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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임신?”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들린 장소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모두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모두 듣지 못한 척하고 있지만···.

       

       초인들이 아멜리아가 소리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가.

       

       다 들었으면서 억지로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겠지.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당연히 시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시우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두 줄이잖아, 두 줄! 임신했다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

       

       “그걸 왜 여기서 말해!”

       

       

       시우가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듣지 못한 척 고개를 돌리고는 있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거겠지.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쩌려···.”

       

       “그만.”

       

       

       시우가 아멜리아에게 무어라 따지려 들던 찰나.

       

       클레어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서, 선생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모양이니, 나는 아르테 학생과 잠시 병원에 다녀오겠다. 그때까지는 자습하고 있도록.”

       

       “네, 네!”

       

       “···그리고, 이 일은 외부에 퍼트리지 않길 바란다.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는 않았으니까.”

       

       “알겠습니다!”

       

       

       클레어 선생님은 학생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도 잘 알고 있겠지.

       

       외부에 퍼트리지 말라고 한들, 이런 가십이 퍼지지 않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 자리를 비우는 순간 자습은커녕 방금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할 게 뻔했다.

       

       그리고 금방 전교생들에게 퍼지겠지.

       

       아르테 이시스가 유시우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그리고, 유시우.”

       

       “네···.”

       

       “너도···아니다. 잠깐 대기하고 있도록.”

       

       

       선생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딱딱했다.

       

       목소리만 듣는다면 병원에서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판단을 미루려는 것처럼 들리지만, 얼굴을 본다면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클레어 선생님은 대형 사고를 쳤다는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미안···.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

       

       “너, 너···!”

       

       

       이런 사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시우에게 사과하는 아멜리아의 목소리.

       

       그러나 클레어 선생님이 그랬듯, 아멜리아 역시 얼굴과 목소리가 따로 놀고 있었다.

       

       웃음을 참기 힘들다는 듯, 그녀의 입꼬리가 계속해서 씰룩였다.

       

       

       “일부러 크게 말한 거지?!”

       

       “어머, 그게 무슨···. 농담은 그만해. 나는 너무 깜짝 놀랐을 뿐이야.”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아멜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일부러 크게 소리친 거구나.

       

       그렇게 모두가 확신했다고 생각한 걸까?

       

       더 이상 연기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아멜리아 역시, 억지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입가에 호선을 그었다.

       

       

       “···그러게 누가 염장 부리래?”

       

       “너, 너···!”

       

       “맨날 전화로 연애 이야기만 하니까 슬슬 배알이 좀 꼴려서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이런 짓을···!”

       

       “아니, 뭐 그래···. 내가 너희 이어주려고 열심히 노력한 건 맞는데···.”

       

       

       아멜리아가 씨익 웃었다.

       

       마치 만화 속 악당들처럼.

       

       

       “너희는 너무 심했어. 매일같이 꽁냥거리는 걸 듣는 내 기분도 생각했어야지.”

       

       “크, 크으으윽···.”

       

       “걱정하지 마. 적어도 네가 쓰레기 강간마가 되지는 않게 해줄게. 그냥···. 서로 너무 사랑했을 뿐이니까.”

       

       “자, 아르테. 우선 나를 따라오려무나.”

       

       “아, 네···.”

       

       

       시우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와중에, 클레어 선생님이 나를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님이 계속 살아있었다면 최종 보스는 아멜리아였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광경이었다.

       

       

       

       ***

       

       

       

       “임신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자아이로 추정되는군요.”

       

       

       클레어 선생님이 두 눈을 질끈 부여잡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약간의 가능성을 붙잡고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런 미약한 희망마저 부정당한 얼굴이었다.

       

       “여자아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한 달 뒤에 다시 오시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의사의 말에 나는 무심코 배를 쓰다듬었다.

       

       내 몸 안에, 시우와 나의 아이가 있다니.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생리를 한 적이 없어서 시우를 그렇게 유혹했던 건데.

       

       설마 이렇게 임신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 시우의 아이를 낳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생리를 한 적 없으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불안감이 더 컸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임신이라니.

       

       생리하지 못해 임신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과는 다른 결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음, 아르테. 이런 말 하기에는 뭐하지만···.”

       

       “안 지워요.”

       

       

       내게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권유하려던 선생님의 말씀을 차단했다.

       

       선생님들이 할 법한 말은 뻔하지.

       

       미래를 생각한다면 아이를 지우는 게 어떻겠냐느니 하는 이야기겠지.

       

       

       “···그렇지만, 아르테. 잘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너에게 자퇴를 권유할 수밖에 없어.”

       

       “···.”

       

       “너도 학교를 계속 다녔으니 알겠지만, 아이를 밴 몸으로 버티기에는 힘들 테니까.”

