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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텅텅 빈 맨땅에 따라서, 그녀와 함께 길을 걸어 나갔다.

         

       세상이 멸망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텅텅 비어있는 땅을 바라보다 보면, 그때가 떠올랐다.

         

       어렴풋이 타오르던 불꽃이 세상을 멸망시켰을 때.

         

       그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그녀가 나에게 묻는다.

       그건 무척이나 순수한 감정이 느껴지는 물음이다.

       호기심, 궁금증.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겉을 드러내지 않아 무슨 의도를 지닌 줄 몰랐던 지금까지의 마왕하고는 달랐다.

         

       나도 솔직히 대답했다.

         

       “과거를 떠올렸다.”

       “과거라, 어떤 과거를 떠올리면, 그런 표정을 하고 있을까.”

       “내 표정이 어때서?”

       “마치, 한번 보았던 것 같은 얼굴이야.”

         

       정확히 속내를 찔렀다고 할지.

       그녀가 지닌 통찰력이라도 있을까?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텅텅 비워진 땅 위에 옮기던 걸음이 곧 끝나갈 때.

       마왕은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그녀만의 오만하고, 고고한 원래의 말투가 돋보였다.

       그걸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게, 네 모습이지.

       내가 알고 있는 마왕의 모습이지.

         

       세상의 멸망일 수도 있는 상황을 앞두고는, 짧은 침묵을 끝마친다.

       진정 묻고 싶은 걸 묻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서 정답을 찾기 위해.

         

       “너는 왜,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지?”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이상하다. 결국 마왕의 목적은 마족들을 앞세워 인류를 정복하는 게 목적…. 그런데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다소 생뚱맞은 목적이야.”

         

       세상을 멸망시키는 게 그녀의 속내기야 하지만, 이상했다.

       그게 분명 마왕의 목적이 맞는가?

       이 세상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무너뜨리고 부수는 게?

         

       그 질문에 마왕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신기해, 나는 세상을 멸망시킨다고 한 적은 없는데.”

       “…”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내가 회귀를 겪었고, 거기서 보았던 걸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녀의 의도가 궁금했다.

       왜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지.

         

       결국 끝에 끝으로 와서, 그녀는 대답해줬다.

         

       “마왕과 용사와의 싸움이 몇 번이나 반복된 줄 아는가?”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고.

       나의 단답에, 마왕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령 왕이 몇 번의 마왕과 용사와의 싸움을 겪었는지 아는가?”

       “적어도 두 번이겠지.”

         

       전대와 당대.

       사령왕이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지 몰라도, 지금까지의 정보를 본다면 그렇다.

       그리고 마왕의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다섯 번.”

       “…!”

       “이미 다섯 번은 넘게 반복했지, 그리고 더 오랜 시간 동안 마왕과 용사는 그리고 인류는 싸워왔을 테고.”

         

       그건 확실히 놀라웠다.

       무려 다섯 번씩이나?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많이 반복됐을 거라고?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의 역사에서는 그나마 이전의 용사만이 기록에 남아있다. 거기서 세 번, 네 번, 다섯 번씩이나 반복됐다는 건 기록조차 되어있지 않았어.”

       “왜냐하면 지워졌으니까.”

         

       마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계속, 계속해서 반복되는 멸망의 역사가 지워졌다는 말은 다소 의아했다.

       뭣 하러, 무슨 이유로.

         

       “그걸 누가?”

       “누가 있을까.”

         

       마왕은 손가락을 위로 치켜든다.

       그 방향이 너무 노골적이었기에.

       그리고 당연할지도 모르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이런 짓을 하는 건 오직 신 외에는 있을까.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새롭게 등장해 인류를 위협하는 마왕에 대항하여.

       신은 용사에게 축복을 내리고.

       인류를 구원해주고 수호해왔던 게 아니라.

         

       신은 오히려 인류를 농락하고, 망가뜨리려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 무한한 반복의 끝을 맺기 위해서,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다?”

       “맞아.”

       “대체 왜?”

       “마왕은 어렴풋이, 전대의 경험을 계승한다. 그래서 더 용사를 쉽게 상대하고, 맞서 싸울 수 있지, 하지만 졌어, 계속, 계속해서 용사에게 인류에게 패배했다. 마치 인위적으로, 아주 완벽한 계획을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패배했지.”

         

       마왕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됐다.

