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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151 – 조나가 정해주는 생일>

     

    해가 저물고 면회실에 드문드문 기다리던 학생들도 잔뜩 침울한 얼굴로 돌아갔다.

     

    “오크노디. 너도 그만 돌아가지 그래?”

    “조나가 올 거라고 약속했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 올 거야!”

     

    걱정 어린 얼굴로 말을 건네는 하급반 학생.

    그 얼굴이 조금은 익숙했다.

     

    “너 내가 누군지 잊었구나?”

    “헤헤. 미안.”

    “막시무스 몽블랑. 비공장에서 내 동생 막스와 막둥이 애기가 신세 졌다고 했잖아.”

    “아하.”

    “원래는 막스도 오려고 했는데 무슨 문제인지는 몰라도 오기로 한 보호자들 중에 나 말고도 못 오는 보호자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운 일이다.

    아카데미 재학생의 보호자들에게는 분명 아카데미로부터 면회티켓이 배부될 텐데.

    티켓을 미처 수령하지 못했거나, 모종의 이유로 티켓을 잃어버리거나, 다른 이에게 빼앗긴 보호자들은 저렇게 아카데미 방문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근데 조나가 티켓을 잃어버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조나는 그런 칠칠맞은 사람도 아니고, 기한 내게 티켓이 안 왔다고 멀뚱멀뚱 기다리다가 시간 다 날려먹을 폐급집사도 아니다.

     

    “흥. 조나에 대해 모르면 말하지 말아요.”

    “크흡, 이런 불쌍한 녀석…!”

     

    확신을 담아서 말하는데도 막시무스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다.

     

    “내일 집사 못 만났으면 매점으로 나와. 점심에 뭐라도 하나 사줄게.”

    “와 정말요?”

     

    그래도 조나의 좋은 점을 알려줄 생각은 없다.

    나만의 집사.

    게임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충성도 100을 찍은 나만의 소유물.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안전한 조력자.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탐이라도 내서 자기들 집사로 삼으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심심해. 배고파. 시간 아까워.”

     

    그렇지만 슬슬 힘들다.

    면회실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고 혼자만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직 지직 실내조명이 흔들리는데 혼자만 기울어져가는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은.

     

    “조나… 정말로 오는 거 맞지…?”

     

    불안한 마음에 혼자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도.

    실은 조나의 충성도가 100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는 것도.

     

    “…….”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고 받아들이는 것마저도.

    어쩌면 내가, 특별한 플레이어가 아닌 평범한 여자아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것마저도.

     

    더는 한계다.

     

    호루라기를 붙잡고 서툴게 휘익 불었다.

    엉망진창으로 힘이 들어가 음이 새는 호각소리.

    뭐든지 하다보면 숙달되기 마련인데.

    불면 불수록 잘 불러야 정상인데.

    어째서인지 갈수록 더 못 부는 것 같았다.

    가슴에 멍울이 진 것 같고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빨리 오라고.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거냐고.

    이제 면회실이 닫히기까지 10분도 안 남았다고 울먹울먹 눈물이 차오르는데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거짓말쟁이 못된 집사.

     

    “나빴어…”

     

    면회실을 닫아야한다고 관리인 아저씨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어딘가에 <숨기>를 걸어서 숨어있을까?

    그러면 조나도 못 들어오는데 그때는 어떡하지?

    <자물쇠 따기>로 출입문도 열어야하나?

    근데 밖에서 자물쇠를 달아 잠그는 방식이면?

    애초에 들키지 않고 숨는 게 가능은 한가?

    나름 진지하게 근심걱정을 늘여놓고 있는데 어디선가 피냄새가 물씬 풍겼다.

     

    툭툭.

    투두둑.

     

    무언가를 비처럼 흘리며 다가오는 걸음소리.

     

    저벅. 저벅.

     

    품위 있는 걸음으로 어디서든 조급함을 보이지 않는 품격이 느껴지는 발걸음.

    커튼 뒤에 숨고 옷장 뒤에 숨고 언제나 소리를 들을 적이면 어딘가에 숨고 싶어지는 발소리.

     

    끼이익.

     

    문이 열렸을 때, 오늘도 숨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오는 길에 사고에 휘말려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조나!”

     

    커튼 뒤에도, 옷장 뒤에도 아닌.

    방실방실 웃는 착한아이의 얼굴 뒤에.

     

     

    * *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예요?”

    “아카데미 측의 관리부실이 있었습니다.”

    “일단 의무실부터 가요!”

     

    몸 곳곳에서 터진 실핏줄로 출혈이 생긴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무사할 수 있는지 걱정이 될 지경이다.

     

    “괜찮습니다. 출혈이라면 이미 멎었습니다.”

     

    조나가 아차하는 얼굴로 심호흡 한 번 하는 사이에 정말로 피가 전부 멎었다.

     

    “우와, 대단해!”

     

    초일류 집사는 마음만 먹으면 출혈도 멈추게 할 수 있구나.

    조나는 정말로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집사야!

     

    “그래도 옷에 핏물이 잔뜩 물들었으니까 세탁실은 한 번 들러요!”

    “훗. 아가씨의 땀에 젖은 수련복과 오만곳에 숨으며 흙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매번 세탁해왔던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그런 부상을 입고도 손빨래까지?!”

    “…클린마법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습니다.”

     

    <생활마법 – 클린>

     

    옷에 묻은 핏물부터 먼지, 각종 노폐물을 제거하는 주부들이 가장 좋아할 생활마법.

    발동 코스트는 높지만 쾌적한 생활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익혀볼만한 마법이다.

