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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그녀가 괴물서커스단에 머무르게 된 지 10일이 넘었다.

       그동안 그녀는 단원들과 상당히 친해졌다.

       함께 흙바닥을 뒹굴면서 연습한 덕분이었다.

         

       역으로 그렇게 함께하지 못한 단원들과는 친해지지 못했다.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요벨이었다.

       듣기로 머리가 벗겨진 난쟁이 아저씨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른 단원들도 그의 얼굴 본 지 꽤 됐다고 했다.

       그가 새로 얻은 인스피라 때문이라는데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그와 달리 매일 얼굴을 보는 데도 데면데면한 단원이 있었다.

       그게 마야였다.

         

       레이나도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마야는 그 정도가 심했다.

       그녀는 항상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함께 식사해도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며칠 전에 레이나가 용기를 내 말을 걸었을 때도 단답형으로 한두 마디하고 말았다.

         

       그래도 마야에 대해 나쁜 감정이 들진 않았다.

         

       그녀와 말을 섞기 어려워하는 단원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입단한 지 3달이나 되었다는데, 다른 단원들 역시 무감정하고 자기중심적인 마야의 성격을 어려워했다.

         

       레이나는 자신도 황금 카니발의 동료들에게 저렇게 비쳤을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레이나는 어젯밤 마야가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고 지나쳤을 때도 그녀가 좀 별나서 그렇다고 생각할 뿐,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을까?

         

       레이나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고양이를 바라봤다.

         

       녀석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자신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다리 관절을 씰룩거리는 것이 우쭐거리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깔아보는 눈빛과 휘어진 입술은 분명 상대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프프픗.

         

       뭐야.

       뭐가 우스운데?

         

       이 고양이는 마야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단원들은 종종 나타나는 이 녀석의 상태를 보면 마야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고양이는 명백히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레이나는 자신을 향해 싫으면 돌아가라고 차갑게 쏘아붙이던 그녀의 표정을 떠올렸다.

       분명 적의에 차 있었다.

       어제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고 차갑게 흘겨보고 갔던 것은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레이나는 어릴 때부터 어디 가서 절대 지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다.

         

       엘라에게 패배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원더스타인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몸에 밴 버릇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다.

         

       투지가 끓어올랐다.

       레이나의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었다.

         

       “막아서면 걷어찬다.”

         

       어차피 환상이었다.

       부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향해 살벌한 눈빛을 던지고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냐아앙!

         

       고양이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는 그때,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떻습니까, 이 복장은? 유라크네 씨가 예전에 마야 양에게 어울린다고 추천한 건데?”

         

       원더스타인 단장님이다.

       다정하고 웃음기 깃든 그 목소리를 듣자 그녀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것은 아버지 앞에 섰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상대에게 미움받기 싫다는 마음이 그녀의 몸을 단단하게 옭아맸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끼어드는 거지?

       단장님이 괜찮다고 받아들인 일인데…….

         

       그때, 무뚝뚝하고 차가운 마야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미끌미끌해요. 양말은 다른 것으로 바꿔 주세요.”

         

       마치 가게 점원을 대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레이나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예의 없기는.

         

       레이나의 속을 더 바싹 태우는 것은 단장님의 고분고분한 태도였다.

       그는 한참 어린 여자애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받으면서도 불쾌한 기색 없이 웃어댔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이 양말은……?”

         

       옷자락이 사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레이나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았다.

         

       저 안의 광경이 그려졌다.

         

       마야가 화장대 앞에 척 다리를 꼬고 앉아 있고, 단장님이 그 앞에 무릎 꿇고 그녀의 발에 양말을 벗겨주고 신겨주는 모습이.

         

       옷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단장님이 종종 모자에서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마도구거나 혹은 공간과 관련된 인스피라일 것이다.

         

       “어때요, 이 양말은? 감촉은?”

       “좋아요.”

         

       단장님의 손가락이 마야의 하얀 속살과 발바닥을 간질이는 장면이 상상됐다.

         

       “이…….”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한 번에 폭발했다.

         

       아무리 봐도 사회성이라고는 일 푼도 없는 애가 단장님 사람 좋은 것을 이용해서 대접받고 있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안에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데, 유라크네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레이나 양, 거기서 뭐 하세요?”