       

       

       클레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여태까지 받은 커리큘럼만 봐도, 임산부가 버티기는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겠지.

       

       1학년 때에도 벌써 던전 탐사, 대련 등의 실전 경험을 쌓게 했으니까.

       

       ···사실, 대부분의 설정은 작가님이 짠 거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2학년부터는 더 힘들어질 게 뻔했다.

       

       이제 작가님은 없을뿐더러, 설정은 작가님이 건드리지 않는 한 개연성 있게 맞춰가니까.

       

       당연히 올해 커리큘럼이 작년 커리큘럼보다 더 힘들게 뻔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지금 아카데미는···이슈에 민감하거든.”

       

       “···알고 있어요.”

       

       “그래도, 키울 테냐?”

       

       

       클레어 선생님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카데미 소설 담임선생님이라는 클리셰에 따라, 대쪽 같은 성정의 클레어 선생님.

       

       하지만 그런 선생님의 모습 뒤편에는 이렇게 학생들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숨어있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울 터인 학생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거겠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하하···.”

       

       “···?”

       

       

       그에 갑자기 무슨 일인지 의문을 표하는 클레어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한 번 더 웃었다.

       

       이 세상이 정말 현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은 기분이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여러 가지 면모가 함께 보이기 마련이었으니까.

       

       언제나 친한 친구로서 우리를 도와주는 아멜리아도, 가끔 우리를 골탕 먹이기도 하고.

       

       항상 딱딱하던 클레어 선생님이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작가님이 있었을 무렵에는 신경 쓰지 못했을,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보며 정말 이 세계가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자퇴 수속은 어떻게 밟아야 할까요?”

       

       “···그래, 마음을 먹은 모양이구나.”

       

       “그럼요. 어쩔 수 없잖아요? 사랑의 증거를 없앨 수는 없으니까.”

       

       

       “하아···. 그러면 피임이라도 하지 그랬니···.”

       

       “아하하···.”

       

       

       딱딱했던 말투는 어디로 간 건지, 클레어 선생님이 내게 불평했다.

       

       그러나 나는 클레어 선생님의 말씀을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야 피임은 한 번도 한 적 없으니까.

       

       아니, 나는 생리 안 하길래 임신도 안 할 줄 알았지···.

       

       

       “설마 이런 일로 제자를 떠나보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죄,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니. 다 시우가 꼬신 거겠지.”

       

       

       그거 아닌데.

       

       내가 임신 안 한다고 유혹하고 먼저 덮쳐버렸는데.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나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유시우···. 앞으로 남은 이 년간, 잘 지켜보도록 하겠어···.”

       

       

       아.

       

       그냥 말할 걸 그랬나.

       

       시우가 클레어 선생님에게 단단히 찍힌 것 같았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

       

       

       

       수근, 수근.

       

       속닥속닥.

       

       

       “하아···. 역시···.”

       

       

       클레어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데미에 돌아와 자퇴 수속을 밟기 위해 선생님과 함께 움직이는 나를 보고, 학생들이 계속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와 시우의 일이 벌써 아카데미에 쫙 퍼진 모양이었다.

       

       

       “그놈들, 내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두고 보자···.”

       

       

       ···선생님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개학식 날에 이런 대형 사고가 터져버렸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구설수가 하나 더 생길 예정이었으니까.

       

       

       “아, 아르테?! 지금 어디로···! 뛰는 건 몸에 안 좋다!”

       

       

       시우와 나의 교실로 다급히 달려갔다.

       

       학생들이 자꾸 나를 보고 무언가 이야기하는 모습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시우는 그렇지 않겠지.

       

       학생들의 무리를 제치고, 어느새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는 교실로 들어가 소리쳤다.

       

       

       “시우야!”

       

       “아, 아르테?! 결과는···.”

       

       “임신 맞대!”

       

       “그, 그래···.”

       

       

       웅성, 웅성.

       

       학생들이 제각각 떠드는 소리로 복도가 한참 소란스러워졌다.

       

       이대로 간다면 시우가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리겠지.

       

       그러니까 나는, 당당하게 선언하기로 했다.

       

       

       “너희들, 잘 들어.”

       

       “···?”

       

       “시우가 나를 덮친 게 아니야! 내가 시우를 덮친 거야!”

       

       

       ···씁, 뭔가 더 이상하게 들리는 것 같은데?

       

       괜히 이야기했나?

       

       

       “아르테···.”

       

       “죄, 죄송합니다.”

       

       “하아···. 그래, 마침 잘 됐군. 유시우, 너도 따라와라.”

       

       “아, 네···.”

       

       

       그렇게, 아카데미의 개학식은 내 마지막 등교일이 되어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화려한비밀 님께서 재미있는 합성을 하나 해주셨더라구요

    표지를 바꿔봤습니다

    뭘 다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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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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