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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바알 니에르.

     

    사실 그녀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그녀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큰 단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의 친우도 없고, ‘니에르’라는 가문도 그녀를 제외하면 알려진 인물이 없는데다, 이뤄낸 업적에 비해 굉장히 빈약한 인간관계가 그녀의 과거에 대해 쓸 이야기가 없도록 했다.

     

    하지만, 그녀는 출신을 알 수 없다고 해서 폄하되기엔 너무나 압도적인 업적을 이뤄내고 만다.

     

     

    기존의 마법체계를 완전히 뒤집어놓는 그녀의 이론과 발상.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그 자신의 마법적 발상을 증명할 수 많은 이론을 새로 정립했다.

    그렇게 ‘마법’이 누구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학습이 가능한 학문의 영역으로 변화한다.

     

    클래스 마법.

     

    마력 감응력이 없어도, 지능이 부족하더라도, 깨달음이 없더라도, 그저 이론을 따라 사용하기만 하면 될 뿐인 마법.

    하지만,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그녀를 ‘마왕의 환생’이라 부르며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 마법을 인정하는 순간, 마법은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자 신비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술이 되고 만다며.

     

    아무리 그녀의 이론이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이미 서클 마법사로서 기득권에 이른 그들이 굳이 새로운 마법체계를 반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곳, 베리튼으로 도망쳤다.

     

    엘프들은 원체 정령사로서의 면모가 짙었기 때문일까?

    기존의 서클 마법사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엘프들의 비호를 받으며 그녀는 안전하게 연구를 계속해나아갔고, 결국 클래스마법은 베리튼을 압도적으로 발전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세계수로부터 쏟아져나오는 압도적인 양의 마력을 조금의 낭비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클래스마법의 특징 덕분이었다.

     

    서클에 마력을 담을 필요가 없으니 개인의 마력 감응력에 따른 차이도 의미가 없다.

    마법을 사용함에 서클의 부족함이 걸릴 일이 없으니 개인의 깨달음과 지능에 대한 차이도 의미가 없다.

     

    그러니 제한없는 발전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그 누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베리튼이 제국마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강대국이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년이었다.

     

    그러자, 이제는 서클마법사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고 말았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저런 기술을 ‘일부러’ 세상에 풀지 않은 것이 아니냐며, 또한 바알 니에르를 베리튼으로 보내버린 것이 바로 서클마법사들이 아니냐며.

     

    단지 능력이 부족했을 뿐인 그들로서는 그 주장이 억울할 따름이었지만, 그렇다고 정계의 비난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서클 마법사들이 몰락한다.

     

    ——-

     

    “……라는 게, 바로 베리튼의 건국역사이자, 클래스마법의 발전사입니다.”

     

    그렇게 안내원이 설명을 마쳤다.

     

    그녀의 설명이 끝난 후,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기 때문에 엘프들의 나라라는 베리튼에 인간 여성 마법사의 동상이 가장 크게 전시된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이미 교과서와 역사서로 읽어 본 바 있는 이야기지만, 이 장소에서 옛 유물들과 함께 듣는 역사이야기는 또 색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썩 나쁘지 않다.

    역사를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법사는 이야기보다는 증거를 믿는 편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역사서로 읽어본 이야기와, 눈 앞에 역사에 관련된 유물을 보며 듣는 이야기는 그 몰입감에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루크는 이미 아는 이야기임에도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

     

    하지만, 루크를 제외한 아이들의 호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대부분 딴청을 피우며 자신의 흥미를 끌 만한 물건을 찾아 고개를 돌려대는 것에 바쁜 상태, 도저히 안내원의 말에 집중을 하는 아이들이라곤 볼 수 없는 상태다.

     

    아이들이 듣기엔 별로 재미가 없는 모양이다.

     

    안내원은 한숨을 쉴 뻔 했다.

     

    안내원을 오래 해왔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반응이면 힘이 들 수 밖에 없었으니까.

    게다가 어린아이들은 뭉칠수록 더욱 충동적이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녀도 이해하고는 있다.

