후공을 하는 사람은 먼저 0이 되었다 할지라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집니다.”

       

        이는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규칙이다. 그것 외에 다른 복잡한 것은 없다.

       

        그저, 머리 좋은 쪽이 이기는 싸움.

       

        “저기요, 우리 그냥 하는 것도 심심한데 돈을 좀 걸면 어떻겠소?”

        “그거 좋은 생각일세!”

       

        이런 싸움에는 꼭 노름꾼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도박꾼 기질이 다분한 몇몇 귀족을 시작으로 논검장은 순식간에 현금 매매처… 즉 도박장이 되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본 에테르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신성한 논검? 웃기는 소리.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부추기는 연놈이 있으면 몰라.

       

        논검이 시작되기 전. 에테르는 어느 귀부인의 빗장뼈 사이를 문득 쳐다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쪽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저 아지매는 왜 트랜지스터를 목에 차고 돌아다니는 거야?’

       

        인플레이션으로 마석 값이 집값이라는 건 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테르는 봇물 터지듯이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본격적인 흥정이 오갔다. 누구에게 베팅할 건가. 아무래도 레너윌이 좋지 않겠느냐. 하지만 저 시종은 플레어를 개발했다고 들었다. 헛소리! 누가 그러던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여야지. 어휴, 자네들 알아서 하게.

       

        수많은 노름꾼의 목소리가 귓전을 왱왱 울린다.

       

        “그래도 역시 공작 쪽이 낫겠지.”

        “제국에서 제일가는 화계마도 가문이잖아요.”

       

        최종 비율은 9대 1. 에테르 쪽이 역배다. 한탕주의자들의 든든한 뒷심을 받는 게 영 달갑진 않다.

       

        “로베스피에르 후작께선 역시 이사장이신가 봐요. 학생 편을 다 들어주시고.”

        “저뿐만 아닙니다. 헤를라인 백작이나 카이뤼삭 남작님도 저 소녀에게 걸었죠.”

        “어머, 돈만 잃으실 텐데 괜찮겠어요?”

        “겜블링은 그 맛에 하는 겁니다.”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에테르는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후우.”

       

        그리고 한숨.

       

        “걱정되나?”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 논검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저, 레너윌은 눈앞에 있는 소녀의 역량을 확인하고 싶었다.

       

        플레어? 제아무리 금안족이라지만 그런 어려운 마도를 불과 1개월 안에 만들 수는 없다. 틀림없이 딸의 기여가 있었으리라.

       

        ‘여기서 이기면….’

       

        플레어는 돌아오지 못할지언정 딸과 가문의 명예는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티잉! 동전이 던져진다. 공중을 체류하던 동전이 손에 훽 채인다. 앞면.

       

        “공작님이 먼저십니다.”

       

        레너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좋아.’

       

        단번에 밀어붙인다. 아카데미 1학년생 상대로는 너무하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플레어 얘기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논검, 벌이지도 않았다.

       

        레너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플레임 월의 스크롤 구축식을 그려보거라.”

       

        ‘플레임 월’. 높다란 불의 장벽을 만들어내는 상급 화계마도. 1학년이 그리긴 어려웠지만, 최상급 마도인 플레어를 개발할 실력이라면 눈 감고도 그려야 한다. 실제로 클라이스는 1학년부터 웬만한 상급 화계마도는 익히고 돌아다녔었다.

       

        “…….”

        “왜 그러느냐? 어서 그리지 않고.”

       

        에테르는 한 손을 턱에 괸 채로 펜을 굴렸다. 고사리처럼 여린 손에서 만년필이 기교 있게 구른다. 펜 뚜껑은 따지 않은 채였다.

       

        “넘기겠습니다.”

        “…그래?”

       

        아주 잠깐. 레너윌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곧 안도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소녀의 실력은 과장되었다. 플레임 월 하나 못 그리면서 무슨 플레어를 만들겠다는 소리인가?

       

        팔락. 에테르의 기회가 3에서 2로 변한다. 0이 되고, 그 상태에서 한 번 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진다. 

       

        “이제 학생 차례네.”

        “어음…. 고전화염학에서 결정의 비열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말해보세요.”

       

        쉽다.

       

        “마소상수의 세 배.”

        “정답입니다.”

       

        1학년이라 그런가. 같은 학년이 답할 수 있는 수준의 질문을 했다. 그 탓에 기고만장해진 레너윌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어깨를 폈다. 흡사 코브라와도 같은 자세.

       

        “다시 내 차례군. 서로 크기가 같은 루비와 가넷, 토파즈를 직선 회로에 일렬로 연결했을 때 각 마석이 잡아먹는 마력손실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말해보게.”

       

        이번엔 수준을 조금 낮춰서 3학년 수준. 여전히 어려웠지만, 선행학습을 조금만 하면 맞출 수 있는 암기형 문제다.

       

        “단, 왜 그런지에 대한 간략한 증명을 포함할 것.”

       

        레너윌의 덧붙인 말에 무언가를 말하려던 에테르는 입을 다물었다. 그 변화를, 레너윌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건 이겼다.

       

        “넘어가겠습니다.”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어떻겠나?”

       

        승패는 명확하다. 그러나 항복을 권고하는 레너윌 앞에서 에테르는 미묘한 웃음을 띠었다.

       

        “중요한 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말고사 + 잔병치레로 인해 죽을 맛이군요..
    어제오늘 링거를 맞았는데도 몸 가누기가 며칠 전만 못합니다.

    빨리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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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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