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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눈바람이 불어오는 설산 위.

   절벽 끝자락에 앉은 핏빛 같은 장발 머리 사내가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의 목에 둘러진 붉은색의 목도리가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흩날렸다.

     

   그는 이때가 제일 좋다.

     

   황색의 하늘이 펼쳐졌을 때.

   세상 전체가 긴장한 듯 꿈틀거리는 이 감각.

     

   옛 자기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이 감각 말이다.

     

   “이게 멋대로 무슨 짓이야. 왜 하덴하르츠를 건드렸어!”

     

   그 순간이었다.

   기분 좋은 감상에 빠져있던 남성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향했다.

     

   그러자 거기에는 정돈 안 된 긴 검은 머리카락의 장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입던 옷 대신 검은색 일색의 로브를 쓴 옷차림이었다.

     

   그런 그녀는 양 주먹을 꽉 쥔 채 용납 못 하겠다는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남성은 오히려 여성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야, 질 좋은 세계 침식의 힘을 얻는 데 제일 괜찮은 상황이니까?”

     

   그의 이명은 광도제.

   익시온 소속의 세계 침식자였다.

     

   광도제가 사용하는 세계 침식은 강자와 맞붙을수록 단계가 올라간다.

   당연히 단계가 높을수록 얻을 수 있는 세계 침식의 힘도 많아진다.

     

   지금 하덴하르츠에는 무려 검왕 라이 발하임이 있다.

   질 좋은 세계 침식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손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네 힘은 들었어.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나랑 해!”

   “하하하, 그건 불가능한데.”

     

   광도제는 우스꽝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세계 침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세계 침식자인 너도 잘 알잖아?”

     

   에벨아스크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계 침식은 말 그대로 침식이다.

   세계의 일부분을 침식하며 만들어지는 것.

     

   그러니 이 세계와 연관 없는 이들끼리 뭉쳐 있어봤자 세계 침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에벨아스크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나도 이렇게 강자는 안 쫓아다녔다고?”

   “웃기지 마.”

     

   그러자 에벨아스크가 정색하면서 그를 노려봤다.

     

   “넌 그냥 싸우고 싶어할 뿐이잖아. 그런 건 전부 다 갖다 붙이기고.”

     

   그녀가 노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가만히 있던 광도제가 입가를 가렸다.

   그러고는 아주 짧게 푸흐흐하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래, 그런데? 그게 왜?”

   

   

   

   

     

   새삼스러운 것 있냐는 듯이 광도제가 웃자 에벨아스크의 손에서 세계 침식의 힘이 휘몰아쳤다.

     

   새까만 기운이 그녀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음에도 광도제는 느긋했다.

     

   “나는 신입이 더 이해가 안 돼. 내가 움직이는 건 익시온에게 도움 되기 때문이야.”

     

   익시온이 언급되자 에벨아스크가 멈칫하였다.

   세계 침식을 이용해 신을 창조하기 위해 모인 집단 익시온.

     

   그들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모인 이들이다.

     

   “하지만 지금 신입이 날 막는 건 익시온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거야?”

   “……상대는 하덴하르츠가 아니야. 발하임이라고.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거야? 발하임이 익시온을 쫓을 거라고.”

   “하하하하하! 오히려 좋지! 더 질 좋은 세계 침식을 얻지 않겠어? 우리의 세계가 한 발짝 더 빨리 다가오는 거라고!”

     

   광도제는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그 표정을 보건대 진심인 것 같았다.

     

   “……미쳤어.”

     

   광도제를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에벨아스크가 직시했다.

   그런 그녀의 눈과 마주한 광도제는 곧 천천히 웃음을 거두었다.

     

   “새삼스럽네. 이미 같은 세계의 끝을 겪어본 우리는 진작 미쳐 있었는데.”

     

   광도제의 붉은 두 눈이 천천히 빛났다.

   오래전 일을 회상하듯 그는 기괴한 웃음을 그렸다.

     

   “신입, 아무래도 하덴하르츠에 뭔가 있는 모양이니까 한 가지 말해 둘게.”

     

   하늘 위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낙뢰가 쳤다.

   본격적으로 세계 침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이 세계는 우리 세계가 아니야.”