       오히려ㅡ 더 끔찍한 처지인 건, 인류가 아니라 마왕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준비하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도, 패배한다는 결말만이 놓인 그런 처지.

         

       “그래서,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했다. 신이 짠 판 아래에 놓이면 결국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차라리 판을 엎어버리는 게 낫겠지.”

       “그런가.”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사실은 신이 여기에 있는 모든 인물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였다 하더라도.

       나마저도 그 등장인물의 한 편이라 할지라도.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의 관심사는….

         

       눈을 감으면서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무한한 반복의 끝을 맺기 위해서,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다.”

         

       사는 거지.

         

       모두가 온전히.

         

       그녀는 이제 입을 다물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떤 과정이 있는지 모두 설명했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내가 무슨 대답을 들려줄지 지켜보겠다는 태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과 마주하며, 나는 하고 있던 집착을 하나씩 지웠다.

         

       복수를 잊는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살기 위해서라면.

         

       신의 농간을 잊는다.

       관심사도 아니고,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인간의 잣대로 따질 수도 없었다.

       나는 오롯이 얼기설기 기어 붙인 온전한 결말만을 바라봤다.

         

       후환을 잊는다.

       이번 대화로 훗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결국 무의미했다.

       그때에는 진정 내가 죽었을 때가 됐을 때니까.

         

       그러니까, 마무리를 짓는다.

       이걸로 마무리를 짓는다.

       복수의 끝을, 마왕과 용사 간의 싸움의 끝을.

         

       “대악마, 내 생각이 가능할까?”

       [으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진작 나의 의도를 읽었던 대악마는 미칠듯한 광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은 그것의 존재감을 진작 눈치챘는지 살짝 움찔거리며, 중얼거렸다.

         

       “예상은 했다지만 그것이 너에게 붙어있을 줄이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아니 그 무엇도 이해할만한 상황은 없지.”

       “저게 누군지 아나?”

       “아니, 전혀. 아주 짧게나마 전대 마왕의 흔적으로 남아있던 기록뿐이고, 그마저도 온전하지 않지, 약간의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고, 그것도 정답이라 할 수 없다.”

         

       그녀의 완곡한 표현을 보고 나는 대악마의 정체를 파고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의미 없을 거 같으니까.

         

       눈을 잘근 감으며, 이게 어떤 결과로 이루어질지 전혀 모르겠지만, 한 번 여기에 걸어보겠다.

         

       “용사.”

         

       내가 짧게 용사를 부르자, 약간은 먼 거리에 있던 용사가 한걸음에 다가왔다.

       이 자리에 나 말고 어지간하면 초월자에 이른 존재들.

       여기에 하던 대화를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용사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당연하다.

       나야 별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매일 뼈를 깎던 용사로서는 가장 충격적이고 끔찍한 이야기였다.

       신의 축복이 아니라 농간이라 했으니까.

         

       나는 그런 용사에게 더 충격적인 부탁을 해야 했다.

         

       “지금부터 놀라지 않고 내 말을 들어라.”

       “…듣겠습니다.”

         

       용사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심신미약으로 보이는 용사에게 이런 소리를 하긴 더욱 미안한데.

       어쩔 수 없겠지.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담담히 선언했다.

         

       “오늘부로, 용사파티는 패배했다. 마왕은 인류를 앞으로 지배할 것이고, 마왕은 온전한 승리를 한 것이다.”

       “예, 예? 그게 대체 무슨?!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예상한 반응이었다.

       갑자기 마왕에게 패배하고, 인류를 송두리째 마왕에게 넘기라니.

       나라도 이 소리를 듣는다면 그 말을 한 놈의 머리를 뜯어봐서 무슨 생각인지 파헤쳐보고 싶긴 하겠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용사가 절대 수락하지 않는다면, 나도 제일 나은 선택을 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용사,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은 하나뿐이다.”

       “차라리 그 방법을 골라서 마지막까지 저항을…. 설마?”

       “나의 죽음이지.”

         

       완고하게 반대하려던 용사의 입이 다물어졌다.

       패배는 용납할 수 없는 결말이지만, 나의 죽음은 더더욱 불가했다.

       그녀의 신념이 흔들렸다.

       두 눈도, 두 손도, 두 다리도.

         

       “그것도 나쁘진 않다. 용사파티는 온전히 승리하고, 마왕을 물리치겠지.”

