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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응접실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으나, 남궁채공이 앉는 상석 주변은 요란스럽게 어질러져 있었다. 붓이 굴러다니거나 서책이 대각선으로 놓여있거나 했다.

       

       엔버스는 금세 그 이유를 알았다. 남궁채공이 손이 심심하였는지 붓을 들었다가 돌리고 놓는 등, 정신없이 굴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의 시종은 재깍재깍 치우지만 남궁채공 본인이 자꾸만 어지르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턱을 괸 채로 엔버스를 가만히 관찰하다가, 심중을 읽고 편하게 말했다.

       

       “그래, 다 보고 있었지. 명이와 잘 어울려주는 것도 보았고, 자네가 내 딸내미의 몸 이곳저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도 보았네.”

       

       “그게⋯⋯.”

       

       “하핫, 젊은 도사님은 수행이 아주 얕으시군. 이런 걸로 당황하는 걸 보면.”

       

       “⋯⋯⋯⋯.”

       

       나름의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남궁승아를 본 것이든, 자기 자식들에게 멋대로 다른 기술을 가르친 것이든.

       

       다만, 그는 다른 지점을 짚어냈다.

       

       “내가 비록, 젊었을 적에 눈깔이 돌아서 봉문을 한 결과⋯⋯ 무림에서 대체로 평판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몇몇 친구들과는 정답게 연락하고 지낸다네. 그래서, 무림에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이상한 바람 말이오?”

       

       “천마와 대면한 자들 중 몇몇은, 그의 무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네. 인간미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무공의 뜻(意)보다도 형식(形)에 집중하는 듯했어. 바로 자네의 움직임처럼 말이네.”

       

       “⋯⋯내 움직임에서, 그것이 보였소?”

       

       남궁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아와 눈감고 피하기 놀이를 할 때 드문드문 보이더군. 사람이 아니라 목각인형처럼 기이하게 움직이는 부분을 말이야. 참으로 신기했어.”

       

       “엄밀히 말하면, 천마를 보고 배운 것은 아니오만⋯⋯.”

       

       선후가 반대일지언정 크게 다른 말은 아닐 것이었다. 엔버스는 루나를 보고 배웠으나, 루나와 천마의 움직임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자네는 천마와 연이 있는 것 같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30년의 세월을 격하여 말일세. 아주 재미있는 일이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오?”

       

       “아니. 명이가 믿겠다 하였으니, 나도 자네를 믿네.”

       

       “그 돌팔이 도사의 말이 중언부언하기는 했소만. 당신은⋯⋯ 내 움직임에서 천마의 흔적까지 읽어내었지. 의심하기는 충분할 것 같소. 그런데, 어째서 믿겠다 하는 것이오?”

       

       “그게 남궁세가이니까.”

       

       남궁채공은 검지를 들어 올려 화분을 가리켰다. 방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화분에는 난초 하나가 심겨 있었다. 

       

       “어떠한 목표보다는⋯⋯ 큰 뜻이 중요할 때가 있네. 열매 없는 식물은 살아남더라도, 뿌리 없는 식물은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니.”

       

       “⋯⋯잘 이해가 가지 않소.”

       

       “간단한 문제라네. 내가 지금 백만금을 준다고 하면, 명이를 죽이겠는가?”

       

       “⋯⋯⋯⋯?!”

       

       갑자기 나온 섬뜩한 이야기에 엔버스는 크게 당황하여 남궁채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서 대답해 보라는 듯 미소 한 조각을 걸고 있을 뿐이었다.

       

       백만금이라. 고작 돈을 위해서, 그 어린 소년을 죽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엔버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고, 남궁채공은 바로 그것이라는 듯 대답했다.

       

       “그렇다면, 백만금을 받고 명이를 죽인 자네는⋯⋯ 지금의 자네가 아니겠군? 그러한 자였다면, 애초에 마교에 쫒기는 명이를 구해주지도 않았을 테니.”

       

       “⋯⋯그럴 것 같소.”

       

       “당장의 이득에 눈이 멀어, 신념을 저버리는 선택지를 거듭 고르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일세. 돈과 명성을 손에 가득 쥐고 있더라도, 처음에 원했던 것만은 결코 남아있지 않을 테야.”

       

       엔버스의 머릿속에 개방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개방 방주 희영현은 개방의 존속을 위해 모든 것을 내버렸다 하였고, 그 표정은 허망함으로 가득했다.

       

       현재의 개방은, 그녀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에 깊이 잠긴 엔버스에게 남궁채공은 말했다. 

       

       “소도장은 마음이 붕 떠 있는 것 같더군. 아니면 어딘가에 묶여 있거나.”

       

       “그게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일세. 가진 바 능력에 비해서 행동이 퍽 소극적이더군. 우리는 손님을 묶어 둘 생각도 없고, 친구라면 더더욱 그러하니.”

       

       속 편하게 움직여도 좋다. 남궁채공은 그렇게 이르고는 엔버스를 밖으로 돌려보냈다. 

       

       묶여 있다라.

       

       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넓고 푸르다. 하늘은 이토록 자유로운데, 어째서 인간의 마음은 무게추라도 단 듯이 가라앉기만 하는가.

       

       “⋯⋯⋯⋯.”

       

       형님의 오른팔이 되기를 바라는 아이라니.

       

       겹쳐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지나가는 길, 남궁소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엔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면서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사과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미안합니다. 천기를 읽음에 재주가 있는 도사라 하여 들였건만, 이런 소동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니오. 결국 쫓겨났으니, 난 괜찮소.”

