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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쀼히히흣! 간지러! 쀼우!”

       

       아르가 간지럼에 웃으며 한참 발버둥치고 나서, 나는 아르의 궁둥이를 팡, 하고 치며 대충 씻고 들어간 벌을 마무리했다. 

       

       “삐유….”

       

       아르는 웃다 지쳐 탕에서 배를 까고 누운 채 둥둥 떠 다녔다. 

       

       “비누칠은 이따가 할 거니까 도망가지 말고. 알겠지?”

       “우응…. 아라써.”

       

       나는 물 밖으로 튀어나온 아르의 뚠뚠한 배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여기 시설이 진짜 장난 아니긴 하네.’

       

       지금 뛰어든 곳은 따뜻한 온탕이었지만, 건너편에는 아예 워터 슬라이드까지 있는 냉탕이 있었다. 

       

       ‘이 호텔은 진짜 어디까지 진심인 거야.’

       

       솔직히 가격은 안 보고 들어오긴 했는데, 이쯤 되니 아무리 나라도 1박에 얼마일지 궁금해졌다. 

       

       ‘뭐, 그렇다고 가격이 걱정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팔을 뒤로 빼서 난간에 기대었다. 

       

       “크으…. 평화롭고 좋구나….”

       

       놀랍게도 이 목욕탕은 천장이 아주 높은 일종의 유리돔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늦은 아침의 찬란한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따뜻하게 내리쬐었다. 

       

       ‘캬. 이게 진짜 호캉스지.’

       

       지구에서 현대 문명을 맘껏 누리고 살면 뭘 하겠는가.

       돈이 없어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오늘은 뭐 싸게 나온 거 없나 보고, 과일 하나 살 때에도 여기가 싸네 저기가 싸네 비교해 가면서 백 원이라도 더 싼 곳으로 가고….

       

       내가 요리를 또래에 비해 나름 하게 된 것도 사실 진심으로 요리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데에서 사 먹거나 배달 시켜 먹는 게 너무 비싸서라는 이유가 컸다. 

       

       ‘코팡에서 미사일 배송만 시켜도 닭다리살 두 팩에 만 원 초반대면 사는데, 무슨 브랜드 치킨은 닭도 쬐까난 게 기본 2만 원이 넘어가니….’

       

       정말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렸을 땐 배달비 같은 건 있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치킨 한 번 시키려면 배달비가 기본 3천 원이다. 

       

       ‘기본 후라이드로 2만 원 언저리에 시켜도 배달비 포함하면 거의 2만 5천 원이 되는 게 이게 말이 되냐고.’

       

       포장으로 하면 배달비를 절약할 수 있긴 하지만, 그렇게 치면 코팡 미사일 배송은 무료인데 사실상 비교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두 팩 소량 기준으로 해서 그렇지 대량으로 사면 살수록 단가는 더 떨어지기 마련.

       

       적당히 대량으로 사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부지런히 꺼내서 차려 먹으면 그것만 한 절약이 없다. 

       

       ‘외식 물가도 진짜 너무 올라서, 진짜 돈 아끼려면 집에서 전부 다 해 먹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지.’

       

       하지만 그런 시절도 이제는 안녕.

       

       비록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건 없지만, 마법이란 게 존재하고, 우주에서 제일 귀여운 드래곤, 상상만 해 왔던 이상형과 99.9% 일치하는 아름다운 엘프가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쀼우…. 좋댜….”

       

       이렇게 돈을 쓸어담아 입이 떡 벌어지는 초호화 호텔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든든한 아침을 먹고 목욕을 즐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인생이라니.

       

       ‘이 빙의, 만족도 최상이야.’

       

       빙의 초반에는 하무트교의 습격으로 죽을 뻔했고, 이후로도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갓 태어난 해츨링을 주워 키우며 필사적으로 살아 왔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악랄한 쪼렙 구간을 넘기고 성장도 스토리 진행 시점에 비해 아주 잘 되어 있다 보니 적어도 일상 생활 면에 있어서는 재벌 2세 부럽잖은 호화를 누릴 수 있었다. 

       

       ‘재벌 2세도 자기 사업 신경쓰랴 뭐 하랴 하면 막상 돈 쓸 시간도 없어 보이던데.’

       

       나는 이렇게 아르랑 실비아 씨랑 돈을 마구마구 써 대고 있으니 더더욱 만족도가 높았다. 

