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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2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 가면녀가 또 어디로 사라졌는지 내 능력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덕분에 수업을 들으며 큰 문제를 겪지는 못했다. 평소처럼 다시 시간을 돌려가면서 공부하고, 이해하고…… 수업의 내용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상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해하고 넘어가서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시간을 돌리는 건 여신조차 불가능해. 이 세상은 철저하게 물리적이거든.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지만, 결국 그것들이 내놓는 결과는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물리학, 그리고 기계학 선생인 에이다의 설명이었다.

        

       나는 시큰둥한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긴,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이 세계의 물리학이 내가 살던 21세기만큼 발전하지 않았다고 치더라도, 그래서 시간을 바꾸면 그저 평행세계로 분화하느니 뭐라느니 하는 말을 할 근거나 상식이 없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당연했으니까.

        

       이 세상이건, 저쪽 세상이건, 시간을 돌릴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도. 과학이 보편화되어 천동설이 지동설이 되었던 것처럼, 내 능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한테 설명할 방법도 없고.

        

       그래서 나는 그 말에 굳이 토 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선생님?”

        

       요하네스.

        

       원작에선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쪽 세상에서 내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나와 엮이지도 않았고. 같은 반이라서, 그리고 내가 원작의 네임드 NPC의 이름을 외웠기에 기억하고 있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설정은 기억난다. 쟤는 독실한 여신교도였다.

        

       “신적인 존재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보는데요.”

        

       “그러니?”

        

       하지만 에이다는 그 질문을 받아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여기서 일하기를 10년째라고 했던가. 20대 초반부터 일하기 시작해 결혼하여 ‘스트레인지 남작 부인’이 된 뒤에도 계속 교사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저런 질문을 숱하게 받아봤으리라.

        

       “예,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신교의 경전에서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예시가 나와서? 시계태엽을 돌리듯?”

        

       에이다는 시큰둥하게 말해서 학생의 입을 막아버린 뒤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나 물어보자. 너는 시계태엽을 돌리는 게 시간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어……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만약 세상이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계태엽 같은 존재라고 해도, 여신이 그걸 뒤로 되감는다고 해도, 결국 시간 자체는 흐르지. 시곗바늘이 뒤로 움직였을 뿐. 시계를 돌린 여신이 보기에 결국 시간은 한 방향으로 계속 흐르고 있을 뿐이야. 상황을 되돌린 거지 시간 축을 따라 뒤로 돌아갔다는 것이 되지는 않지.”

        

       “어…….”

        

       요하네스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시간을 돌린 것과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요?”

        

       “우리 기준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여신 기준에서는 아닐 거 아냐? 별의 위치, 흘러내린 모래의 위치, 흐르던 물의 위치가 원래대로 돌아가긴 하겠지.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 자체는 계속 흐르고 있을 수밖에 없어. 시계를 되돌린 여신은 시계 바깥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요하네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나는 요하네스의 마음에 조금 동의하는 바였다.

       

       *

        

       미아 크로우필드와는 천천히 말을 섞어나가는 중이다.

        

       원래도 대화를 잘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대로 두기에는 조금 그랬으니까.

        

       그리고, 나는 원작의 히로인들을 거의 다 좋아했다. 당연히 미아 크로우필드도 포함된다. 미아 크로우필드의 부모는 절대로 좋아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들이었지만, 미아 본인은 자기 가문이 했던 일을 절대로 잊지 않으면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였으니까.

        

       나는 클레어도, 앨리스도, 샤를로트나 로티도 다 좋아했다. 아직 내가 제대로 만나본 적 없는 평민 히로인 한 명도 포함해서.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히로인은 딱 하나뿐이었다.

        

       “소피아 비앙키라고 합니다. 이번 달부터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어요. 잘 부탁드려요.”

        

       보랏빛 생머리와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선한 눈매를 가진 소녀가 반 안의 아이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몸에서는 기품이 배어 나온다. 앨리스나 샤를로트의 것과는 다른, 당당함보다는 겸손함이 담긴 기품.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왕족이나 황족보다는…… 성직자에 가까운 기품이라고 하면 될까.

        

       그렇다. 지금 저 앞에서 인사하고 있는 저 소녀는 다름 아닌 법국 쪽 히로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내년부터 등장해야 하는.

        

       나는 경악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만약 앨리스가 지금 내 표정을 봤다면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였으리라.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웃음을 터뜨리기 직전이 되거나. 둘 다 동시에 지을지도 모르고.

        

       “소피아는 벨부르 왕국 출신이에요. 이번에 제국의 승인을 받아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어요.”

        

       소피아 비앙키 옆에 함께 서 있던 담임 캐롤린이 그렇게 소개했다.

        

       거짓말이다.

        

       소피아 비앙키는 법국 출신이다. 다만 법국의 ‘시민’은 공식적으로는 성직자뿐이다.

        

       당연히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서 데리고 온 고아들이다.

        

       그 고아 중에서 능력이 뛰어나거나 신앙이 깊은 애들은 대부분 성직자가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은 명목상 수도자로 살아간다. 실질적으로는 그냥 기도하는 시민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소피아 비앙키는 어린 시절부터 능력에 두각을 드러냈기에 성직자가 될 수 있었던 존재였고—

        

       그 본인도 성직자 자리를 ‘즐기고’ 있는 존재였다.

