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50

       ‘학교 앞’이라는 단어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종종 편하게 쓰이는 단어다. 특히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랜드마크로 기능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 긴 역사만큼 크기도 컸다. 단순히 크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곳에 세워지는 건물도 많고, 허물어지는 건물도 그만큼 많다.

        

       허물고 세우는 것은 좋다. 너무 오래된 건물은 안전상에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미관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법이니까.

        

       문제는, 그 건물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 오래된 지역일수록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후죽순으로 허물어지고 세워지는 건물들 사이에, 좁고 기다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간다. 아무리 재개발을 하고 길을 재정비하더라도 오래된 건물들이 원래부터 차지하고 있는 부지의 형태가 애초부터 틀어질 수밖에 없게 되니, 그만큼 도시 내부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서울이라는 곳에선 바로 옆 동네만 가도 길이 헷갈리게 된다.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높은 건물의 숲속에서 분명히 직진하고 있다가도 어느새 있던 곳으로 돌아오고, 분명히 제대로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목표로 한 곳이 나오지 않게 된다.

        

       그런 곳이니, 올해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의 집— 특히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 집에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친구와 미리 만나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이라면 당연히 학교의 위치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학교 앞에서 만나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된다.

        

       문제는, ‘학생이 아닌 사람’이다.

        

       학교라는 곳은 주변에서 나름대로 유명한 랜드마크가 될 수 있고, 학생이라는 유동 인구가 많은 특성상 정류장의 이름이 되기도 할 정도로 유명한 경우가 많으나, 그 학교의 관계자가 아닌 이에게는 몹시 배타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수없이 다니는 곳이다. 만약 성인이 그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다면 그 존재를 ‘수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쪽이 당연했다.

        

       게다가, 만약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그 ‘학교 앞’을 감시하는 일이라면—

        

       [잘 보고 계시죠?]

        

       “……하아.”

        

       그녀는 그 문자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멀리 떨어지는 것 외에는 딱히 좋은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사실 이것도 위험하다면 위험했다. 학교 사진을 찍는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먼 곳에서 학생들을 몰래 촬영하고 있었다고? 경찰들이 실적에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먼 곳을 택한 거였고.

        

       이 거리라면 학생들의 실루엣은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어도, 그렇게 찍은 영상이나 사진으로 ‘뭔가 해볼 만큼’ 화질이 좋을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그 부분이 영상 중앙에 온 것도 아니고 변두리에 찍힌 것을 일부러 확대해야 보일 정도라면, 혹시라도 걸렸을 때 풍경 사진 찍다가 우연히 찍혔다고 변명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그 금발 양 갈래머리 소녀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머리가 잘 돌아갔다.

        

       별로 칭찬은 아니다. 그 돌아가는 방향이 그 나이대의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방향은 아니었으니까.

        

       사진을 빌미로 위험천만한 짓을 시킨다.

        

       물론 이득은 확실했다. 나중에 조사해본바, 그 아이도 예사라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업 그룹의 딸이었으니까.

        

       아니, 사실 조사할 필요도 없다. 국내 기업인 중에서 금발의 미녀와 결혼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나름대로 예사라 사진을 찍던 그녀였으니 그 주변 인물에 대한 대략적인 조사는 끝낸 뒤였다.

        

       오히려 그녀에게 있어서 불가사의한 존재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놀기 좋아하는 소녀와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다니는 조금 드세보이는 소녀 쪽이었다.

        

       이쪽은 진짜로 먼저 접근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다. 이미 신문 기사에 실린 얼굴들이긴 했지만, 의외로 이슈가 되지도 못했고.

        

       “내 팔자야…….”

        

       솔직히, 목표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다.

        

       얼굴 예쁜,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기업의 후계자라면 분명 팬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에 조금 쟁점이 되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재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계속 그 뒤를 쫓은 이유는—

        

       뭐랄까, 일종의 촉이었다.

        

       분명히 이 애를 따라다니면, ‘특종’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지금이야 돈을 빌미로 이렇게 학교나 감시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다시 카메라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로 틸트 업 시켜둔 LCD 화면에는 사람 팔뚝보다도 더 큰 망원 렌즈를 통해 들어온 영상이 그대로 떠 있었다.

        

       “그래도 동영상 기능에 제한이 없는 모델이라 다행이네.”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근처의 건물 옥상.

        

       건물주와 친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친분도 보통은 돈으로 만들어낸 거지만.

        

       “참, 돈 없는 것도 죄라니까.”

        

       그녀는 그 사진을 자신의 고용주에게 보내고, 펼쳐둔 낚시 의자에 앉아 옆에 내려 둔 가방을 뒤적여 빵을 꺼내 봉투를 찢은 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니지, 돈 많은 쪽이 더 큰 죄인가?”

