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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
    노아는 모닥불 때문인지 아니면 감동 때문인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이었다.
    ​
    ​
    “어떤 모습이든 친구라고 했으니까. 같이 있을 땐 편하게 있어도 괜찮은가 해서.”
    “어..어어… 그렇지, 그치? 그렇겠지?”
   “고마워.”
    ​
    ​
    노아는 곧바로 제 셔츠 윗단추를 툭 하고 풀었다. 그러자 리안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
    ​
    “저, 저기 단추는 왜?”
    “그… 이대로 변하면 옷이 망가져서.”
   “아… 아아 -… 아하… 아하하… 아아..그렇구나아…”
    ​
    ​
    리안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고 그린 듯한 웃음이 걸렸다. 틀렸다, 유니콘이 인정한 남자는 고장이 나버렸다. 노아가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단추를 풀어내려는 순간.
    ​
    ​
    쿠르르릉!
    으아아아악!
    ​
    ​
    “…!”
    “….!”
    ​
    ​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더니 동굴 바깥쪽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표정이 굳은 두 사람이 동시에 시선을 맞추었다.
    ​
    ​
    쿠르르릉!
    후드득…
    ​
    ​
    다시 한번 더 땅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흙먼지와 바위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이대로 있다간 동굴 속에 묻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곧바로 동굴을 뛰쳐나왔다. 그사이 비는 그친 듯했지만, 안개는 그대로였다.
    ​
    ​
    “이건…식물?”
    ​
    ​
    마치 거대한 나무 근처에 나무뿌리가 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손목 두께보다 두꺼운 식물의 뿌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식물 뿌리는 땅에 바느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땅속에서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길 반복했다. 
    ​
    ​
     노아는 빠르게 다가오는 줄기들을 보며 굳은 표정으로 외쳤다.
    ​
    ​
    “식물형 몬스터 라플이야!”
    “라플?”
    “거대한 꽃밭이나 나무의 형태를 하고 있다가 다가온 생물을 전부 집어삼키는 몬스터야. 땅에서 튀어나온 건 놈의 뿌리고.”
    ​
    ​
    거의 날듯이 달려드는 식물의 뿌리가 노아의 검에 반으로 잘렸다. 다만, 보기보다 꽤 질긴지 약간의 텀을 두고 잘려 나갔다.
    ​
    ​
    “저 줄기에 잡히면 그대로 땅속으로 끌려들어 가게되니까 조심해야 해!”
    ​
    ​
    노아는 다가오는 줄기를 가볍게 베어낸 후 말을 이었다.
    ​
    ​
    “본체를 죽이지 않는 이상 계속 튀어나올 거야. 본체를 찾자.”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아까 들렸던 비명 -…”
    ​
    ​
    리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
    ​
    끄아아악!
    ​
    ​
    “…!”
    “이 목소리는!”
    ​
    ​
    끔찍한 비명이 저 멀리서 웅웅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곧바로 비명이 들려왔던 쪽으로 달려 나갔다.
    ​
    ​
    퓻,푸욱!
    ​
    ​
    땅속에 숨어있던 뿌리들이 튀어나와 리안과 노아를 꿰뚫을 것처럼 달려들었지만, 몇 번의 칼질로 다섯 토막이 났다.
    ​
    ​
    “끄윽,끅….혀..혀엉!”
    “…! 역시… 네로 목소리야!”
    “젠장..”
    ​
    ​
    리안이 심각한 얼굴로 소리치자, 노아가 욕설을 흘리며 더욱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
    ​
    비가 내린 덕분에 안개가 조금 걷혔는지 비가 오기 전보다 시야가 조금 트였다. 그 덕분에 널찍한 공터에 자리 잡은 거대한 꽃의 머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
    ​
    가장 먼저 보인 건 마차만 한 크기의 꽃봉오리였다. 얌전하게 오므려진 꽃잎 사이로 날카로운 이가 촘촘히 박혀있었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
    치이익…!
    ​
    ​
    흘러내린 액체는 땅을 녹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줄기는 사람 몸통만 한 두께였는데 길이가 마차 두 대 높이는 되어 보였다. 
    ​
    ​