        

       사람을 베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곳에 계속 자리를 잡은 인물.

        

       그러니까……

        

       소피아의 보라색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내 눈과 시선이 엇갈린 그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상대방을 방심시키는 선한 눈동자.

        

       ……그러니까, 저 캐릭터는 그런 거다.

        

       중2병을 겨냥하고 넣은 캐릭터. 막 전투에서 피투성이가 되어서 깔깔 웃는.

        

       내가 중학생 때 친구들과 놀면서 가지고 있던 컨셉의, 흑역사가 떠오르는.

        

       ……나 쟤 진짜 싫은데.

        

       *

        

       중2병도 그 능력이 진짜로 있으면 중2병이라고 할 수 없지만, 솔직히 그걸 게임으로 보는 내 처지에서는 별로 공감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도 아니고.

        

       게다가 이 캐릭터는 등장 초반에는 막 엄청나게 강하다면서 스토리 차원에서 밀어주던 캐릭터였고.

        

       1편에서 등장하던 캐릭터들이 이 캐릭터와 대결에서 한 번씩 다 패배하는 이벤트가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이기는 것도 대단히 열심히 싸워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어라? 제가 힘 조절을 못했나요?’하는 식이였으니 더 꼴 받았다.

        

       1편과 2편에서 능력치가 이어지는 시리즈는 아니라고 하지만, 조금 그렇지 않은가?

        

       나중에는 본인도 어느 정도 뉘우치고 파티에 합류하긴 하지만, 처음 가졌던 그 좋지 않은 인상이 끝까지 남아있어서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따지자면 싫어한다는 마음에 더 가까운 캐릭터였다.

        

       그런데…….

        

       “실비아.”

        

       이런 식으로, 자꾸 친한 척 말을 걸어대니 엄청나게 불편했다.

        

       차라리 게임에서처럼 처음에는 적대관계로 나왔다면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낼 수 있었겠지만—

        

       “저희 같이 식사하죠.”

        

       “수업 끝나고 일정이 있으신가요?”

        

       “어머, 카페에 가시나요?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아주 당당하게 그렇게 나와버리니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미아 크로우필드는 처음에 나를 대놓고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게 보였으니 나도 무례하게 굴 수 있었는데, 얘는 아니었으니까.

        

       “소피아.”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앨리스는 어느새 우리와 같이 카페에 앉아있는 소피아를 보고 말했다.

        

       “그…… 벨부르 사람이라고 했던가?”

        

       “네, 루테티아 출신이랍니다.”

        

       “그래?”

        

       그 이야기를 듣고 샤를로트는 소피아 비앙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너를 본 적이 없는데.”

        

       다른 나라의 학생이 무려 제국의 인가를 받고 도중에 편입했다. 그것도 귀족 반으로. 그렇다면 나름대로 이름이 있는 사람일 테니, 샤를로트도 봤어야 하는 캐릭터였지만……

        

       “제가 사교계에선 다소 서투르니까요. 그리고 집안도 기사 작위 하나뿐이라, 왕녀님과 직접 얼굴을 볼 기회는 없었어요.”

        

       그렇게 말해버리면 샤를로트도 의심할 여지가 없긴 했다.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샤를로트는 일단은 물러났다.

        

       “비앙키 영애.”

        

       “소피아, 라고 불러주세요.”

        

       내 부름에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비앙키 영애, 우리가 이전에 만났던 적이 있습니까?”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곧장 그렇게 물었다.

        

       내 말을 들은 소피아 비앙키의 눈이 다시 반달처럼 휘었다.

        

       “아뇨, 전혀 없습니다.”

        

       ……참 당당한 대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후원감사는 최대한 빠르게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Ilham Senjaya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셔서 독자 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성실하다고 해주신 뒤에 바로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빈둥거리다가 늦어버리고 말았네요. 쉬고 있다가 글을 쓰려고 하니 갑자기 일거리가 생기고, 일거리를 끝마치고 다시 글을 쓰려고 하니 또 일거리가 생기고… 미리미리 써서 예약을 걸어두려고 시도하다가도 결국 하지 못하는것을 보면 아직 성실하다고 할 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독자님의 그 칭찬에 걸맞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저도 오늘처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기대에 걸맞는 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에어프라이님, 후원 감사합니다!

    양갱왕님께서 이모티콘을 정말 귀엽게 잘 뽑아주셨습니다! 사실 제가 먼저 그려드린 콘티…라고 해야할지, 구도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낙서를 보고 그렇게 뽑아주신 것이 조금 신기했습니다. 이모티콘 뿐만이 아니라 일러스트 구도도 선 몇개 찍찍 그은 수준인데 언제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지게 그려주셔서요. 이모티콘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들었다면 그건 모두 양갱왕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런 이모티콘을 뽑을 수 있도록 저의 소설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이 가장 중요하지만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이루게 도와주신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주실때 쓰는 ‘작가’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도록,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매일 성실하게 독자 여러분을 찾아가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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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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