    잘못 다루면 옷의 장식을 날려먹거나 탈색을 당하기도 하고 옷에 단 훈장이나 주머니 속 내용물이 증발하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마법이지만.

     

    “앗, 이 냄새는!”

    “작은 재주입니다.”

     

    섬유유연제 특유의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가 나는 성능까지 더해진 클린마법.

    이건 치트키나 다름없다.

    남자여자를 떠나서 이런 냄새, 아니 향기가 나는 사람에게 어찌 호감이 가지 않을까.

     

    “리프는 같이 안 왔어요? 둘이 머하고 지냈어요? 저 보고 싶었어요? 배 안 고파요? 식사는 제때 꼬박꼬박 했어요?”

     

    기관총처럼 질문을 우다다다 쏟아내니 조나가 험상궂은 얼굴로 아주 조금만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다시 봐도 반가운 마음이 싹 사라지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참 섬뜩한 웃음이다.

     

    “리프도 아쉬움이 많더군요. 대신 아가씨에게 드릴 리프의 선물을 챙겨왔습니다. 소지 및 복용허가는 이미 받아뒀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하얀색 위로 빨간 꽃이 핀 천으로 덮인 바구니.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조나의 성격에 클린마법을 쓰면서 천에 피가 떨어진 것을 알고도 같이 치우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깜빡 했나보다.

    안에는 사탕이 잔뜩 담긴 주머니와 다양한 사이즈와 모양의 암기세트, 악기 하나와 교본도 들어있었다.

     

    “우와. 이게 다 뭐예요?”

    “리프의 선물입니다. 아가씨의 성장속도를 고려해서 더욱 향상된 맛의 사탕과 아카데미 생활에 필요할 암살무기, 비장의 악기를 가져왔습니다.”

    “알았당. 이걸 손잡이로 잡고 머리를 내리치면 되는 거죠? 이렇게!”

     

    미니바이올린 닮은 악기의 목을 잡고 붕붕 휘두르니 조나가 손을 들어 손가락 하나로 휘두르던 악기를 허공에 멈춰 세웠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시몬스 침대가 떠오르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괴력이다.

     

    “자세한 사항은 교본에 적혀있습니다만, 너무 함부로 흔들면 자칫 손을 베이거나 악기가 폭발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네? 악기가 폭발을 해요??”

    “배움의 즐거움을 뺏고 싶지는 않으니 말은 아끼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아카데미에서의 일들 말입니다.”

    “편지로도 적어서 보냈잖아요.”

    “편지에는 다 담지 못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헤헤. 그건 그래요.”

     

    신기한 일이었다.

    어린아이의 몸이 된 뒤로 밤에는 수마가 몰려와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신나게 떠들고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한 번도 졸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후후.

    이것이 플레이어와 집사 사이의 충성도 100으로 맺어진 끈끈한 인연의 힘인가?

     

    “슈웅 하고 돌멩이를 던졌는데 투쾅하고 담벼락이 부서져서 들키기 전에 근처에 있는 나무를 뽑아서 거기에 심어뒀는데, 원래는 담벼락이 있었던 걸 아직까지 아무도 몰라요!”

    “식당에서는 막 나쁜아이라고 자꾸 머라고 하는 애들 때문에 밥 먹기가 힘들었는데 이사벨이 맛있는 요리를 해줘서 요즘은 식당에 안 가서 더 좋아요!”

    “그리고 있죠? 티토소가는 가끔 굉장히 용감해질 때가 있는데 누가 제 욕을 하면 갑자기 리프처럼 눈매가 매서워져서 조명대로 사람을 막 때려요!”

     

    한참 열심히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갑자기 밤이 두배로 어두워진 것처럼 그늘이 드리웠다.

    고개를 들자 조나가 팔을 들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별빛마저 보이지 않는 어둠을 부르는 손이 퍽 안락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조나의 기분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조나. 왜 그래요?”

    “별일 아닙니다. 그저 앞으로는 재단의 지원을 본격적으로 얻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포인트도 줘요?”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아가씨의 아카데미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아가씨의 친구분들에게도 협조를 구할지 모르겠군요.”

    “앗, 설마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를? 깜짝파티는 안 해도 되는데!”

    “그러고 보니 들은 기억이 없군요. 아가씨의 생일은 언제입니까?”

    “제 생일요?”

    “아카데미 규칙에 생일을 맞이한 학생에게는 보호자가 특별선물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에 이것도 도움이 될 것 같군요.”

     

    생일이라.

    이거 고민되는데.

    음.

    손가락을 물고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래도 나올 대답은 정해져있다.

     

    “몰라요!”

     

    설정이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도 아니고 처음 보는 캐릭터 몸에 빙의했는데 생일을 어떻게 알겠어?

    역시나.

    짧게 중얼거리며 뭐 이런 불쌍한 인간이 다 있냐고 무표정 속에 감정을 숨기는 집사의 얼굴이 마치 조나의 저택에서 지내던 시절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정 뭐하면 정해주실래요?”

    “정하다니… 아가씨의 생일을 말입니까?”

    “생일은 특별한 날이죠? 축하까지 할 정도로 대단한 날이니까.”

     

    그런 특별한 날이라면.

     

    “조나가 정해주는 생일이면 더 특별할 것 같은데.”

     

    조나의 넓고 단단한 품에 체중을 싣고 몸을 기대고 있자니 저절로 말이 나왔다.

    생각하고 내뱉은 것이 아닌 무심코 내뱉은 본심이자 비수처럼 내지른 한 마디.

    고개를 위로 들어 눈을 똘망똘망 뜨고 시선을 마주친 조나의 얼굴에 작지만 큰 동요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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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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