    놈은 잎사귀 대신 손목 두께만 한 줄기를 달고 있었는데, 마치 촉수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촉수 같은 줄기가 사람을 휘감아 꽃봉오리 쪽으로 끌어당기는 게 보였다.
    ​
    ​
    “…!”
    “네로!”
    ​
    ​
    줄기에 잡혀있는 건 네로였다. 압박감에 기절이라도 했는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모습에 두 사람이 앞뒤 가릴 것 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
    ​
    푸욱! 푹!
    ​
    ​
    사방에서 뿌리들이 튀어나와 두 사람을 덮쳤지만 잔 상처조차 만들지 못했다.
    ​
    ​
    “네로!”
    ​
    ​
    노아는 곧바로 네로를 붙잡고 있는 줄기를 베어냈다. 그러자 허공에 매달려있던 네로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땅 위로 곤두박질쳤다. 그녀는 곧바로 제 동생을 품에 안아 들었다.
    ​
    ​
    “캬아아악!”
    ​
    ​
    먹잇감을 눈앞에서 뺏긴 게 화가 났는지 라플이 빼곡한 이를 내보이며 노아에게 달려들었다. 
    ​
    ​
    스륵!
    ​
    ​
    마치 부드러운 꽃잎이 땅에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거대한 꽃봉오리에 다섯개의 빗금이 그어졌다.
    ​
    ​
    쿠구구궁, 쿠웅!
    ​
    ​
    시간차를 두고 꽃봉오리가 몇 덩어리로 나뉘어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
    ​
    촤아아악!
    ​
    ​
    잘린 줄기에서 녹색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잘린 팔뚝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
    ​
    철퍽,투둑…
    ​
    ​
    라플의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리안은 곧바로 네로와 노아에게 다가갔다.
    ​
    ​
    “노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하지만 네로가…”
    ​
    ​
    노아는 걱정이 한가득 담긴 시선으로 제 품에 안긴 네로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곁까지 다가온 리안은 가방에서 모포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
    ​
    “우선 여기에 눕히자.”
    “…그래, 응급처치부터 해야 하니까.”
    ​
    ​
    그제야 이성이 어느 정도 돌아왔는지 노아가 굳은 얼굴로 네로를 모포 위에 눕혔다. 그와 동시에 네로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
    ​
    “으윽…”
    “…! 네로!”
    “형..?”
    ​
    ​
    네로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노아를 올려다보았다.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순간.
    ​
    ​
    “노아! 피해!”
    “뭐?”
    ​
    ​
    리안이 꺼낸 말이 무언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뒷덜미 쪽이 잡아당겨졌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시간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
    ​
    무언가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 앞으로 튀어 나간 리안의 모습과 조금 전까지 기절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네로의 얼굴이 보였다.
    ​
    ​
    푸욱!
    ​
    ​
    살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제 속도를 찾았고 그녀의 몸이 라플의 핏물 위를 나뒹굴었다. 비릿한 혈 향과 함께 핏물이 바닥에 투둑하고 떨어졌다.
    ​
    ​
    “어라?”
    ​
    ​
    네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손을 바라보았다. 리안의 배를 꿰뚫은 검이 산산조각이 나선 바닥에 떨어졌다. 
    ​
    ​
    스르륵…
    ​
    ​
    그와 함께 바닥을 적신 핏물이 증발하는 것처럼 거꾸로 되돌아가 어딘가로 흡수되었다.
    ​
    ​
    [ 감히 내 피를 탐하다니…! ]
    ‘아니.. 이건 내 피잖아.’
    [ 계약했으니 파트너의 피가 내 피고, 내 피가 파트너의 피잖나! ]
    ‘넌 피가 없잖아.’
    ​
    ​
    리안은 개그 주민답게 마검과 콩트를 주고받으며 제 배 쪽을 내려다보았다. 단검이 뚫고 들어가 옷이 찢어져 있었다.
    ​
    ​
    ‘아.. 찬 바람 들어오네.’
    [ 그러게,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선… ]
    ‘그치만 네가 입혀주는 옷은 너무 화려해.’
    [ 흐흥, 그렇게 칭찬해줘도 어리석은 선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
