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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게일과의 만남 이후 2년이 더 흐른다.

     

    동생들을 땅에 묻고, 게일에게 수련을 받으며.

     

    아담은 그 동안 아픔을 많이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달라지지 않았던 것은 있었다.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가 달라졌다.

     

    꿈을 이루지 못했던 동생들의 꿈을 대신 이뤄줄 마음이었다.

     

    “…허무맹랑한 꿈이야.”

     

    게일이 아담의 속내에 밝혔지만, 그 사실쯤은 아담도 알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네, 아담. 짐승같은 인족도 많지만, 자네와 같은 성실한 존재 역시 많지. 하지만 한 집단을 대표하는 건 결국 소수의 집단이야.”

     

    “…”

     

    “소수의 집단이 지속적으로 같은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그게 한 종족의 인식으로써 자리잡는걸세.”

     

    “…압니다. 그래서 제가 그 소수가 되어보려고요.”

     

     

    아담은 스스로 영향력 있는 집단을 만들어내, 그들로 하여금 좋은 평판을 쌓고 다니면 인족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은 변화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사실 이게 정답이 아닐수도 있다는 걸 아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발악이라고는 이런 것 뿐이었다.

     

     

    그러니 아담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전쟁이 발발한 시점에서 게일과 이별했다.

     

    가장 가까웠던 도시 바트라로 도착해, 자신을 도울 존재를 찾아나섰다.

     

    당장은 돈이 좀 필요했다. 용병단에서 돈을 벌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자신만의 용병단을 차린다면, 하나의 인족 집단 또한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바트라에서는 재미난 소문이 하나 돌았다.

     

    슬럼에서 난동을 피우는 한 인족이 있다고 했다.

     

    인족이 얼마나 슬럼에서 살아남기 힘들지 체감하던 아담인만큼, 그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났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캤다.

     

     

    “아, 그 슬럼의 쓰레기 말이로군. 좀 안되긴 했어.”

     

    수십명을 물어보다보니, 그가 안쓰럽다고 말해주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네?”

     

    “이름이 베르그라는 놈인데, 사랑하는 존재를 최근에 잃었다더군.”

     

    “…………….”

     

     

    아담은 그 이름과 그의 이야기에, 익숙한 향기를 느꼈다.

     

    남동생이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아담의 미련이 만들어낸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아담은 호흡을 통해 머리를 비우곤, 그에게 물었다.

    그쯤이면 이용하기 좋을 것 같았다.

     

     

    “이 베르그라는 놈. 어디서 찾을 수 있죠?”

     

     

    그게 베르그와의 시작이었다.

     

     

    ****

     

     

    아담은 베르그와 함께 바트라를 생각하며, 기이한 평온에 붙잡힌다.

     

    그는 싸움을 이어나가면서도 베르그를 계속해서 살폈다.

     

     

    그를 보고 있으면 신기했다.

     

    함께 있으면 편안했다.

     

     

    …마치, 동생들을 잃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때때로 아담은 스스로도 미친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의를 위해 동료들을 희생하던 순간에도.

     

    쉼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순간에도.

     

    축제가 끝나고도 집단을 키울 방법만을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무언가가 망가진 사람 같다는 걸 자주 느껴왔다.

     

     

    하지만 베르그가 함께 있다면 그런 이상함도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베르그가 곁에 있으면 낮에도 술을 마셨고, 때로는 그저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동생들과 보내고 싶었던 일상을 베르그를 통해 되찾은 느낌이었다.

     

    또 한 명의 동생이 생겨…마음이 많이도 편해졌다.

     

     

    사실 이제는 스스로를 채찍질 하던것도 멈추고, 떠나간 친동생들을 이제 놓아주며, 평온한 일상을 바라는게 옳을지도 모른 일이었다.

     

     

    베르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이제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기이한 기분이 들고 있을까.

     

    왜 결승선에 다와가는 기분일까.

     

     

    “형!”

     

    베르그가 순간적인 눈빛을 보낸다.

     

    아담은 눈빛만으로도 그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일이 재빠른 공격으로 크룬드의 신체에 검을 박아넣었고, 그 공격에 크룬드는 두 손을 거칠게 흔들어 게일을 밀쳐냈다.

     

    동시에 크룬드가 밀려난 게일에게 손가락질을 하자, 우두머리 조 대원들이 미쳐 처리하지 못한 마물들이 튀어나와 게일을 공격했다.

