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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허공에 빈틈 없이 황빛 실선이 새겨졌으나, 거센 회오리바람을 몰아내지는 못했다.

        

       마력의 바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윽고.

       

       

       휘우우….

       

        

       [황석 소나기]가 멈추자, 당연한 결과처럼 회오리바람에서 금발의 사내가 허무하게 추락했다.

        

        

       쿠웅.

        

        

       트리스탄 험프레이는 피투성이가 된 채, 싸늘한 시체처럼 지면에 축 늘어졌다.

        

       그의 바람이 멎었다. 어느새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알렉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암벽]을 풀고서, 쓰러져 버린 그를 시야에 담았다.

        

        

       “…….”

        

        

       거슬리고 짜증나는 남자였다. 알렉사는 칫, 하고 혀를 차곤 다시 발을 옮겼다.

        

       그리 트리스탄을 지나쳐갈 때.

        

        

       휘우우우우!!

        

        

       “……!!”

        

        

       기다렸다는 듯이 돌연 매서운 연녹빛 바람이 일었고.

        

        

       콰르르르!!

        

        

       “큭!”

        

        

       바람 마법의 연격이 알렉사를 덮쳤다.

        

       마력이 느껴진 순간, 본능적으로 몸체 주위에 바위의 벽을 만들어 바람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으나.

        

       “크하하하!”하는 웃음소리가 들리자 알렉사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소름이 돋아났다.

        

       이내 맹렬한 회오리바람을 뚫고, 금발의 사내가 피칠갑이 된 얼굴을 알렉사에게 들이밀었다.

        

        

       “고작 이 정도냐아아!!”

       “꺄아아아악!!”

        

        

       그 공포스러운 얼굴에 알렉사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크하…!”

        

        

       그러나 트리스탄의 바람은 금세 사그라졌다. 더는 의식을 유지할 수 없었기에.

        

       그는 웃는 얼굴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알렉사는 “끄윽!”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부릅뜬 두 눈엔 분노가 들어차 있었다.

        

       혐오스러운 바퀴벌레를 죽이기라도 하듯, 기절한 그를 끝장내기 위해 그녀는 팔을 번쩍 들고 마법진을 전개해 바위 마법을 퍼부으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검은 장갑을 낀 왼손으로 알렉사가 들어올린 팔을 붙잡았다.

        

        

       “알렉사.”

       “……!”

       

        

       흑발의 안경잡이 남학생.

        

       굵직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리자 알렉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 하는 짓이냐? 여왕님께서 눈에 띄는 짓은 하지 말라고 한 거, 잊었나?”

        

        

       서리처럼 차가운 음성. 남학생의 목소리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알렉사는 저항 없이 팔을 내리고, 깊은 심호흡으로 감정을 가다듬었다.

        

        

       “하아…, 죄송합니다.”

        

        

       제멋대로 살아왔던 알렉사에겐 일반적인 상식이란 게 정착되어 있지 않았다.

        

       시험장임에도, 길을 돌아가기 싫어서 막혀 있는 벽을 뚫고 갔던 몰상식한 행위도 그녀에게는 이상하지 않았던 것.

       

       무슨 행위가 상식적인 것이고, 비상식적인 것인지를 제대로 분간할 줄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다른 팔라딘이나 트럼프 병사들을 곁에 두고, 해선 안 될 행위들을 귀담아들어왔으나.

        

       합동 전술 평가에선 그럴 수 없었기에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말았다.

        

       지금 남학생의 만류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또 실수했구나.

        

       분명 혼나겠지. 앨리스 여왕님을 곤란하게 만들었으리라.

        

       남학생은 검은 장갑을 낀 왼손으로 안경을 들쳤다. 손등에 새겨진 스페이드 문양을 가리기 위한 장갑이었다.

        

       스페이드 팔라딘. 팔라딘의 앞잡이이자 그들 중 가장 강한 인간이었다.

        

       알렉사의 시선이 다시 기절한 트리스탄에게 멎었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겼는데도 이긴 기분이 아니었다. 마력은 여전히 남아돌고 있음에도 어째 기진맥진해졌다.

       

       알렉사는 옆구리를 잡았다. 전투가 끝나니 지독한 통증이 몰려와서,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곧 통로에서 수 명의 시험 감독관이 날아와 알렉사를 포위했다.

        

       그녀는 스페이드 남학생에게 나침반 하나를 몰래 건네고서,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시험감독관을 따라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 갔다. 비상사태 치고는 일이 쉽게 풀려서 시험감독관들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스페이드 남학생은 알렉사를 막아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고.

        

       기절한 트리스탄은 탈락 처리가 된 뒤, 치유 마법으로 응급처치를 받고 들 것에 실려 옮겨졌다.

        

        

       “…….”

        

        

       스페이드 남학생은 알렉사에게 받은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엘트라 해안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그는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발걸음을 옮겨 갔다.

        

        

        

       

       옥토버스관 어느 지점.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1학년 수석. 흑진주빛 머리칼의 소녀, 무녀 미야는 혼자서 옥토버스관을 나도는 중이었다.

        

       조원들이 하나같이 쓸모가 없다고 느껴 개별 행동에 나섰던 것.

       

       A 클래스 수석인 그녀였기에, 밸런스를 고려해 맞춰진 조원들은 모두 실력이 C, D 클래스 하위권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미야에게는 토악질이 나오는 버러지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협업하는 편이 좋을 듯한데…. 협동 점수는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

        

        

       미야의 검지 손톱에 숨어 있는 구미호 사역마, 마에는 위압적인 어투와는 달리 소심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편이었다.