    ​
    리안은 마검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후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네로를 바라보았다. 
    ​
    ​
    “형.”
    ​
    ​
    기이하다 느껴질 정도로 맑은 눈을 한 네로가 두 팔을 뻗어 리안을 끌어안았다. 리안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
    ‘뭐지? 정신 공격에 당해서 미치기라도 한 건가? 공..격은 안 하는 것 같으니 가만히 있어야 하나?’
    ​
    ​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뒤에서 철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꽤 멀리까지 날아갔던 노아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오는 소리였다.
    ​
    ​
    “리안!”
    ​
    ​
    노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리안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는 것과 동시에.
    ​
    ​
    쿠르르릉…!
    ​
    ​
    라플이 땅을 헤집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땅이 흔들리더니 네로와 리안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졌다. 마치 생물이 입을 쩍 벌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갈라진 땅속으로 네로와 리안의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
    “엇?”
    ​
    ​
    리안은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자각하곤 다급히 고개를 돌려 노아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야 100층 높이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지만 노아는 위험할 수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노아쪽을 쳐다본 것이다.
    ​
    ​
    “리안!”
    “아.”
    ​
    ​
    간절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노아의 모습을 보며 리안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구덩이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 노아는 휘말리지 않았다.
    ​
    ​
    다행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그의 몸은 끝을 모를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
    ​
    “안돼!!”
    ​
    ​
    노아가 비명을 내지르며 리안을 따라 구덩이에 몸을 던지려 했지만, 그보다 땅이 입을 다무는 게 더 빨랐다. 공작이 사라졌을 때처럼 순식간에 땅이 평탄해졌다.
    ​
    ​
    쿵!
    ​
    ​
    마력이 휩쌓인 노아의 주먹이 거칠게 바닥을 내리쳤다. 거대한 바위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땅이 움푹 파였지만 그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
    ​
    “안돼…안돼….안돼!!”
    ​
    ​
    추운 날씨 때문에 빗물로 젖은 땅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얼어 차갑고 딱딱했지만 노아는 필사적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에 마력을 두른 채 파내니 흙이 무텅이로 파내졌다.
    ​
    ​
    땅에 높고 낮음이 생기니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녹색 핏물이 노아가 만들어낸 구덩이로 흘러들어와 웅덩이를 만들었다.
    ​
    ​
    투두둑.
    ​
    ​
    “안돼, 안돼…리안..제발…”
    ​
    ​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져 내린 눈물이 녹색 핏물에 섞여들었다. 불쾌할 만도 하건만 노아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
    ​
    ‘리안..리안…’
    ​
    ​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검기만 했던 구덩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드럽게 휘어지던 눈꼬리, 무의식적으로 벙긋거리던 입술.
    ​
    ​
    ‘무사해서 다행이다.’
    ​
    ​
    리안의 중얼거림이 노아의 머릿속에 화상 자국처럼 남아 끝없는 통증을 느끼게 했다.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대신 칼맞고 함정에 빠져서 사라지기.