     

     

    그 틈에, 아담과 베르그가 크룬드에게 돌격했다.

     

    저돌적으로 크룬드에게 나아가는 베르그.

     

     

    그 모습을 보며, 아담은 제 동생들이 세상에 알리려 했던 인족의 강인함이 저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위기에도,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용기.

     

    힘겨워도 제 가족들을 사랑하는 헌신.

     

    아픔이 있어도 다시 일어서는 끈질김.

    그 아픔에도 아내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순결함.

     

     

    신체적인 강함이 없더라도, 강할 수 있는 베르그였다.

     

     

    베르그는 크룬드의 왼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담도 가까이서 크룬드의 오른팔을 맡는다.

     

     

    우두머리를 상대하며 여러번 합을 맞췄던 공격이었다.

     

    -촤악!

     

     

    베르그가 먼저 크룬드의 왼손을 베어낸다.

     

    크룬드는 왼 손목 아래가 절단되어 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담도 검을 크룬드의 오른팔에 꽂아넣어, 대상을 고정시켰다.

     

     

    하지만 크룬드의 눈은 베르그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아담의 눈이 크룬드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촤악!

     

    아니나 다를까, 마족의 배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솟구쳐 나왔다.

     

    베르그의 가슴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공격.

     

     

    아담은 그 모든걸 보며 피식 웃었다.

     

    왜 아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이제야 알 듯 했다.

     

     

    ‘…두번은 안되지.’

     

    아담이 속으로 속삭였다.

     

     

    -턱!

     

    아담은 베르그를 강하게 밀쳐냈고,

     

    -푹!

     

    대신 그 일격을 받아냈다.

     

     

    *****

     

     

    나는 배가 꿰뚤린 아담 형을 보고 굳었다.

     

    크룬드도 멈칫한채 아담 형을 노려보았다.

     

    크룬드는 이내 제 공격을 아담 형에게서 회수하려 했지만, 강인하게 그를 붙잡은 아담형이 크룬드를 놓아주지 않았다.

     

     

    “…베르그.”

     

    아담 형이 힘겹게 속삭이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려, 크룬드의 목을 노렸다.

     

     

    -촤악!

     

    크룬드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비틀대며 물러선 크룬드는 제 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당황스러운 눈동자가 제 손과 목을 번갈아 바라보다…나를 응시했다.

     

     

    -시이이익…

     

    크룬드는 무언가를 내게 말했지만, 뚫린 목구멍 사이로 공기가 새어나오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슈욱!!

     

    그러더니, 크룬드는 뒤에서 순식간에 나타난 공간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다.

     

    원래 목숨을 끊는 싸움이 갑작스럽게 끝나기는 하지만,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크룬드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참이나 두리번댔다.

     

     

    주변에 존재하던 마물 무리도, 우두머리가 죽을 때 그러는 것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나는 방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고자 애썼다.

     

     

    -털썩…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현실과 마주해야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담 형은 붉은 피를 쏟아내며 쓰러져 있었다.

     

     

    “…..형?”

     

    아담 형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이제 끝났네, 베르그.”

     

     

    나는 급히 아담 형에게 다가갔다.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특히나 그 이유가 나를 구하다가 이랬으니 더욱 그랬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아담 형은 제 손과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큭큭 웃을때마다 더 많은 피가 울컥이며 터져나왔다.

     

    “…그 동안의 벌이구만…나 때문에 죽은 대원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의 상처를 대신 누르며 내가 말했다.

     

    “바란!! 뛰어와!!”

     

    하지만 아담 형은 그런 내 말을 무시한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베르그 내가 너한테 이 질문을 한적이 있던가?”

     

    후련해보이는 얼굴. 그러나 창백해지는 혈색.

     

    나는 형이 그럴수록 더 조바심이 피어났다.

     

    “나중에 말해. 지금은-”

     

     

    “-꿈이 뭐냐고.”

     

    “…..형….나중에 말하라고…!”

     

    “지금 밖에 기회가 없어, 베르그.”

     

    하지만 아담 형은 그런 내 말에 담담히 말했다.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 또한 아담 형의 상처를 막은 내 손을 내려다보게 된다.