    재미없는 역사 이야기보다는 친구끼리의 장난이나 수다가 더 재미있는 법이고, 이곳은 아카데미도 아니니, 아이들의 마음엔 딱히 학습에 대한 의무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런 어린 아이들은 보기엔 참 귀엽지만, 학생으로 두기엔 많이 까다로운 손님들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한숨을 참을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그녀의 눈에 띄는 단 한 명의 학생 덕분이었다.

     

    설명을 시작한 순간부터 계속해서 집중한 모습을 보이는 백금발의 혼혈수인 여자아이.

    겉으로 보기엔 10살에서 11살 남짓한 귀여운 소녀의 외모이지만, 어쩐지 깊고 진중한 분위기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어린 수인중에 저렇게 차분한 느낌을 가진 아이가 별로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이런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었기 때문인걸까?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들을 보았지만, 저런 기묘한 분위기를 내는 아이는 처음 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때, 어째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일까, 생각하며 아이를 살피던 안내원과 루크의 눈이 마주친다.

     

    그러자 루크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려냈다.

     

    그 미소를 본 안내원은 어째서 그동안 아이가 그토록 기묘한 분위기를 냈던 것인지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미소에는 사실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웃게 되는 표정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짓는 억지미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과 더 좋은 관계를 위해 자연스럽게 입가에 걸치는 ‘비즈니스’적인 미소도 존재한다.

     

    어린아이들 중엔, 저토록 자연스럽게 미소를 사용할 수 있는 아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정말 즐거운 것도 있겠지만, 저 아이의 미소는 단순히 즐겁기 때문에 나오는 미소만은 아니었다.

    어쩐지, 연륜이 있는 듯 한, 그런 모습이랄까.

    그렇게 보니, 아이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가 단순히 충동적인 행동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다소곳하게 뒤로 마주잡은 손, 여유로운 표정, 흐트러짐 없이 고요한 자세…….

     

    마치 오랫동안 인간관계를 거치며 연륜을 쌓은 어른을 보는 듯한 모습이지 않은가?

     

    고작 10살 언저리의 아이에게 연륜이니 뭐니 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아무튼 그녀에겐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뭐, 그 아이의 미소가 어떤 의미이든 그것이 안내원에게 위안이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기에, 그녀는 목소리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으며 안내를 시작한다.

     

    “자, 다음은 이어서, 근현대사에 대해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이쪽으로…….”

     

    ——-

     

    베리튼은 아직까지도 그리 큰 나라는 아니지만, 클래스마법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기에 마법적으로 가장 발달한 국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마탑의 대척점에 있던 세계수의 엘프들이, 어쩌다보니 현재는 세계 마법 발전의 선두주자가 되었는가?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였다.

     

    안내가 끝나서 이제 자유관람의 시간이 왔으니, 아이들은 제멋대로 자기의 흥미를 끄는 유물이나 물건들을 찾아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메리는 루크와 함께 관람을 하는 것은 그다지 재미가 없을 것 같다며 일찍이 다른 친한 아이들에 붙어 수다를 떠는 중이었고, 시루드는 이 체험학습에 온 아이들중 친한 아이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루크와 붙어있는 중이었다.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했다. 솔직히 11살 때 가는 여행 치고는 경비가 조금 비쌌으니.

    아무리 티그 아카데미가 명문 아카데미라지만, 모든 아이들이 전부 집이 잘 사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여행비용을 아카데미에 아무렇지 않게 부담할 수 있는 집안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

     

    그리고, 보통 이정도 규모의 여행은 9학년때 졸업을 앞두고 하는 게 기본이 아닌가?

    그만큼 이번 아카데미 여행의 행선지가 ‘베리튼’인 것은 아카데미로서도 조금은 파격적인 선정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시루드도 이번 여행만큼은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아서 그냥 집에서 쉬고 싶었다.

    베리튼은 평소에도 자주 놀러 오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굳이 이런 여행에 자신을 끼워 넣은 어머니의 속셈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시루드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 순간, 루크가 음료수 한 캔을 가져와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꽤 유익한 시간이지 않았느냐?”

     

    루크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 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있었는데, 안내원의 역사 설명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루드는 딱히 유익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냥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 다 아는 사실인데, 이제와서 특별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뭐, 그렇다고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잘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말이었지만.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시루드는 루크가 건넨 음료수를 받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신기한 부분은 이거였다.