다음화에서 리안과 공작이 만납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노아는 모닥불 때문인지 아니면 감동 때문인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떤 모습이든 친구라고 했으니까. 같이 있을 땐 편하게 있어도 괜찮은가 해서.”

“어..어어… 그렇지, 그치? 그렇겠지?”

“고마워.”

노아는 곧바로 제 셔츠 윗단추를 툭 하고 풀었다. 그러자 리안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저, 저기 단추는 왜?”

“그… 이대로 변하면 옷이 망가져서.”

“아… 아아 -… 아하… 아하하… 아아..그렇구나아…”

리안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고 그린 듯한 웃음이 걸렸다. 틀렸다, 유니콘이 인정한 남자는 고장이 나버렸다. 노아가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단추를 풀어내려는 순간.

쿠르르릉!

으아아아악!

“…!”

“….!”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더니 동굴 바깥쪽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표정이 굳은 두 사람이 동시에 시선을 맞추었다.

쿠르르릉!

후드득…

다시 한번 더 땅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흙먼지와 바위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이대로 있다간 동굴 속에 묻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곧바로 동굴을 뛰쳐나왔다. 그사이 비는 그친 듯했지만, 안개는 그대로였다.

“이건…식물?”

마치 거대한 나무 근처에 나무뿌리가 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손목 두께보다 두꺼운 식물의 뿌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식물 뿌리는 땅에 바느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땅속에서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길 반복했다.

노아는 빠르게 다가오는 줄기들을 보며 굳은 표정으로 외쳤다.

“식물형 몬스터 라플이야!”

“라플?”

“거대한 꽃밭이나 나무의 형태를 하고 있다가 다가온 생물을 전부 집어삼키는 몬스터야. 땅에서 튀어나온 건 놈의 뿌리고.”

거의 날듯이 달려드는 식물의 뿌리가 노아의 검에 반으로 잘렸다. 다만, 보기보다 꽤 질긴지 약간의 텀을 두고 잘려 나갔다.

“저 줄기에 잡히면 그대로 땅속으로 끌려들어 가게되니까 조심해야 해!”

노아는 다가오는 줄기를 가볍게 베어낸 후 말을 이었다.

“본체를 죽이지 않는 이상 계속 튀어나올 거야. 본체를 찾자.”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아까 들렸던 비명 -…”

리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끄아아악!

“…!”

“이 목소리는!”

끔찍한 비명이 저 멀리서 웅웅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곧바로 비명이 들려왔던 쪽으로 달려 나갔다.

퓻,푸욱!

땅속에 숨어있던 뿌리들이 튀어나와 리안과 노아를 꿰뚫을 것처럼 달려들었지만, 몇 번의 칼질로 다섯 토막이 났다.

“끄윽,끅….혀..혀엉!”

“…! 역시… 네로 목소리야!”

“젠장..”

리안이 심각한 얼굴로 소리치자, 노아가 욕설을 흘리며 더욱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비가 내린 덕분에 안개가 조금 걷혔는지 비가 오기 전보다 시야가 조금 트였다. 그 덕분에 널찍한 공터에 자리 잡은 거대한 꽃의 머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마차만 한 크기의 꽃봉오리였다. 얌전하게 오므려진 꽃잎 사이로 날카로운 이가 촘촘히 박혀있었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치이익…!

흘러내린 액체는 땅을 녹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줄기는 사람 몸통만 한 두께였는데 길이가 마차 두 대 높이는 되어 보였다.

놈은 잎사귀 대신 손목 두께만 한 줄기를 달고 있었는데, 마치 촉수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촉수 같은 줄기가 사람을 휘감아 꽃봉오리 쪽으로 끌어당기는 게 보였다.

“…!”

“네로!”

줄기에 잡혀있는 건 네로였다. 압박감에 기절이라도 했는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모습에 두 사람이 앞뒤 가릴 것 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푸욱! 푹!

사방에서 뿌리들이 튀어나와 두 사람을 덮쳤지만 잔 상처조차 만들지 못했다.

“네로!”

노아는 곧바로 네로를 붙잡고 있는 줄기를 베어냈다. 그러자 허공에 매달려있던 네로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땅 위로 곤두박질쳤다. 그녀는 곧바로 제 동생을 품에 안아 들었다.

“캬아아악!”

먹잇감을 눈앞에서 뺏긴 게 화가 났는지 라플이 빼곡한 이를 내보이며 노아에게 달려들었다.

스륵!

마치 부드러운 꽃잎이 땅에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거대한 꽃봉오리에 다섯개의 빗금이 그어졌다.

쿠구구궁, 쿠웅!

시간차를 두고 꽃봉오리가 몇 덩어리로 나뉘어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촤아아악!

잘린 줄기에서 녹색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잘린 팔뚝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철퍽,투둑…

라플의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리안은 곧바로 네로와 노아에게 다가갔다.

“노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하지만 네로가…”

노아는 걱정이 한가득 담긴 시선으로 제 품에 안긴 네로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곁까지 다가온 리안은 가방에서 모포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우선 여기에 눕히자.”

