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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1

        

       “응?”

         

       엘라에게 생고기 조각을 빼앗긴 아나스타시아는 자기 손이 텅 비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서 씩씩대고 있는 엘라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자신에게 고기를 빼앗아 갔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고기를 꽉 움켜쥐고 있는 엘라를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엘라는 고기를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그러자 아나스타시아는 남은 한 손도 내밀었다.

       그리고 두 손을 붙이고 공손하게 만들어 엘라를 향해 내밀었다.

         

       하지만 아무리 예의바르게, 공손하게 부탁해도 생고기를 먹으라고 돌려줄 수는 없는 일.

       엘라는 절대 안 된다는 듯 생고기를 등 뒤로 감추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거 먹으면 안 된답니다! 이런 날고기를 먹는 건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레이디라면 우아하게, 깨끗하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하니까요!”

       “동생. 야만인이라니, 말이 너무 심해요.”

       “아뇨! 심하지 않아요! 언니에게는 이것보다도 더 강한 말을 해도 모자라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나스타시아는 진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엘라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버섯 위에서 고기를 뜯어 먹고 있는 진성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나스타시아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경악하며 뛰어왔던 터라 미처 진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어…?”

         

       그리고 진성을 보지 못했던 엘라는, 졸지에 진성의 바로 앞에서 야만인이라고 욕을 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 그, 그, 그.”

         

       엘라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생고기를 우적우적 씹는 진성의 모습을 보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머리는 하얗게 되고, 당황해서 별생각도 들지 않고, 본능에 따라 변명이라도 내뱉어야 하는 입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앗, 동생 고장 났다.”

         

       엘라는 크게 당황한 듯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성은 진정하라는 듯 말을 던졌다.

         

       “프라우 빈터. 진정하시죠.”

       “네? 네. 진정, 네.”

       “저를 욕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진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엘라가 서서히 진정되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남은 것인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고, 원피스의 치맛자락 끝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당황이 가시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헤어 박. 제가 한 말은 그런 게 아닌데….”

       “네.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이것이 좋아서 먹는 것은 아니라서요.”

         

       진성은 엘라의 변명을 방긋 웃으며 받아주었다.

         

       “하지만 의외로 먹을 만은 합니다. 블루 레어(Blue Rare)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생각 외로 먹을 만은 하거든요. 드셔보시겠습니까?”

       “네? 네? 네….”

         

       엘라는 진성의 권유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가 자신이 실언을 내뱉었음을 깨닫고 후회했지만, 이렇게 된 거 생고기를 맛있게 먹어서 야만인 발언이 그냥 실수였다고 증명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엘라는 손에 쥔 생고기 조각을 들어 떨리는 손으로 입 안에 천천히 집어넣었고….

         

       “히끅.”

         

       엘라의 손안에 있으면서 적당한 온기를 간직한, 하지만 소름 끼치는 차가움을 안고 있는 생고기의 식감에 딸꾹질 같은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엘라는 눈을 꼭 감고 생고기를 씹기 시작했고, 씹을 때마다 배어 나오는 핏물과 생고기 특유의 식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의외로 고소한 맛이 있었고, 끝부분에 비린 맛과 누린내가 살짝 남은 것을 빼면 먹을만한 맛이기는 했다.

         

       엘라는 생고기라는 것이 의외로 먹을만했다는 놀라운 사실에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살짝 입을 벌리며 당황한 토끼를 떠올리게 만드는 얼굴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똥그랗게 뜬 눈의 붉은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띠었고, 최상급의 루비에 빛을 비춘 것 같은 아름다운 색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진성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의외로 먹을만해서 깜짝 놀랐죠?”

       “네….”

       “하하하. 최상급 소고기라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래요. 이 최상급 고기를 불에 구웠으면 훨씬 맛있었겠지요. 식감 역시 조리를 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테고. 그리고 만약 날로 먹을 거라면 한국 음식인 ‘육회’로 만들어서 먹는 것이 더 좋았을 겁니다.”

       “그러면 왜…?”

         

       진성은 엘라의 물음에 자신이 깔고 누워있는 버섯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술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서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주술…이요…. 그렇군요.”

         

       엘라는 진성의 말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

       주술사들이 기행을 펼치는 이유이며, 그들을 기인으로 여기게 만든 기술.

         

       주술사들은 목욕재계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동물의 피를 뒤집어쓰는 것, 동물의 똥을 바르고 춤을 추는 것,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온몸에 낚싯바늘을 걸고 허공에 매달리는 일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곤 했다.

       당연히 주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아무리 목적이 있다고 한들 행동 자체가 기괴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고, 이에 따라 주술사들은 그들의 행적과 맞물려 기인으로 취급되게 되었다.

         

       진성이 생고기를 씹는 것 역시 그런 주술사들 특유의, 주술을 사용하기 위한 밑 준비라고 생각한다면 이해되었다.

         

       “바쁘신 와중 갑자기 와서 실례를 범했군요. 헤어 박, 제 무례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하하하. 물론이죠.”

       “그럼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엘라는 인사를 하고 아나스타시아를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엘라에게 잡히는 것을 거부하고 진성의 앞까지 뛰어갔다.

