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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빨리! 빨리 가서 계약하라고! 릴리스 너는 마력 많아서 중급 정령하고도 충분히 계약할 수 있잖아!!’

         

        “…….”

         

        ‘내가 릴리스를 따라 아카데미까지 온 건 저 아이를 만나기 위한 운명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빨리 가서 꼬시라고, 릴리스!’

         

         

        에린 교수의 비밀 정원에서 한 마리의 실피드를 마주치자마자 요란스럽게 흥분한 목소리를 내뱉는 샐리.

         

        삽시간에 바뀐 녀석의 태도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녀석에게 어처구니없는 감정이 솟아났다.

         

         

        ‘네가 저 애랑 계약하면 앞으로 릴리스와 함께 다닐 때마다 볼 수 있는 거잖아! 빨리 가서 계약하라고! 빨리….’

         

        “미친년이냐?”

         

        ‘……어?’

         

        “내가 하는 정령 계약에 왜 갑자기 네 사리사욕을 넣고 지랄인데. 어처구니가 없는 거에도 정도가 있지.”

         

        ‘뭐, 뭐 어때서?! 바람하고 화염의 궁합이 좋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잖아! 저 애라면 틀림없이 내 힘도 함께 상승시켜줄 거고! 릴리스 너한테도 나쁜 얘기는 아니잖아!’

         

         

        대놓고 어처구니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얼굴 앞에 박아줬음에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샐리.

         

        지금까지는 그래도 조금 시끄럽기만 할 뿐 그럭저럭 쓸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금의 그 발언 덕에 그녀에 대한 좋은 인상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소아성애자 같은 년.”

         

        ‘무, 무슨 소리야?! 저, 정령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거든?! 나도 릴리스 너보다 몇십 배는 더 살았고, 저기 저 애도 최소 200년 이상은….’

         

        “그러니까 너희들 정령 나이 기준에서 소아성애자라고. 정령들 사이에서 400살 미만은 어린애나 마찬가지라는 걸 내가 모를 것 같냐?”

         

        ‘…그, 그걸 릴리스가 어떻게 알…아,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 아무렇게나 막말하지 마! 정령도 아니면서!’

         

        “그럼 지금 한 번 교수님한테 가서 여쭤보던가. 하프 풀링이시고 애초에 이 정원을 가꿔오신 분이니까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잘 아시겠지.”

         

        ‘으아아, 안 돼! 알았어, 인정할게! 내가 잘못했어!!’

         

         

        꼴에 수치심이라는 건 있어서인지 요정들에게 지가 로리콘이라는 건 들키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조금만 추궁하면 이렇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은 대체 왜 하는 건지.

         

        조금 전의 본인이 얼마나 추한 모습이었는지를 낱낱이 들킨 녀석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염 정령이니까 두 가지 의미로.

         

         

        ‘저, 저 아이가 어린아이라는 건 인정할게! 하, 하지만 소아성애자라는 표현은 잘못됐어! 내가 저 아이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건 맞지만, 그게 성적인 감정인 건 절대로 아니니까!’

         

        “그야 너희들은 종족 번식의 기능이 없으니까 당연한 거고.”

         

        ‘그리고 딱히 내가 어린 정령을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냥 우연히 눈에 들어온 저 애가 마침 어린 정령이었을 뿐이라고!’

         

        “정령들은 방위기사도 없냐? 너 같이 정신머리 이상한 새끼들은 대체 누가 잡아가냐? 응?”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하잖아!’

         

         

        정말로 심한 게 누구인지는 물에 비친 자신을 보면 알 텐데 말이지.

         

        뭐, 정령학적으로 화염 정령은 바람 정령에게 끌리는 성질이 있다고 하니 그녀의 욕구 자체는 사실 이상하지 않았다.

         

        화염 정령이 바람 정령에게 끌리고, 바람 정령이 물의 정령에게 호감을 느끼고, 물의 정령이 흙의 정령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건 일종의 자연현상이었으니까.