        

       요 몇 개월간 관찰하던 소녀가 카메라 액정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메시지가 왔길래 내용을 확인하다가, 수아는 화들짝 놀랐다.

        

       놀이공원에서 돈으로 포섭했던 그…… 이제는 기사라고 부르기 조금 힘들 것 같은, 그 사진가가, 그녀에게 자신의 장비 사진을 그대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사진 속 카메라 액정에는 학교 건물이 나오고 있었다.

        

       이수아는 황급히 메시지 앱을 꺼버렸다.

        

       “응? 혹시 뭐라도 보였어?”

        

       옆에서 같이 학교 앞을 보고 있던 하늘이가 그렇게 물었다. 하늘이는 아까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수상하다는 듯 이쪽을 보기도 했고, 사라가 상황을 바꿔버린 뒤 조금 면식이 생긴 아이들이 뭘 하냐고 묻기도 했지만, 하늘이는 그냥 하늘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있다고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아,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것 같아.”

        

       마침 차 한 대에서 여자가 하나 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최나경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물론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최나경보다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었고, 그 직후에 그 아들로 보이는 학생도 차에서 내렸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늘이는 수아가 가리킨 차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렇게 나와서 감시하고 있을 필요도 없기는 했다. 대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미리 불러둔 기자가 이쪽을 확실하게 찍고 있었으니까.

        

       ……다만, 아직 그 사실을 말할 용기는 없었다.

        

       감시하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이수아는 이미 혼자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수아의 이름이 아닌, 그 기자를 걸친 익명의 활동이긴 했지만.

        

       그 사람이 이전에 찍어둔 사라의 사진들에 더해, 시간별로 사라의 사진을 찍어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할 수 있다면 영상도 찍어두었고, 그 원본 영상들도 전부 몇 개나 되는 하드에 백업해서 이곳저곳에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그 사진과 영상을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을, 유진 그룹의 이사진에게 익명으로 보냈다.

        

       아무에게나 보낸 것은 아니었다. 이수아가 파악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사라와 혈연관계에 있거나 최나경과 대립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그리고 전 회장의 측근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에게만 보냈다.

        

       아무 내용 없이 그저 사진만 보냈지만, 분명 그 사람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것도 분명 위험한 일이긴 했다. 사라를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분명 최나경을 밀어내고 사라를 차지하려고 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절대 쉽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라가 가지고 있는 지분과, 밀려난 최나경의 지분을 합치는 것만으로도, 사라의 지분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니까.

        

       게다가, 사라와 ‘사라’모두, 이제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존재였고.

        

       이수아도 뒤에서 열심히 도와줄 수 있었다.

        

       만약 혼인이 필요하다면, 그렇게까지 해 줄 수도 있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바라는 바였다.

        

       혹시 사라나 ‘사라’가 이수아를 이용하기만 하고 버리더라도—

        

       그렇더라도, 자신이 지은 죄의 속죄 정도는 될 테니까.

        

       “……수아야.”

        

       “으, 응?”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멍한 표정이 되었던 것일까.

        

       어느새 하늘이가 옆으로 와서 이수아를 보고 있었다.

        

       “아, 나는 괜찮은—”

        

       데, 라고 말하기도 전에,

        

       “뭔가 숨기고 있는 거라도 있니?”

        

       이수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하늘이가 그렇게 물었다.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정확하게 의표를 찔렀으니까.

        

       “……그렇구나.”

        

       하지만, 하늘이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도 참, 생각이 많겠다.”

        

       하늘이는 작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밖에 없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해 보였다.

        

       “……아냐.”

        

       “응?”

        

       이수아가 고개를 젓자, 하늘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을 살짝 치켜뜨고 있는 것이, 평소의 자신감 넘치던 하늘이와 차이가 커서, 뭔가 한마디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의 사라, 그리고 ‘사라’가 있을 수 있는 게 모두, 너의 덕분이잖아.”

        

       그래서, 했다.

        

       지금까지 후회할만한 많은 일을 해 왔지만, 적어도 이 말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네가 시작해줬기 때문에, 우리 모두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거니까.”

        

       자신은 그저 사라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이 전부였는데.

        

       하늘이는 사라의 옆에서 함께 달려주었다.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같은 말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그 전에 저질렀던 죄의 크기를 생각해봐도, 그리고 해낼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해봐도.

        

       하늘이가 이수아보다도 압도적이었으니까.

        

       “그, 그럴까……?”

        

       막상 이수아의 말을 듣자, 하늘이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응, 그래. 그러니까 자신감 가져도 돼.”

        

       이수아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그렇구나…….”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긴 하지만, 기분 나쁜 침묵은 아니었다고, 이수아는 생각했다.

        

       “얘들아!”

        

       저 멀리서, 누군가가 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서 소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뒤에서는 ‘사라’와 양혜인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

        

       어색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싶다는 듯, 하늘이는 조금 과장되게 손을 흔들며 크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수아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