         

       그녀는 배부받은 번호표와 안내서들을 손에 들고 있었다.

         

       레이나는 그녀에게 화장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설명했다.

       그녀는 유라크네가 이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해 같은 공감대를 형성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유라크네는 원더스타인의 ‘의상실’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레이나가 상상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는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것으로 단원들의 옷을 바꿀 수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레이나가 보기에는 ‘갈아입혀 달라’는 말은 선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라크네는 진실을 알려주려다가 장난기가 발동했다.

       저 얼음 같던 여자애가 얼굴을 붉힌 채 손을 떨며 벌벌대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녀는 뻔뻔스럽게 웃어 보이며 되물었다.

         

       “이상한 일이 아닌걸요. 단장님은 제 옷도 갈아입혀 주시는데.”

       “네, 네?”

         

       레이나는 머리가 어질해졌다.

         

       마야는 어떻게든 ‘어리니까’의 범주에 구겨 넣을 수 있었다.

       그녀의 멍한 정신상태와 떨어지는 행동력을 어리광의 구실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라크네는 아니었다.

       그녀는 멀쩡한 어른이었다.

       그녀의 옷을 왜 단장님이 갈아입혀 준단 말인가?

         

       유라크네는 그녀의 바보같은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으며 그럴듯한 사정을 꾸며내 말해주었다.

         

       “저희 단원들의 체형이 보통과 다르다 보니, 기성복을 입는 게 불가능해요. 그래서 단장님이 저희 몸의 치수를 재고 직접 재단을 하셨는데, 그 때문에 익숙해졌어요.”

         

       냉정히 뜯어보면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그러나 혼란에 빠져있던 레이나는 그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런 건가요…….”

         

       그러나 곧 그녀는 그것이 마야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설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 마야……그, 그리고 엘라는……?”

       “아, 엘라 양은 한 번도 단장님이 갈아입혀 준 적 없어요.”

         

       그녀의 말에 레이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이, 이상한 거죠? 쟤가?”

         

       그때, 화장실의 문이 열리며 원더스타인과 마야가 걸어 나왔다.

         

       레이나는 마야의 복장이 변한 것을 보고 숨을 흡 들이켰다.

       그녀는 겉옷이나 양말뿐만 아니라, 치마에다가 속옷 바로 위에 입는 옷까지 모두 싹 갈아입었다.

         

       “저, 저…….”

         

       레이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떠듬떠듬 늘어놓는 것을 본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아직도 공장 견학을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다.

         

       “레이나 양, 힘드시면 유라크네 씨랑 돌아가셔도 됩니다. 저는 마야 양이랑 둘이서 들어가면…….”

       “아, 아닙니다! 저, 저 과자 아주 좋아해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빽 소리치는 레이나를 보며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야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월리를 치워버렸다.

       유라크네 혼자 입을 가리고 몰래 웃음을 흘렸다.

         

         

       ***

         

         

       거대한 반죽 섞는 기계가 돌아가며 통로를 버터 향으로 가득 채웠다.

       하얀 눈덩이 같은 설탕이 펌프에서 펑펑 쏟아져 나와 시야를 메웠고, 시간에 맞춰 한꺼번에 열린 오븐이 쏟아내는 열기가 공기를 바싹 굽고 지나갔다.

         

       공장 안은 수십 명의 제과사와 그들을 보조하는 수백 명의 직원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과일들을 실은 상자가 줄지어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했다.

       칼을 든 직원들이 능숙하게 껍질을 잘라내고 속을 파내어 바구니에 담았다.

         

       제과사들은 생크림으로 케이크 표면을 짜내고, 파이를 파내어 조각하고, 과일을 과자 위에 얹어 장식했다.

         

       수십 종류의 과자가 칼 같은 분업화에 맞춰 각양각색의 빛깔을 동시에 뽐내며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공장 탐방을 마친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은 감독관의 사무실에 앉아 과자와 음료를 대접받으며 공장의 정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장장은 그들이 먹는 과자가 아직 개발 중인 신제품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허허, 바로 구운 과자가 이렇게 맛있을 줄은!”

       “그러게. 별장에서 몇 번 먹어봤는데 말이야. 맛의 차원이 달라!”

       “여기 직원들은 좋겠군. 늘 이런 걸 먹을 거 아냐?”