         

         

        내가 샐리에게 신물이 난 건 그런 자연현상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고위 정령의 시선에서 아직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중급 정령을 상대로 끌리는 이 뻔뻔한 태도와 만난 지 십수 분도 채 지나지 않은 처음 보는 정령에게 광적인 집착을 갖게 된 부분에서 어이가 없어졌을 뿐.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이런 샐리의 헛소리에 어울려 줄 이유가 없었다.

         

         

        “저 애가 마음에 들면 직접 가서 꼬셔보든가. 나한테 시키지 말고.”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다가가면 저 애가 먼저 도망칠 게 뻔하잖아! 대체 어떤 겁 없는 실피드가 샐러맨더가 다가오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냐고!’

         

        “너도 잘 아네. 네가 포기해야 할 이유를.”

         

        ‘그, 그러지 말고, 제발! 릴리스 너라면 충분히 꼬실 수 있잖아! 네가 작정하고 유혹하면 중급 정령 중에서는 아무나 데려올 수 있을 정도로 네 마력 맛있잖아!’

         

         

        …뭐, 릴리스의 매력 수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얼마 후면 거의 세자릿수가 되는 매력과 그에 비례해서 올라가는 정령 친화도를 생각하면 순진한 실피드 한 마리와 계약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러나, 일단 의도부터가 그리 순수해 보이지 않는 이 샐러맨더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고 싶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네 의도가 너무 불순해서 차마 못 어울려주겠다. 저 순진한 아이도 아마 너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하지 않을까?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왜, 왜애?! 진짜 이상한 짓 하려는 거 아니란 말이야! 그냥 곁에서 바라만 봐도 좋으니까! 계약 때문에 마력이 모자랄 것 같으면 그만큼 내가 덜 먹으면 되잖아!’

         

        “마력이야 평소에도 넘치니까 네가 덜 먹든 더 먹든 별 의미는 없는데.”

         

        ‘그, 그러면 지금 계약하자! 네가 저 애랑 계약만 하면 나도 너랑 계약해줄게! 응?!’

         

        “아니, 애초에 너 고위 정령이라 나랑 계약하는 거 불가능하잖아.”

         

         

        정령과 계약한다는 것은 일종의 월세 계약과 같다. 자신의 몸 주변에 마력으로 만든 둥지를 만들어주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게 이 정령 계약이라는 것이었으니.

         

        이 정령들이 살 수 있는 둥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기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가는 편이고, 정령과 계약하기 위해서는 마력 최대량이 높아야 한다는 이유 또한 이곳에서 파생된 이야기였다.

         

        마력 둥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 번에 많은 마력(보증금)을 소모해야 하고, 한 번 만들어 놓으면 그 이후로는 유지비(월세)만큼만 마력을 소모해도 되니 사실상 월세 계약이나 마찬가지.

         

        당연히 고위 정령일수록 이 둥지를 만드는 데 많은 마력이 소모되기에 계약할 수 있는 존재가 한정되어 있다.

         

         

        현자라든가 대마법사라든가, 혹은 마탑의 주인 정도 되는 칭호는 붙어야지.

         

        초저렙에서 마력 최대량을 미친 듯이 늘려놓은 나조차도 3~40레벨은 도달해야 가능한 경지였다. 그 이전에는 괜히 시도하려고 해봤자 애꿎은 마력만 낭비하고 탈진해버릴 터.

         

        뭐, 고위 정령과의 계약 자체는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는 의미 없는 제안이었다.

         

         

        “내가 너랑 계약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라도 많으면 생각해봤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나한테는 별 의미 없는 제안 아냐?”

         

        ‘이, 임시 계약이라면 가능하니까! 그건 정식 계약처럼 마력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정식 계약으로 바꿀 때도 훨씬 수월하고!’

         

        “흐음….”

         

        ‘제발! 평생의 소원이야! 쟤랑 계약만 해주면 앞으로는 릴리스 말 잘 들을게! 밤에 잘 때도 안 깨울게!’

         

         

        …밤에 자고 있을 때 안 깨운다는 건 꽤 매력적인 제안이긴 하네.

         

        그리고 임시 계약 제안 자체도 솔직히 말하자면 과분할 정도로 좋은 조건이었고.

