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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아그네스와 정령 친화 강의에서 파트너가 된 날로부터 2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그녀와 함께 듣는 이 정령과의 소통 수업도 벌써 3번째 시간이 되었다.

         

         

        “자, 여러분~! 오늘은 실전에서 한 번 정령을 만나보는 시간을 갖도록 할 거예요~!”

         

        “““네~!”””

         

         

        마치 유치원생을 인도하는 것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인도하는 정령학 수업 여교수, 에린 에실다.

         

        그런 그녀의 말투 때문인지 수업을 듣는 학생들까지도 일부 그녀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저래 보여도 나이는 이 아카데미의 어지간한 교수들보다 많겠지. 애초에 풀링(요정족)과 인간의 혼혈이기도 하고.

         

         

        첫날 에린 교수의 수업 커리큘럼에서 들은 내용대로라면, 이 수업에서 성적을 얻는 방식은 간단했다.

         

        기존에 정령과 계약하지 못한 상태의 학생들은 일단 어떻게든 학기 내로 하급 정령과 계약하는 것.

         

        그리고 이미 정령과 계약한 계약자들은 기존 정령과의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였다.

         

        친밀도가 높아졌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저 에린 교수의 주관이 개입하게 될 테고.

         

        반은 요정족이라 하급 정령들하고도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능한 교수였으니 성적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겠지.

         

         

        ‘내 경우에는 어차피 샐리와 의사소통이 되니까 상관없지만.’

         

         

        근데, 나는 딱히 샐리랑 계약도 안 했는데 내 성적은 어떤 방식으로 측정되는 거지?

         

        뭐, 에린 교수가 알아서 하겠지. 내가 채점 기준까지 정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참고로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지 어떤 정령과도 계약하지 못한 학생은 이 ‘정령과의 소통’ 강의에서 최하점을 받는다.

         

        뭐, 이 과목의 이름부터가 정령과의 소통인데 소통할 정령을 못 구한 시점에서 당연히 아웃일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은 정령이라는 존재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도 있으니, 오늘은 우선 정령이라는 존재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해보도록 할게요~!”

         

        “““네~!”””

         

        “원래 정령들은 평소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을 뿐,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존재들이랍니다~! 아카데미 안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라서 정령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제 비밀 정원에는 많은 정령이 있으니 직접 만나보고 정령과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게요~!”

         

        “교수님! 혹시 아직 정령 계약을 하지 못한 사람은 만나는 정령과 계약해도 되나요?”

         

        “정령 쪽에서 원한다면 가능하답니다~! 하지만 제 정원에 있는 정령들은 대부분이 중급 이상의 정령이라서 그리 쉽지는 않을 거랍니다~!”

         

         

        지금 이 수업을 듣는 30명의 학생 중 중급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마력 최대량을 가진 사람은 기껏해야 네댓 명 정도.

         

        그중에서도 어지간한 애들은 이미 하급 정령과 계약을 한 상황이었으니, 실질적으로 중급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는 건 나와 아그네스 정도가 전부였다.

         

        이전에도 말했듯 나와 샐리는 계약 관계가 아니라서 새로운 정령과 계약하는 데 전혀 지장을 끼치지 않기도 했고.

         

        뭐, 애초에 내 목적은 새로운 정령과 계약하기 위함이 아니고 샐리와 조금이나마 더 친밀도를 쌓기 위함이었으니 계약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중급 정령, 이론상으로는 충분해. 말도 안 통하는 하급 정령보다는 차라리 조금이나마 말이 통하는 이쪽을 시도하는 쪽이….”

         

         

        …문제는 내가 아니라 정령에 대한 집착이 강한 저 아그네스 쪽이겠지.

         

        하급 정령한테도 무시당하는 주제에 이론상 중급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번 학기의 아그네스는 정령 계약을 하는 것부터가 상당히 난관이 될 예정이었다.

         

        차라리 그녀 혼자 고생하고 끝나는 거라면 나도 아그네스가 뭘 하든 신경 안 쓰고 넘어가겠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이 망할 교수가 나와 아그네스를 파트너로 지정한 것에 불만을 품지도 않았겠지.

         

         

        파트너의 수업 성취도도 당연히 평가 기준에 들어간다.

         

        그것도 전체 성적의 30%라는 적지 않은 비율로 들어가는 만큼 내가 아그네스의 성적이 나락으로 가는 걸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다행히 아그네스에게 1학년이 끝나기 전 정령을 쥐여주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게임 속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지.

         

         

        ‘애초에 내가 아그네스를 공략했을 때는 정석 루트로 공략하지도 않았고.’

         

         

        작정하고 아그네스 순애 엔딩을 보려고 공략하려면 일단 마법부에 입학하고, 거기에 더해 1학년 1학기 기말 평가전에서 아그네스를 이기고 난 후, 본격적으로 투덕투덕하며 경쟁 구도로 들어가는 게 내가 아는 가장 정석적인 공략 방법이었다.

         

        그러니 아마 아그네스에게 정령을 붙여주는 이 정령과의 소통 강의도 아그네스파 애들이라면 손쉽게 클리어하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서 이 강의를 들은 게 사실상 최초였으니.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전생에서 아그네스를 이성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공략도 어쩌다가 우연히 대형 호감도 이벤트가 클리어된 김에 모든 히로인 공략이나 해보자면서 해본 느낌으로 해본 거고.