       “…안 됩니다.”

       “원한다면 나도 순순히 죽음을 맞이하리라, 살고 싶다는 건 너희의 의지를 보고 원했던 거지, 나의 목숨에는 어떠한 미련도 없다.”

         

       “ㅡ절대로 안 됩니다!”

         

       우렁찬 대답이었다.

       그 커다란 외침에 내 몸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나는 두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용사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렇다면?”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정말로? 이 결정은 결코 무를 수 없다. 후회하지 않겠나?”

       “결코, 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두 눈에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이 났고, 그걸 실행하면 된다.

         

       고개를 돌리니 두 눈을 크게 뜬 마왕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생각지도 못한 짓이겠지.

         

       “…패배를 인정한다고?”

       “그래,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다고 했다면, 승리는 해 봐야겠지.”

       “그렇다고 해도! 마왕과 용사의 싸움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만큼의 결말은 다르잖나?”

         

       여태껏 지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마왕이 이겼다.

       이것을 트리거로 끝없는 반복에 종결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쉽게 끝날지 의문이지만, 다시 돌이켜 봐야 아는 거지.

         

       마왕마저도 동요하고 있을 때, 나는 정확한 조건을 내걸었다.

         

       “앞으로 인류 대륙은 마왕이 지배하는 대신, 평온하게 지배하도록 약속해라, 어차피 너는 이 반복의 종결을 원하는 거지, 인류를 지배하는 데에 관심을 지니진 않는 것 같군.”

       “…맞아.”

       “이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도 패배를 인정하겠다. 마침 여기에 대한 계약서를 써줄 자가 존재하는군.”

         

       대악마는 어찌하든 상관이 없다며 허공에 계약서를 그려놓았다.

       거기에 나는 거칠 것 없이 서명한 다음에 용사에게 넘겼다.

       나는 들러리다. 패배를 인정할 계약의 주체는 용사지.

         

       용사는 멍한 눈으로 나와 계약서를 번갈아보더니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고 망설이더니 계약했다.

       거기에 더해, 마왕도 이번의 승리를 놓치지 않고 싶었는지 계약서에 서명한다.

         

       그렇게 용사파티는 패배하고, 마왕은 인류를 지배하게 됐다.

       이건ㅡ 용사의 온전한 인증이나 다름없었다.

         

       마왕은 이대로는 불안했는지, 마지막으로 나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더라도 반복된다면?”

       “거기까진 내 관심사가 아니다. 멸망시키건, 또 승리를 쟁취하건 후대의 마왕이 할 일이지.”

         

       나는 순수하게 죽음을 회피할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서로 온전히 만족할 수 있을진 모르더라도, 결국 이게 최선이겠지.

         

       최선일까?

       아니,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나의 목숨줄을 끊고 저 마왕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생존을 원하니까.

       나의 삶을 원하니까.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맞겠지.

         

       승리한 마왕은 그 누구보다도 허탈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패배한 우리는.

         

       여전히 멍한 표정의 용사를 제외한다 치더라도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살아있는 거죠. 아르갈! 진짜 이제는 죽지 않는 거죠?!”

         

       프랑이 달려들었다.

       그녀의 가벼운 몸이 나에게 몸통 박치기를 한다.

         

       거기에 더해서 라엘리도, 베시아도, 검성도, 그리고…. 아셀도.

         

       그들 모두가 기뻐하며, 울며, 웃으며 모여들었다.

         

       항상 침울한 모습으로 웅얼거리던 아셀마저 속사포를 쏟아내며 묻는다.

         

       “안 죽는 거지? 진짜 안 죽는 거지? 이번에도 희생하는 거 아니지?”

         

       그들 앞에서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래 나는.

         

       이 이야기는

         

       “안 죽는다니까.”

         

       그렇게 결말이 났다.

         

       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완결까지 딱 한걸음을 놔두고 손에 안잡혀서 오랫동안 방치해 뒀습니다

    이렇게라도 완결을 맺어두고자 합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Can’t Die, Can I?

I Can’t Die, Can I?

나 안 죽는다니까?
Score 3.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betrayed by the Demon King and returned to the past.

To get revenge, I sacrificed my worthless life to save the lives of the Hero’s companions.

But they became obsessed with protecting my one and only life,

even the Hero herself.

This is the copyrighted cover art from Novel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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