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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어, 언제….’

         

       사내와의 거리는 고작 일 장 하고도 반 정도.

         

       아무리 정신이 다른 데에 팔려 있었다곤 하나,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인지해야만 하는 거리였는데.

         

       ‘전혀 몰랐어.’

         

       그가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고수….’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자, 막막함이 밀려온다.

         

       자신의 수준으로는 대항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가 분명했다.

         

       “나, 남의 수련을 보는 건 그, 금기인데….”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

         

       그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남의 수련을 보는 건 금기인 것을 모르시나요?’라고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정작 나온 것은 어린애도 코웃음칠 정도로 자신감 없는 말투였다.

         

       뜻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금기임을 언급하는 순간, 상대는 적어도 사과를 건네야 했고, 이 자리를 떠나야만 한다.

         

       허나, 사내는 그러지 않았다.

         

       “철선을 사용하는 방식이며, 몇몇 초식이 눈에 익군.”

         

       그녀가 금기를 언급했음에도, 사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제 할 말만 건넬 뿐.

         

       “제갈세가의 여식인가?”

         

       제갈연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뻔뻔한 태도로 자신의 말은 무시한 채 제 말만을 고집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아, 않아요.”

         

       말을 조금 더듬긴 했지만, 불편한 기분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나, 나가주세요. 여긴 제가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더해 축객령까지 내렸다.

         

       ‘돼, 됐어!’

         

       그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처음 보는 이에게 이토록 강한 어투로 말을 하다니!

         

       성장의 증거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 순간, 입꼬리를 가볍게 말아 올린 사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앗…!”

         

       눈 깜빡할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를 보고 놀란 제갈연지가 어떻게든 반응하여 발걸음을 뒤로 물리며 전방을 향해 손바닥을 내질렀다.

         

       한 호흡에 이루어진 물 흐르는 듯한 연계.

         

       허나, 그것은 무위로 돌아갔다.

         

       힘차게 내지른 팔이 너무나도 쉽게 사내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호오, 초식의 운용이 매끄럽군. 누군지 몰라도 소저에게 기초를 제대로 알려준 모양이야.”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채 감탄하는 사내.

         

       “놔, 놔주세요…!”

         

       그에게 붙잡힌 팔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몸을 뒤틀어 보았지만, 단단한 돌덩이 사이에 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에게서 물러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작은 여인을 가볍게 훑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기다란 앞머리가 거슬렸다.

         

       “실례하지.”

         

       그 말에는 그 어떤 실례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사내는 다른 한쪽 손을 뻗어 옆으로 찰랑이는 그녀의 앞머리를 문발 걷어내듯, 한쪽으로 넘겼다.

         

       가려져 있던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건 상상 이상인걸.”

         

       예상을 뛰어넘는 아리따운 미모에 일순 마음이 파도치듯 일렁거렸다.

         

       제 앞머리에 사내의 손길이 닿는 순간, 제갈연지의 정신이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그가 매만질 때면 더없이 기분이 좋아졌던 것과는 달리, 혐오감이 치솟았다.

         

       “놓으란 말이에요…!”

         

       그녀의 미모에 방심하여 일순 흐트러진 사이, 손목을 빼낸 그녀가 다시 한 번 손을 내질렀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깃든 손바닥이 사내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퍼엉!

         

       가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하아, 하아…!”

         

       체내에 남은 한 줌의 내공까지 모두 끌어다 사용한 제갈연지의 무릎이 꺾였다.

         

       뒤로 밀려났던 사내는 뻐근해진 가슴을 부여잡은 채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는 그런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제게 손대지 마세요.”

         

       단 한 번도 더듬지 않고, 또렷한 목소리로 사내에게 경고했다.

         

       “저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뿐이에요.”

         

       사내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뭇 여인들의 마음을 사정 없이 뒤흔들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

         

       허나, 어딘가 뒤틀려 있는 듯한 미소였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 사내는 참으로 복 받았군.”

         

       사내는 제갈연지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내 행동이 지나쳤던 점, 사과하지.”

         

       오만하고, 모든 걸 내려다보는 듯했던 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소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내 지나치게 흥분했던 것 같아.”

       “무, 무슨….”

         

       난데없는 칭찬에 당황하는 제갈연지.

         

       “수련을 훔쳐본 것도 사과하지. 여기는 인적이 드물어 내가 애용하던 곳이었는데, 잠깐 떠나있는 사이 이토록 아름다운 선객이 있을 줄이야.”

         

       사람이 순식간에 너무 바뀐 탓에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제갈연지는 최대한 무뚝뚝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사과는 받아들이죠. 그러니 이제 그만 가주세요.”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사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나 때문에 지친 듯한데… 혹, 괜찮다면 내가 숙소까지 데려다….”

       “됐어요.”

       “음, 이것도 초면에 실례인 말이었나.”

         

       쌀쌀맞은 그녀의 태도에 자책하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사내.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뒤로 돌아섰다.

       

       

       

       “그럼 먼저 가지.”

         

       느린 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제갈연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사내에게 내준 손목과 앞머리가 그녀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불쾌해.”