       

       “과연, 경지가 높은 도사답게 마음이 넓으십니다. 그 도사는⋯⋯ 제가 찾아내 벌을 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내게 무언가 용건이 있소?”

       

       남궁소와의 대화는 어딘가 불편했다. 엔버스는 가능하면 대화를 짧게 끝내고 싶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존대를 사용하고 예의를 갖춰 대하니, 초면부터 천민이라 내려치던 로데루스와 비교하면⋯⋯ 좋은 사람일 터이나.

       

       로데루스에게서 느껴졌던 따스함이, 어째서인지 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고작 두 번의 대면뿐이었으나 썩 즐겁지 않았다.

       

       엔버스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으나, 남궁소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 그는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한 달 뒤가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모르오.”

       

       “남궁세가의 다음 대 가주가 내정되는 날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승계자를 이르게 발표하여, 가문에 소란이 없도록 하겠다 하셨습니다.”

       

       “⋯⋯⋯⋯.”

       

       자랑이라도 하려는 건가?

       

       어딜 보나, 다음 대 가주로는 저 남궁소라는 자가 유력할 터다. 차남과의 나이 차이도 멀찍이 나 있으며, 듣기로 여러 공적을 세웠다 했다.

       

       그러나 조심스레 표정을 살피면, 그 웃는 낯이 으스대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정하게만 보였다.

       

       “그래서⋯⋯ 도사를 불렀던 겁니다. 아버지의 생신도, 가주 내정의 날도, 아주 중요한 날이니. 도사가 축복의 말이라도 읊어 주면 좋을 것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박힌 도사가 가고, 굴러온 도사만 남았으니. 남은 도사에게라도 부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휘 도사⋯⋯ 내 가주 등극을 축복해 주시지요.”

       

       “⋯⋯분명 그대가 유력할 것이오. 하지만 아직 나오지도 않은 일인데, 우선해서 축복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오만.”

       

       엔버스가 내세운 정론에, 남궁소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그러다 아무렇지도 않게.

       

       “청휘 도사의 말이 옳습니다. 제가 실언을 했군요.”

       

       “⋯⋯⋯⋯.”

       

       “아버지를 만났습니까? 흐르는 구름처럼 자유분방한 분이십니다. 지금은 그분의 생신 연회이니, 부디 축하해주시지요. 이마저도 거절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물론이오. 내 그리 하겠⋯⋯.”

       

       남궁소는 엔버스가 대답을 채 마치기도 전에, 등을 돌려 떠났다.

       

       불길하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레드번 저택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저 사내를 쫒아 추궁한들,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었다.

       

       엔버스는 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친구들이 남겨 준 신비한 스크롤이 있었으며, 옅게나마 이어지기 시작한 인연이 있었고, 일신의 무력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엔버스가 그 순간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건, 남궁소를 믿고 따르던 남궁명의 눈빛이 잊히질 않아서였다.

       

       화목한 형제가 아니더냐.

       

       형이라는 자의 배신으로 어긋나고, 혼란 속에서 미워하고, 이제는 어디에서 서로 무얼 하는지조차 모르는, 그러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 따듯하게 믿고 의지하는 화목한 형제가 아니더냐. 그러니.

       

       “⋯⋯어찌 의심하고 부수겠냐는 말이다.”

       

       엔버스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 습격당한 남궁명을 구하여, 남궁세가의 식객이 되다.

       ● 개방 방주 희영현을 만났으나, 타구봉법 반환에 실패하다.

       ● 남궁 남매에게 시선통찰을 가르치다.

       ● 자신을 음해하는 도사를 쫒아내다.

       

       도전과제 달성도는 어떠한가?

       

       ● 하나도 달성하지 못하였다.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 사기꾼 도사.

       

       허술하였거나. 아니면 그만큼 급하였거나.

       

       그는 쫒기는 사람처럼 굴었다. 당장 엔버스를 쫒아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일면식도 원한도 없었으니 이는 필요에 의함이었을 터.

       

       ● 마교?

       

       남궁명을 노리는 흑의인 무리들은 도망쳤다. 아직 추포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음을 보아, 그들은 건재하다.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이었다.

       

       그 정체가 의심스럽다. 정말로 남궁세가에 대한 원한이 목적이었을까?

       

       ● 나

       

       ⋯⋯⋯⋯.

       

       ‘벽이 아니라, 널 봐야지. 엔버스.’

       

       ‘즐겁게.’

       

       알듯 말듯, 머릿속에 스치는 것은 있으나 빈번히 놓치고 만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

       

       어둠 속에서 웅크려 앉은 자가, 서책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되뇌인다.

       

       마강신술(魔降神術)의 비법은 달이 가득 차오를 때 진가를 발한다.

       

       만월이 뜨고 있다. 만월이 지나고 나면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지금뿐이다. 

       

       이젠 저 도사라는 변수가 있어도 감행할 수밖에 없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거든, 모든 것을 버릴 수밖에 없다.

       

       연회의 마지막 날이 되면⋯⋯ 죽어야 할 자가 죽을 것이다.

       

       천마의 힘을 내려받은 강시라면, 능히 목표를 이룰 것이다.

       

       어둠 속의 붉은 광채가 어지러이 흔들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은 손목을 부디 꼭 조심하십시오⋯⋯ 오늘은 수리를 받으러 다녀 올 참입니다.
    내일 만나요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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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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