       

       ‘솔직히 지구에 있을 제용이 형도 우리 귀여운 아르를 보면 못 참고 버선발로 뛰어와서 젤리랑 뚠뚠한 배를 만져 보려고 할걸.’

       

       후후.

       

       게다가 나는 마신의 부활을 막는다는 일종의 히든 스토리까지 다 깨고 나면 아르와 함께 몇천 년 동안 부족함도 없고 위협도 없는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실비아 씨도 원래부터 장수종인 엘프고.’

       

       물론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아직 확실하게 봉인한 건 헤카르테 하나고, 하무트나 바할라크는 물론이고 드러나지 않은 마왕들과 언제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일단 마왕 하나 잡고 폭풍 성장을 했으니.’

       

       나와 아르, 그리고 주인공인 레키온 쪽도 성장을 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고 스토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야만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건 마왕 쪽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떠받들고 영향력을 퍼뜨릴 추종자를 모으고, 대륙 이곳저곳에서 부활을 위해 필요한 힘을 모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헤카르테만 하더라도 불완전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부활을 한 거라 희생 없이 무사히 잡을 수 있었던 거니까.’

       

       스토리 상으로는 아직 바할라크의 부활까지도 꽤나 시간이 있었다. 

       

       우리가 아예 수련을 손에서 놓고 매일 매일 방구석에 앉아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며 몇 달을 허비하지 않는 이상, 마왕이 설사 완전한 힘으로 부활한다 하더라도 아르가 상대할 견적이 충분히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마신도 아니고, 마왕들 정도는 무려 ‘은빛 섬광’ 브레스를 터득한 우리 아르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린 이제 레키온을 만나러 갈 거니까.’

       

       정보 길드에서 마스터가 말해 준 정보에 따르면 레키온도 지금쯤 원작 스토리보다 레벨업이 꽤 많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하무트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작은 스노우볼이 구르고 굴러서 레키온의 성장까지 이어졌지.’

       

       내가 하무트교에게서 도망치고, 하무트교는 도망친 나를 찾으려 무리하게 세력 확장을 하며 사람들을 납치까지 했고.

       

       그 소식이 레키온의 친구인 알렉스의 귀에 들어가, 레키온이 하무트교를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무트교를 토벌하면서 레키온이 레벨업은 물론이고 신성력 스탯까지 쏠쏠하게 얻었을 테니….’

       

       이거, 이렇게 보니까 페룬 대륙은 거의 내가 캐리했는데?

       

       원래 전략 게임 같은 것도 이런 작은 분기점 하나로 판도가 뒤바뀌는 법.

       

       깨어나지 못할 뻔한 아르를 키우고 레키온의 성장까지 가속화시킨 나의 지분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크흠. 너무 양심이 없었나? 아무튼.’

       

       모든 게 계획 이상으로 잘 풀리고 있다.

       

       즉, 우린 이렇게 돈을 좀 펑펑 쓰면서 놀 자격이 있다는 것.

       

       “뀨우우….”

       

       내리쬐는 따뜻한 햇볕을 쬐며 아르의 뀨 소리와 이따금씩 나는 물장구 소리를 듣던 나는, 곧 기지개를 쫙 켜며 일어섰다. 

       

       그리고 냉탕 쪽의 거대한 워터 슬라이드를 올려다보았다.

       

       “읏차! 그럼 기왕 돈 쓰는 거, 저것도 한번 타 볼까.”

       “쀼우?”

       

       내가 일어서자 아르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르도 관심 있니?”

       “우응! 아르두 타고 시퍼!”

       “그래, 그럼 올라가 볼까.”

       

       내가 걸어서 워터 슬라이드 계단 쪽으로 가려 하자, 아르는 고개를 젓더니 접고 있던 자신의 날개를 쫘악 폈다. 

       

       “레온! 내 등에 타 바! 아르가 태워 주께!”

       

       아르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하며 자신의 등 뒤를 척 가리켰다. 

       

       “아르 등에?”

       

       나중에 언젠가 아르의 등에 탈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게 바로 지금이 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되…려나?”

       “당여니 대지! 레온은 아르를 몰루 보는 고야? 어서 타 바! 히히. 이모처럼 빠르진 않아두 저 정도는 올라갈 수 이써.”