         

       “저기, 은인?”

       “네. 프라우 렌츠.”

       “무슨 주술인지 알 수 있나요~”

         

       아나스타시아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진성은 그러한 아나스타시아의 태도가 기껍다는 듯 따스하게 말했다.

         

       “비밀입니다.”

         

       그러자 아나스타시아는 실망했다는 듯 시무룩해졌다.

         

       “은인! 그러면!”

       “네. 말씀하세요.”

        “그러면 주술 하는 거 봐도 되나용?”

         

       진성은 자신의 귀여움을 한껏 뽐내며 무기처럼 사용하는 아나스타시아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안 됩니다.”

       “힝.”

         

       아나스타시아는 두 번 거절을 듣자 군말 없이 물러나 엘라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엘라의 손에 이끌려 저택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시 정원 구석에 평화가 찾아오자 진성은 갓 위에 놓아두었던 고기를 들어 다시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의 송곳니가 생고기를 찢었고, 어금니가 생고기를 다지며 그의 목구멍 아래로 고기를 씹어 삼켰다.

         

       그러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어있던 공터에 꾸물꾸물 하얀 것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마치 빨리 감기라도 한 것처럼 쑥쑥 자라서 그를 받치고 있는 버섯과 똑 닮은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스멀스멀 기어 오더니 버섯들 사이에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그렇게 버섯의 숫자가 열다섯이 되었을 때 진성은 생고기를 씹는 것을 멈추었고, 자그마한 사람의 크기까지 자란 버섯의 위에서 내려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옷장에서 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적여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발견되지 않았고, 진성은 한숨을 쉬며 복도로 나가 사용인 한 명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가죽 바지와 가죽으로 만든 상의가 필요합니다. 상의는 가죽 재킷으로 구해도 되고, 인공 가죽이 아닌 실제 동물의 가죽을 이용해서 만든 옷을 구해주시지요. 그리고 군화와 신발 끈도 필요합니다. 이 역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사용인은 진성이 알 수 없는 주문을 했음에도 익숙하다는 듯 받았다.

         

       “색상은 검은색이면 되겠습니까?”

       “어두운 색상으로 구해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사용인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슬쩍 숙이곤 진성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진성은 창문으로 사용인이 저택 밖으로 나서는 것을 확인하곤 주술에 쓰일 재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방에서 필요한 재료를 모조리 긁어모은 뒤, 저택에서 창고로 사용하는 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적당한 양이 차 있어야 하는 창고는 어제 대마녀가 인테리어를 뜯어고치며 처박아놓은 물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구색에 맞춰 정리되어있을 뿐 물건을 정리한 사람조차 자신이 무엇을 넣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중구난방으로 물건이 놓여 있었다.

         

       진성은 거기에서 대충 훑어보며 가죽이나 뼈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찾아다녔다.

       뼈로 만든 물건은 부피가 작다면 그대로 자신이 챙겼고, 가죽으로 만든 물건은 상태를 확인해보고 자신이 원하는 동물로 만든 것이라면 챙기고 아니라면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동안 창고를 순회하며 한 보따리의 물건을 챙겨서 나오곤 그것을 버섯이 있는 곳으로 가져가 앞에다가 쏟아내었다.

         

       그리고 가죽으로 만든 물건을 찢고 뜯어서 가죽 조각으로 만들고, 그것을 인형의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인형의 안에는 솜 대신에 생고기를 채웠고, 어설픈 재봉 사이로 흘러나오는 핏물은 그릇에 잘 모아놓았다.

         

       그리곤 방울지며 떨어지는 핏방울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번쩍 뜨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방으로 돌아가자 사용인이 구해온 옷이 있었다.

         

       새까만 광택을 뽐내고 있는 가죽 재킷.

       재킷보다는 덜한 광택을 가지고 있는 가죽 바지.

       반짝반짝 검은 광택을 내는 군화와 존재감을 강하게 뽐내는 어두운 갈색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 끈까지.

         

       진성은 그것으로 갈아입고는 다시 버섯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허공을 쥐어서 땅을 슬쩍 파서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잡초들을 뽑아 이불처럼 덮었다.

         

       진성은 그 상태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가 뉘엿뉘엿 사라지고 황혼이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시간이 되었을 때.

         

       진성은 번쩍 눈을 뜨고는 버섯으로 다가갔다.

         

       그는 버섯의 입이 있는 위치에서 한 뼘 위쪽에 손톱으로 십자 모양의 자국을 내었고, 이러한 작업을 열두 번 더 행했다. 그리고 다른 두 버섯에는 특별한 작업을 행하기 시작했다.

         

       진성은 사포를 들어 자그맣게 보이는 버섯의 표면을 문질러 거칠게 만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버섯의 이마에는 십자가가 아닌 민달팽이를 연상케 하는 문양을 그렸다.

         

       그렇게 버섯 하나하나에 처리를 한 진성은 땅에 무언지 모를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미로처럼 보이는, 다르게 보면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는 문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문양이 다 그려지자.

         

       그는 버섯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그리고 일곱 바퀴째가 되었을 때 입을 열었다.

         

       “누가 하나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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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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