         

         

        ‘뭐, 지금은 하기 싫어도 공략해야 하는 운명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 이상 당연히 허투루 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되어버린 거 확실하게 1학년이 끝나기 전 그녀에게 정령 한 마리를 붙여주는 수밖에.

         

        아그네스 공략법은 몰라도 정령 공략법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매력이 바닥을 기는 아그네스라도 내가 시키는 대로만 잘 따라 한다면 못할 리가 없었다.

         

        …물론, 이미 첫날에서부터 별로 좋지 못한 인상으로 시작한 이 녀석이 내 말을 잘 들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령과의 계약이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블레이즈 씨.”

         

        “…….”

         

        “조바심을 갖지 않고 차분하게 정령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정령은 알아서 따라오기 마련이랍니다.”

         

        “…….”

         

        “그리고 처음부터 중급 정령을 노리겠다는 식으로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정령 친화도가 낮은 아그네스에게는 어차피 시간 낭비나 마찬가지….”

         

        “…쫑알쫑알 참견이나 하고 시끄러워.”

         

        “…네?”

         

        “정령 계약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너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내 일이니까 네가 참견할 이유도 없잖아.”

         

         

        …이유가 없긴 왜 없어. 네 성적이 내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니까.

         

        하여간 누가 이기적인 년 아니랄까 봐 뼛속까지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가득했다. 게다가 본인 주제도 모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지가 마법 좀 잘 쓴다고 정령까지 잘 다루는 만능 엔터테이너인 줄 알아.

         

        내 인내심이 좋은 편이라 다행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저렇게 아니꼬운 태도로 나를 대한다고 한들, 나도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조바심 품고 정령들에게 접근해봤자 쟤들도 다 안다니까요. 정령과 계약할 때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하게 다가가는 게 중요해요. 블레이즈 씨처럼 대놓고 필요해서 계약하겠다는 욕망을 대놓고 드러내고 다니면 정령 쪽에서도 당연히 거리를 벌리고요.”

         

        “고위 정령이라면 몰라도, 중급 정령까지는 괜찮아.”

         

        “인간이 자신에게 어떤 기척으로 다가오는지는 하급 정령이어도 눈치채요. 애초에 중급 정령까지는 괜찮다고 말하는 블레이즈 씨의 근거도 뭔지 모르겠는데요. 정령들도 눈이 있지 아무 생각도 없이 블레이즈 씨랑 덥석덥석 계약할 것 같아요?”

         

         

        “…무슨 의미야?”

         

        “정령들도 자신들의 보는 선에서 미의 기준이라는 게 있다는 뜻이에요. 단순히 마력 총량만 많다고 정령과 쉽게 계약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물론 마력의 최대량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소통이 더 원활해지니까 계약이 쉬워지는 건 맞지만, 애초에 그 이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

         

        “지금 정령들의 시선에서 블레이즈 씨는 마력은 굉장히 구린 냄새가 나는 음식처럼 느껴질 거에요. 꾹 참고 한 입 먹어보면 맛있다고 느낄 정령도 있겠지만, 그 한 입을 먹게 하기부터가 쉽지 않다는 얘기에요. 최소한 정령들이 호기심이라도 느끼게 하려면 그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 같은 태도부터 고칠 필요가….”

         

        -타다닥!

         

        “자, 잠깐만요, 블레이즈 씨! 갑자기 어디 가요?!”

         

         

        잠깐이나마 얌전히 내 말을 듣고 집중하는 것 같더라니, 이번에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서 멀어지는 아그네스.

         

        도저히 행동 원리를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어이없음을 느끼고 쫓아가려는 순간 이번에는 샐리 쪽에서 갑자기 다급하게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릴리스, 릴리스! 저기, 저기 봐봐!!’

         

        “왜요, 샐리. 전 지금 아그네스한테 현실을 일깨워주러 가야 하는….”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저기 좀 보라고오~!!’

         

        “저기 뭐가 있는데 그래요?”

         

         

        누가 화염 정령 아니랄까 봐 타오르는 불꽃처럼 온갖 호들갑은 다 떨면서 나를 불러대는 샐리.

         

        그런 그녀의 성화에 못 이겨 조용히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전생에 게임 속에서 많이 목격한 종류의 정령이 한 마리 움직이고 있었다.

         

        얇고 반투명한 옷을 걸친 작은 여자아이가 마치 흘러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공중을 천천히 떠다니는 모습.

         

        그 익숙한 외형을 보자마자 바람 정령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실프? 아니, 아직 중급 정령일 테니까 저건 실피드인가?’

         

         

        보통 바람의 고위 정령부터를 실프라고 하니까 아마 틀리지는 않겠지. 딱히 주인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령에게 특별한 고유명사 이름이 붙어있지도 않을 테고.

         

        뭐, 애초에 저 아이 말고도 이미 여러 정령이 돌아다니는 에린 교수의 개인 정원이었으니 딱히 실피드라고 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실피드 아닌가요? 왜 갑자기 그렇게 호들갑을….”

         

        ‘저, 저 애랑 계약해, 릴리스!’

         

        “…네?”

         

        ‘나, 방금 촉이 왔어! 저 애한테서 막 운명이 느껴졌다고!’

         

        “아.”

         

       ‘쟤랑 계약해! 릴리스! 빨리! 빨리이이이!!’

         

         

        …이 미친 로리콘 정령 새끼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잠시 실수로 엔터를 누르는 바람에 퇴고 전 버전을 올리는 소란이 있었습니다.

    부디 많이 안 읽으셨기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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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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