       

       아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뒤돌아 서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얼른 타라는 듯 손짓을 했다. 

       

       “어, 음. 그래. 한번 타 볼게, 아르야.”

       

       확실히 이젠 나보다 덩치가 크다 보니, 목에 팔을 두르고 업히듯 타니 나름 모양새가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보통 생각하는 드래곤에 올라탄 모습이랑은 느낌이 좀 다르긴 하지만, 여튼.’

       

       펄럭!

       

       “구럼 가께!”

       

       곧 아르의 날개가 펄럭이자, 우리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우와.”

       

       조금 올라온 것뿐인데도 우리가 몸을 담갔던 욕탕이 꽤나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이드밀라의 등에 탔을 땐 워낙 빠르고 정신도 없었는데, 이렇게 아르의 등에 타서 느릿느릿 안정적으로 공중을 날아 가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내가 진짜 날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뭔가 공중에서 이리저리 기울기도 하고 왔다갔다 하니까 실감도 나는….

       

       “…아르야, 우리 잘 날고 있는 거지?”

       “쀼, 쀼우! 구럼! 레온 태우고 나는 게 처음이라 잠깐 감 좀 잡은 고야! 뀨훔.”

       

       아르는 헛기침을 하며 금세 균형을 다시 잡았다. 

       

       “쪼끔만 더 날다가 저기루 가께!”

       “그래, 그래. 잘 나네, 아르.”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드래곤의 날개에는 꽤나 마나가 풍부하게 응집되어 있었다. 

       

       ‘저렇게 마나가 있으니까 날갯짓을 막 엄청 하지 않아도 몸을 다 지탱하고 날아 오를 수 있는 거구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약한 플라이 마법이 상시로 걸려 있다고 해야 할까. 

       

       “이야, 금방 익숙해졌는데, 아르?”

       “히히, 그치 그치?”

       

       아르는 날 태우고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가며 활강하다가, 워터 슬라이드 꼭대기에 안착했다. 

       

       “어디 보자…. 아, 이렇게 되어 있구나.”

       

       워터 슬라이드는 철제 구조물이었는데, 특수한 코팅 페인트 같은 걸 칠해 놓은 듯했다. 

       

       아마도 잘 미끄러지도록 슬라임 액체 비슷한 걸 섞어 발랐겠지.

       

       원통형으로 되어 있는 워터 슬라이드 입구 쪽에는 스위치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에 마력을 흘려 보내자 별안간 슬라이드 아래를 향해 물이 촤아아악 뿜어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캬. 이런 장치였구나. 탈 만하겠는데?”

       

       단순히 직선으로 뻗어 있는 게 아닌, 진짜 놀이기구처럼 이리저리 곡선 트랙이 되어 있는 워터 슬라이드니 기대해도 될 듯싶었다. 

       

       “아르는 이거 타는 동안엔 몸집을 조금 줄이는 게 좋겠다.”

       “쀼우. 아라써….”

       

       아르는 완전히 줄이긴 싫었는지 나보다 키가 조금 작은 정도로 덩치를 줄였다. 

       

       그리고 워터 슬라이드 입구 앞에 섰다. 

       

       꿀꺽.

       

       “왜, 아르. 무서워?”

       “쀼, 그, 그러타기보다느은…!”

       “그럼 내가 먼저 탈까?”

       “우응.”

       

       아르는 안 무서운 척을 하다가 내가 먼저 타겠다는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하늘 나는 거랑 놀이기구 타는 거랑은 좀 별개긴 하지.

       

       “좋아, 그럼 내가 먼저 간다!”

       

       나는 씩 웃고는 망설임 없이 워터 슬라이드 안으로 쭉 미끄러져 들어갔고.

       

       “이얏호오오오오! 우와아아악!”

       

       마지막 360도 회전 구간을 거쳐 아래로 퐁당 빠져나왔다. 

       

       “후아! 아우, 코 매워.”

       

       회전 구간에서 코에 물이 들어가 코가 맵긴 했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탄 나는 저 위쪽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 올려 보이며 말했다. 

       

       “아르야! 이거 엄청 재밌…응? 아르 어디 갔지?”

       

       자세히 보니, 아르는 그새 몸집을 더 줄인 채 나에게 울먹이며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쀼우! 레온! 구냥 아르 안고 타 주면 안 대? 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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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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