     

    “이제 음료수는 잘 뽑네.”

     

    “하하하,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게냐.”

     

    루크는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시루드에게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줬더니, 음료수는 받지도 않고 한동안 넋을 놓은 채 자판기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게다가 그냥 보던 것도 아니고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착 달라붙어서 보던데……

     

    뭐라고 했더라, 이토록 단순한구조의 무인 음료 공급기를 떠올린 발상이 훌륭하다고 했나?

     

    뭐 그 뒤로도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긴 했는데 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정말 쪽팔려서 뭘 제대로 기억할 틈도 없었으니까.

     

    옛날 생각을 한 시루드는 한번 한숨을 내쉰 뒤에 루크가 건넨 시원한 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잘 마실게.”

     

    하지만, 캔을 따고 한입 마신 시루드의 표정은 금세 찌푸려지고 말았다.

     

    ‘윽, 뭐야 이거. 솔잎 차잖아.’

     

    이건 자신을 괴롭히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루크는 시루드가 표정을 찌푸리든 말든, 시루드가 앉아있는 의자 옆에 앉아 자연스럽게 치맛단을 정리하고 꼬리의 위치를 정돈하고는 말했다.

     

    “시루드, 너도 다른 아이들처럼 이 박물관이 그리 재미가 없느냐?”

     

    “응, 별로 재미 없잖아.”

     

    그러자, 루크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안되지, 안돼. 마법사는 그런 태도여선 안된다네.”

     

    마법사라면 본디 자신의 지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하는 것이다.

    시루드는 분명 ‘마법사’가 되겠다며 자신에게 가르침을 구한 입장이었고, 루크는 그런 시루드를 마법사로 만든 스승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시루드에겐 분명히 엄청난 재능도 있었다.

    마력시를 통한 세계의 이해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마나를 담는 것에 대한 신체적인 재능만으로는,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 지도 모를 엄청난 재능을.

     

    그 재능을 단지 현재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낭비하는 것은, 자원의 낭비가 아닌가?

    루크는 낭비를 싫어한다.

     

    “또 그 이야기야?”

     

    시루드는 이젠 슬슬 지겹다고 생각했다.

    2서클이 되긴 했지만, 이제 겨우 손 끝에 불을 피우는 마법이랑 바람을 좀 세게 불게 하는 법을 가르쳐줬을 뿐이면서.

    더 알려달라고 해도 ‘그 이상은 네가 직접 생각해보거라’라며 전혀 알려주지 않는 주제에 마법사의 태도만 강조하는 루크의 말에, 시루드는 이미 불만이 조금씩 쌓이던 상태였다.

     

    하지만, 시루드가 어떤 표정인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루크는 한 팔을 벌리곤 등 뒤를 마치 소개하듯 가리키며 말했다.

     

    “이토록 깨달음이 지천에 존재하는데, 어찌 너는 짧은 생을 그저 편의를 쫓으며 낭비를 하려는 게냐? 냉큼 일어서거라. 응?”

     

    그리 말하며, 루크는 마치 옛날 귀족이 사교계에서 춤을 제안하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짧은 생이라니.’

     

     

    루크는 수인족이고, 자신은 순수 하이엘프.

    삶으로 따지면 자신 쪽이 더 오래 살텐데…….

     

    게다가, 시루드는 루크의 그 손을 내민 몸짓과 표정이 너무나 연극 스러워서, 루크가 지금 자신을 ‘공주님’ 취급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것은 루크의 입장에서는 그저 옛 귀족의 생활이 몸에 익었기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버릇일 뿐이었지만, 이미 ‘공주님’ 취급을 당했다 생각한 시루드는 루크의 손을 잡지 않고 자신의 힘 만으로 일어섰다.

     

    루크는 무안해진 손을 자연스럽게 뒷짐으로 포개며 웃었다.

     

    마지못해 일어선 시루드를 만족스런 표정으로 지켜본 루크는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어디부터 가는 것이 좋을까……. 그래, 일단 저 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군.”

     

    루크가 향하는 곳은, ‘현대 마법관’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바알 니에르, 너무 유능하다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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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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