         

        비록 시끄러운 로리콘 녀석이지만 저래 보여도 고위 정령이었다. 계약해 두면 어떤 의미로든 써먹을 방법은 있겠지.

         

        특히 아직 명중률이 아쉬운 릴리스가 확정으로 공격을 먹이는 방법의 하나가 정령을 사용한 공격이었으니.

         

        정령에게 마력을 먹이고 그 정령에게 직접 공격을 하게 만들면 내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하나도 극복할 수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시도는 해보죠.”

         

        ‘정말로?!’

         

        “하지만 잘 안 된다고 해서 불평하지 마세요. 제 마력이 맛있다고 해서 딱히 모든 정령을 다 꾈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응, 응! 알았어!’

         

        “잠깐 다녀올 테니까, 샐리는 잠시 저랑 거리 좀 벌리고 계세요.”

         

         

        괜히 실피드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샐리를 나에게서 멀리 떨어뜨린 후, 별다른 기대 없이 바람에 떠다니는 중급 정령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운 좋게 계약이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 ⁎ ⁎

         

         

         

        아그네스 엘리자베스 블레이즈.

         

        블레이즈 자작 가문의 외동딸이자, 루미노르 아카데미 마법부의 수석.

         

        또한, 릴리스의 정령학 강의 파트너이기도 한 그녀는 잠시 정원 구석에서 서글픈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흐읍.”

         

         

        사실,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력 최대량이 높기는 하지만, 정령과의 친화도는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도.

         

        이론상 중급 정령과 계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실상은 하급 정령조차도 자신과 계약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도.

         

        그리고 자신이 정령과의 계약에서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도, 전부 그녀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정령들도 눈이 있지 아무 생각도 없이 블레이즈 씨랑 덥석덥석 계약할 것 같아요?’

         

        ‘정령들의 시선에서 블레이즈 씨의 마력은 굉장히 구린 냄새가 나는 음식처럼 느껴질 거에요. 최소한 정령들이 호기심이라도 느끼게 하려면 그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 같은 태도부터 고칠 필요가….’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구린 냄새가 나는 음식이라니.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이라니.

         

        나름 엘리자베스 가문의 유망주로서 집안의 온갖 기대를 받고 자라온 그녀에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신랄한 평가였다.

         

        겉으로만 보면 예쁘고 얌전하게 생겼으면서 자신을 상대로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다니.

         

        심지어 그 내용만 놓고 보면 그녀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 가슴을 쿡쿡 찔러댔기에 더더욱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알고 있단 말야.”

         

         

        그렇게 구석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나니 아그네스 또한 어느 정도 복잡했던 감정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얼마나 유치하게 릴리스와 기 싸움을 했었는지도.

         

        어쨌든, 그녀 또한 딱히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그런 말을 건넨 것은 아닐 터였다. 자신이 정령과 계약하지 못하면 릴리스 본인도 불이익을 받기 마련이었으니.

         

         

        자신을 걱정해서 조언해준 것 자체는 진심이었겠지. …그저 그 조언이 너무 강렬해서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을 뿐.

         

        어쨌든, 계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위 정령을 끌고 다닐 정도로 정령에 관한 이해도가 높은 여자였다.

         

        그녀의 말만 얌전히 따른다면 못해도 하급 정령 정도는 충분히 계약할 수 있을 터.

         

        엘리자베스의 수많은 분가 사이에서 후계자 경쟁이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첫 번째 정령은 어떻게든 계약해야만 하는 아그네스였으니, 그를 위해서라면 사사롭고 유치한 감정은 얼마든지 넣어놓을 수 있었다.

         

         

        “그 여자도 아직 샐러맨더랑 정식 계약 같은 걸 한 건 아니니까.”

         

         

        아마 고위 정령과 계약하기 위해 다른 하급 정령과는 쉽게 계약할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 사이 자신이 그녀보다 하급 정령이라도 먼저 계약한다면, 그걸로 일단은 자신이 이긴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터.

         

        그런 생각이 침울해졌던 아그네스를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중급 정령과 계약을 마친 릴리스를 마주하게 되는 건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짝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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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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