     

   그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내려친 낙뢰를 배경 삼아 양손을 벌렸다.

     

   “우리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영양분 덩어리의 토지일 뿐이지.”

     

   하늘 위에서 황색의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지 위에 사는 벌레들은 잘 갈아서 비료로 줘야 하지 않겠어?”

     

   떨어진 황색의 빗방울이 광도제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진심으로 이 세계의 인간들을 비료 취급하고 있었다.

     

   그들이 세계 침식자를 인간으로서 대하지 않듯.

   세계 침식자 또한 그들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않는다.

     

   그것을 느낀 에벨아스크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과거라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전과 다르게 괜찮은 녀석을 한 명 알게 되었으니까.

     

   에벨아스크가 심장 가를 꽉 눌렀다.

     

   자신은 그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그건 분명 하덴하르츠를 지켜 달라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은 자신의 목숨을 빚진 약속이다.

   평생토록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주박을 풀어준 약속이니까.

     

   “그래도 안…….”

     

   그러니 그녀가 다시금 광도제를 막기 위해 입을 떼려던 찰나였다.

   광도제의 옆 공간이 갑자기 뒤틀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에벨아스크가 무심코 숨을 삼켰다.

     

   이윽고, 뒤틀려진 공간 사이로 검은색 개구리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다.

   그 개구리를 본 광도제는 반가운 듯이 웃었다.

     

   “오, 익시온 단장님, 무슨 볼일이야?”

   “나는 파멸을, 선홍빛을, 내리 하는바.”

     

   그 순간 개구리에서 의미 없는 말들이 줄지어 나왔다.

   노이즈가 껴 기분 나쁘기 짝이 없는 목소리를 곰곰이 듣던 광도제가 개구리를 톡톡 쳤다.

     

   “단장님, 번역이 안 되고 있어.”

     

   그러자 개구리가 잠시 동안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개골 거리는 소리를 잠시 내더니 곧 목소리가 바뀌었다.

     

   “……소란이 일어난 거 같아서 온 거야.”

     

   아까와는 전혀 다른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광도제는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소란이랄 게 뭐 있나. 일 좀 하려는 거지. 마침, 검왕이 있더라고. 세계 침식 좀 주워 갈게.”

   “독왕 때처럼 잘 풀릴 거란 보장 없어.”

   “괜찮아! 이번에는 신입도 있잖아?”

     

   광도제가 웃음을 지으며 냉큼 에벨아스크를 가리켰다.

   그러자 에벨아스크가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왜냐하면 저 검은 개구리의 주인이 누군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흑마녀.

   익시온의 단장이자 그녀가 가장 바라고 바라왔던 동료들을 되살려 줄 수 있는 여자.

     

   저 여자가 있기에 에벨아스크는 익시온에게 들어갔다.

   더불어 저 여자가 있기에 익시온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야말로 유일하게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그 순간 흑마녀가 에벨아스크를 호명했다.

   그녀가 어깨를 움찔거리자 흑마녀가마저 말을 이었다.

     

   “광도제랑 너무 어울리지 마.”

     

   간단한 조언을 할 뿐.

   그녀는 광도제를 말리지 않았다.

     

   그 말은 즉, 그녀가 허락했다는 소리와 같았다.

     

   에벨아스크의 눈이 흔들렸다.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녀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평생을 동료들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끊임없이 네크로맨서 학을 연구했던 그녀다.

   그럼에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 생명의 부활이다.

     

   흑마녀는 그것을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이.

   그런 그녀의 말을 에벨아스크는 거스를 수가 없었다.

     

   ‘나는 또.’

     

   제국에게 심장을 빼앗겨 밤까마귀라는 꼭두각시가 되었던 것처럼.

   또다시 익시온의 꼭두각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사실 탓에 에벨아스크는 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혐오감을 느꼈다.

   자신은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흑마녀의 개구리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정말 단지,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싶어 왔을 뿐이었다.

     

   “자, 신입, 이제 일해야지.”

     

   고개를 숙인 에벨아스크에게 광도제가 웃음 지으며 말해왔다.

   그 또한 에벨아스크가 흑마녀에게 반항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할 일은 기억하고 있지?”

   “……네가 검왕과 싸울 동안 아무도 접근 못 하게 하는 거.”