         

       당장에라도 이 불쾌한 기분을 씻어내야만 했다.

         

       그녀는 힘겨운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 * *

         

         

       스무 명 남짓한 남녀가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어대는 객잔.

         

       그 안으로 몸을 던진 사내는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가장 상석에 자리했다.

         

       “그동안 수고들 많았다. 오늘 하루는 모두 잊고 마시자!”

       “와아아아!”

         

       잠시 멈췄던 연회가 재개되었다.

         

       오직 그들만을 위해 사내가 통째로 빌린 객잔이었다.

         

       동료들은 곳곳을 오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다 헤어지고 또 만나기를 반복했다.

         

       사내의 곁으로도 끊임없이 동료들이 찾아왔다.

         

       그는 단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그들과 술잔을 나누었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즈음, 사내는 제 근처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이보게, 진.”

       “음? 무슨 일인가.”

         

       사내의 이름은 제갈진.

         

       훗날 제갈세가를 이어받을 후계자이자, 사내의 뒤를 든든하게 박쳐주는 장자방이기도 했다.

         

       그라면, 자신이 조금 전 마주한 여인이 누구인지 답을 일러줄 수 있으리라.

         

       “내 이곳에 오기 전에 잠깐 연무장에 들렀는데 말이야.”

       “하하! 자네도 대단하군. 이제 막 긴 여정에서 돌아왔는데, 그새를 못 참고 수련을 했단 말인가?”

       “수련을 하러 간 것은 맞네만, 정작 하지는 못했네.”

       “음? 선객이라도 있었던 겐가?”

       “그렇네. 아주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지. 그것도 자네와 인연이 매우 깊어 보이는 사람이 말이야.”

         

       제갈진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나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니?”

       “자네와 같은 철선을 쓰는 여인이었네. 초식 또한 자네의 무공과 매우 흡사하더군.”

         

       여인에, 자신과 같은 철선과 무공이라.

         

       그는 어렵지 않게 답을 도출해냈다.

         

       “아무래도 내 누이를 만난 듯하군.”

       “아, 자네에게 누이가 둘 있다고 했던가.”

       “맞네. 막내는 내년에 입관할 예정이니, 자네가 본 아이는 둘째일 걸세.”

         

       그제야 사내는 그토록 궁금했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제갈연지라….”

       “막내보다는 아니지만, 둘째도 예쁘장하게 생긴 편이지. 그놈의 길게 늘어뜨린 앞머리만 좀 걷어내면 좋을 텐데 말이야.”

         

       조금 전 제 손으로 걷어올린 그녀의 앞머리가 떠올랐다.

         

       “확실히 앞머리를 걷어내니 더 예쁘긴 하더군.”

         

       사내가 미소 짓자, 제갈진이 헤벌쭉 웃으며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하하! 자네 설마 내 누이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응?”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제 옆구리를 찔러오는 제갈진을 보며 사내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쁘고, 무공 실력까지 대단하더군. 그 정도면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네만.”

       “으응…?”

         

       제갈진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무공 실력이 대단했다니, 아무래도 자네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누이의 무공 실력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닐세. 아무래도 자네가 본 여인은 내 누이가 아니거나, 자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 게야.”

         

       단호한 얼굴로 대답하는 제갈진.

         

       사내는 희게 웃으며 첨언했다.

         

       “혹 자네가 보지 못한 사이 발전을 이룩했을 수도 있겠지.”

         

       무공 실력을 착각할 수는 없다.

         

       자신이 직접 그녀의 수련을 훔쳐보고, 끝에 가서는 장법을 직접 맞아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사내가 판단하기에, 그녀의 실력은 학관 내 여류 고수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수준이었다.

         

       또한 제갈진이 조금 전 일러준 제갈연지의 인상착의가 조금 전 보았던 여인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하하!”

         

       사내는 제법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곤 이쪽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제갈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어쩌면 자네와 나는 가족이 될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두 눈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바로 참교육을 기대하셨을 독자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ㅎㅎ,,ㅋㅋ,,ㅈㅅ!

    만남은 다음 편에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목이 막힐 정도로 고구마를 먹이는 나쁜 놈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제 무단으로 휴재를 하게 된 점에 대해 죄송하단 말씀 전합니다.

    자세한 내막을 설명드리긴 어렵지만, 약간 그런 식이었습니다.

    밤잠까지 줄여가면서 더할나위 없이 인생 열심히 살고 있는데, 옆에서 넌 너무 게으르고, 매사에 의욕적이지 않다며 욕을 들이박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소위 말하는 억까를 당했습니다.

    한 번 기분이 확 말리니까 새벽에 글을 쓰려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글에 대한 생각은 안 나고, 그 말만 계속 떠오르더군요.

    그 상태로 밤을 꼴딱 새고 아침에 몇 시간 자고 일어나서 황급히 글을 썼습니다…

    지금은 오해를 풀었습니다만, 어제는 정말 정신이 멍했네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약 또 불가피하게 휴재를 하게 될 일이 생기면 적어도 공지를 꼭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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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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