     

    손가락 사이로 그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했던 것 같지.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조심히 여겼으니까…”

     

     

    나는 당장 다급한 감정 외에 그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슬프다거나, 눈물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이런 말을 하는 아담 형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뭔가…난 내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니…마음이 후련하다고 해야하나…아닌가. 아쉬운건가…”

     

    복잡한 표정을 짓는 형은 신음을 흘렸다.

     

    그를 지지하고 있는 팔이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그 변화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아무 말도 못한채 시간을 흘렸다.

     

     

    “…동생들이 있었어, 베르그.”

     

    아담 형이 순간적으로 내게 밝혔다.

     

    과거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말을 건네는 아담 형의 목소리에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그의 아픔이 담겨 있어, 나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던 통증이 점차 찾아오는 기분이었다.

     

     

    “….한나라는 목소리가 예쁜 동생이랑…이스라는 귀여운 애랑…”

     

     

    언젠가는 그의 과거를 듣고 싶었지만, 나는 적절한 순간을 기다려왔을 뿐이다.

     

    하지만 당장 이런 과거를 밝히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계속해서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베르고라는 동생이. 이름도 비슷한데, 나이도 너랑 똑같았다.”

     

    나는 점차 목이 메여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감히 아담 형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실…쿨럭…여동생들의 꿈을 이뤄주고자 살았거든. 허무맹…랑한 꿈이었는데, 내게 남겨진게 그것밖에 없어서 말이야…근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베르고의 꿈은 뭐였을까. 여동생들에게 좋은 오빠가 되어주었던, 또 내게 좋은 동생이 되어주었던…베르고는…뭘 하고 싶었을까.”

     

     

    형의 눈동자가 나를 담았다.

     

    “…꿈이 뭐냐…베르그.”

     

    “…………”

     

     

    대답을 해야하는 걸까. 대답을 하면 이별일 것 같아서 말을 꺼낼수가 없다.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내 꿈이 뭐였는지는 오래전에 까먹어버렸다.

     

     

    그러니 대신 나는 말했다.

     

    평소에 그랬듯, 일상의 말투를 억지로 고수한다.

     

    “….누가 보면 죽는줄 알겠어, 형.”

     

    하지만 미소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형도 그런 내 말투에 보답하듯, 언제나 했던 말을 되돌려준다.

     

     

    “….죽긴….내가….왜……죽냐.”

     

    하지만 그게 거짓말처럼 들리는 건 왜였을까.

     

    형은 눈웃음을 통해 나의 시선을 회피했다.

     

    말도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주위로 수많은 대원들이 몰려든다.

     

    우두머리 조 대원과, 게일. 시어도어와 크리안…외의 병사들까지.

     

     

    바란은 내 곁에 쓰러지듯 무릎을 꿇으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단장님.”

     

    아담 형은 어느새 많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난, 그 차이를 너무도 늦게 깨닫고 있었다.

     

     

    아담 형이 힘겹게 눈동자를 굴렸다.

     

    이제는 그조차도 어려워보인다.

     

     

    “…이거…나쁘지 않네.”

     

    “……..”

     

    “….영웅처럼….죽는 것 같잖냐.”

     

     

    나는 어느새 형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형…이러지마.”

     

    나는 그를 꽉 붙잡고 속삭였다.

     

    “…..제발.”

     

     

    형은 피식 웃었다.

     

    힙겹게 올라오는 피투성이의 손이 내 얼굴에 닿는다.

     

    “….내….동생….”

     

    내 얼굴은 아담 형의 피로 젖어갔다.

     

    형은 힘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형…이….”

     

    호흡도 힘겨워보이는 그의 모습.

     

    이 짧은 단어들이 형이 마지막으로 쥐어짜내는 말들 같았다.

     

     

    남은 이야기는 모조리 눈에 담고 있는 아담 형이었다.

     

    우리는 여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눈만 봐도 서로의 의중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아담 형이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흔들리는 마음 때문일지도, 어쩌면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시점이 흐려지는지, 아담 형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내 뺨을 만지는 형의 손에서도 점점 힘이 빠져갔다.

     

     

    “………믿…는다.”

     

    아직 채 이해하지 못한 그 말과 함께, 아담 형은 눈을 감았다.

     

     

    -툭…..

     

    이내, 그의 손마저도 손이 힘없이 내 얼굴에서 떨어졌다.

     

     

    기다란 숨이 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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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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