   “그렇지. 그거야! 혹시나 말하지만 끼어들지도 말아줘. 느긋이 즐겨야 숙성되거든.”

     

   에벨아스크는 입술을 꾹 다물곤 어둠 속으로 몸을 돌려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광도제의 고개가 뒤로 돌려졌다.

   동시에 그가 서서히 웃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설산 끝자락에 무서울 정도로 눈발을 날리며 달려오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도제가 자신의 머리색과 똑 닮은 붉은색의 핏빛 같은 검 한 자루를 뽑았다.

     

   10대 천검 중 하나.

   혈라사도(血癩死刀)

     

   핏빛으로 빛나는 검은 오늘도 곧 머금을 사냥감을 기대하듯 번들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광도제가 바라보던 방향인 눈밭에서 쿠웅 하니 눈들이 일제히 치솟았다.

     

   “설마 저 거리에서?”

     

   광도제조차 놀란 반응을 보인 그때.

   광도제는 눈 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그가 즉시 혈라사도를 뽑았을 때였다.

     

   채에에엥!

     

   붉은색 핏빛 기운이 일렁이며 혈라사도가 무언가를 받아쳤다.

   그대로 하늘로 날아간 무언가는 공중에서 우뚝 멈춰 섰다.

     

   광도제의 눈이 하늘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보인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검이 날아왔다.

   그것도 산 위에서 볼 수 있는 가시거리 최대치에 있는 장소에서 말이다.

     

   “우와 괴물이냐?”

     

   하지만 검이 날아온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하늘 위에 부웅 떠 있던 검이 점차 그 모습이 거대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도제가 짧게 웃음을 머금었다.

   저게 바로 검왕, 라이 발하임이 만들어낸 검술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왕섬멸검(帝王殲滅劍)

     

   어느새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해진 검이 광도제의 두 눈에 비추었다.

   산 위에 검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저 멀리 새 떼가 급히 도망치듯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죽음 말고는 미래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 참.”

     

   광도제가 혀로 자기 입술을 핥았다.

     

   “기대심을 이렇게 불어 넣어서 쓰나.”

     

   동시에 핏빛의 오러가 혈라사도의 위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그 새빨간 오러는 혈라사도를 넘어 광도제의 팔에까지 뻗어졌다.

     

   두근!

     

   거센 심장 소리가 머리에 들릴 정도로 울려왔다.

   새빨갛게 휘감긴 오러가 점차 형태를 만들어 가며 나타난 것은 피부도 없이 비대해진 거대한 팔이었다.

     

   그의 팔 끝.

   손에 쥐어진 혈라사도 또한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근육 줄기와 핏줄이 자기들끼리 뒤엉켜 검의 형태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중심에 박혀 있던 새까만 보석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새까만 눈동자가 새까만 보석에 자리한 순간 그의 몸에서 열기가 끓어 올랐다.

     

   광도제가 바닥을 박차고 올랐다.

     

   자기 몸보다도 더 거대해진 팔과 대검이 되어버린 혈라사도를 하늘을 향해 뻗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라이의 제왕섬멸검과 혈라사도가 부딪치며 거센 소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일대의 숲과 산들이 찢겨 발겨지며 날아갔다.

     

   그 엄청난 광경을 직접 본 이가 있었다면 하나 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카강!

     

   그리고 그 힘 싸움에서 이긴 것은 다름 아닌 광도제였다.

   내려치던 제왕섬멸검을 광도제가 밀어낸 것이었다.

     

   광도제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자기 팔에 저릿저릿하게 오는 감각을 즐길 정도로 그는 광인이었다.

   그렇게 그가 바닥에 착지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왜인지 하늘이 아직도 어두움을 느꼈다.

   광도제가 뒤늦게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제왕섬멸검 위에 한 자루의 검이 더 드리우고 있었다.

     

   처음부터 제왕섬멸검은 한 자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늘 위에 점차 제왕섬멸검이 계속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와.”

     

   하늘을 가득 메운 제왕섬멸검의 광경은 광도제조차 순간 질릴 정도였다.

     

   오로지 검밖에 없는 하늘의 광경 아래.

     

   “발하임은 마굴이라더니 사실이네.”

     

   이번에는 진짜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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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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