“…그래, 응급처치부터 해야 하니까.”

그제야 이성이 어느 정도 돌아왔는지 노아가 굳은 얼굴로 네로를 모포 위에 눕혔다. 그와 동시에 네로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으윽…”

“…! 네로!”

“형..?”

네로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노아를 올려다보았다.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순간.

“노아! 피해!”

“뭐?”

리안이 꺼낸 말이 무언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뒷덜미 쪽이 잡아당겨졌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시간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 앞으로 튀어 나간 리안의 모습과 조금 전까지 기절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네로의 얼굴이 보였다.

푸욱!

살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제 속도를 찾았고 그녀의 몸이 라플의 핏물 위를 나뒹굴었다. 비릿한 혈 향과 함께 핏물이 바닥에 투둑하고 떨어졌다.

“어라?”

네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손을 바라보았다. 리안의 배를 꿰뚫은 검이 산산조각이 나선 바닥에 떨어졌다.

스르륵…

그와 함께 바닥을 적신 핏물이 증발하는 것처럼 거꾸로 되돌아가 어딘가로 흡수되었다.

[ 감히 내 피를 탐하다니…! ]

‘아니.. 이건 내 피잖아.’

[ 계약했으니 파트너의 피가 내 피고, 내 피가 파트너의 피잖나! ]

‘넌 피가 없잖아.’

리안은 개그 주민답게 마검과 콩트를 주고받으며 제 배 쪽을 내려다보았다. 단검이 뚫고 들어가 옷이 찢어져 있었다.

‘아.. 찬 바람 들어오네.’

[ 그러게,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선… ]

‘그치만 네가 입혀주는 옷은 너무 화려해.’

[ 흐흥, 그렇게 칭찬해줘도 어리석은 선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리안은 마검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후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네로를 바라보았다.

“형.”

기이하다 느껴질 정도로 맑은 눈을 한 네로가 두 팔을 뻗어 리안을 끌어안았다. 리안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정신 공격에 당해서 미치기라도 한 건가? 공..격은 안 하는 것 같으니 가만히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뒤에서 철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꽤 멀리까지 날아갔던 노아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오는 소리였다.

“리안!”

노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리안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는 것과 동시에.

쿠르르릉…!

라플이 땅을 헤집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땅이 흔들리더니 네로와 리안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졌다. 마치 생물이 입을 쩍 벌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갈라진 땅속으로 네로와 리안의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엇?”

리안은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자각하곤 다급히 고개를 돌려 노아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야 100층 높이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지만 노아는 위험할 수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노아쪽을 쳐다본 것이다.

“리안!”

“아.”

간절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노아의 모습을 보며 리안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구덩이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 노아는 휘말리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그의 몸은 끝을 모를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안돼!!”

노아가 비명을 내지르며 리안을 따라 구덩이에 몸을 던지려 했지만, 그보다 땅이 입을 다무는 게 더 빨랐다. 공작이 사라졌을 때처럼 순식간에 땅이 평탄해졌다.

쿵!

마력이 휩쌓인 노아의 주먹이 거칠게 바닥을 내리쳤다. 거대한 바위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땅이 움푹 파였지만 그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안돼…안돼….안돼!!”

추운 날씨 때문에 빗물로 젖은 땅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얼어 차갑고 딱딱했지만 노아는 필사적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에 마력을 두른 채 파내니 흙이 무텅이로 파내졌다.

땅에 높고 낮음이 생기니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녹색 핏물이 노아가 만들어낸 구덩이로 흘러들어와 웅덩이를 만들었다.

투두둑.

“안돼, 안돼…리안..제발…”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져 내린 눈물이 녹색 핏물에 섞여들었다. 불쾌할 만도 하건만 노아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리안..리안…’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검기만 했던 구덩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드럽게 휘어지던 눈꼬리, 무의식적으로 벙긋거리던 입술.

‘무사해서 다행이다.’

리안의 중얼거림이 노아의 머릿속에 화상 자국처럼 남아 끝없는 통증을 느끼게 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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