        

       자신이 말실수해서 상대의 기분이 상하기라도 하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 시험은 근본부터 잘못됐어.”

        

        

       화르륵!

        

        

       미야는 어두운 통로를 가로지르다, 화염 마법으로 마물 환상을 불태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물 환상의 단말마가 귀에 거슬려 다시 한번 화염 마법으로 폭파시켜 잿더미로 만들었다.

        

        

       “난 그런 버러지 중의 버러지하고는 같이 못 다녀. 그보다 포식자를 찾아야 해.”

       [포식자?]

       “우리 낭군님이 포식자일지도 모르잖아. 낭군님 보고 싶어어~.”

        

        

       ‘낭군님’이란 단어만 입에 달면 미야의 목소리에 애교가 들어찼다.

        

       구미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뭐야, 또?”

        

        

       별안간 미야의 표정이 굳고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어둠 속에 숨어서 기습을 노리고 있던 마물 환상을 알아채곤 눈살을 찌푸리는 미야.

        

       그녀는 오른손에 붉은 불꽃을 피워 올리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때였다.

        

        

       “……!!”

        

        

       막대한 마력이 바람처럼 피부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미야는 놀란 얼굴로 마력이 느껴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낭군님, 바로 이름 없는 영웅의 마력일까. …아니다. 이제껏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께름칙하고도 섬뜩한 마력이었다.

        

       미야는 단숨에 그 정체를 짐작하곤 입꼬리가 찢어질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나타났으니.

        

        

       “마족이다.”

        

        

       작년에 메르헨 아카데미엔 마족이 자주 출현했고.

        

       마족이 출현할 때는 반드시 이름 없는 영웅이 나타나 해치워주었다.

        

       그 말은 즉.

        

        

       “낭군님이 나타나실 때…!”

        

        

       눈을 반짝이는 미야. 마족으로 인해 누가 죽든, 몇 명이 죽든 그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애정을 품어 버린 강자, 이름 없는 영웅에게 구애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한 가장 큰 이유이니까.

        

       이미 자신의 마음은 그에게 바치기로 다짐했다. 미야는 화봉국에서 들었던 그의 영웅담과 강인함에 흠뻑 매료되었던 것. 그런 남자는 어딜 찾아봐도 없을 테니까.

        

       즐거운 날이었다. 미야는 마물 환상에게 손을 흔들며 밝게 인사하곤 토끼처럼 들뜬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화봉국 노동요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면서.

        

       잠시 벙찐 마물 환상은 이내 포효하며 그녀를 덮쳤고, 미야의 웃음기 섞인 화염 마법에 가볍게 잡아먹혔다.

        

        

        

        

       한편.

        

       옥토버스관에서, 마나 감지력이 턱없이 낮은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느꼈다.

        

       외부에서 음습하고도 막대한 마력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연분홍빛 머리칼을 가진 실눈 여학생,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 또한 옥토버스관을 거니는 중 강대한 마력을 느끼고 발을 뚝 멈추었다.

        

       교복 차림임에도 그녀는 성녀를 상징하는 하얀 베일을 머리에 쓴 채였다.

        

       비앙카의 시선이 마력의 근원지 방향으로 돌아갔다. 벽면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 방향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고 있었다.

        

        

       “흐흐, 흐흐흐….”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비앙카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왔는가, 사악한 마족이여.”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

        

       빛 속성을 타고났으나, 이안 페어리테일과는 달리 그 힘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소녀였다.

        

       순수한 인간이기에 빛 속성의 힘을 다루는 데에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이가 헬리제 교단에 있을 리가 없었다.

        

       빛 속성의 힘은 마족을 멸하기 위한 것. 그렇기에 비앙카는 소망했다.

        

       자신은 빛 속성을 타고난 성녀. 주신 만할라가 내려주신 은혜의 산물. 그런 자신도, 언젠가 사악한 마족을 처단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녀는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여기선 원인불명의 사유로 마족이 자주 출현했으니까. 마족과 조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무기로, 마족을 때려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비앙카는 표정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실처럼 작은 눈이 평소보다 크게 뜨여, 기대감으로 한껏 반짝이고 있는 어여쁜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녀는 뺨을 붉힌 채 오른팔을 옆으로 뻗었다. 신성력이 무지갯빛 광원을 내비치더니 그녀의 손에 아름다운 마석이 달린 강철의 메이스가 쥐어졌다.

        

       가슴속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하악, 하악.”하고 신음하는 그녀.

        

        

       “어서… 이 정의의 메이스로 심판을…!”

        

        

       비앙카는 메이스를 감싸 안은 채 들뜬 발걸음으로 엘트라 해로 향했다.

        

        

        

       * * *

        

        

        

       “잘했다, 트리스탄.”

        

        

       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옥토버스관을 가로지르며, [천리안]으로 트리스탄과 알렉사의 전투를 쭉 지켜보았다. 호승심과 향상심이 강한 트리스탄은 훌륭한 시간 벌이가 되어 주었다.

        

       심지어 자신보다 강한 적 팔라딘을 상대로, 기대 이상으로 잘 싸워줬어. 날 싫어해서 뭐 선물 같은 건 못 주겠지만, 마음 속으로라도 실컷 감사를 표하자. 고맙다!

        

       어느덧 시험용 팔찌는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기능을 상실한 채였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

        

        

       [마족을 감지했습니다.]

        

        

       가벼운 손짓으로 허공에 뜬 시스템창을 없앴다.

        

       심호흡 한번.

        

       나는 감정을 가다듬은 뒤, 엘트라 해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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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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