       “이것 봐. 이거 아까 장인 아줌마가 추천한 대로 커피랑 먹으니 끝내주는데?”

         

       그렇게 슬슬 배가 불러올 때, 공장의 문이 열렸다.

       관람객들이 견학을 시작하는 것이다.

         

       공장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 그럼 이제 ‘수집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아, 사장님의 애장품이 담긴 곳이요?”

         

       캔디맨은 서커스 마니아로도 유명했다.

       특히 극작가 ‘크리스티앙’에 대해서는 광신도라고 들었다.

         

       그의 수집품을 볼 수 있다니!

       단원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났다.

         

       그때, 엘라는 손을 들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배가 좀 아프네요. 화장실 좀 들렀다 갈게요.”

       “위치는 어딘지 아시나요? 안내할 직원을 불러드릴까요?”

       “아, 괜찮아요. 아까 사장님 방이라 한 곳에서 옆으로 가면 되죠?”

         

       엘라는 그렇게 단원들이 나가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척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떠난 것을 확인한 그녀는 몰래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사실 화장실 따위 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쟁반 위에서 아직도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과자를 손에 집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녀의 모자 안에 담았다.

         

         

       특성: 인스피라-모자 마술

       적용 대상: 엘라와 원더스타인의 모자 안.

       효과: 두 대상이 공간적으로 연결됩니다. 모자에 전송하고 싶은 물건을 넣고 머리에 쓰세요. 물건이 당신의 정수리에 닿기도 전에 그것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상대가 모자를 벗는 순간 그것이 상대의 모자 안에 나타납니다.

       요구 조건: 엘라의 호감도 30

         

         

       그녀가 사신의 낫에 찔리기 직전에 얻었던 인스피라였다.

         

       모자 마술은 엘라가 루즈의 무대에서 막간의 여흥으로 보인 것인데, 그때, 원더스타인이 보조한 덕분인지 그와 인스피라가 엮이게 됐다.

         

       그녀는 새로운 축복을 반겼다.

       지금까지 그녀의 나이에 인스피라를 2개나 얻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곡예사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이것이 원더스타인과 연결된 능력이라는 것이다.

       마치 마신 키르쿠스가 두 사람을 영혼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 같았다.

         

       엘라는 모자를 과자로 한가득 채웠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자꾸 그 사람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모자 마술로 보내곤 했다.

         

       이번 과자는 복선으로도 써먹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오늘 있을 정기 연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몰고 갈 것이다.

         

       -별장에서 간식으로 주던데 되게 맛있어서 맛보라고 보내봤어. 어때? 이게 슬라그보르트라고 되게 유명한 과자 공장 물건이래.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신제품이라고. 아, 당신이 가자고 한 곳이 거기였어? 응응, 황금 카니발 별장 주인이 거기 사장이라잖아. 제과사들이 직접 별장에 와서 만들어줬어. 갓 만든 거는 확실히 다르더라고. 맛있었어? 우웅, 또 먹고 싶다. 그래서 말인데 나 그때 했던 제안 다시 해 주면 안 될까? 내가 거절했지 않냐고? 쳇, 그래서 다시 안 권할 거야? 응?

       -알았습니다. 엘라 양, 부탁인데 저와 함께 외출 좀 해 주시겠습니까?

       -흠, 나 바쁜데……. 알았어. 당신이 사정하니 특별히 들어 주는 거다?

         

       엘라는 모자에 담긴 과자를 들여다보며 킥킥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감독실의 창이 공장장의 방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 유리라는 것을 몰랐다.

       캔디맨은 공장장의 방 소파에 앉아 그의 비서가 전달해주는 내부 광경을 전해 들으며 웃음을 흘렸다.

         

       ‘허허, 과자를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싸 줄 텐데. 그걸 모자에 숨겨가다니.’

         

       젊은 장인 시절이었다면 자신의 제과 비법을 훔치러 온 도둑이라고 버럭 소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늙은 지금은 그저 아이의 행동이 귀엽기만 했다.

         

       그는 비서에게 손짓했다.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엘라는 화들짝 놀라 모자를 썼다.

       입구에는 연미복을 입은 노인이 젊은 남자의 부축을 받고 서 있었다.

         

       노인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과자 비법을 훔쳐 가려는 도둑이 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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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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